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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간호사 상세페이지

의사와 간호사작품 소개

<의사와 간호사> 몸의 존엄성, 몸에 대한 권리장전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되는 영국 여성 작가 루시 엘먼의 소설 《의사와 간호사》는 다면적인 느낌을 주는 다소 엉뚱하지만 매우 특이하고도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젠이라는 여성 간호사는 영국 시골의 한 개인 병원에 취업을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혐오하는 뚱보 간호사 젠은 성적 취향이 독특한 양성애자인 병원 의사 로저 루이스 박사와 엽색 행각에 빠진다. 기실 이 둘은 오래전에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 찰나적인 성관계를 했지만 루이스 박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의 아내인 프란신은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는데, 루이스 박사는 프란신이 아내라는 사실조차도 숨기고 젠에게 청혼을 한다. 결혼식은 결혼식장에서의 프란신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젠은 다른 마을로 도피성 여행을 떠났다가 한 나체주의자를 만나게 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은 후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새로운 육체적 해방을 느낀다. 한편 루이스 박사는 큰 동기 없이 결혼식에 참석했던 젠의 여자 친구인 우마 서브를 살해하고, 이어 젠의 오빠인 니키마저 살해하여, 그들의 시체를 토막 내어 유기한다. 경찰은 젠을 범인으로 착각해 젠을 압박해 들어오고, 젠은 그들을 죽인 범인이 루이스 박사임을 알고 그를 바다로 투기하여 죽게 만든다. 이어 여러 혐의로 젠은 체포되어 감옥에 가지만, 그곳에서 새로운 평화를 맞이한다. 이렇게 이 소설의 스토리는 정리할 수 있지만, 스토리 위주의 독법으로는 이 소설의 다면성을 이해하기는 불충분하다.
페미니즘 소설로도, 한 편의 블랙 코미디로도, 또 몸과 의료 행위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도 읽을 수 있는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몸에 대한 자본주의적 물신성을 비판하고 있는 루시 엘먼의 주제 의식이다.

우리는 몸을 사랑스럽고, 없어서는 안 되며, 평등한 소유물이 아니라 괘씸하며, 터무니없고, 불필요하며 무서운 것으로 보도록 교육을 받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다루는 법을 모른다. 우리는 몸이 예측 불가능하며, 죄로 충만하고, 좋지 않은 의도를 갖고 있으며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저지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는 적으로 생각한다. 몸이 없으면 군살도, 고통도, 기쁨도, 출산도, 죽음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존재로부터 벗어나도록 훈련을 받고 있다! 규칙과 다이어트, 건강에 대한 걱정, 금기, 헬스클럽, 유명인, 두려움, 그리고 몸과 섹스와 알몸에 대한 두려움과, 포르노와 피와 재앙에 대한 사랑과, 사람의 마음을 녹여주는 멋진 여자들에 관한 문학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삶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도덕적 요구 전부를 포기했다. 우리는 후회와 슬픔과 불길한 예감과 동경과 똥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우리는 단지 자본가와 인간 복제를 위한 에너지와 이익의 단위로만 존재하며 폭탄을 맞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본문 중에서)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더 세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 혹은 성인聖人들은 몸보다는 정신의 행복을 강조해왔다.
예컨대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독배를 들었다. 소크라테스는 공동체 사회 유지의 근간이 되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헌신하기 위해,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표현인 법에 순응하기 위해, 다른 말로 그리스 도시 국가의 공동 선善을 위해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 하지만 독배를 마신 다음의 소크라테스의 몸은 어떠했을까. 독 기운이 몸에 퍼지면서 육체는 한없는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석가는 어떠했을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석가는 설산에서 6년 동안의 모진 고행을 한 뒤 수자타 마을에 이른 후 한 여인으로부터 우유죽을 공양 받고 강을 건너 보리수 아래에서 드디어 해탈했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선승들이 육체의 고행을 통해 깨달음의 깊은 바다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해탈의 대가로 그들의 육체는 모진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의 경우는 더 참혹하다. 예수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현대의 의사가 예수의 직접적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과다 출혈이었을 것이다. 만약 평범한 한 인간이 양쪽 손과 발에 커다란 못이 박혀 서서히 죽어간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받는 육체적 고통은 이루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게 인류의 대표적 스승들은 육체를 희생시킨 대가로 무엇인가 큰 정신적인 것을 얻었고, 그것은 곧 인류의 삶의 전범이 되었다.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라는 것이 그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르침은 인류 사회가 지속되면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쳐왔다. 우리가 짐승이 아닌 것이 바로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인류가 감당해야 할 육체적 고통은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중세를 지나고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그리고 근대가 진행되면서 인간은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성에 대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몸 자체에 대해 좀더 주목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되기 시작한 18세기 이후 몸은 본격적으로 대접받기 시작한다. 20세기에 들면서 몸 자체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농업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배불리 먹느냐보다는 어떻게 불필요하게 쌓인 살을 빼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고, 몸 자체의 아름다움은 상품이라는 탈을 쓰고 새로운 삶의 지향점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몸짱’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헬스클럽에 다니고, 성형 수술을 한다. 거듭된 성형 수술에 의해 얼굴이 그로테스크하게 변한 ‘선풍기 아줌마’나 얼마 전 헬스클럽에서 돌연사한 유명한 코미디언의 예는 이런 ‘몸짱, 얼굴짱 신드롬’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뿐인가. 평범한 주부가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탄력 있는 몸매를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일약 유명 스타가 되고, 시청률이 높은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 공개적인 몸짱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결국 몸에 대한 찬미가 아니라 몸의 상업적 이용이며, 몸짱이 아닌 몸에 대한 잔혹한 테러이기도 하다. 정신에 억압된 몸이 해방되면서, 몸은 몸의 물신성에 다시 사로잡혀 숨쉬기도 어렵게 구속되기에 이른 것이다. 현대의 아름다운 그리고 날씬한 몸에 대한 맹신이, 진정으로 몸을 위한 것일까? 몸은 다시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다.
루시 엘먼이 이 소설에서 주인공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뚱뚱한 여자로 표현한 것은 바로 몸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의 의식을 조롱하고 풍자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와 같은 매체들에서 아름답고 젊고 날씬한 여자들이 대접받는 현실에서 루시 엘먼은 어떠한 몸도 소중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의학 용어와 갖가지 병명이 나열되고 있는 이유도 몸의 소중함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병든 몸이나 살찐 몸이나, 몸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잃어버린 몸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의사와 간호사》의 근본적인 주제의식이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 루시 엘먼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녀는 자신을 증오하는 것에 진력이 났다(정말로 진력이 났다). 모두가 몸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몸과 최고의 몸만 갖게 되지는 않는다. 모든 몸이 인간이라는 종의 적법한 사례들이다! 누군가의 몸-젠의 몸 역시-을 경멸하는 것은 공정치 않다. 몸이야말로 모든 생명이 있는 곳이다! 그것은 아픈 몸도, 늙은 몸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살아 있다. 모든 결함과 질병 역시 생명에서 비롯된다. 모든 몸은 삶을 말하고 있다.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것 역시 삶이다. 부자이건 가난뱅이건, 살이 쪘건 말랐건, 건강하건 허약하건, 모든 몸은 생명이다. 몸은 생명으로 채워져 있다. 친구건 적이건,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은 사람이건, 생명으로 차 있다.
몸은 우리와 별개인 뭔가가 아니다. 몸은 재단당하고, 비난받고, 꺼려져야 할 나쁜 뭔가가 아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는 우리 자신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몸이야말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몸이 살아 있는 것의 기쁨과 몸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본문 중에서)

