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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연 동화선집 상세페이지

길지연 동화선집작품 소개

<길지연 동화선집> 길지연은 일본 유학 중 만난 유명한 아동문학 평론가인 ‘시미즈 마사코’ 교수의 권유를 따라 동화작가가 되었다. 그의 동화는 결이 고운 문체 속에서 조부모 세대가 베푸는 무한정한 사랑의 숨결을 전한다. 또한 어른 세계의 염세와 혐오를 장식 없이 보여 주며 그리움을 간직한 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열네 살, 그해 저녁>을 포함한 13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길지연의 동화는 조금 특별한 작가의 삶을 잘 보여 준다. 하긴, 특별하지 않은 작가의 삶이 또 어디 있을까. 무릇 작가란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삶도 스스로 거부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아닌가.

1. 조손간의 특별한 사랑
길지연의 글에서는 우선, 조부모 세대가 보여 주는 무한정한 사랑의 숨결이 전해진다. <감귤나무 아래서>, <꽃구경> 등에는 그런 조손간의 사랑이 따듯하게 드러나 있다. 여기서 조부모 세대에 해당되는 인물은 때로 혈육 관계를 초월해서 사랑과 지혜와 관용을 베푼다.

2. 세상 밖으로 똑, 똑, 똑
<열네 살, 그해 저녁>은 조숙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다. 노래방 도우미를 하며 가정을 이끌어 가는 엄마와, ‘창문을 열 수도 없는 11평 오피스텔 방에서 엄마의 술 냄새와 터질 것 같은 더위’를 참고 사는 열네 살 소녀 수라. 아름답게 채색되어야할 사춘기 소녀의 현실은 잔인하기만 하다. 수라는 ‘찜통 같은 더위를 견디듯이’ 고장 난 선풍기와 엄마의 술 냄새를 견디면서 어른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열네 살, 그해 저녁>은 이처럼 혐오와 염세의 어른 세계를 장식 없이 보여 준다.

3.그리움의 직조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의 결여를 말한다. 그것은 물질의 비어 있음이 아니라 마음의 비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정서의 결여는 그리움이 된다. 그래서 노을이 비끼는 서쪽 하늘을 향해 달려 보기도 하고, 약속도 없이 역으로 나가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바람을 타고 가는 꽃기차>의 동규는 그런 아이다. 엄마, 아빠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에 빈 곳이 있는 아이다. 동규는 그 비어 있는 마음에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매일 역에 나와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기차를 기다린다. 그 역에는 동규와 같은 또래의 아들을 잃은 연두 아저씨가 역을 지킨다. 연두 아저씨는 동규에게 아들의 의자를 내주며 빈 마음을 그리움으로 채운다.

4. 결 고운 언어의 수호자
길지연의 아동문학세계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따스한 사랑과 성장의 고통, 인간의 원형질적 심상을 두루 담았다. 이뿐만 아니라 <새봄왕>처럼 무분별한 동물 학대에 대한 경고와 <버드나무가 말했어>처럼 형식적 탁상공론에 대한 비판도 있다.
길지연의 결이 고운 문체는 아동문학 정신을 빛내 준다. 요즘의 아동문학 문체에서 심히 염려되는 현상 중의 하나가 거친 언어의 남용이다. 어린이들의 생활 일면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취지로 순화되지 않은 언어들이 아동문학 속에서 활개를 친다. 실생활 언어라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침투되는 비속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길지연이 이런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를 고수하는 것은 많은 아동문학가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삶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외로움 속에서도 진주를 빚어내는 백합 조개의 노력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작가의 삶의 결은 작품 안에 화석이 되어 독자들에게 그것을 보여 준다.



