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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철 동화선집 상세페이지

권용철 동화선집작품 소개

<권용철 동화선집> 권용철은 동화를 통해 순수 존재들의 본원적 마음을 현상하는 데 주력하는 작가다. 그의 동화 세계는 “맑은 영혼과, 햇빛 같은 마음씨와, 풀씨 같은 꿈을 지닌” 어린이를 위한 ‘푸른빛’의 교훈과 미래를 향한 제언의 내용으로 충만하다. 이 책에는 <별의 별>을 포함한 15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권용철의 동화는 대부분 친숙한 자연 공간이나 일상의 낡은 풍경들과 일차적으로 대면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곳을 살아가는 순수 존재들의 본원적 마음을 현상하는 데 주력한다. 다시 말해 그의 동화는 이른바 ‘어른 사회’가 망각했던 동심, 그 순진무구한 천연의 마음을 재생하는 데 바쳐진다. 이를 우리는 권용철 동화 특유의 동심의 현상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작가는 투명한 언어와 안정된 문장, 참신한 비유, 견고하면서도 디테일한 서사,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문학적 기법 등을 동반하여 “맑은 영혼과 햇빛 같은 마음씨”(<별의 별>)를 복원해 왔다.
그의 동화 세계는 “맑은 영혼과, 햇빛 같은 마음씨와, 풀씨 같은 꿈을 지닌” 어린이를 위한 ‘푸른빛’의 교훈과 미래를 향한 제언의 내용으로 충만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작가는 “진선미를 본질로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의 상태”인 동심을 지키고 가꾸느라 분주하다.


저자 프로필

권용철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43년
  • 학력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 국문과
    성균관대학교 국문과 학사
  • 데뷔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동화 들국화
  • 수상 1991년 방정환문학상
    1973년 소천아동문학상
    1969년 문공부 문예상

2014.11.1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권용철
안동에서 대구 방향 국도로 4킬로미터쯤 가면 한티재가 나오고, 그 재를 넘어 철로가 지나가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산기슭을 끼고 한동안 협곡을 따라 들어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돛단배 형상의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원림동, 여기가 바로 내가 태어나 열아홉 살 때까지 산 나의 고향이다.
분지에는 마을이 여러 개 있는데, 생가는 골짜기 입구에서 조망했을 때 갈야라고 불리는 들녘 중간 지점의 오른쪽 산 밑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초가삼간 두 채가 대각으로 이어져 있었던 생가는 현재는 헐리고 외지인이 새 집을 지어 거주하고 있다.
갈야는 봄부터 여름 중엽까지는 보리들로 가득했고, 이후 가을까지는 벼와 조, 수수 같은 이모작 곡식들로 채워졌다. 바람이 불면 넓고 푸른 보리밭에는 파도 같은 물결이 넘실거렸고, 들판 저편 녹음이 짙은 산정에서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을 자아내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봄밤에는 고려 사람 이조년의 시가 <다정가>처럼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이 되면 자규가 혼자서 오래도록 애절하게 울었다. 그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꽃보다 보리를 더 좋아한다. 그리고 봄밤에는 소쩍새가 울고, 여름에는 보리밭 저편 산정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살고 싶어진다.
고향과 관련하여 또 하나 마음에 각인되어 있는 것은 시내다. 시내는 고려장 기슭을 돌아 마을 뒤로 가면 나오는데, 여름이 되면 미역도 감고 물고기도 잡고 풀잎으로 배를 만들어 띄우기도 하는 등, 나는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내 건너편에는 무지개재가 있고, 그 재를 넘어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완행열차가 지나다니는 기차역이 있었다. 가끔 무지개재 너머에서 들려오던 기적 소리는 어린 내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유발했다.
나는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해방되기 직전인 1943년 9월 8일(실제로는 음력 6월 5일) 권순창과 이을연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선친은 사리에 밝고 총명하셨다. 그리고 성품이 바르고 인정이 있으셨다. 과객이 음식이나 유숙을 청하면 그냥 발길을 돌리게 하는 법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일곱 살 때 29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도, 추운 겨울날 아침 부엌에서 세수를 시켜 주시던 일과 떼를 쓰며 울자 변소로 안고 가 빠뜨리려고 하신 일, 시내로 빨래하러 가시는데 따라가려고 ‘구름둑’이라는 곳에서 발을 구르며 울던 사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중학교 때인가 가형과 같이 외가에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외가는 안동에서 임청각 쪽으로 흐르는 낙동강 상류를 따라 30리쯤 가면 나오는 속칭 돗질이라는 곳에 있었다. 임청각은 그때 처음 보았는데 규모가 엄청나게 커 사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장성해서 안 일이지만 임청각은 독립운동가로서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지사의 생가로, 고성 이씨인 어머니 가문의 종택이었다.

