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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 Eric John Ernest Hobsbawm

    에릭 홉스봄 프로필

  • 출생-사망 1917년 6월 9일 - 2012년 10월 1일
  • 경력 영국 런던대학교 바벡칼리지 학장
    뉴욕 신사회 연구원 교수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영국 런던대학교 버벡컬리지 사회경제학 교수

2016.05.1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m)
E. H. 카, E. P. 톰슨 등 훌륭한 역사가들을 무수히 배출한 영국에서, 역사가라곤 오직 그 사람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람들이 "그 역사가(the historian)"라고 부르는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다. 홉스봄은 1917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오스트리아인이었고 아버지는 유대계 영국인이었다. 이렇듯 "전 세계의 모든 요소들을 골고루 조금씩 가지게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홉스봄의 집안은 "지지리도 일이 안 풀리는" 집안이었다. 하지만 "아는 것이 너무 많아 친구들에게 꿀밤을 맞던" 어린 에릭은 "프리미엄이나 가외 부담이 붙지 않는 최고의 투자"였다. 홉스봄은 가족들과 함께 빈을 거쳐 베를린으로 갔다가, 히틀러가 집권하자 다시 영국으로 간다. 홉스봄은 성 메릴레번 문법학교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의 킹스 칼리지에 입학했으며, 당시 킹스 칼리지에는 "모르는 것이 없는 신입생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그가 제1부 시험에서 1등을 했을 때에도 놀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초인적인 박식함 때문에 그를 경원시하게 되었고, 그와 친구들의 관계는 "다정한 주교와 소년 합창단원들의 관계와 같았다." 따라서 케임브리지 사람들이 그가 과연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 궁금해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홉스봄은 '역사'를 택했다.

국내에서도 홉스봄의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저작 중 상당수가 번역되었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그를 최고의 역사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옮긴이는『역사론』을 E. 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를 대체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으로, 또 홉스봄의 역사 인식과 방법론은 "현재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쓸모없어 보이는 잡다하고 골동품 같은 사실들을 끌어 모아 탄복할 만한 상상력으로,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종합해 내는 능력"과 "특정한 사건을 역사의 커다란 경향성 속에서 검토하면서도 동시에 그것 자체의 구체적 양상이 갖는 한계를 강조하는 독특한 균형 감각" 등에 대해선 누구나 감탄하는 바이다.

그러나 홉스봄은 마냥 편안한 위치에서 역사를 '관조하는' 역사가였던 것은 아니다. 대공황과 전쟁을 거치면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홉스봄은 친척집에서 얹혀살다가 열세 살에 홀로 영국으로 건너간다. 하지만 히틀러를 피해서 간 그곳에서 어린 유대인 사회주의자가 본 것은 노동자의 낙원이 아니었다. 그리고 냉전이 닥치고 나중에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할 때까지, 홉스봄은 '공산화에 대한 공포가 자본주의 사회를 더욱 결속시키는 것을, 소련의 국가 계획 경제가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해 내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최고의 역사가로 명성을 날리면서도 (공산당원이기 때문에) 정작 모교인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의 강단에는 서지 못했고, 반면에 소련 당국은 이 '공산당원'의 저서가 러시아어로 번역되는 것을 막았다.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으면서도 언제나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홉스봄. 그는 자신의 신념이 좌절된 역사를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내 인생의 많은 부분, 아마 내 의식적인 삶의 대부분을 확실하게 좌절되었던 희망, 명백히 실패한 이상에 바쳤다. 그것은 10월 혁명이 개시한 공산주의였다. 그러나 패배만큼 역사가의 정신을 또렷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그러고는 코젤렉 교수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패배자들은 왜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은 일어나지 않고 다른 어떤 것이 발생했는지 설명해야 할 필요를 더 크게 느낀다. 이 연구는 예기치 않은 일이 왜 발생했는지를 설명하고, 더 지속적인 통찰력을 낳고, 결국 더 힘 있는 설명을 낳게 된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역사 이해의 증대는 패배자에게서 비롯되었다."

역자 - 강성호
고려대학교 사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훔볼트 대학과 자유베를린 대학에서 역사학을 연구했다. 고려대학교 강사와 자유베를린 대학 비교사회사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국립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서양사학회 이사, 한국사학사학회 이사로 활동했다. 저서로는『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역사발전론』,『근대 세계체제론의 역사적 이해』(공저),『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역사의 이론』,『비코와 헤르더』(공역) 등이 있다.

<역사론>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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