저자 소개

저자 - 길지연
그해 여름, 대낮부터 산통을 겪으신 어머니는 다음 날 새벽 동이 틀 때야 긴 산고가 끝났다. 그 난리 통에 도둑이 들어 마당 옆 창고에서 쌀가마를 들고 나가다가 ‘아기 낳았다’는 소리에 쌀가마를 내던지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웃음이 난다.
그날이 바로 1958년 음력 6월 26일이다. 양력으로 치면 8월 11일쯤이니 여름 중에도 한여름이다. 그 찜통더위에 어머니는 뜨거운 미역국을 훌훌 마시면서 두꺼운 솜옷을 입고 여름을 나셨다니 딸자식 얻은 덕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그렇게, 나는 서울 약수동 외가댁에서 아버지 길문재와 어머니 전옥녀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당시 외가댁은 집이 크고 형편이 넉넉해서 온 가족이 모여 살았다.
마당 한가운데는 아주 오래된 앵두나무가 있었다. 앵두가 열리는 계절이면 붉은 구슬들이 온 마당을 가득 채웠던 기억은 늘 유월의 앵두나무로 각인된다.
아버지, 어머니는 영화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부모님 손을 잡고 단성사, 명보 극장 등을 따라다니며, 군밤이랑 솜사탕을 먹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다른 작가들처럼 어릴 시절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글짓기를 잘한다고 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은 적도 없다. 늘 병약하고 말이 없는 소심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무렵, 어머니가 병환으로 요양원으로 들어가시고 아버지는 사업상 지방에 가 계셨기에 나는 외가댁에서 그대로 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나뿐인 손녀를 금이야 옥이야 하며 예뻐하셨지만 나는 어머니의 부재로 말수가 점점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일체 말을 하지 않는 증세를 보였다. 그 증세는 점점 심해져 초등학교 시절에는 담임선생님이 ‘자폐’를 판단하기까지 했다.
가까스로 초등학교를 마쳤지만 꼭 다문 내 입은 열리지 않았고 마침내 나는 제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 당시, 할머니는 홈 스쿨을 생각해 내실 정도로 현명하시고 용기 있는 분이셨다. 할머니는 공부 잘하고 예쁜 대학생 언니를 개인교수로 붙여 주셨다. 얼굴이 해맑고 늘 웃는 그 언니는 특별히 말을 붙이는 일 없이 자기가 해야 할 일만 묵묵하게 해 나갔다. 다행히도 나는 그 언니의 수업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잘 적응해 나갔다. 그 결과 조금씩 다른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게 되었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검정고시로 18살에 대학 입시에 합격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문학은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 주었다. 지금까지 가족의 사랑만이 전부였다면 문학은 넓은 세계와 환상과 이상, 용기, 감동, 나눔을 가르쳐 주었다.
아무 자질도 없는 나에게 ‘아동문학’을 하라고 권한 사람은 동경외국어전문대학에 있던 한 여선생이다. 그 선생은 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 서슴없이 ‘아동문학’을 권해 주었고 ‘아동문학’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대학을 소개해 주었다. 문학의 길을 걷게 해 준 첫 번째 안내자인 셈이다. 그 여선생은 티베트에서 오랫동안 불교 공부를 하고 온 분이었는데 형식이나 외적인 요소보다 잠재된 사람의 기질을 잘 관찰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국에는 아동문학 강좌가 없었다. 일본에서도 아동문학을 배울 수 있는 대학은 몇 군데 없었다. 그 선생이 추천해 준 대학이 바로 청산학원대학이다. 백석 시인과 김영랑 시인이 다닌 학교였다. 크리스천 사립학교로 대학교수 대부분이 영국, 미국 등의 외국인과 선교사들이었다. 영문과는 전 수업을 영어로 들어야 하는 학교였다. 그 학교는 한 캠퍼스 안에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있었다. 나는 대학 안에 있는 단기 여대를 다녔다. 대학과 여대의 다른 점은 과목이었다. 대학에서는 국문학, 영문학 같은 인문학을 가르치고 여대는 미술, 예능, 아동 교육 등을 가르쳤다.
다행히도 아동교육학과는 영어 시험이 없었다. 그러나 소논문과 실기 시험을 치러야 했다. 실기 시험은 즉흥으로 창작을 하는 것인데 작곡, 연주, 미술, 춤, 그리고 문학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했다. 이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난 피아노도 못 치며 작곡이나 춤, 미술은 더욱이 가망이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 문학뿐이었다. 나는 가장 짧게 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를 택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쓴 시, 그것도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써야 했던 ‘시’가 일본 교수들의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행운의 여신이 열쇠라도 쥐여 주고 간 것일까?
나는 딱 두 명 뽑는 유학생 시험에 합격했고 일본에서 명문이라는 그 대학에 들어갔다. 그 대학의 아동문학과 교수는 일본의 유명한 아동문학 평론가인 ‘시미즈 마사코’ 교수였다. 군국주의, 천황주의를 반대하며 일본 정부를 향해 깃발을 든 여자, 일본에서 처음으로 자기 아버지 성과 남편 성, 두 개를 가진 여자다.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 성을 따라야 했지만 작가인 결혼 전의 자기 이름을 그대로 쓰고 싶었다. 그러나 일본 법률상에는 허용되지 앉았다. 그녀는 자기의 본래 성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재판을 했고 마침내 승소해 지금 두 개의 성을 호적에 올려놓고 나란히 쓰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동경대 출신의 환경학자인데 일본 정부의 비리, 일본의 굴욕적인 역사를 비판하다가 감옥까지 다녀온 의식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시미즈 마사코 교수를 통해 처음으로 아동문학을 접했으며 영국 문학을 알게 됐다. 시미즈 교수는 영국, 미국 등에 많은 작가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로 유명한 판타지 작가 필리파 피어스다.
시미즈 교수는 내가 과 수석을 하면 필리파 피어스의 자택으로 2년 동안 유학을 보내 주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때까지도 난 문학에 대한 울림이 없었다. 많은 작품들을 읽고 외국 학생들과 문학을 논하면서도 가슴에 ‘쨍’ 하고 와 닿는 게 없었다. 아쉽게도 그렇게 졸업을 맞게 되었다. 졸업 작품 역시 선택이었다. 작곡, 연주, 미술, 문학 등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창작해 내야 했다. 이때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문학을 택해야 했지만 문제는 원고 매수였다. 500매를 써 내야 했다. 그것도 일본어로 써야 하는 문학작품이라니!
어찌됐든 나는 졸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소년소설을 쓰기로 했다. 단, 이것은 문학으로써가 아니라,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 교수에게 ‘한국’을 각인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시절 생체 실험을 당한 한국사람 이야기를 썼다. 문장도 문체도 없이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써 나갔다.
논문을 읽은 시미즈 교수가 연구실로 불렀다,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차를 따라 주고 난 교수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생의 글을 읽고 며칠간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못 했습니다. 사실, 당시 우리 아버지는 철도 공무원으로 조선 해주에 계셨습니다. 당시 나는 네 살이었는데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짓을 했는지 너무 잘 압니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은 고국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전세는 바뀌어 이제 조선인들이 일본사람들을 보면 참았던 한을 풀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이웃 조선인들이 치마저고리를 빌려 주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덕분에 무사히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머리 굽혀 사죄를 드립니다.”