삭풍은 칼보다 날카로워/ 나의 살을 에는데/ 살은 깎이어도 오히려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어져도 차라리 슬프지 않다/ …그러나 이미 내 땅과 집을 빼앗고/ 또다시 나의 처자를 넘겨다보니/ 차라리 이 머리를 잘릴지언정/ 어찌 내 무릎을 꿇어 종이 될까 보냐

이상룡 지사가 쓴 시로, 일제의 만행에 대한 비분강개와 강고한 독립 의지가 절절이 배태되어 있다. 어머니 가문에 이와 같은 훌륭한 어르신이 계셨다는 게 자랑스럽다.
당시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일찍 잃은 외손자들이 왔다고 닭을 잡아 주셨다. 어느 해 겨울엔가는 고욤을 한 동이 머리에 이고 50리 길을 걸어서 우리 집에 오신 적도 있으셨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너무 없는지라 조금이라도 더 만들 수 없을까 싶어 잠시 서성거렸다. 나로서 일찍 세상을 뜨신 어머니께 불러 드릴 수 있는 사모곡이라고는 이 일밖에 없을 것 같아서이다.
어머니가 타계하신 이듬해였다. 보리 추수를 할 무렵 6·25 전쟁이 발발했다. 우리 가족은 피란을 갔으나 멀리 가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도 가족의 일원이랍시고 둥글게 만 돗자리를 어깨에 메고 가던 일, 등짐을 잔뜩 실은 소가 가파른 산길을 가다가 비탈 아래로 구르던 일, 어느 산기슭에서 노숙하던 일, 꼴을 베는데 머리 위로 “씨룽 씨룽” 하고 포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콩밭으로 뛰어 들어가 숨던 일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산 너머 도시에서 나던 폭탄 터지는 소리가 마른하늘의 뇌성처럼 환청으로 들리기도 한다. 우리 마을은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으나, 국군과 인민군과 미군이 교대로 며칠씩 주둔하다가 떠나갔다.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교과서 외에는 잡지든 동화책이든 한 권의 책도 읽은 적이 없다. 문학 서적을 처음 대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가형이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온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마치 신선하고 놀라운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 같았다.
중학교 시절 또 하나 잊히지 않는 것은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던 황순원 선생님의 소설이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하모니카를 잘 불고 수평선 너머로 떠나가는 그림 속의 배를 바라보며 항해사를 꿈꾸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소설을 읽은 후 나도 바다를 동경하게 되었다.
문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갖게 해 준 분은 국어를 가르치신 성학원 선생님이셨다. 그분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불연속선>이라는 소설이 당선되신 소설가였는데, 콧등의 상처를 두고 젊은 시절 절벽에서 호랑이와 맨손으로 격투를 벌이다가 생긴 것이라고 하시는 등 입담이 세셨다. 그래서 별명이 ‘성대포’였다. 20대 초반 경주로 한 번 찾아뵈었더니, 며칠 전 혼자서 바닷가로 가 배회하다가 왔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서 나는 도반 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고등학교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사범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내 포부는 항해사가 되어 세계의 여러 바다를 떠돌며 시를 쓰는 것이었다. <해저 2만 리>, <백경> 등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빠짐없이 보았고, 소월과 바이런의 시들을 탐독하기도 했다. <백경>을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때는 눈이 하얗게 내려 있었는데, 그 정경은 지금도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백경>과 관련하여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장차 선생님이 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무용도 가르쳤다. 선생님은 서울에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오신 분이었다. 한번은 창작 무용을 숙제로 내주셨다. 나는 과제 말미에 <백경>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바다는 사람을 기다리게도 하고, 떠나보내게도 한다’는 독백을 적어 놓았다. 선생님은 과제물을 돌려주실 때 내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학우들 앞에서 어떤 학생이 이러이러한 낙서를 해 놓았더라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책망하셨다. 그때의 무안함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항해사가 되어 세계의 바다를 떠돌며 시를 쓰고자 했던 나의 꿈은 종내 성취하지 못하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암담한 마음으로 교사 현관을 나서는데, 중학교 시절 담임을 하셨던 조규송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은 다 제쳐 두고 나에게만 “권용철, 잘 가” 하며 악수를 해 주셨다. 선생님은 평소 나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상담 같은 것을 해 주신 적이 없었다. 선생님의 그 한마디 말씀은 내게 평생을 두고 좌절하거나 실의에 잠겼을 때 격려가 되어 주었다. 말이 이처럼 큰 울림을 지니고 있다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수년 전 스승의 날에 춘천으로 가 선생님을 졸업 후 처음으로 찾아뵈었다. 대학에서 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하신 선생님은 수서생물 분야에서 큰 학문적 업적을 남기셨다.
