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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

    이영호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36년
  • 학력 진주사범대학교 학사
  • 데뷔 경향신문 신춘문예 동화 `토끼` 당선
  • 수상 2009년 한국불교아동문학상
    2003년 한국 문학상
    1997년 남명문학상 본상
    1992년 대한민국 5·5문화상
    1992년 방정환 문학상

2015.02.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이영호
광화문 시대의 이영호 선생님
이영호 선생님과 내가 근무했던 잡지사 건물은 광화문 네거리와 이웃해 있었다. 나는 선생님과 같은 사무실에 근무했고, 그래서 선생님이 상임이사로 활동하는 ‘한국아동문학가협회’에 가입해 말단에서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이영호 선생님이 부회장·회장으로 중책을 맡을 적마다 나도 총무간사, 사무국장, 상임이사까지 꼭 10년 동안 팀을 이뤄 협회 일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선생님의 전성기는 광화문 시대였던 것 같다. 연세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인 인생의 완숙기로 접어든 때였고, 시기적으로도 우리나라에 출판 붐이 일어나던 때라 선생님은 어린이 잡지와 신문의 연재를 맡으며 1년에 몇 권씩 동화책을 쏟아 내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셨다. 게다가 한국남방개발, 문화부 등의 경비 지원을 받으며 뻔질나게 해외답사와 취재 여행을 다니시기도 했다.
이영호 선생님이 광화문에 근무하실 때는 이원수 회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들르셨다. 이영호 선생님의 선배는 물론 동년배, 후배, 지방 작가들도 많이 들러서 나는 자연스레 그분들과의 식사와 술좌석에 어울려 안면을 넓혀 갔고 많은 것을 배웠다.

화려한 문단 여정

이영호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경남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628번지에서 태어났다. 한학자였던 아버지 이현대 씨와 어머니 황정순 씨 사이의 8남매 중 다섯째였다.
아버지 이현대 씨는 사후에 이영호 선생님이 주선해 ≪덕천유고≫라는 문집을 엮어 냈을 정도로 뛰어난 지방 유림의 실력자였다.
선생님은 고향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당시 수재들만이 갈 수 있던 진주사범학교에 진학해 1957년에 졸업과 동시에 교단에 섰다. 선친의 영향을 받았거나 피 내림이 되었던지 선생님은 교단에 선 후 문학에 뜻을 두어 소설 습작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1961년 ≪경남신문≫에 <부회설 종>이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상함으로써 마산 지방 문단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지방 문인으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 소설과 아동 소설, 동화 습작에 매달렸다.
그 결과 196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토끼>가 당선되어 중앙 문단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또한 그해에는 경사가 겹쳐 동화 <돌팔매>가 문화공보부 주최 신인예술상을 받았다. 화려한 등단과 함께 그때까지 써 두었던 동화들을 한 자리에 모아 ≪배냇소 누렁이≫라는 작품집을 상재했다. 동년배 작가들보다는 다소 늦은 등단이었지만 화려하고 주목받는 등단이었다.
그해 선생님은 31세였는데 등단에 고무되어 더욱 치열하게 작품을 쓰기 위해, 생계 대책도 없으면서 미련 없이 교직을 버렸다. 이런 결단력이 뒷날 문단에서 선이 굵은 일들을 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교단을 떠난 선생님은 간단한 짐을 싸 들고 ‘의상대’라는 암자로 들어가 소설과 동화 쓰기에 몰두했다. 그때 쓴 소설 <하복>으로 ≪현대문학≫ 지에 추천을 받았고, 이듬해 주간지에 ≪현대문학≫ 추천 심사위원인 김동리 선생의 심사로 <퇴원>이 당선됨으로써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래서 성인 소설가로 활동할 줄 알았는데, 그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아동문학만 파고드는 작가로 활동했다.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은 ‘당시까지도 생활동화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산문 분야를 본격적으로 소년소설로 올려놔야겠다는 사명감과 같은 것을 느꼈고, 그때까지 내면에 잠재해 있던 소재와 체험, 그리고 교단 주변에서 접했던 일들이 소년소설화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중앙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은 욕망과 꿈을 안고 1968년에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당시 ‘대한교련 교원공제조합’에서 창간하게 된 어린이 잡지 ≪새 어린이≫의 기자로 취직을 해 의지할 곳 없는 삭막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서툰 잡지사 기자와 낯선 서울 생활에서 본격적인 아동문학가의 길로 다시 나설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1971년 ≪소년중앙≫ 창간 기념으로 신인 기성을 막론하고 모집한 장편소설에 <얼굴 없는 기념사진>이 당선된 것이 그것이다. 두둑한 상금으로 사당동에 새집을 마련하고, 7년 전에 냈던 첫 작품집 ≪배냇소 누렁이≫의 재판본인 ≪오두막집 아이들≫과 신작을 한데 묶은 ≪빙판 위의 아이들≫을 펴내 그의 건재를 과시했다. 선생님은 그 후 보통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필력을 보이며 수많은 작품을 쏟아 냈다. 7∼8년 동안, 어린이 신문과 잡지에 계속 연재되는 작품들에 매달리느라 눈코 뜰 새가 없는 나날이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과 발표하는 작품의 질 높은 작품성으로 그 후에 내로라하는 굵직굵직한 아동문학상을 거의 다 수상하는 명예도 안았다. 1973년에 ‘세종아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2년에는 적도 바로 아래에 위치한 뉴기니로 날아가 발로 취재해서 쓴 대하장편 소년소설 ≪거인과 추장≫으로 제4회 ‘대한민국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1992년에는 ≪얼굴 없는 기념사진≫을 내고 장편동화 ≪열두 컷의 낡은 필름≫으로 제2회 ‘방정환문학상’을 받았고, 1997년에는 영남이 낳은 거유 남명 조식 선생님을 기념해 제정한 ‘남명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투철한 작가 정신과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참 글쟁이