칼바람처럼 차갑기만 했던 교수였다. 그 교수가 울먹이며 말했던 것이다.

논문 점수는 A였다.
마침내 졸업을 하고 내 나라로 올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반 강제적인 권유로 가게 된 유학은 나에게 상처 없는 고문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는, 이제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같은 언어로 같은 소리로 말할 사람이 없었다. 또한 가족의 오랜 부재는 나에게 ‘혼자’라는 자아를 형성시켰으며 성년이 돼도 나는 늘 네 살의 유년에 머물러 있었다. 마침내 그 어둡고 긴 터널을 나와 자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없었다.
때로는 힘차게 어느 날은 고통스럽게 지냈던 몇 년의 생활을 마치고 나는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되었다. 과 수석은 대만 여학생이 차지했다. ‘지해’라는 여학생이었는데 말이 없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친구들은 졸업 파티에 갈 생각으로 마냥 들떠 있었다. 일본의 졸업 파티는 꽤 성대했다. 특히 사립 여대는 부잣집 딸들이 많아서 고가의 드레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축제를 벗어나 교정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의 한 부분을, 20대의 절반을 나누었던 학교를 돌아보고 있을 때였다.
저만큼 한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분명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인지라 나는 한 걸음씩 다가가 보았다. 시미즈 교수였다. 늘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고 다닌지라 남자로 보일 수도 있었다.
“졸업 축하해요.”
그녀는 악수를 하며 작은 선물을 내밀었다. 선물 상자에는 만년필 한 자루와, 일본 돈 10만 엔, 그리고 그녀의 자필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동안 재미없는 제 강의를 잘 들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요?
조심스럽게 청을 드립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동화작가가 되어 주세요.
한국의 아동문학은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말을 잃고 소리를 잃었습니다.
이제
그 말과 소리를 찾는 일에 앞서 주세요.
이 만년필로 한글로 된 동화를 써 주세요.
어릴 적 읽은 한국 동화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 동화보다 몇 배나 훌륭합니다.
부디 제 청을 거절하지 마세요.
작가가 되려면 많은 곳을 여행하게 될 것입니다.
작가는 많은 곳을 여행해야 합니다.
이 작은 돈은 첫 여행비용으로 써 주세요.

