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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프로필

  • 출생
  • 경력 복음전도자
    성령치유자
    뷔르템베르크 지방 의원

2020.09.2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1842년 독일 뫼트링겐에서 저명한 목사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1805-1880)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앙을 실제 삶에서 실천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아 튀빙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869년, 어린 시절을 보낸 중남부 독일의 온천마을 바트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사역을 도왔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곧 그는 아버지처럼 복음전도자와 성령치유자로 높은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아오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대하면서 블룸하르트의 시선은 점점 세상 한가운데로 옮겨간다. 당대의 사회·경제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결국 노동자 탄압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다. 독일 사민당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 블룸하르트는 뷔르템베르크 지방 의원으로 당선되어 6년간 의정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기가 마무리될 즈음에 정당 정치에 환멸을 느껴 재선에 도전하지 않은 채, 바트볼로 돌아가 1919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다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블룸하르트는 인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실제 삶과 영성을 분리시킨 ‘일요일만 지키는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예배 형식과 자기 구원, 내세에만 집중하여 삶의 진정한 변화와 하나님나라의 정의를 도외시하는 허울뿐인 기독교를 그는 한탄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후일 디트리히 본회퍼, 에밀 브루너, 오스카 쿨만, 카를 바르트와 같은 신학의 거장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책 중 《숨어 있는 예수》, 《예수처럼 아이처럼》, 《기다리며 서두르며》(근간) 등이 한국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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