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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본) 상세페이지

책 소개

<이방인 (양장본)> <이방인> 개정판 출간의 의의
— 6년 만에 다시 선보인 카뮈의 <이방인>
번역가 이정서가 6년 전에 자신의 첫 번역서로 고른 책이 <이방인>이었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었다!”는 다분히 도발적인 카피를 앞세운 이 책은 번역계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합세한 치열한 논쟁에 휘말렸고, 이 논쟁은 신문에까지 대서특필되는 이례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 논쟁의 열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논점이 해소되거나 논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다. “진짜 번역은 의역이 아니라 직역이어야 한다”는 번역가 이정서의 주장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표방하거나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논쟁은 사실 6년 전 출간된 <이방인>에서 처음 시작된 것도 아니고,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해묵은 논쟁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6년 전 출간된 이정서의 <이방인>이 큰 관심과 주목을 끈 것은 “실제로” 직역을 통해 기존의 <이방인>과는 다른 <이방인>, 일반 독자들이 미처 이해할 수 없었던 <이방인>의 또 다른 면모들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인공 뫼르소가 작열하는 햇살 때문에 다분히 충동적이고 우연하게 아랍인 사내를 권총으로 살해한 것이라고 믿고 있던 기존의 독자들에게 이 부분의 기존 번역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이정서의 <이방인>은 꼼꼼하게 짚어주었던 것이다. 이로써 독자들은 주인공 뫼르소를 비롯해 <이방인>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이 사실은 카뮈가 창조한 인물이 아니라 번역자들에 의해 추가로 가공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소설 전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주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고, 결국 카뮈가 천착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부조리’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정서의 <이방인> 새 번역은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6년 만에 다시 새로운 번역본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번역은 직역이어야 하고, 문장의 길이는 물론 구두점까지 원문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그의 번역관이 바뀌거나 6년 전의 번역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일까?


번역은 자기와의 싸움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
이정서는 개정판 서문에서 “멋모르는 가운데 완벽하다는 생각으로 냈던 책이 지금 보니 숱한 오류도 함께 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오류란 기실 “잘못된” 번역이 아니라 “고민이 부족했던” 번역을 말하는 것임을 이번 책을 통해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소설의 첫 문장을 이정서는 6년 전 기존의 번역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고 했다가 이번에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라고 수정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역시 본문 중에 정확히 밝히고 있다. “번역은 자기와의 끝없는 싸움”이라고 되풀이 강조하던 이정서의 기준과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이방인>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탄생한 셈이다. 실제로 지난 6년 동안 계속되고 되풀이된 논쟁과 이어지는 천착을 통해 이전의 <이방인>보다 한층 명확해지고 부드러워진 새로운 <이방인>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독자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를 놓고도 끝없이 고뇌를 되풀이했을 역자의 수고가 행간 곳곳에서 읽힌다.

진짜 카뮈의 <이방인>을 읽을 시간
무성의한 의역을 통해 낯선 시대, 낯선 배경, 낯선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게 될 경우 우리는 당연히 그 소설의 진면목을 파악하기는커녕 모순과 잘못된 견해를 갖게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카뮈의 <이방인>은 전세계 지식인들이 인정한 명작이자 노벨상이라는 가시적이고 나름대로 객관적인 평가도 이미 오래전에 받은 작품이다. 그런데도 우리 독자들은 여전히 주인공 뫼르소가 사회 부적응자이자 자신의 사형선고에 대해 제대로 된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기묘한 심리의 인간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의 기존 번역이 그런 뫼르소를 만들어냈기 때문이고, 이는 카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세계의 지성들이 찬탄해 마지않는다는 <이방인>의 실체는 잃어버린 채, 카피로 포장되고 한두 줄로 요약된 <이방인>에 대한 가치 평가에만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작품을 읽은 뒤 전혀 이런 평가들에 동의를 할 수 없었음에도 말이다.
이정서의 <이방인> 번역은 그런 면에서 파천황의 의미를 띤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의 번역을 통해 비로소 뫼르소와 주변 인물들의 실체가 명백히 드러나고, 죄가 없음에도 단지 사회가 기대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그의 운명이야말로 ‘부조리’의 본질임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번역의 옳고 그름과 수준의 문제는 전문 번역가들의 영역으로 남겨두어도 좋을지 모르지만, 문화와 관습과 시대가 다르므로 외국의 명작들은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기 어렵다는 해묵은 편견만은 이번 기회에 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방인> 2020년 개정판(양장)에서는 전면 보강된 <역자노트>와 <‘이방인’ 깊이 읽기>, <카뮈 죽음의 진실과 번역의 길> 등이 새로 수록됐다.