한편 이 소설은 통렬한 페미니즘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의사인 로저 루이스 박사는 여성을, 혹은 여성의 몸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하는 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사람이다. 그에게서 감정이나 정신을 찾을 수 없다. 그는 단순한 쾌락 추구의 대상으로의 여성이 필요하다. 혹은 남성이 필요하다. 그에게는 따듯하고 생동하는 ‘구멍’이 중요한 것이지, 그 ‘구멍’의 주인공인 인격체에는 무관심하다. 의사로서의 그에게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지급할 수 있는 돈이 중요하듯이. 때문에 그는 죽어 마땅하다.

남자들은 섹스가 자신들만의 것이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섹스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잘못 생각해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쇼를 진행하고, 전구를 끼우고, 돈을 벌고,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유일한 진짜 생물학적 목적은 여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여자들을 조롱하고, 놀리고, 고문하고, 착취하고, 강탈하고, 당혹하게 하고, 흠잡고, 배신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의 성적 쾌락에 집요하고도 양심적으로 봉사하도록 만들어졌다.
여자들은 스스로 다른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물론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반기를 들 수도 있겠다. 섹스는 상호간의 합의에 의한 상호간의 합일이라고 그리고 양자 모두의 행복에 봉사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동안 남성의 일방주의적 섹스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고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이 소설에는 의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식이 상당히 눈에 띈다. 영국적 상황과 한국적 상황은 다를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이 소설이 말하고 있는 주제인 몸의 존엄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 의학은 과연 제 갈 길을 가고 있는가를 이 소설은 묻고 있다. 의료 시스템이나 진료 절차가 오히려 인간의 몸을 학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
이 소설은 엽기 의사와 간호사가 벌이는 황당한 진료와 황당한 섹스와 황당한 살인 사건을 통해, 몸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다. 몸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영국판 소설 권리장전이다. 이 소설에서 선보이는 여러 낯선 소설 기법들과 주제 의식이 한국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 소개

저자 - 루시 엘먼
1956년 10월 18일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교외의 에반스톤에서 전기작가 리처드 엘먼과 작가인 메리 엘만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후 열세 살 때 영국으로 간 후 그곳에서 자랐다.
높은 평가를 받은 최초의 자전적 소설 《달콤한 디저트 Sweet Desserts》(1988)는 〈가디언〉지 소설상을 수상했고, 두 번째 책 《절망의 다양한 정도 Varying Degrees of Hoplessness》(1991)와 세 번째 책 《인간 혹은 망고? Man or Mango?》(1998)는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상 소설 부문 최종후보로 올랐다. 그리고 오렌지상의 후보로 두 번 올랐으며, 최근에는 볼링거 에브리맨 오우드하우스상 코믹한 글쓰기 부문 최종부호로 올랐다. 이 책 《의사와 간호사》는 저자의 최신작이다.
루시 엘먼은 〈아트포럼〉, 〈현대 화가들〉, 〈가디언〉, 〈리스너〉, 〈뉴 스테이츠맨〉, 〈타임즈 리터레리 서플먼트〉에 미술에 관한 기사와 소설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시나리오 작가이며, 1992년 호손덴 기금을 받았다.

역자 - 정영문
1965년 출생.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소설가이자 번역가.
《검은 이야기 사슬》,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꿈》, 《달에 홀린 광대》 등의 소설을 냈고 《페르마타》, 《쇼샤》, 《발견 366》, 《인간들이 모르는 개들의 삶》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목차

의사와 간호사

옮긴이의 말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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