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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정원사 편집부

2017.03.0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으로 젊었을 때 뛰어난 재능과 화려한 행동으로 인하여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좌담과 강연에 능했고 사교계의 화려한 존재였다. 오스카는 유명한 안과 의사이자 고고학자이며 박애주의자인 아버지와 작가이자 민족주의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옥스퍼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작품으로는 1881년의 『시집(詩集)』을 비롯하여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를 출간했다. 이 동화집은 1884년에 결혼한 그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 두 아들을 위하여 쓴 것으로 그 무렵의 사회에 대한 풍자가 넘치는 걸작이다. 『행복한 왕자』는 19세기 말 물질주의가 만연한 영국 사회에 사랑의 고귀함을 강조하는 이상주의를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작품으로, 비평가 월터 페이터로부터 동화 중의 걸작이라는 격찬을 듣기도 했다.

그 후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희곡 『살로메』, 『하찮은 여인』, 『이상적인 남편』 등을 발표하면서 와일드의 명성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1895년, 앨프레드 더글러스와의 동성연애 혐의로 기소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2년 뒤 출감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빈궁하게 살았다. 1900년 11월 30일, 허름한 호텔방에서 가족도 없이 친구와 호텔 주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46세의 나이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한 불운한 천재’ ‘사회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오스카 와일드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근엄함과 위선을 거부하고 날카롭게 풍자했다. 그 때문에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작가였다. 예술지상주의의 대표자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내면의 소리에 충실했던 그의 삶과 작품은 사후 100년이 지나서야 새롭게 조명되었다. 1998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제명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명예가 회복되었으며, 이후 그의 삶과 문학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행복한 왕자>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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