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모네와 지베르니 그룹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예술/문화

모네와 지베르니 그룹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들
소장전자책 정가12,000
판매가12,000
모네와 지베르니 그룹 표지 이미지

모네와 지베르니 그룹작품 소개

<모네와 지베르니 그룹>

[내용 요약]

■ 지베르니 그룹 6인

1890년에 지베르니에 도착한 가이 로즈는 이곳에서 장식적 인상주의(Decorative Impressionism)의 스타일을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실현한 화가가 되었다. 그가 지베르니에서 성취한 가장 중요한 일은 인상주의 스타일 안에서 새로운 장르를 다시 개발한 것이었다. 모네와 같이 생활하는 시기를 포함하여 가이 로즈(Guy Rose)는 1890년부터 1904년까지 15년간을 프랑스 파리와 지베르니에서 생활했다. 로즈가 지베르니에 온지 10년 후인 1900년부터 프레드릭 프리세크, 리처드 밀러, 로턴 파커, 칼 앤드슨 그리고 에드먼드 그리슨등의 미국화가들이 도착하여 비교적 오랫동안 정착하면서 로즈의 작품 스타일에 영향을 받고 같이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지베르니에 정착하여 함께 생활했다. 또한 주로 가족과 함께 생활하였고 완성된 작품은 매년 미국의 뉴욕 등에서 전시를 통해 인기 속에 판매하였으며 다시 지베르니에 돌아와서 다음의 전시를 위한 작업을 계속했다. 특히 프랑스 내에서 이러한 미국 화가들은 스스로 ‘지베르니 그룹「Giverny Group」’이라 칭했다.

장식적 인상주의 작품이란 당시 가이 로즈 등 10명의 화가들이 지베르니의 실외 정원과 실내에서 꽃과 정원을 배경으로 여인이나 가족의 인물을 결합하여 그린 작품 스타일이었다. 특히 작품의 배경에는 햇빛이 쏟아지는 정원에서 시간에 따라 무수히 반사되는 섬광과 같은 색채의 명멸을 개성적으로 묘사했다. 주제는 주로 가족의 인물과 모델 여인의 누드를 그린 것이다. 또한 실내에서도 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햇빛에 비친 인물의 모습을 실외에서처럼 묘사하였다.
이러한 작품 속에 배경이 되는 정원의 꽃이나 잎사귀의 모습은 다소 추상적이며 환상적인 표현기법을 각자 개발하여 개성적인 터치로 그려졌다. 그러나 작품속의 인물은 인상주의 및 사실주의에 가까운 표현방법으로 그리되 배경과 서로 병치되어 전체적으로 참신하고 심미적인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이 특색이었다.

1910년에는 이와 같이 새로운 화풍으로 활동한 지베르니의 화가 6명이 「지베르니 그룹 Giverny Group」 이라는 명칭을 스스로 지었다. 그리고 고국인 뉴욕에 건너가서 전시하여 큰 성공을 이루었다. 6명의 화가 자신들도 그들의 화풍이 미술사적으로 새로운 화풍으로 정의될지 몰랐다. 단지 그들의 작품이 뉴욕 등에서 전시를 통해 큰 인기를 얻은 결과였다. 그들은 실내에서도 인상파가 추구하는 빛(光)과 색(色)의 조화 및 대상(對象)과 면(面)의 구성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는 빛이 충만한 자연속에 인간을 포함시킨 것이었다.

되돌아 올라가면 이렇게 생긴 새로운 장르는 사실 모네가 처음으로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인상주의는 그림의 대상에 대하여 빛과 색채의 변화에 따라 사실주의와 달리 다소 주관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작품에는 심미적으로 추상적인 이미지가 일부 묘사되는 회화 기법이다.
추상화를 최초로 개발한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는 1896년에 모네의 『건초더미』를 모스코바 전시장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 때 사물에 비친 햇빛의 추상적인 표현과 함께 사물자체가 가진 중요성을 지워 버린 것에 대하여 영감을 받았다고 스스로 고백한 적이 있었다. 또한 인상파는 기능적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 지베르니의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위와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 표현과 더불어 새로 개발된 장식적인 측면 즉 두 가지 요소가 특징적으로 함께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1910년 지베르니 그룹전(6인)과 1911년 장식적 인상주의로 명명

이들 6인은 『지베르니 그룹』이라는 전시회 명칭으로 1910년 5월 7일부터 5월 20일까지 뉴욕의 『메디슨 갤러리』에서 역사적인 인상파 전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인상주의를 널리 보급시켰다.
이들은 그림의 주제와 화풍이 거의 비슷했고 다른 화가들에 비하여 지베르니에 비교적 오래 거주했으며 그들의 작품 스타일이 혁신적이었고 고국에서도 인기가 높아서 잘 팔려 나갔다.