<추천사>
번역자의 피와 땀만이 정확성을 담보한다. 프랑스에서 마르트 로베르Marthe Robert와 클로드 다비드Claude David가 번역한 카프카Kafka는 독일어판 정본에 버금가는 권위를 누리고 있으며 모든 인용의 준거가 된다. 새로 나온 이 번역판 역시 프랑스어판 정본에 버금가는 권위를 누리고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인용의 준거가 되기를 기대한다.
_장승일(서울대 불어교육과 교수)

전통과 도덕에 압살당해 오던 인간 의식은 카뮈의 <이방인>에 의해 비로소 해방되었다. 젊은 시절 나는 영어판 <이방인>을 읽고 미친 열정으로 종로 거리를 쏘다녔다. 내 평생 가장 뜨겁고 자유롭던 시절이었다. 이제 세기를 달리해 이 새로운 <이방인>을 우리말로 읽었다. 놀라운 충격이다.
_김진명(소설가, 대하소설 <고구려> 저자)

사람들은 말하겠죠. 그는 너무 젊었다고, 아직은 끝낼 시간이 아니라고.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오래’ 혹은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무엇을’입니다. 그의 문이 닫혔을 때, 그는 죽음을 자각하고 증오하면서 생을 헤쳐 나가는 모든 예술가들이 쓰고자 하는 것을 이미 써놓았습니다. ‘나는 여기 있었다’라고. 그러니, 아마도 그는 그 반짝이던 찰나에 자신이 성공했음을 알았을 겁니다. 다른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_윌리엄 포크너(194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그날 오후 <이방인> 원고를 받은 즉시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4시까지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문학에 일대 진보를 가져올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갈리마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_게르하르트 헬러(독일군 점령 당시 프랑스 출판물 검열 수석고문)


출판사 서평

『이방인』 번역 논란 이후 4년, 2018년 오늘의 『이방인』은…?
더욱 정교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난 개정증보판

2014년 불문학계의 명실상부 카뮈 전문가 김화영 교수의 『이방인』을 문제 삼는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수십 개의 오역을 꼼꼼히 지적하며 학계와 번역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방인』 번역 논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현재, 우리의 『이방인』은 어떤 모습인가? 새움출판사는 번역에 대한 의미 있는 논쟁을 가져왔던 『이방인』을 더욱 정교한 모습으로 새롭게 내놓았다.
카뮈는 자신만의 역설적이고 독창적인 사유를 작품 구석구석, 캐릭터 하나하나에까지 심고 끝까지 몰고 나갔다. 지극히 민감하고 간결한 문체에 담긴 카뮈의 의도가 세밀한 번역으로 복원되었다. 이번 이정서 번역의 『이방인』 개정증보판에는 보강된 역자노트와 『이방인』 불ㆍ영ㆍ한 비교 분석의 글을 수록하고 알베르 카뮈의 연보도 덧붙였다.

본질을 흐리는 억측과 선입견,
순수하게 번역으로만, 『이방인』으로만 승부한다!

2014년 당시 출간되었던 『이방인』의 구성과 요지는 간단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자 전세계 101개 국가에서 번역된 최고의 소설 『이방인』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역자의 권위와 명성 앞에 아무 의심 없이 다른 방도도 없이 그저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하지만 역자의 필명 사용과 관련하여 작품과는 상관없는 오해로 곤혹을 치르며 정작 중요한 쟁점은 가려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번역의 질보다는 내 ‘태도’를 문제 삼는 걸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신문사는 이 사안에 대해 10일 중 6번을 기사화했을 정도였다. 물론 나를 범죄자 취급하는 내용으로. _‘역자의 말’에서

카뮈를 카뮈답게 바로잡기 위한 『이방인』의 ‘역자노트’는 기존 번역에서 발견한 58가지의 문제 사항과 그 근거를 달았다. 역자는 작가가 사용한 단어와 의미에 자신의 해석을 더하거나 덜어내지 않고, 원문 그대로의 의미와 문체를 살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쉼표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섬세한 번역을 추구하는 역자 이정서가 주장하는 직역의 방향이다. 이정서 번역의 『이방인』이 출간되고 1년 6개월 뒤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이방인』은 상당 부분 수정되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제 3년이 지난 지금, 뫼르소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것은 프랑스 사회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건 말할 것도 없고, 김 교수 스스로 저 ‘간수’를 ‘경관’으로 바로잡는 등 내가 지적한 거의 전부를 수정해서 개정판을 낸 마당이다(물론 김 교수님이 내 지적을 보고 고쳤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코 그럴 리가 없는 것이고 재번역을 하시면 서 틀린 걸 바로잡다 보니 당연히 비슷해졌을 터이다). _‘역자의 말’에서

번역의 성격을 말하며 ‘제2의 창작’이나 ‘일대일 대응이 불가능한 작업’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역자의 재량’은 작품을 훼손해도 되는 면죄부가 아니다. 오역과 과도한 의역, 원문 생략 등으로 고전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저자가 쓴 있는 그대로 번역해 주려 애쓸 때 저자의 문체도 살고 작품의 의도도 사는 것이다.

