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유성룡 西厓 柳成龍, 1542~1607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566년(25세)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가 되었다. 1591년(50세) 전란에 대비해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제안하고 이순신과 권율을 등용했다.
1592년(51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다. 난을 피해 파천하는 선조를 호종하여 개성에서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반대파의 모함으로 그날로 파직되었다. 1593년 선조가 한양으로 환궁했을 때 다시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며 군대 양성을 위해 훈련도감을 설치했다.
1598년(57세)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관작을 삭탈당했다가 1600년(59세) 다시 회복되었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저서로 《서애집》《징비록》등이 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관련 사료 가운데 가장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저작물로서 국보 132호로 지정되었다.
<개정판 | 징비록>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