1895년 이후에 지베르니를 방문한 인상주의 스타일의 화가들 중에 특별히 색다른 스타일의 화가들이 있었다. 즉 프레드릭 프리세크 등은 주로 정원의 여인을 그리는 장식적인 화풍의 화가들이었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통적인 인상파 스타일이면서 이와 다른 색다른 스타일을 모네가 정착한 지베르니에서 미국 화가들에 의하여 창조해 낸 셈이다.
전시가 끝난 1년 후인 1911년에야 프레드릭 프리세크의 친구이며 미국의 미술 비평가이며 수집가인 크리스천 브린턴이 미술사적으로 처음 ‘장식적 인상주의’(Decorative Impressionism)라고 명명(命名)했다. 오랜 인상파의 실험 끝에 새로운 인상파의 장르가 새롭게 정의되고 탄생한 것이다. 즉 자연속에서 인간의 조화를 인상파의 새로운 스타일로 창작한 것이 장식적 인상주의로 인정을 받았다.
이는 1874년 4월 25일에 파리에서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진지 37년이 지난 후였다. 당시 프랑스의 미술비평가인 루이 르로이가 클로드 모네의 유화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들 두고 사르바리(Le Charivari)지에 기고한 비판적인 뜻으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모네가 주도하여 1874년에 시작된 인상주의의 분파를 살펴보면,
신인상주의(新印象主義 Neo-Impressionism)는 1890년대에 점묘주의 화법을 사용하여 과학적인 색채분할을 쇠라와 시냐크가 시도한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후기 인상주의(後期 印象主義 Post-Impressionism)는 1880년대에 인상주의에 반(反)하는 화풍으로 고흐, 고갱, 세잔느 등으로 각각 화가의 화풍은 다르지만 1910~1911년에 런던에서 프랑스의 미술을 영국에 소개하는 [마네와 인상파 이후의 화가들 Manet and the Post-Impressionists]이라는 전시에서 영국의 화가이며 미술평론가인 로저 엘리옷 프라이(Roger Eliot Fry 1866~1934)가 명명한 것이다. 전시화가들은 ‘인상주의’라는 전시명칭을 거부하고 ‘후기 인상주의’라는 명칭을 선정했다. 당초부터 전시화가중에는 전통적인 인상파들이 제외되었다.

장식적 인상주의란 인상주의(印象主義)와 신인상주의(新印象主義) 화가들이 장식적이고 아카데믹한 기법을 인물에 적용하여 그리는 방법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화가들의 작품은 실내에서 창가의 자연광에 의해 명멸하는 인물과 야외에서 여성의 나른한 포즈를 강한 채색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고도의 장식적인 그림의 대부분은 배경에 있는 패턴을 강하게 표현하고 일본의 예술이나 자포니즘에서 영향력을 받았다. 제1세대의 장식적 인상파 화가들은 창시자들로서 약 1905년에서 1920년대 중반까지 인기가 있었다. 이러한 스타일은 이들 화가들의 제자들이 작품을 통해 20세기 중반까지 계속 스타일이 이어졌다 또한 일부는 현대의 비유적인 인물화가들에 의하여 최근 몇 년 동안 부활되고 있다 .

■ 제2세대(The Second Generation) 장식적 인상주의

그 후 장식적 인상주의는 미국에서 제2세대 (The Second Generation)인 로버트 루이스 레이드(Robert Lewis Reid 1862-1929), 시어도어 니콜라이 루키츠(Theodore Nikolai Lukits 1897~1992), 크리스천 본 스나이다우 (Christian Von Schneidau 1893~1976)등의 현대적인 인물 화가들이 이어 받아 부활하였다.