보리밭과 뻐꾸기 울음소리, 소쩍새 울음소리, 기적 소리, 항해사의 꿈, 어머니의 별세, 일제 식민지 치하, 동족상쟁 등 고향과 청소년기까지 체험한 개인사적 또는 시대사적 일들은 내 동화 문학의 원천이자 영토가 되어 주고 있다. 나의 작품들에는 이와 관련한 의식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반영되어 있다. 상실과 상흔에 대한 복원 내지 초극 의지가 작품으로 구현된 게 내 동화 세계인 것이다.
항해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상실한 나는 바다를 보기라도 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동남 해안의 한 포구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스물두 살 나던 해인 1964년 가을 ≪경향신문≫에 난 신춘문예 관련 기사를 보고, 들국화를 제재로 한 동화를 써서 투고했는데 그게 덜컥 당선이 되었다.
심사를 하셨던 마해송 선생님을 시상식에서 처음 만나 뵈었는데 별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 후 서신만 한두 번 교환했을 뿐 수년 뒤 별세하시는 바람에 더 이상 문학적 인연을 쌓지는 못했다.
동화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동화작가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제대로 된 문학을 하려면 공부를 더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직을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했다. 거기에는 시인인 김용호 선생님의 조력이 결정적이었다.
김용호 선생님은 <오월>이라는 시가 교과서에 수록되는 등 저명한 시인이셨다. 내 인생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주셨는데도 나는 아직까지 선생님께 조금도 보은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유가족도 방문하고 선생님 유택도 찾아뵈어야지 하는 마음만 먹고 있다.
학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 과정까지 이수했다.
1970년대 초 법정 스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스님은 봉은사에 계셨는데 초면이었다. 스님은 내 첫 동화집인 ≪하얀 물새의 꿈≫을 20여 권 구입해 지인에게 증정했다고 하셨다. 저녁 공양을 마친 후 스님은 레코드판을 전축에 거셨다. 나는 유명한 작곡가의 교향곡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어린 왕자≫를 프랑스어로 낭송한 것이었다. 강남 지역이 도시화되기 전인 데다 만추여서 밤하늘에는 푸른 별들이 도깨비불처럼 밝게 빛났고, 내 앞에서는 별에서 온 ‘어린 왕자’가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와 실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인상적인 밤이었다. ≪어린 왕자≫를 어떤 불경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고 하신 법정 스님은 인간적인 친화성도 지니신 분으로, 내 생애에서 몇 안 되는 귀한 인연이었다.
생업은 주로 공적인 것이었다. 한동안 숙명여자대학교와 숭의여자대학교에 나가 아동문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결혼은 1978년 심형인과 했는데, 세원과 세민 두 아들을 두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내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동화들 중 일부이다. <별의 별>, <도깨비 집>, <목련>, <수수>는 2007년과 2008년경에 쓴 것들로 미발표작들이고, 나머지는 여러 단행본에 수록된 바 있다.
<쌍골죽의 꿈>은 1973년 ≪인간문화재≫라는 책에서 쌍골죽에 대한 글을 읽고 착상하게 된 것으로, 어떤 불교 잡지에 발표까지 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내 동화집에 수록하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 후 다시 개작을 했다.
<꿈속에 내리는 눈>은 1975년 만추에 이상현 시인과 같이 라자로 마을에 갔을 때 영감을 얻어 쓴 작품으로, 이듬해 ≪소년≫ 잡지 1월 호에 발표된 바 있다. 그때를 회상하면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과, 땅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고, 나목의 감나무에 감들이 주홍빛 등불처럼 달려 있고, 노변에 샛노란 토종 국화가 피어 있던 라자로 마을의 정경이 운명적인 비감과 함께 수채화처럼 떠오른다.
모든 작가가 다 그렇겠지만 나는 토양이 비옥해야 작물이나 초목이 무성하게 성장할 수 있듯이 좋은 동화를 쓰려면 다양한 독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동화는 물론 소설과 시, 희곡 등 국내외 명작들을 두루 섭렵했다. 철학과 역사, 종교, 음악, 미술에 대한 서적들도 탐독했고, 정치, 경제 같은 사회과학 도서들도 많이 읽으려고 했다. 석사 논문을 김유정 소설로 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내가 선호하는 동화작가는 김요섭과 안데르센, 생텍쥐페리 등이다. 김요섭의 <안개와 가스등>, <은하수>, <꽃잎을 먹는 기관차>는 탁월한 작품이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와 ≪인어 공주≫는 명작이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영원성을 지닌 걸작이다.
애독한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 셰익스피어의 희곡 등이다. ≪의사 지바고≫는 주제와 상관없이 혁명과 운명적인 사랑과 대자연의 풍광을 파노라마처럼 묘사하고 있는 등 서사문학의 요건을 두루 갖춘 작품으로 소설이 예술임을 잘 보여 주는 걸작이다.
