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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Adolfo Bioy Casares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프로필

  • 출생-사망 1914년 - 1999년

2019.04.2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19년 스페인으로 이주, 전위 문예 운동인 ‘최후주의’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와 각종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1931년 비오이 카사레스, 빅토리아 오캄포 등과 함께 문예지 《수르》를 창간, 아르헨티나 문단에 새로운 물결을 가져왔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과 본인의 큰 부상을 겪은 후 보르헤스는 재활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의 단편 소설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 독창적인 문학 세계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이후 많은 소설집과 시집, 평론집을 발표하며 문학의 본질과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천착한다. 1937년부터 근무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 도서관에서 1946년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안 페론을 비판하여 해고된 그는 페론 정권 붕괴 이후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1980년에는 세르반테스 상, 1956년에는 아르헨티나 국민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67년 66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어린 시절 친구인 엘사 미얀과 결혼했으나 3년 만에 이혼, 1986년 개인 비서인 마리아 코다마와 결혼한 뒤 그해 6월 14일 제네바에서 사망했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1914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이미 연애소설 『이리스와 마르가리타』를 쓰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하지만, 마르틴 사카스트루라는 필명으로 『미래를 향해 열일곱 발을 쏴라』(1933)를 출간한 후 철학과 문학에만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다. 1934년 단편집 『혼돈』을 내고, 후에 아내가 되는 실비나 오캄포가 삽화를 그린 단편집 『집에서 만든 석상』(1936)을 출간한다. 첫 번째 소설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모렐의 발명』(1940)을 발표하면서 큰 명성을 얻었고, 이 작품으로 제1회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환상과 현실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 문학 세계를 구축한 비오이 카사레스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아르헨티나 소설계의 대부로 일컬어지는데, 그와 보르헤스는 1932년의 첫 만남 이후 평생의 지기로 지내며, 함께 전위적 비평지 《철 아닌 때》를 발간하고, 시집을 편집했으며, 오노리오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필명으로 『이시드로 파로디 씨의 여섯 가지 문제』(1942), 『부스토스 도메크의 연대기』(1967) 등의 작품을 공동 집필 하기도 했다. 비오이 카사레스의 주요 소설로는 『모렐의 발명』 외에 카니발의 몽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는 인물들을 그린 『영웅들의 꿈』(1954), 수술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을 바꾸는 실험을 다룬 『햇빛 아래서 잠자기』(1973)를 비롯해 『라플라타 어느 사진사의 모험』(1985) 등이 있으며, 단편집으로는 『도주 계획』(1945), 『위대한 천사』(1967), 『여자들의 영웅』(1978), 『러시아 인형』(1991) 등이 있다. 우리의 일상에 숨겨진 또 다른 현실로서의 환상을 그림으로써 무한한 세계의 법칙을 밝히고자 했던 비오이 카사레스의 문학 세계는 보르헤스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보르헤스의 사후에야 비로소 다시 조명을 받으면서 전 세계 비평계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1981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1990년에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상, 1991년에 멕시코의 알폰소 레예스 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모범>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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