■ 1895년 이후에 지베르니에 정착한 ‘장식적 인상주의’(裝飾的 印象主義) 화가들

 가이 로즈는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디자인 학교를 거쳐 1888년에 파리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르페브르와 콩스탕 밑에서 아카데믹 미술을 수학했다. 지베르니에 초기인 1890년에 와서 1891년까지 생활했다. 다시 여류화가인 부인 에텔 보드멘과 결혼하여 1894년, 1899년을 살았다. 또한 미국 생활 중에 로빈슨의 권고로 지베르니에 되돌아 갈 것을 듣고 1904년~1912년까지 9년 동안을 지베르니에서 지냈으며 도합 13년을 생활했다. 부인은 따로 1923년에도 지베르니에 다시 와서 생활했다. 그는 19세에 파리에 와서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3년간 수학하면서 학교의 모든 미술상을 받았던 재능이 특별한 화가였다.

 리처드 밀러는 1889년에 워싱턴 미술대학을 거쳐 1899년에 파리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로랑스와 콩스탕 밑에서 아카데믹 미술을 수학했다. 그는 파리에서 미술상을 받자 콜라로시 아카데미의 제의로 영예로운 교수생활을 했다. 또한 31세에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00년 초기부터 1914년까지 15년간 지베르니에서 주로 정원의 여인을 그린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였다.

 로턴 S. 파커는 미국에서 시카고 미술재단을 거쳐 1888년에 에콜 데 보자르와 그 후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1902년에 지베르니에 와서 1913년까지 12년을 생활했다. 정원의 여인을 그리되 이름난 누드화를 많이 남겼다.

 프레드릭 프리세크는 1893년에 시카고 미술재단을 거쳐 1895년에 뉴욕 아트스튜던트 리그에서 수학했다. 1898년에 파리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믹 미술을 배웠다. 1906년에 지베르니를 방문하여 부인 사라 앤 오브라이언과 함께 정착하고 1919년까지 14년간을 살았다. 1915년에는 파나마 태평양 국제박람회에 출품하여 대상을 받았다. 프리세크는 지베르니의 햇빛이 있는 정원에서 여성과 도발적인 누드를 그렸다. 그는 미국에서는 전혀 그러한 스타일의 작업을 하지 못한 화가였다. 지베르니에서는 어쩌면 다른 곳보다 그림 그리는 환경이 더욱 자유스러운 곳이었음이 틀림없었다.

 에드먼드 W. 그리슨은 1899년에 뉴욕 아트스튜던트 리그를 수학했다. 부인 페테드 에톨 부스와 함께 1907년부터 1909년까지 3년을 지베르니에서 살았다. 그는 귀국하여 맨허튼의 살마군디 미술클럽에서 미술에 기여한 공로로 100만불을 수상했다.

 칼 엔더슨은 미국에서 시카고 미술재단을 거쳐 1900년에 파리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그리고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도 수학했다. 1909년에서 1911년까지 3년을 프리세크의 권유로 지베르니에서 부인인 메리 헤스와 같이 생활했다. 그는 여성 이미지의 누드와 햇빛이 얼룩진 실외 포즈를 힘차고 명멸하는 듯 한 붓놀림으로 그렸다.

 알슨 스키너 클라크는 파리의 카르멘 아카데미에서 미국화가인 제임스 휘슬러 밑에서 수학했다. 1910년에 부인 아타 메도라 멕뮤란과 함께 지베르니에 와서 가이 로즈와 다른 화가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생활했다.그는 귀국하여 미국으이 옥시덴탈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 여류화가인 폴린 레너즈 팔머는 미국에서 시카고 공립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고 1900년 파리에서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그녀는 시카고 출신의 성공한 초상화, 풍경화 및 정물화의 화가로서 1910년에 지베르니에서 생활했다.

 루이스 리트먼은 러시아 출생으로 이민 온 화가였다. 미국에서 시카고 미술 아카데미와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를 거쳐 1900년에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를 수학했다. 시카고에서 동료인 파커가 격려하여 1911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인 1928년까지 19년간 지베르니에서 생활했다. 귀국하여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그는 젊은 여인이 햇빛에 얼룩진 야외와 밝은 실내에서 옷을 입거나 누드로 포즈를 취한 작품을 제작했다.