좋아하는 예술가는 시인으로는 두보, 화가는 이중섭과 보헤미안이었던 모딜리아니, 피카소, 샤갈 등이고, 음악가는 베토벤과 차이콥스키, 브람스 등이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심란할 때는 <운명>과 <비창>, <독일레퀴엠>, 오펜바흐의 첼로곡,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르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를 몇 시간이고 되풀이해서 듣는다.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도 몹시 좋아한다. 이들 작품에는 아우라라고 할까, 예술의 영혼이라고 할까, 우주적인 것이라고 할까,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걸작이면 다 그렇듯 불가사의한 그 무엇이 내재되어 있다.
나는 등단 초기에는 어린이들의 생활상을 제재로 한 동화를 썼고,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판타지 동화를 주로 창작했다. 내가 창조한 판타지에는 인간의 실존적인 삶이 상징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비현실적인 판타지 형식을 구사하고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인간의 삶과 관련한 존재론적 내지 실존적 조건들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의 지식 수준은 웬만한 것이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이북 같은 것의 발달로 말미암아 너나없이 비슷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상상력은 새로운 생각을 솟아나게 하는 창의성의 샘 같은 것이어서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미래의 세상은 상상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타지 동화는 비가시적인 세계를 서사 형식을 빌려 문자로 현실화 내지 가시화해 놓은 것으로, 독창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에 의해서 창조된다. 동화는 본질적으로 판타지를 그 속성의 하나로 하고 있다. 그것은 ≪어린 왕자≫나 ≪피터 팬≫, ≪인어 공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빼어난 동화들이 하나같이 판타지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판타지 동화는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인간성도 비옥하게 해 주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고 깊게 해 준다. 어린이들에게 비좁고 어두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밝고 풍요롭고 분방한 대자연 속에서의 삶은 물론, 그 너머의 신비한 세계와 광활한 우주를 마음껏 탐험하며 큰 꿈을 꾸게 해 주는 것이다.
판타지는 결코 무모하거나 황당한 세계가 아니다. 상상력으로 마음이나 정신의 도화지에 그린 그림이어서 다만 육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문학이나 음악, 핸드폰, 로봇, 우주선 같은 인간이 창조하거나 성취해 온 문화나 문명이, 판타지 세계를 가시화 내지 형상화한 것과 다르지 않음을 감안하면 판타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각성하게 된다.
판타지 세계를 창조할 때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서사문학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문법이나 질서를 어떤 경향의 문학보다도 더 생활적·사실적·합리적으로 명징하게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창작 동화가 허구의 세계이고, 판타지 동화는 허구의 세계에서 또 하나의 허구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므로 자칫하면 진실성을 상실할 개연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판타지를 속성으로 하는 동화에서 창작의 공간은 현실적, 가시적, 지상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현실적, 비가시적인 경계를 넘어 우주까지 포괄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인간이 현실적인 육체적 존재이자 비가시적인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동화를 써 오면서 특히 세 가지 관점에 유의했다. 하나는 동화가 어린이들의 마음에 뿌리는 미와 진실과 진리의 씨앗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성인들도 동화의 독자라는 것이며, 셋째는 동화가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현실적 존재이지만 그 실존성 못지않게 환상성과 시적인 성향 또한 함께 지니고 있다. 삶에 대하여 이미 체험하거나 인지하여 삭막하고 식상해진 성인 세계와는 달리, 어린이의 세계는 새로움과 호기심과 경이로 가득 차 있는 현실 세계이자 판타지의 세계, 시의 세계인 것이다. 동화는 동심으로 그와 같은 어린이 세계를 비롯한 인간의 삶과 자연을 탐구한 창작 이야기로, 아침의 문학이자 사랑의 문학, 구원의 문학이다. 여기서 동심이란 미성숙된 심적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진선미를 본질로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어린이의 마음은 아무런 씨앗도 파종되지 않은 봄의 대지와 같다. 이와 같은 처녀지에 씨앗을 뿌리면 싹이 트고 무성하게 성장하여 아름다운 꽃들도 많이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 또한 풍성하게 맺게 된다. 반대로 성인의 마음은 여러 가지 가치관이 잡초처럼 무성하게 돋아 있는 하절기의 산과 같다. 