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바람이 부는 날엔, 현대미술

차가운 도시의 싱글녀(차도싱) 권란 기자가 낸 이 미술책이 나는 무척 반갑다. 싱글녀로 살아가는 그녀와 달리, 나는 싱글 생활을 뒤로 하고 어느덧 3년째 엄마 노릇에 접어들었다. 미술관에 가면 내 일상을 대입하며 느긋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건 꿈같은 일일 뿐, 이제는 아이 쫓아다니느라 부산하다. 과거와 한참 다른 지금이지만 도시를 살아가고, 내 삶에 충실하며, 예술을 탐닉하고픈 마음은 여전하다. 그래서인가. 이 책은 지금 내 마음에도 바람이 불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내 삶을 더욱 달콤하게 감싸준다. 예술을 감상하는 데, 나를 사랑하는 데 어려운 이론은 필요 없다. 경쾌한 그녀의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미술과 인생을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조수빈 KBS 아나운서


도시 생활자에게 “현대 미술은 꽤 힘이 세다.”
아프고 적나라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을 울리고 위로가 되기에
한 해가 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의 욕망은 더욱 복잡하고 치열해진다. 매일 밥벌이를 위해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데도, 한걸음은커녕 반걸음도 못 나아간 듯한 자신을 보면, 울컥 억울해진다. “이 도시는 왜 이렇게도 매정한 걸까?” “나는 왜 이러고 사는 걸까?” 답 없는 질문으로 마음이 복잡해지는 날. 마음에는 바람이 분다.
북적대는 사람들에 치이면서도 누군가가 그리운 바람. 가벼운 주머니가 단출해도 어쩐지 하루쯤 허영을 부리고 싶은 바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정말 나 자신을 위해 살고픈 바람. 그런 바람이 불 때면, 저자는 작품을 보러 간다. 그것도 현대 미술. 방송기자로 일하며 휴일근무, 숙직에 매일 새벽별 보고 출퇴근하기 일쑤인 저자의 말로는, 현대 미술은 도시 생활자에게 꽤나 힘이 세기 때문이다. “취향 강하다”는 선입견쯤은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책장을 넘기면 아프고 적나라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을 울리고 위로가 되는 현대 미술 작품이 펼쳐진다.
이 책은 철저한 현실인과 꿈꾸는 여자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나다움을 지키고픈 오춘기 여자를 위한 현대 미술 에세이다. 도시 생활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저자의 웃픈 고백들은 작품과 유쾌하게 어우러져, 현대 미술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현대 미술 입문자에게 그야말로 안성맞춤일 책이다. 머리카락 한 올로 한 사람의 삶을 표현하기도 하고, 깨진 도자기들이 모여 명품으로 재탄생되는 ‘현대미술의 극적인 감동’은 오늘도 복잡다단한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크게 울려줄 것이다.


서른다섯, 나이 앞에 자꾸 움츠려드는 나를 끌어올릴 오춘기 그림 토크
아직은 더 폼 나게 살고프고, 찐하게 사랑하고픈 그녀들의 도시 공감!
30대 여자는 20대 여자보다 수만 배는 더 복잡하다. 더욱 격렬하게 욕망이 충돌하고, 더욱 아프게 자신의 현재를 인정해야 하니까. 청춘이 만개하는 시절을 지나, 현실과 받아들임이란 말에 더 익숙해지는 30대에 접어들면서 삶은 더욱 복잡해진다. 눈높이를 낮춰 적당히 타협하는 게 현실적인 걸 아는 나이가 되었는데 꾹 눌러놓은 욕망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른 너머 마흔을 앞두고 있다 해도 삶의 로망을 버릴 수 없는 존재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세 끼니를 사발면으로 때우더라도 때로는 지적 허영을 즐기고 싶은 존재가 바로 여자다. 그러니 저자는 그 로망을 너무 삐뚤게만 보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그 지적 허영이야말로, 아이러니로 가득한 여자의 마음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달래주는 진정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꽈배기처럼 뱅뱅 꼬인 그 오춘기 심리를, 자기 가치를 올리고 싶은 감성적 소양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독려(?)하기까지 한다.
이 책은 그 욕망과 현실 사이의 헛헛함을 그림으로 채워주는 미술 에세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서른다섯에 오춘기를 맞이한 글쓴이의 꽈배기 심리를 통해 무릎을 탁 칠 만큼 공감되고 친근한 방식으로 현대 미술을 만날 수 있다. 현실은 비루하고 각박하지만, 그래서 더 자기 가치를 올리고 싶은 그 욕구를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할 시간이다. 아직은 더 폼 나게 살고 싶고, 찐하게 사랑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저자의 유쾌한 현대미술 토크가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다. 현대 미술의 강한 울림과, 저자의 유쾌한 도시 공감은 ‘독한 세상’을 살아내는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끌어올려줄 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