이영호 선생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편마다 스며 있는 투철한 작가 의식을 느끼고 놀라게 된다. 작가라면 누구나 다 작가 의식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분처럼 뚜렷한 이도 없다. 선생님은 동화책을 묶어 낼 적마다 머리말이나 작가의 변에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가’를 적어 놓고 있다. 그 면면이 그 작품을 쓸 때의 사회 문제점이거나 민족의 역사에 옹이를 지게 했던 큰 사건을 소재로 다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질곡의 우리 역사를 바로 보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선생님은 장편에 능한 작가다. 그런 역사적인 큰 사건들을 다루려니 자연히 장편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이 선생님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장편의 시대적 배경이 된 순서대로 몇 편 들어 보면, 일제강점기 때 학도병으로 끌려 나가 뉴기니나 인도네시아에서 독립 운동을 도와준 인연으로 그곳에 남아서 큰 사업을 일으킨 사람을 주인공으로 다룬 ≪거인과 추장≫, 징용으로 자바로 끌려갔다가 일본이 패망하자 그곳에 남아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사형당한 ≪영웅 묘지의 꼬마 루딘≫은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다. 그리고 일제 시기와 해방된 직후까지의 세대를 다룬 작품으로 ≪열두 컷의 낡은 필름≫과 ≪대숲 안집 사람들≫이 있다. 해방 후 가장 큰 사건이었던 6·25를 다룬 작품으로 ≪늪마을을 스쳐간 바람≫이, 5·16 직후의 세상사를 다룬 작품으로 ≪바람 부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인도를 두 번이나 답사하고 쓴 장편소설 ≪기특한 녀석≫이 있다.
선생님은 이런 작품 속에 역사 고비마다 우리 국민이 어떻게 그 험난한 파랑을 헤쳐 나왔나를 조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하나는 세계를 무대로 하는 작품을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해서 쓰는 투철한 작가 의식과 큰 스케일의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을 무언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노신사

나는 이영호 선생님을 볼 적마다 작품 말고도 부러워하는 게 많다 그중의 으뜸이 멋이다. 어찌 보면 선생님은 인생을 즐기며 사는 분이다.
내가 12년이나 젊은 신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원고지에 글을 쓸 때 그분은 타자기로 글을 쓰다가 신형인 전동 타자기로 바꿨고, 다시 워드프로세서 그리고 컴퓨터로 글을 쓰셨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분의 도전 정신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언젠가 외국에 같이 나간 적이 있는데 소형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가서 그때그때 기행 스케치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또 있다. 나와 함께 근무하던 그때 회사 직원이 100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분들 중에서 손수 운전을 하고 제일 먼저 나타난 사람도 이영호 선생님이었다. 운동을 즐기는 것도 그렇다. 젊어서 축구를 하다가 아킬레스 힘줄이 끊어져 많은 고생을 했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해마다 며칠씩 누워서 뜸 치료를 하면서도 테니스를 즐기다가 무릎 인대가 늘어지는 큰 부상을 당해 두 달간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골프를 시작해 지금도 필드 출입을 하고 있어 동년배는 물론이고 젊은이들까지 놀라게 하고 있다.