그런 땅에 가치관의 씨를 심으면 싹을 틔우지 못하거나 발아한다 해도 주변의 초목들 때문에 온전히 성장하기가 어렵다. 교회나 사찰에서 성직자들이 그토록 반복해서 설교를 하거나 설법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곧 망각하거나 마이동풍이 되는 것도 여기에 연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의 효용성에서 본다면 동화만큼 가치 있는 장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교육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성품은 유년기에 대부분 형성된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와 같은 격언은 이와 같은 지론을 뒷받침해 준다. 750여 년간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아일랜드가 종내 멸망하지 않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아일랜드의 정신과 정서가 깃든 동화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성품의 형성에 유년기와 동화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시사해 준다. 유년 시절 아름다운 동화를 많이 읽는다면 인간성은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고, 따라서 세상도 보다 밝고 희망적으로 될 것이다.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은 탄생할 때 저세상에서 어떤 광채 같은 것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점차 퇴화하여 무의식의 저변으로 침잠하게 된다면서, 그 빛을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시킬 수 있다면 인간의 정신과 삶은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잠재해 있는 천상의 그 광채를 현실 속으로 불러내는 역할을 동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져 왔다.
독일어 메르헨은 사전적으로는 ‘작은 이야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문학적으로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단순한 생활상을 다룬 이야기와 차원이 다르다.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만 들려주어야 할 어린이들한테 무슨 당치 않은 운명이냐고 할지 모르나, 문학은 본질적으로 순응하든 저항하든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화도 문학인 만큼 인간의 삶과 자연의 본질에 보다 충실해야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동화를 두고 신화에서 흘러나온 샘물이라는 견해와 결부시켜 보면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는 지론에 공감하게 된다.
교육학자들이 유년 시절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진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한다고 하는 것도 이와 관련하여 시사해 주는 바가 있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는 궁극적으로 죽음과 결부되어 있고, 그 숙명적인 진실로부터 유발되는 고독과 불안과 공허와 고통을 창조적인 미적 감동으로 위무하고 극복해 보려는 노력의 소산이 문학이고 예술이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관점들은 어디까지나 동화에 대한 나의 철학일 뿐이다. 동화에 대한 관점은 작가마다 상이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몸을 위한 음식에 많은 종류가 있듯이, 정신을 위한 음식인 동화의 세계 또한 독창적이고 다채로울수록 좋다. 그것은 사람마다 체질이나 식성이나 취향이 각기 다르고 건강상 다양한 영양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특정 경향의 동화만이 유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그 작가 한 명만 있으면 되지 많은 동화작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고전주의니 자연주의니 낭만주의니 사실주의니 하는 문예사조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창조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나 선호하는 경향의 작품만이 유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협성이다. 이는 마치 호박이 자기 꽃만 꽃이고 존재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학예술의 세계는 교향곡과 같은 것이고, 창조자 개개인은 오케스트라의 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하나의 악기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 클라리넷 하나로 교향곡을 연주할 수 없듯이, 동화작가 한 사람이 어쩌면 정체성을 영원히 노정시키지 않을지도 모르는 동화의 성을 완전히 탐험하거나 정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동화가 하나 더하기 하나는 2가 되는 등 일정한 공식에 대입하면 정답이 명확하게 나오는 수학과 달리, 본질적으로 복잡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인간과 자연을 탐구의 대상으로 한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관건은 생활 동화니 판타지 동화니 하는 경향이나 양식이나 기법이 아니라, 완성도 즉 미곡을 가지고 밥을 짓든 떡을 빚든 조청을 고든 과자를 만들든 식품의 특색에 따른 영양가와 맛이 가장 중요하듯, 어떤 제재를 얼마만큼 동화의 본질에 맞게 문학예술적으로 잘 형상화했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동화를 쓰면서 고심해 온 또 다른 것은 어린이를 어떤 존재로 인식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생애를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대별할 때, 어린이를 유년기에 국한된 독립적 존재로만 인식할 것인가, 아니면 향후 살아가야 할 여러 시기가 예비 되어 있는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대상으로 파악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영국 작가 톨킨은 어린이만을 위한 책은 어린이 책으로서도 보잘것없다고 했다. 