뫼르소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
치밀한 스릴러처럼 단숨에 읽히는 완벽한 소설 『이방인』
“새벽 4시까지 손에서 뗄 수 없었다!”

『이방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뫼르소의 이야기다. 뫼르소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소설 전반을 휘어잡는다. 그렇다면 뫼르소는 어떤 인물일까? 카뮈는 이례적으로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에 대해 상세한 해설을 내놓는다.

그는 거짓말을 거부한다. 거짓말은 단지 없는 말을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또한, 무엇보다, 실제보다 더 말해지는 것이고, 인간의 마음에 주목하면서, 사람들의 느낌보다 더 말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단순한 삶을 위해 매일 하는 것이다. 뫼르소는, 외형적인 것과는 반대로, 단순한 삶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실재하는 것을 말하고, 그의 느낌을 숨기기를 거부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사회는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를 들어, 그가 그의 죄를 관례에 따라, 뉘우치길 요청한다. 그는 이 점에 대해 진정한 후회보다 더 많은 곤란을 겪는 것으로 답한다. 그리고 이 차이는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_카뮈가 쓴 ‘영문판 『이방인』 서문’에서(본문 ‘카뮈 『이방인』 불ㆍ영ㆍ한 비교’에 수록)

어떤 거짓말도 거부하는, 사회와 법정이 요구하는 ‘뉘우침’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그래서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마는 뫼르소의 캐릭터는 우리 독자들에게 제대로 이해가 된 걸까? 카뮈는 미국의 독자들이 뫼르소를 잘 이해하지 못할까 봐 염려해 이런 글을 남겼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독자뿐만 아니라, 번역자들조차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역투성이 『이방인』을 ‘창조’해 냈고, 그게 ‘정석’으로 굳어졌던 것이다. 전혀 새롭기 때문에 낯선, 그러나 카뮈의 사유와 문체를 정교하게 살린 또 하나의 『이방인』 번역이 나와야 했던 이유다.
카뮈의 『이방인』은 지루하고 난해한 소설이 아니다. 다른 어떤 소설보다 재미있고 잘 읽히는 소설이다. 출간 직전, 프랑스 출판물을 담당했던 독일인 게르하르트 헬러의 말이다.

그날 오후 『이방인』 원고를 받은 즉시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4시까지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문학에 일대 진보를 가져올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갈리마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_게르하르트 헬러(독일군 점령 당시 프랑스 출판물 검열 수석고문)


저자 프로필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 국적 프랑스
  • 출생-사망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
  • 학력 알제대학교 철학과 학사
  • 경력 일간지 콩바 편집인
  • 데뷔 소설 이방인
  • 수상 1957년 노벨 문학상

2014.10.3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알제리 몬도비 출생.
1930년, 십대 시절 장 그르니에를 만나 인생의 결정적 전환을 맞는다. 1931년,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한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 발표.
1942년, 갈리마르사에서 『이방인L’Etranger』 출판. 원래 부조리 3부작, 즉 『칼리굴라Caligula』와 『시시포스의 신화Le Mythe de Sisyphe』를 함께 출판하고자 했으나, 『이방인』이 가장 먼저 출간된 것. 1947년, 또 하나의 세계적인 소설 『페스트La Peste』 출간. 이후 『반항적 인간L’Homme』 『전락La Chute』 등 출간.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1960년 1월 4일, 빌블르뱅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남프랑스 루르마랭 마을에 묻혔다.

옮긴이 이정서
2014년 기존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하는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으며 학계에 충격을 가져왔다. 작가가 쓴 그대로, 서술 구조를 지키는 번역을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의역에 익숙해 있는 기존 번역관에는 낯선 것이었다. 이후, 그는 여전히 직역을 주장하며 『어린 왕자』를 불어·영어ㆍ한국어로 비교하고 그간 통념에 사로잡혀 있던 여러 개념들, 즉 『어린 왕자』에서의 ‘시간 개념’, ‘존칭 개념’ 등을 바로잡아 제대로 된 ‘어린 왕자’를 새로 번역해 냈다. 연이어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를 번역하며 기존 번역들의 오역과 표절을 지적했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 『카뮈로부터 온 편지』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소설 출판 24시』(공저)와 번역 비평서 『번역의 정석』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 등이 있다. 현재 페이스북(이정서)에 조지 오웰의 『1984』를 원문과 함께 연재 중이다.

목차

2020, 개정판을 내며

1부
2부

역자노트
<이방인> 깊이 읽기
역자후기 : 카뮈 죽음의 진실과 번역가의 길
알베르 카뮈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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