작품 및 수상 연보

196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부회설 종>으로 당선작 없는 가작 입상.
196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토끼>가 당선되어 동화작가로 등단. 단편동화집 ≪배냇소 누렁이≫(태화출판사) 출간.
1967년 ≪현대문학≫ 소설 추천 및 주간신문 소설 당선으로 소설가로 등단.
1971년 ≪오두막집 아이들≫(문조사), ≪빙판 위의 아이들≫(문조사) 출간.
1973년 단편동화 <별을 따려는 아이>로 제6회 세종아동문학상 수상.
1974년 5학년 국어 교과서에 <인도네시아의 밀림>을 집필 수록. ≪거인과 추장≫을 ≪소년한국일보≫에 400회 연재.
1975년 ≪시를 짓는 나팔꽃≫ 출간.
1979년 ≪별을 따려는 아이≫(유아개발사), ≪행복한 매미≫(서문당) 출간.
1980년 ≪둘이서 넷처럼≫(홍진출판사), ≪웃으며 생각하며≫(어문각), ≪고향으로 간 삐삐≫(예림당), 콩트집 ≪개구쟁이 소동≫(범아서관), ≪꿈꾸는 해바라기들≫(어문각), ≪쌍둥이 형제≫(문학교육) 출간. <영웅 묘지의 꼬마 루딘>을 ≪소년≫에 연재.
1981년 ≪거인과 추장≫(자유문화사) 출간.
1982년 ≪대숲 안집 사람들≫(삼성당) 출간. 장편소설 ≪거인과 추장≫으로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 수상.
1983년 ≪늪마을 스쳐간 바람≫ (도서출판 인간), ≪옹순이와의 이별≫(견지사), ≪감꽃 목걸이≫(예림당), ≪그래도 남은 소원≫(효성사) 출간.
1984년 ≪아버지의 바다≫(금성출판사) 출간.
1985년 ≪장군의 소원≫(효성사), ≪아기바람 엄마바람≫(금성출판사), ≪새벽을 달리는 아이≫(계몽사) 출간.
1986년 ≪은행잎 편지≫(웅진출판), ≪다시 핀 무궁화≫(효성사), ≪버려졌던 풀각시≫(꿈동산) 출간.
1987년 ≪아버지와 호박 풀떼죽≫(종로서적), ≪소년소녀 삼국지≫ 상·중·하(예림당), ≪장순경과 삼총사≫(효성사), ≪난파선을 탄 소년들≫(새소년) 출간.
1988년 ≪남쪽나라 등대섬≫(지문사), ≪추적 25시≫(효성사) 출간.
1989년 ≪영웅 묘지의 꼬마 루딘≫(서강) 출간.
1990년 ≪귀염이와 예쁜이≫(태양사), ≪매일 싸우는 아이≫(삼익출판사), ≪비둘기의 꿈≫(도서출판평화) 출간.
1991년 ≪이사를 늦춘 휘파람새≫(대연), ≪날개를 단 허수아비≫(대연), ≪열쇠 목걸이를 찬 아이≫(윤성), ≪살구꽃 피던 날≫(용진), ≪열두 컷의 낡은 필름≫(오늘), ≪물위를 걷는 삼손≫(동아출판) 출간.
1992년 ≪열두 컷의 낡은 필름≫으로 방정환문학상 수상.
1993년 ≪마지막 백조≫(중원사), ≪얼굴 없는 기념 사진≫(동아출판) 출간.
1994년 ≪임꺽정≫(지경사), ≪기특한 녀석≫(교학사), ≪말썽이 형제≫(학원출판공사) 출간.
1996년 ≪동수와 다람쥐≫, ≪눈사람을 기다리는 아이≫(한교) 출간.
1996년 ≪당고개를 넘나드는 바람≫(동아) 출간.
1997년 ≪피난열차≫(예하), ≪기특한 녀석≫(교학사), ≪인어공주를 만난 선장≫ 외 두 권 (두산동아), ≪지혜 창작 동화≫(유진) 출간. 방정환재단이 주는 ‘대한민국 5·5문화상’ 수상, 남명문학상 본상 수상.
2000년 ≪엄마 또 읽어 주세요≫(눈열린교육) 출간.
2001년 ≪멀리 보는 새≫(영림카디널) 출간.
2003년 ≪멀리 보는 새≫로 한국문학상 수상.
2009년 ≪덜렁이와 망태할아버지≫(기댄돌), ≪옹고집전≫(영림카디널) 출간. ≪옹고집전≫으로 한국불교아동문학상 수상.

해설 - 권혁준
1958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공주교육대학교를 졸업했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남천 소설 연구’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학과에서 ‘문학이론의 시교육적 적용에 관한 연구’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등학교 교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공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0년에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해 시 창작을 하기도 했으나, 공주교육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뒤 아동문학 연구와 평론에 힘을 기울여 아동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독서교육의 이론과 방법≫(공저), ≪문학이론과 시교육≫, ≪초등 국어 수업의 방법≫(공저), ≪아동문학의 이해≫(공저), ≪살아 있는 동화 읽기≫, ≪깊이 있는 삶 읽기≫(공저) 등의 책을 냈다.

<이영호 동화선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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