이는 후자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은 현실적인 존재이자 미래적인 존재이다. 두 가지 관점은 이분법적 논리로 가치의 우열을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자는 자칫하면 일회성 생활용품 같은 것이 될 가능성이 있고, 후자는 난해성을 초래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양자 모두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에 어느 관점을 선택할 것인가는 작가의 적성이나 취향이나 자유의지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동화는 인간의 삶과 자연과 예술과 문학의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생장할 때 비로소 창조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에겐 어린이만의 인생이 있다는 관점에서 쓴 작품도 좋은 동화가 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정신적 과자나 장난감이 되어 주는 것만으로도 동화문학의 한 사명을 감당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숙고할 사항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동화의 미래를 전망할 때, 어느 방향이 문학예술로서의 진정한 발전과 풍성한 결실을 담보하고 그 위상을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동화작가는 봄의 대지와 같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미와 진실과 진리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와 같다는 신념으로 동화를 써 왔다. 어린이들에게 인간성을 풍부하게 해 주고, 마음에 사랑과 평화와 자유와 희망과 정의의 나무들이 자라게 할 뿐만 아니라, 자연에 감사하고 우주의 신비와 경이에 관심을 갖게 하는 동화를 쓰고자 했다.
또한 한 번 읽고 버려지는 작품이 아니라, 오래도록 애장하면서 생래적인 고독과 불안에 시달릴 때, 혹은 막연히 무엇인가 그리워질 때, 삶이 고단하거나 무의미해지며 왜 사는가 하는 상념이 들 때, 읽으면 생존 자체가 새삼스럽게 축복으로 여겨지며 열심히 살고 싶어지고, 인간이 존귀하고 아름답게 여겨지고, 닫혀 있던 마음의 창문이 열리며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마음이 무구한 기쁨과 희망으로 채워지고, 그러면서 볼 때마다 삶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경이로움을 깨닫게 해 주는, 시정이 있는 마법의 성 같은 동화를 창작하기를 희원했다. 동화를 가지고 문학과 예술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내 생애에도 어느덧 낙조가 드리우고 있다. 석양에 긴 그림자를 앞세우고 서서 온 길을 망연히 돌아보면, 항해사가 되어 시를 쓰고자 했던 청소년 시절의 포부를 어느 정도 성취하지 않았나 하는 상념이 들 때가 있다. 흔히 인간의 삶을 바다의 항해에 비유하지 않는가. 비록 선박 대신 내 생의 항해사이긴 했지만 시간의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고, 유작으로 남길까 생각하고 있는 시도 50여 편 썼으니까. 뭇 바다가 그렇듯이 작은 목선을 타고 건너왔던 나의 바다도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해일이 일기도 하고 초록의 평화로운 자태를 짓기도 했던 것이다.
기실 인생의 날씨는 자연의 날씨와 다르다. 화창한 날보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런 여로에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 준 것은 동화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가끔 보행을 멈추고 싶을 적마다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얘기해야 할 동화작가가 그러면 어떻게 해? 고통과 좌절은 더 큰 기쁨과 풍성한 열매를 주기 위한 것일 뿐인데’ 하며 용기를 북돋아 줬으니까. 그러면 나는 ‘그래, 인생은 존귀하고 아름다워. 실망과 고난이 있기 때문에 더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거야.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며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겨 놓았던 것이다. 동화의 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동화작가로서 내게 남은 소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30대 후반부터 마지막 작품으로 써야지 하고 생각해 왔던 동화를 창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써 온 작품들을 전집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망들을 성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리 아쉬울 것은 없다. ‘시를 썼으면 땅이나 하늘에 묻어 둘 일이거늘’ 하고 정현종 시인이 노래했듯이, 이 세상과 작별할 때 그 소망들을 저쪽 세상으로 가져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으니까. 어디 이승만 세상인가. 종교에서 다른 세상도 존재한다고 하지 않는가!

