▶ 이솝(Aesop, B.C.620~B.C.564)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우화집(寓話集), 이솝 우화(Fables of Aesop) : 우화(寓話, Fable)는 인간이 아닌 동물의 시선으로 보편적인 지혜를 전달하는 이야기 형식입니다. 우화에 따라서는 동물이 아닌 식물이나 무생물, 혹은 인간이 등장하는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습니다. 서기 전 200년대부터 서기 후 500년대까지 유대 율법과 전승을 담은 탈무드(Talmud), 중동의 천일야화(千一夜話, Arabian Nights), 프랑스 작가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 1621~1695)의 우화 선집(Fables Choisies, 1678) 등 세계 각지에 다양한 우화가 전래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우화로는 판소리 수궁가(水宮歌)의 원전으로 친숙한 토끼전(토끼傳) 혹은 별주부전(鼈主簿傳)을 들 수 있겠네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우화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만, 세상에서 가장 우화를 꼽으라면 단연 이솝 우화(Fables of Aesop)일 것입니다. 이솝이란 인명 자체가 우화의 대명사로 사용될 정도니까요.
▶ 이솝은 실존한 우화작가이자 이야기꾼(Fabulist and Storyteller)인가, 불특정 다수의 작가군(群)인가? : 이솝 우화(Fables of Aesop)를 정리한 이솝(Aesop, B.C.620~B.C.564)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사료가 미비해 그의 실체를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그리스의 탁월한 우화작가이자 화려한 이야기꾼으로 아이소포스(Aisopos)라고 불렸는데, 아이소포스의 영어식 표기가 우리에게 친숙한 이솝(Aesop)입니다. 현존하는 이솝 우화(Fables of Aesop)에는 기원전 6세기~5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우화나 그리스가 아닌 지역에서 만들어진 우화 등이 대거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 각지의 수많은 이솝 - 불특정 다수의 작가가 새롭게 더하거나 빼고, 자국의 문화에 맞게 다듬으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이솝 우화는 그리스 로마의 우화집인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게 재창작되고 있는 ‘인류의 우화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이솝은 충격적으로 못생긴 그리스 노예(Strikingly Ugly Greek Slave)인가, 에티오피아 출신의 흑인(Black African from Aethiopia)인가?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파이드로스(Phaedrus), 헤로도토스(Herodotus), 칼리마코스(Callimachus), 티레의 막시무스(Maximus of Tyre) 등 이솝에 대해 기록을 남긴 이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솝이 태어난 곳을 그리스의 식민지 중 하나인 메셈 브리아(the Greek colony of Mesembria), 프리기아(Phrygia), 사모스 섬(Samos) 등으로 각기 다르게 추정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막시무스 플라데누스(Maximus Planudes, 1260~1305)는 이솝(Aesop)이란 이름을 근거로, 그가 에티오피아 출신의 흑인(Black African from Aethiopia)이라고 주장하였고, 이를 지지한 후대인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솝을 흑인으로 그렸거나, 새긴 조각품은 그의 흑인설을 지지하는 동조자들의 작품이지요. 이솝 우화 중에서 그리스에서는 발견할 수 없으나, 북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동물(낙타, 코끼리, 원숭이 등)이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는 이솝 흑인설을 지지하는 간접적인 증거로 제시됩니다.
▶ 이솝은 주인의 실수를 덮어준 영특한 노예인가? : 그의 신분에 대한 가장 유명한 설명은 노예 출신이라는 것으로, 주인의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 영특함을 발휘했고 이로써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이솝의 주인은 어느 날 “드넓은 바다의 바닷물을 모두 마시겠다!”고 허풍을 쳤습니다. 문제는 다 마시지 못하면, 모든 재산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고 수많은 이들이 들었다는 거죠. 이솝은 주인에게 한 가지 꾀를 건네고, 주인은 무사히 친구들에게 친 허풍을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솝의 주인은 “바닷물을 마시기 전에,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물을 먼저 막아 달라.”고 친구들에게 요구하였다고 하네요! 이만하면 주인 입장에서도 이솝을 노예에서 풀어줄만한 기가 막힌 꾀가 아닐까 싶네요.
▶ 이솝은 왜 델포이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는가? : 그러나 이솝에 대한 기록에서 그의 화려한 화술에 대비되는 신중하지 못한 처세를 꼬집는 대목이 많습니다. 이솝은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의 외교 사절단(diplomatic mission from King Croesus of Lydia)으로 델포이(Delphi)를 방문했으나, 그들을 모욕하였기에 사망했다는 식이지요. 그러나 크로이소스 왕의 외교 사절단이 델포이를 방문한 해와 이솝이 사망한 기원전 564년(B.C.564)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후대의 학자도 있습니다. 물론 그가 태어나고, 사망한 해조차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객관성은 부족합니다만….
▶ 이솝에 관한 매우 허구적인 전기(Highly Fictional Biography), 이솝 로맨스(The Aesop Romance) : 이솝 우화(Fables of Aesop)의 유명세와 대중성에 미루어 보건데, 이솝은 후대의 독자와 학자들에게도 뜨거운 관심을 받는 유명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솝에 대한 기록이 산재합니다만, 파편적일 뿐만 아니라 서로 상충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솝에 대한 파편적인 기록 중에서도 가장 방대하고, 유명한 기록물을 꼽으라면, 이솝 로맨스(The Aesop Romance)란 제목의 매우 허구적인 전기(highly fictional biography)를 꼽을 수 있습니다. 객관성이나, 정확성을 무시한다면, 그의 출생부터 추악한 외모, 화려한 화술과 이를 기반으로 한 활약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술로 얻은 그의 모든 부와 명예는 역설적으로 화술로 인해 (분노한 이들에 의해) 잃었다는 점을 대비함으로써 이솝이란 한 인간의 삶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은 높이 살만 합니다.
▶ 이솝 우화의 현대적인 분류법, 페리 인덱스(Perry Index) : 초창기의 이솝 우화집은 대개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의 이름을 딴 간략한 제목을 알파벳순으로 배열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백 편에 달하는 우화집을 이해하기에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방식이지요. 그래서 미국의 고전 교수(American professor of classics) 벤 에드윈 페리(Ben Edwin Perry, 1892~1968)와 수백편의 우화를 언어와 연대, 출처, 알파벳순으로 총 725편의 우화를 체계화하였습니다. 일례로 그리스어 우화는 라틴어 우화에 비해 시대적으로 앞설 확률이 높습니다. 페리 인덱스(Perry Index)는 이솝 우화에 수록된 작품이 이솝 개인의 창작이 아니라 수많은 저자들의 공동 작품이라는 전제 하에 개발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기원후의 이솝우화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우화라면, 아무래도 기원전 6세기에 활동한 이솝이 창작했거나, 수집했다고 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 ‘금도끼 은도끼’, ‘토끼와 거북이’, ‘여우와 신포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개미와 베짱이’, ‘시골쥐와 도시쥐’, ‘양의 탈을 쓴 늑대’... 이솝우화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 이솝 우화의 몇몇 이야기는 마치 우리나라의 토착설화나 전래동화로 인식될 정도로 친숙한 이야기이지만, 그 출처는 명백히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Hare and Tortoise)와 나무꾼과 헤르메스(The Honest Woodcutter)에 있습니다. 입니다.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등장하는 무국적 이야기란 점도 간과할 수 없겠으나, 일본을 거쳐 국내에 유입된 이솝우화가 완전히 토착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이솝 우화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수많은 방송, 소설, 웹툰 등에서 패러디하기 좋은 소재로써도 제격입니다. 기원전 6세기의 낡은 작품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창작자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살아있는 우화집’으로 손색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