 로버트 루이스 레이드는 미국에서 1884년에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를 거쳐 1885년에 파리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블랑제, 르베브르 밑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믹 미술을 수학했다. 그는 귀국하여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의 교수로 활약했다. 그는 지베르니를 거치지 않았으나 제2세대의 장식적 인상주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다.


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저자는 2013년부터 모네와 같이 지베르니라는 국제적 화가마을(Art Colony)에서 같이 인상주의를 창작하면서 발전시킨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에 대하여 이번으로 18권의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이는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2013년에 2권 및 체험판 2권, 2015년에 합권》《The Ten 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2013년에 2권, 및 체험판 2권, 2015년에 합권》 《모네와 가이 로즈, 2014년》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 풍경화, 2014년》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 바다풍경화, 2014년》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 인물화, 2014년》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 초상화․누드화, 2014년》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 꽃과 정물화, 2014년》 《미국 인상주의 거장화가 존 싱어 서전트 2015년》 《모네와 지베르니 그룹,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들, 2016년》이다.

장식적 인상주의(Decorative Impressionism)라는 화풍은 프랑스의 모네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모네는 1883년에 정착한 지베르니 시골마을에서 정원을 가꾸고 인근의 풍경을 새로운 인상주의 화풍으로 수없이 그려나갔다. 1985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미국 등의 18개국에서 찾아온 350명의 화가들은 모네와 같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까지 계속 이곳에서 같이 생활했다.
장식적 인상주의는 모네의 정원풍경과 인물화에서 뉘앙스를 받았지만 일부 미국 화가들에 의하여 새롭게 창작된 화풍이었다. 즉 지베르니에서 정원의 여인과 누드를 주 대상으로 그리되 꽃이 만발한 정원이나 수목 등의 주위환경은 햇빛에 얼룩진 광경을 추상적이며 환상적인 스타일로 그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와 줄리앙 아카데미 및 콜라로시 아카데미 등 일류 미술학교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믹 사실주의를 수학했던 화가들로서 정원의 풍경과 함께 인물화를 인상주의 스타일로 재탄생(Rebirth)시킨 것이었다.

가이 로즈 등 6인의 화가들이 1910년에 뉴욕에서 지베르니 그룹(Giverny Group)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전시를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1년에 미국의 미술비평가인 크리스천 브린턴이 이들 화가들을 향하여 처음으로 장식적 인상주의(裝飾的 印象主義) 화가들로 명명되었다. 먼저 인상주의와 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전개

인상주의는 1874년에 모네가 주도하여 프랑스 파리의 나다르 아틀리에에서 모네, 세잔느, 부댕, 드가, 모리조, 르누아르, 시슬레 등 30명의 화가들이 165점을 가지고 전시를 하면서 공식적으로 등장한 회화의 유파이다. 이때 인상주의의 정신적인 지주이었던 에두아르 마네는 출품을 거절했다. 모네가 프랑스 북쪽의 르아브르 항구에서 일출을 그린 작품인 『인상, 해 뜨는 광경』에 착상하여 루이 르루와(Louis Leroy 1812-1885)라는 샤르바리 신문기자가 [인상주의자 전시회]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만들어 낸 용어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방식을 팽개친 이와 같은 예술가들을 경멸하면서 지은 것이었다. 다른 비평가들도 마찬가지로 지독한 비평을 가했다.

