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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

    채제공 프로필

  • 출생-사망 1720년 - 1799년

2016.05.3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채제공 (蔡濟恭, 1720~1799년)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이며, 본관은 평강(平康)이다. 영조와 정조 시대 남인 당파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문인이다. 어려서는 오광운(吳光運)과 강박(姜樸)으로부터 배웠다. 1743년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간 뒤로 승진을 거듭하며 도승지, 대사간, 대사헌과 경기도 평안도의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정조 연간에는 정승을 두루 역임하는 등 남인 정파를 이끄는 정계의 거물로서 큰 역할을 했다.
정치적으로도 비중이 큰 인물이지만 시문 방면에서도 큰 자취를 남겼다. 시와 산문은 호방하고도 웅혼한 기풍의 작품을 지어 독특한 개성을 발산했다. 당대의 저명한 남인 문사들인 정범조(丁範祖), 이헌경(李獻慶), 신광수(申光洙), 안정복(安鼎福) 등과 교유했고, 이가환(李家煥), 정약용(丁若鏞) 등을 후원했다. 문집으로는 정조의 왕명에 따라 간행된 『번암집(樊巖集)』이 전한다.

저자 - 강흔 (姜俒, 1739~1775년)
호는 삼당재(三當齋), 본관은 진주(晉州)로 증조부 강백년(姜栢年), 조부 강현(姜鋧), 아버지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으로 이어지는 소북(小北)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763년 25세의 나이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관계에 진출한 뒤 아버지 강세황 역시 영조의 특별한 배려를 받아 관직에 나섰다. 얼마 뒤 영남 지방에 잠깐 근무하며 영남 각지를 두루 여행했다. 1767년 사헌부 검열과 대교, 병조 좌랑을 거쳐 1769년 부안 현감으로 부임했다가 조정에 돌아와 사헌부 지평에 올랐다. 1772년 이조 좌랑과 승지 등을 두루 지냈고, 문장에 능하다는 명성을 누렸지만 부안에서 돌아온 지 몇 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강흔은 재기 발랄한 문인으로 시와 산문 모두 경쾌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그 가운데 「연다초를 읊은 열 편의 시(詠烟茶草十首效香山)」는 담배가 간절하게 떠오르는 순간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산문 가운데에는 서(序)와 기(記)에 볼만한 작품이 많다. 문집으로 필사본 『삼당재유고(三當齋遺稿)』가 전한다.

저자 - 김조순 (金祖淳, 1765~1832년)
자는 사원(士源),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초명은 낙순(洛淳)인데, 문과에 급제하자 정조가 지금의 이름과 풍고(楓皐)라는 호를 지어서 내려 주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김창집(金昌集)의 현손으로, 정조의 각별한 후원을 받아서 지방관을 단 한 번도 거치지 않고도 좋은 직위로 승진을 거듭했다. 왕세자의 배필로 그의 딸을 간택한 것도 정조의 뜻이었다. 순조 대에는 정계의 거물로서 안동 김씨 세도의 틀을 마련해 놓았다.
청년 시절에는 명·청 시대 문학 사조의 영향으로 패사 소품을 탐독하다 정조에게 들켜 질책을 듣고 반성문을 바친 적이 있다. 담정(藫庭) 김려(金鑢)와 함께 중국의 『우초신지(虞初新志)』에서 영감을 받아 『우초속지(虞初續志)』를 편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현재 작품이 전하지는 않는다. 그의 문집 『풍고집(楓皐集)』은 고종 대에 나라에서 간행한 것이라 순정(醇正)한 작품 위주로 실을 수밖에 없었고, 소품 취향의 시문은 다수가 배제되었다.

저자 - 이상적 (李尙迪, 1804~1865년)
자는 혜길(惠吉)·윤진(允進), 호는 우선(藕船)·은송당(恩誦堂). 본관은 우봉(牛峯)이다. 역관 명가에서 태어나 24세 때 역과에 합격한 뒤 열두 차례나 연행사의 일원으로 중국을 다녀왔을 정도로 대청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추사 김정희가 한결같은 그의 마음에 감동하여 그려 준 「세한도(歲寒圖)」 때문에 많이 알려져 있는 그이지만, 19세기 한중 지식인의 교유에서 추사 못지않게 비중 있는 인물이다. 또 조선 후기에 역관 출신 시인이 적잖이 배출되었으나 가장 영향력이 크고 명성이 높은 사람으로는 주저 없이 이상적을 꼽을 수 있다. 그의 호 ‘은송당’도 헌종이 몸소 그의 시를 읊어 주었기 때문에 감격하여 지은 것이다.
문집으로 『은송당집(恩誦堂集)』, 『은송당속집(恩誦堂續集)』, 『우선정화록(藕船精華錄)』 등이 전한다.

저자 - 김영작 (金永爵, 1802~1868년)
자는 덕수(德叜), 호는 소정(卲亭), 존춘헌(存春軒),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문예(文藝)가 조숙하여 청년 시절부터 선배와 동학들에게 주목받았으나, 번번이 과거에 실패하고 중년 이후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진출했다. 종묘서(宗廟署)에 근무할 때 헌종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마흔두 살에야 비로소 문과에 합격했다. 그 뒤로는 여러 벼슬을 역임하여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에는 불교를 좋아하고 양명학에 심취했다. 만년에는 주자학으로 전향했다는 증언이 있으나 양명학은 물론 고증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아들이 바로 갑오개혁 때 총리대신으로 활약한 김홍집(金弘集)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박규수(朴珪壽)와 함께 온건 개화파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작으로 문집인 『소정고(卲亭稿)』 등이 전한다.

역자 - 안대회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남대 한문교육과와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밀한 해석과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옛글을 분석함으로써 선인들의 삶을 풀어내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궁극의 시학』, 『벽광나치오』, 『천년 벗과의 대화』, 『고전 산문 산책』,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선비답게 산다는 것』, 『정조의 비밀편지』, 『정조치세어록』,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조선후기시화사』, 『한국 한시의 분석과 시각』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추재기이』, 『산수간에 집을 짓고』, 『한서열전』, 『북학의』, 『궁핍한 날의 벗』 등이 있다.

역자 - 이현일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시인인 신위(申緯)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젠가 ‘조선 후기 한시사(漢詩史)’를 써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꾸준히 18~19세기의 한시 작가들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명청 시대 중국 강남 지역의 문화와 학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선에 끼친 그들의 영향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조교수이다.

편자 - 이종묵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옛사람의 운치 있는 삶을 사랑하여 우리 옛 시와 글을 읽고 그 아름다움을 분석하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편자 - 정민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다.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를 탐사하며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편자 - 이홍식
현재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연구 영역을 확장하여 연행록과 통신사행록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문화 교섭의 구체적 양상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편자 - 장유승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조선 후기 서북 지역 문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안대회ㆍ이종묵ㆍ정민의 매일 읽는 우리 옛글>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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