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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2015.01.2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오 헨리》

오 헨리(O. Henry)는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 1862년 10월 11일 ~ 1910년 6월 5일)의 필명이다. 반전이 있는 짧은 소설을 주로 썼으며, 모파상의 영향을 받아 풍자·애수에 찬 화술로 평범한 미국인의 생활을 그렸다.

오 헨리는 1862년 10월 11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그린스보로에서 태어났다. 세살 무렵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가족은 할머니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18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촌이 경영하는 약국의 조수로 들어가 1881년 약사 자격증을 획득하였다. 1884년 오스틴으로 이사한 후 포터는 제도사, 은행원, 기자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습작을 썼다. 1887년 17세였던 아솔 에스테스와 결혼하였다. 포터 가족은 1895년 휴스턴으로 이사하였고 포터는 우체국의 고정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스틴에서 재직하였던 은행에서 포터가 재직 중 계산 실수를 범했다는 이유로 고소하여 구금되었다. 포터는 장인의 도움으로 석방되어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되고, 가족들은 장인의 집에 의탁하였다. 첫 재판은 1896년 7월 7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포터는 처음에는 뉴올리언스로 이후 온두라스로 도피하였다. 포터는 1897년 아내 아솔이 결핵으로 죽어간다는 전갈을 받고 오스틴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1897년 7월 25일 사망하였다. 포터는 체포되어 1898년 2월 횡령죄로 5년의 징역을 언도받고 5월 25일 오하이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01년 출감한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로 이사한 장인을 찾아가 11살이 된 딸 마가렛을 만났다. 1902년 《뉴욕 월드 썬데이 매거진》이 그의 글을 수록하길 원하자 포터는 뉴욕으로 이사하여 이 잡지에 381편의 단편을 실었다. 1907년 포터는 사라 린드시 콜맨과 재혼하였다.

1908년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글쓰기를 중단하였다. 1909년에 사라가 떠나간 뒤 더욱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10년 6월 5일 사망하였다. 사망 후 뉴욕 시에 의해 노스캐롤라이나의 아쉬빌에 묻혔다. 1927년 그의 딸 마가렛 역시 사망하여 아버지의 옆에 묻혔다. 오 헨리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크리스마스 선물(The Gift of the Magi)》, 《붉은 추장의 몸값(The Ransom of Red Chief)》, 《참다운 회개(A Retrieved Reformation)》,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등이 있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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