결국 인상주의란 ‘시각(Vision)이라는 감각으로 느낀 인상을 순수하면서 단순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창작된 회화적 체계’이었다. 시각을 통해 비치는 사물은 사실 새롭고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성질이다. 옥외와 햇빛이 들어오는 실내에서 사물을 직접 대하여 생동감 있게 나타내는 인상주의 작품은 인상파가 생긴 당시의 19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관람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느낌을 선물하고 있다. 특히 인상파들은 출렁이는 바다, 떠다니는 구름, 명멸하는 태양의 빛, 연기와 수증기 등과 같이 순간적이고 덧없는 갖가지 사물의 변하는 상태에 대하여 그림의 대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렸다. 인상파의 기법도 다른 것이었는데 종전에 사용되는 윤곽선은 배척되었다. 원근법에서도 색상(Teinte)과 색조(Tone)로서 공간을 대신 처리했다. 또한 명암법 대신에 뉘앙스로 나타내려 하였다. 그림자도 반대색인 보색(補色)의 반사광선을 사용하여 사물자체가 두드러지게 하면서 그렸다. 모든 색상도 순수한 색상의 병치(倂置)를 통해 시각적인 혼합을 과감히 시도했다. 그러나 인상주의에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그렸지만 이와 같이 과학적인 색상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네는 위와 같은 원리에 입각한다는 것보다 실제로는 ‘새가 노래하듯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렸다.’ 고 말했다. 인상주의자들은 비범하게도 남과 달리 시각적인 감수성(視覺的 感受性)을 지닌 자들이었다. 즉 아카데믹한 화가가 햇빛에서는 흰색만을 보는 대신에 인상파는 수많은 빛과 프리즘의 분광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 결국 인상파는 윤곽을 그리는 데생과 입체감의 묘사와 원근법 및 명암법은 멀리한 것이다. 결국 인상파는 점과 선으로 이어진 색깔의 진동을 분해하여 화폭에 옮기게 된 것이다.
“모네는 신(神)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다.” 폴 세잔느는 빛의 변화를 포착하는 클로드 모네의 비범한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디자인(Design)이라는 용어는 표현하다, 지시하다, 성취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라틴어의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한다. 오늘날 현대생활에 가장 비중이 높아지며 일상에 밀접한 디자인 분야는 이와 같이 시각(視覺)을 통한 감각으로 단번에 우월을 가리는 바로 인상주의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인상주의는 문학과 음악에도 연관을 지니고 있다. 음악가와 시인은 감각을 통하여 체험한 것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화가는 사물이 지닌 음악을 그림으로 암시한다. 즉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는 ‘해가 지는 광경보다 더 음악적인 것이 없다.’ 라고 말했다. 드뷔시는 음악작품의 제목을「습작, 비 내리는 정원」, 「목판화」, 「물위의 빛」, 「안개」 등과 같이 그림의 작품 과 같은 이름을 붙여 나갔다.
화가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인 ‘물, 햇빛, 진동, 바람, 구름’ 등을 시인과 음악가들도 자주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시인과 소설가들은 그들의 문학 속에서 하나의 인상주의 작품을 언어(言語)로 그려 나갔다. 음악가들도 인상파 화가들로부터 차츰 감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시인과 음악가들도 인상주의에 매료되고 새로운 변신을 꾀하였으니 인상주의 화가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 신인상주의(新印象主義 NEO Impressionism)

프랑스의 인상파는 1874년에 시작한지 12년 후인 1886년에 제8회를 마지막 전시회로 개최하고 해산되었다. 이때 쇠라 시냐크 등 화가들은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출품하였다. 즉 신인상주의(新印象主義)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라 그랑드 자뜨 섬의 일요일 오후, 1884년』로 분할묘법(Divisionnisme)이라는 터치의 체계적인 분할을 선보였던 것이다. 이 화풍은 19세기 말에 프랑스에서 인상주의의 방법을 더욱 과학적으로 추구하여 일어난 회화 경향이었다. 색채를 원색으로 환원하여 무수한 점으로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통일성을 유지하였다. 형태나 구도에서는 황금분할(黃金分割) 따위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고전적인 회화에서처럼 안정성을 찾으려 하였다. 신인상주의라는 용어는 1886년 9월 19일에 프랑스의 문학비평가인 펠릭스 페네옹((Felix-Feneon 1861-1944)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인상주의가 형식상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반하여, 1880년대에 프랑스에서 활약한 화가 중에 후기 인상주의(後期 印象主義)에 속하는 쇠라, 세잔, 고흐, 고갱은 별로 비슷한 구석이 없었지만 각 화가의 화풍은 크게 달랐다. 이 용어는 영국의 미술비평가 및 화가이었던 로저 프라이(Roger Fry 1866-1934)가 1910년에 [마네와 후기인상주의(Manet and Post-Impressionism)] 전시를 기획하면서 처음으로 용어를 사용했다. 즉 19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인상주의에서 시작하였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품 세계를 확립하려고 한 예술 사조이다. 인상파의 화풍을 개성적으로 발전시켜 주관적 표현을 중시하면서 극히 간략한 기교를 썼다.