깊이 사죄드리며

시미즈 마사코

그녀의 편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아니 무조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우리 역사며 나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무지하고 글재주가 없어도 나는 그녀의 뜻대로 그 만년필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썼다. 첫 번째 글은 ‘통일’ 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38 경계선을 보며 나는 이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고 동화 <통일 모자>로 1994년 ≪문화일보≫ 하계문예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나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내가 작가가 된 것을 가장 기뻐하는 것은 당연히 시미즈 교수였다. 그녀는 자기 일처럼 달려와 축하해 주고 응원해 주었다.
어언, 2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작가로 살고 있다. 아직 한 가지 남은 숙제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못한 것이다. 함부로 쓰지 못하는 이 이야기는 언제나 내 가슴에서 울부짖고 있다. 하지만 꼭 쓸 것이다. 내 작품의 주제는 주로 ‘생명 존엄’, ‘공존’, ‘동물 권리’ 등이다. 인간의 이기주의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동물들, 로드 킬, 길고양이, 한 해에 20만 마리나 버려지는 유기견, 털옷을 만들기 위해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동물들을 보며 나는 좌절했고 분노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쓴다. 공존, 생명 존엄. 인간만이 최고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고 존중해 주는 그런 문학세계를 가꾸어 간다.

내 인생의 가장 감동적인 책은 외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듣던 ‘세상 이야기’들이다.

작품 및 수상 연보

1991년 일본 그림책 ≪여우가 주운 그림책≫ 전 4권 번역.
1992년 일본 그림책 ≪친구가 올까≫, ≪내일도 친구지≫ 번역.
1993년 일본 그림책 ≪거미줄≫ 번역.
1994년 ≪문화일보≫ 하계문예 동화 <통일 모자> 당선.
2000년 창작동화집 ≪또 싸울 건데 뭘≫ 출간.
2001년 일본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마을≫, ≪우리 마을에 서커스가 왔어요≫, ≪땅 세 평≫ 번역.
2002년 일본 그림책 ≪고미타로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전 4권 번역.
2002∼2004년 공주 영상 정보 대학 겸임교수 재직.
2003년 일본 그림책 ≪그 길은 어디 있을까≫ 번역.
2004년 창작동화 ≪삼각형에 갇힌 유리새≫ 출간.
2005년 창작동화 ≪엄마에게는 괴물 나에게는 선물≫ 출간.
2006년 일본 그림책 ≪날아라 크레용≫, ≪작은 의자≫ 번역. 창작그림책 ≪인디언 인형≫, ≪비닐봉지의 여행≫ 출간.
2006년∼2008년 서경대학교 아동문학 강의.
2007년 일본 그림책 ≪이모토 요코의 세계명작≫ 전 10권 번역. 창작그림책 ≪모나의 용기 지팡이≫ 출간. ≪7인의 작가가 쓰는 행복 이야기≫(공저) 출간.
2008년 창작동화 ≪강아지별에는 궁금이가 산다≫ 출간.
2009년 창작동화 ≪동생 따윈 필요 없어≫, 창작그림책 ≪골목 안 골동품 가게≫ 출간.
2011년 일본 그림책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번역. 성경 동화 ≪핑크 할머니의 집으로 오세요≫ 출간.
2012년 창작동화 ≪큰형 학교 똥장 반장≫(소담주니어) 출간.
2013년 창작동화 ≪블랙홀로 빠진 이메일≫, 창작동화 ≪우리 동네 꽃밭≫ 출간 예정.

해설 - 최미선
199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2000년에 아동문예 문학상, 2004년에 아동문학평론 신인상, 2005년에 경남아동문학상을 받았다.
2007년에 펴낸 창작동화집 ≪가짜 한의사 외삼촌≫이 있고, <한국 소년소설의 형성 전개 과정>, <전래동화에 나타난 상징성 비교 고찰>, <이원수 소년소설의 서사성 연구>, <1920년대 ≪신소년≫의 아동서사문학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2012년에 국립경상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아동문학 창작과 이론 연구를 하며 경상대학교, 진주보건대학교 등의 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판도라의 열쇠
풍경 소리
바람을 타고 가는 꽃기차
다 가질 거야
새봄왕
맨드라미 핀 어느 날
열네 살, 그해 저녁
꽃구경
버드나무가 말했어
현주야! 미안해
고병익 선생의 아이들
감귤 나무 아래서
예니를 찾아라!

해설
길지연은
최미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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