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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호

    유석호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리옹2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불어불문 석사
    연세대학교 불어불문 학사
  • 경력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 교수

2014.11.2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프랑수아 라블레
몽테뉴와 더불어 프랑스 16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그 출생연도에 있어서 적잖은 논란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1483년에 쉬농 근처의 라 드비니에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변호사 출신의 앙투안느 라블레Antoine Rabelais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10년경에 라블레는 앙제 근처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의 수도원에서 수도사 생활을 시작한다. 엄격한 금욕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적 교단의 수도회는 그의 지적 욕구를 채우는 데는 부적절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고전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법률가들의 사교 모임에 드나들며 당시 사회에 팽배해 있던 위마니슴humanisme 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법률과 신학을 공부한 이후 인간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위한 라블레의 관심사는 의학 분야로 옮겨간다. 성직을 떠나 당시 가장 유명한 몽펠리에 의대에서 수학하면서, 1531년에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그리스어 원전에 주석을 단 공개 강의로 큰 호평을 받는다. 이듬해에 리옹의 퐁 뒤 론느 시립병원 근무를 계기로 의업은 물론 고전 번역 작업에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532년... 리옹에서 『팡타그뤼엘Pantagruel』을 출판하면서 시작한다. 그 당시에 유행하던 작자 미상의 대중소설 『가르강튀아 대연대기Les Chroniques gargantuines』에 착안해서 쓴 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둔 데 힘입어 1534년에 다시 원작과는 전혀 다른 『가르강튀아Gargantua』를 발표한다. 이후 프랑수아 1세의 신교도 탄압이 거세지면서 평소 작품을 통해 공공연히 복음주의 운동에 지지를 표명하고 가톨릭교회에 비판적이었던 라블레의 창작 활동은 중단된다. 그러는 동안 여러 차례 로마를 오가면서 수도원에 복귀하는 한편, 1537년 봄에 몽펠리에로 돌아가 4월에 학사, 5월에 박사학위를 받고 히포크라테스에 관한 강의를 한다. 같은 해 여름에는 리옹에서 교수형을 당한 죄수의 시체를 공개적으로 해부하기도 한다. 한편 그 내용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앞서 발표한 작품들이 금서 목록에 오른데 이어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관심을 모았던 ''여성의 우열에 관한 논쟁''을 작품의 주제로 삼은 『제3서Le Tiers Livre』(1546) 역시 이단적인 내용을 문제 삼아 금서 처분을 받는다. 이후 『제4서Le Quart Livre』(1548, 1552)의 출간 즈음에 국왕에게서 자신의 전 작품에 대한 10년간의 출판 특권을 인정받는다. 1553년 4월 초, 파리의 자르댕 거리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사후 9년 뒤인 1562년에 팡타그뤼엘 항해의 속편격인 『소리나는 섬L''Isle Sonante』이, 1564년에 팡타그뤼엘 연대기의 완결편인 『제5서Le Cinquiesme Livre』가 출판된다. 작가 사후에, 그것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출판된 책이란 이유로 『제5서』의 진위 문제는 발표 이후 지금껏 논란거리로서 라블레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미묘하고 취약한 문제로 남아 있다.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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