■ 지베르니에서 시작된 장식적 인상주의 (Decorative Impressionism)

1910년 전후에 지베르니에서 비교적 장기간 활동한 화가 6인 즉 가이 로즈 (지베르니에 1894년부터 11년), 로턴 파커 (지베르니에 1902년부터 12년), 리처드 밀러 (지베르니에 1900년부터 15년), 프레드릭 프리세크 (지베르니에 1906년부터 14년), 에드먼드 그리슨(지베르니에 1907년부터 3년), 칼 앤드슨(지베르니에 1909년부터 2년)이 뉴욕의 [메디슨 아트갤러리]에서 ‘지베르니 그룹 Giverny Group’이라는 명칭으로 전시를 했다. 그들은 본국에 초기 인상주의 작품을 소개하여 미국의 미술사에 중요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장식적 인상주의(裝飾的 印象主義)는 당시 지베르니에서 프레드릭 프리세크의 동료이었으며 리처드 밀러 작품을 평가한 적이 있는 미국의 미술비평가 및 작가인 크리스천 브린턴(Christian Brinton 1870~1942)이 1910년에 뉴욕에서 전시한 작품을 보고 1911년에 이러한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미술사적(美術史的)인 용어(用語)가 되었다.

이 용어의 의미는 한마디로 프리세크가 스스로 말한 <인상주의 기법의 3가지 비밀>에서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즉 ◾ 페인팅을 하는데 있어 먼저 주위환경을 창조한다. (First Secret : Create an Environment in Which to Make Paintings) ◾ 빛을 그린다. (Second Secret: Paint the Light) ◾ 빛을 향하여 참을성 있게 또한 집요하게 기다린다. (Third Secret: Patiently, Insistently Wait for the Light)
위와 같이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는 주로 여성의 인물이나 누드였는데 햇볕이 내리쬐는 옥외나 실내에서 빛으로 얼룩진 황홀한 광경을 그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파리의 에콜데 보자르나 줄리앙 아카데미 및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전통적이며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회화 기법을 수학한 화가들이었다. 즉 인물을 인상주의 스타일로 바꾸어 그리되 주위환경에 관심을 크게 가지고 배경은 나뭇잎이나 정원의 꽃으로 장식하되 추상적, 상징적으로 그려서 작품에 신비한 생동감을 주었다.

장식적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인 프레드릭 프리세크의 평소 그림 스타일은 색채와 형식이 자연주의보다 표현주의를 사용한 ‘나비파(The Prophets)’스타일에 접근했다. 또한 그의 작품은 햇빛과 주위환경에 관련된 전통적인 인상주의와 합성된 ‘장식적 인상주의’로 언급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용어로서 비로소 몇몇 지베르니 화가들의 미술작품을 정확히 기술하게 된 것이다.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의 한 사람인 리처드 밀러는 “미술의 사명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문학과는 다르다. 그러나 장식적(裝飾的)으로 즐거운 시각적(視覺的)인 감각(感覺)을 먼저 전달(傳達)하여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밀러는 프랑스의 미국 인상주의 마을인 지베르니에서 인물 화가였다. 그는 프랑스의 지베르니와 노르망디 지역에 자신이 세운 여름학교에서 실내나 야외에서 여인의 포즈를 그리는 인상주의를 가르쳤다. 그가 오랫동안 유럽에서 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밀러는 미국에 돌아와서 가이 로즈와 함께 캘리포니아 지역의 인상주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패서디나의 스틱니 미술학교에서도 그림을 가르쳤다.