작품 및 수상 연보

1969년 ≪하얀 물새의 꿈≫(육민사) 출간. <흐느껴 우는 소리>로 문공부 문예상 수상.
1970년 ≪봄 바다 물결 소리≫(기독교서회) 출간.
1971년 ≪별이 내리는 눈밭≫(육민사) 출간.
1973년 ≪들장미 언덕≫으로 소천아동문학상 수상.
1979년 ≪들장미 언덕≫(계몽사) 출간.
1980년 ≪사랑의 자장가≫(견지사) 출간.
1982년 ≪영혼이 부는 트럼펫≫(갑인출판사) 출간.
1983년 ≪고래잡이 간 형제≫(꿈동산), ≪씨 뿌리는 농부≫(아동문학사) 출간.
1985년 ≪하늘이 보내 준 여행≫(계몽사) 출간.
1991년 ≪마음나라 여행≫(삼성당), ≪하늘 운동장≫(용진) 출간. ≪하늘이 보내 준 여행≫으로 방정환문학상 수상.
1992년 ≪내 어머니 흰 아침나라≫(대교출판) 출간.
1996년 ≪하늘에 뿌리는 씨앗≫(문학수첩) 출간.
1997년 수필집 ≪유년의 기억 속으로≫(프레스빌) 출간.
2001년 ≪배꽃 향기≫(파랑새어린이) 출간.
2003년 동화선집 ≪하얀 물새의 꿈≫ 출간.
2004년 ≪하늘이 보내 준 여행≫을 ≪엄마의 강≫(두산동아)으로 제명을 바꾼 개정본 출간.
2012년 ≪햇귀≫(파랑새) 출간.

해설 - 이성천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 말의 부도(浮圖)≫,≪위기의 시대와 글쓰기≫, ≪한국 현대소설의 숨결≫, ≪작품으로 읽는 북한문학의 변화와 전망≫, ≪한국 소설의 얼굴≫(전 18권) 등의 저서 및 공저를 출간했으며, 계간 ≪시와시학≫, ≪시에≫, ≪시와사람≫ 등의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10회 젊은 평론가상과 제17회 시와시학 평론상을 수상했다.

목차

작가의 말

분디나무와 작곡가
딸기코 할아버지
기적 소리
쌍골죽의 꿈
꿈속에 내리는 눈
학이 된 누나
눈물
씨 뿌리는 선녀
눈산의 그림자
흉내쟁이 티티새
오마니
수수
도깨비 집
목련
별의 별

해설
권용철은
이성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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