이번에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책으로 소개한 것은 사실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리고 외국의 웹사이트를 검색해 보더라도 단행본으로 발간된 적은 없었다. 필자가 2013년부터 지베르니의 화가들을 위주로 체험판 4권을 포함하여 18권의 시리즈를 출간하였다. 이번에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하지만‘장식적 인상주의’ 화풍을 소개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모네를 중심으로 발전된 전통적인 인상주의로부터 새로운 스타일이 연이어 생길 수 있다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젊은 화가들이 인상주의 화풍을 계속 창작하면서 연구한다면 앞으로 세계적인 화가의 탄생은 물론이고 새로운 화풍을 개발할 수 있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인상주의는 먼저 작품 소재(素材)의 다양성(多樣性), 화가마다 고유(固有)의 개별성(個別性), 인상주의 특유의 기법인 스트로그(Stroke)의 무한성(無限性)이라는 세가지 요소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를 가지고 매트릭스로 조합해 본다면 무한에 가까운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그래서 인상주의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불멸(不滅)의 화풍(畫風)’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책에는 뉴욕에서 <지베르니 그룹>으로 전시한 6명 외에 지베르니 화가 네 명 및 제2세대의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 한 명을 포함하여 11명 화가를 선정하였다. 그들이 그린 작품 중에서 주로 지베르니를 그린 풍경화와 정원과 실내에서 그린 여인과 누드작품을 위주로 선정하였다. 총 340개의 작품을 실었으며 그 중에 여성의 누드는 65개 작품이 되고 있다.


저자 프로필

조영규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자과정
  • 경력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전업미술가협회 회원
    안양미술협회 회원
    가톨릭미술가회 회원
    관악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 링크 공식 사이트블로그

2015.01.2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소개]

저자는 서양화가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홍익대 미술디자인 교육원 서양화 실기과정 및 서울대 경영대학 경영자과정 수료, 서양화 개인전 (초.풍전) 10회 및 연합전 190회 개최, 뉴욕 국제인물화 공모전 입상 등, 현재 개인 스튜디오에서 전업화가로 활동 중.

◾ 저서는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전2권)』,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전2권)』, 『모네와 가이 로즈』, 『미국의 인상주의 걸작선 [풍경화, 바다풍경화, 인물화, 초상화 및 누드화> 꽃과 정물화] (전5권)』, 『15c-20c 거장화가 100명, 마음의 우주,어머니』, 『15c-20c 거장화가 100명, 생각의 우주,독서』『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 『미국의 거장화가 존 싱어 서전트』『조영규 화집과 미술도서』, 『대한독립 50인』등 20권 및 논문 5편
◾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콘텐츠 전자책》 3권 선정

◾ 현재 한국미술협회, 한국전업미술가협회, 한국초상회화협회, 가톨릭미술가회 회원, 안양미술협회의 회원, 관악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홈피 www.choyeung.com
블로그 http://blog.daum.net/choyeungart
아트월드 http://blog.daum.net/artworld66

목차

[차례]

표지 1
판권 2
속표지 3
저자 4
차례 5
18c-20c 인상주의 연대표 6
1900년경의 지베르니 지도 7
머리말 8
프롤로그 14
인상주의와 장식적 인상주의 41
클로드 오스카 모네 49
19c 미국의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들 77
01 가이 올랜드 로즈 78
02 리처드 에드워드 밀러 103
03 로턴 사일러스 파커 137
04 프레드릭 칼 프리세크 163
05 에드먼드 윌리엄 그리슨 241
06 칼 앤드슨 263
07 칼 앨버트 뷰어 279
08 알슨 스키너 클라크 311
09 폴린 레너즈 팔머 332
10 루이스 리트먼 354
11 로버트 루이스 레이드 375
참고 문헌 418
아트월드 책방 422
뒤표지 424


리뷰

구매자 별점

0.0

점수비율
  • 5
  • 4
  • 3
  • 2
  • 1

0명이 평가함

리뷰 작성 영역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내가 남긴 별점 0.0

별로예요

그저 그래요

보통이에요

좋아요

최고예요

별점 취소

구매자 표시 기준은 무엇인가요?

'구매자' 표시는 리디에서 유료도서 결제 후 다운로드 하시거나 리디셀렉트 도서를 다운로드하신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무료 도서 (프로모션 등으로 무료로 전환된 도서 포함)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시리즈 도서 내 무료 도서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의 유료 도서를 결제한 뒤 리뷰를 수정하거나 재등록하면 '구매자'로 표시됩니다.
영구 삭제
도서를 영구 삭제해도 ‘구매자’ 표시는 남아있습니다.
결제 취소
‘구매자’ 표시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이 책과 함께 둘러본 책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