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기 자신에게 말해주는 생각’들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몹시 고된 업무에 시달리는 황제로서의 인간적인 고뇌와 사상, 선과 악의 원리를 우주적 섭리로 받아들이는 반면, 인간과 신들의 존재 방식 등을 한 사람의 인격과 학식이 담겨진 진리와 종교적인 깨달음의 경지에서 자기 자신에게 말해주는 생각들을 그리스어로 기록한 일종의 수상록이다. ‘명상록’이라는 제목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으로 오랜 세월동안 지혜의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인생론』
라틴문학 최고의 작가인 키케로가 로마의 실제 인물이었던 대 정치가 '카토'의 입을 빌어 '노년'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펴나가고 있는 책이다. 노년에 관한 흔한 오해 몇가지를 반박하며 오히려 노년만이 즐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유려하게 서술하고 있다.
성실한 구도자,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는 마르쿠스가 자신의 마음을 향해 사념하고, 사색하고, 성찰하고, 느낀 바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것은 마르쿠스라는 모체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태아의 관계와 유사하다. 이 둘 사이에는 탯줄을 통해서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명상록』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마르쿠스라는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음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명상록』은 마음속의 대립을 적은 글이자 자기 분열의 글이며, 모순의 글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립, 분열, 모순을 드러낸다 하여도 만일 마르쿠스의 인품이 이러한 대립, 분열, 모순을 감동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면 『명상록』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가 있었을까·
마르쿠스는 숨이 막힐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의 고백처럼, 약삭빠른 재능과 지혜는 타고나지 않았을지 모르나, 타협하지 않는 철저한 진지함, 인간적 성실함, 근엄함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대립과 모순, 자기분열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고전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대립과 모순은 이른바 생모와 의붓어머니의 분열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황제라는 자리에서의 궁정 생활은 세상의 규칙으로 인한 운명이지만 그에게 안락한 생활은 아니었다. 그곳은 추악한 인간들이 꿈틀대고 온갖 악행이 넘쳐흐르며 권모술수가 날뛰는 세계다. 청렴하고 고지식한 마르쿠스로서는 도저히 태연히 머물 수 없는 곳이어서, 그는 격렬하게 분노하고 고뇌하며 궁정을 혐오하고 멸시한다. 그러나 훗날 이러한 기분을 책망하고 예전처럼 마음의 평온을 되돌리려 한다. 한편으로 황제라는 본분의 자각은 그의 완전주의와 스토아적 근엄함을 몰아세워 로마에서도 전쟁터에서도 그에게 완벽한 황제이도록 노력하게 했다. 사실 궁정 생활은 이 세상의 저속한 면이 응축된 것이다. 궁정 생활에 대한 염증은 넓게 보면 추악한 인간에 대한 거부 반응, 인간 혐오로 통한다.
이러한 인간 세상의 규칙과 방해로부터 그를 달래는 것은 생모인 철학이고, 철학의 거처인 내면의 세계이다. 본디 소란스럽고 혼잡한 궁정생활은 철학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는 그만큼 평온한 전원생활을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동경하는 전원이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말한다. 마음속의 전원에서 그는 철학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생모라고 일컬었던 진실한 철학에서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철학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타고난 것이었다. 아무리 나쁜 상황에 놓여도, 아무리 불충분한 형태라도 거기에서 영혼의 안락함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육체는 궁정에 머물렀지만 영혼은 이 세상을 넘어서 있었다. 이처럼 그는 영혼의 고향에서 떨어져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곳 지상의 타향을 떠도는 유랑자였다. 이것이 그의 대립이고 분열이며, 그리고 그는 이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고자 우직하리만큼 열심히 살아갔던 것이다.
뛰어난 웅변가이자 정치가, 철학자인 키케로
키케로는 가장 구체적, 현실적으로 정치를 철학하고 정치를 철학과 결합하려고 노력한 철학자이다. 키케로가 신처럼 떠받드는 플라톤은 정치가는 아니어서 모국의 정치를 독자적으로 바라보았지만, 키케로는 처음부터 정치가를 지망했고 로마 정치 세계의 최고 지위인 집정관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언제나 원로원의 여론 지도자로서 활동했다. 더구나 그는 동시대 사람인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처럼 철학에 관심 없는 현실주의적 정치가는 아니었다. 또 단순히 견식이 높고 완고하여 로마공화정의 이념을 굳게 지킨 카토와도 달랐다. 인간적 교양의 풍부함에서 키케로는 정치가로서도 철학자로서도 플라톤에 필적하는 그릇이었다.
키케로는 철학과 정치, 두 영역에서 앞으로 더욱 읽히고, 연구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키케로와 정면으로 대면해 키케로를 통해서 새삼 철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물어야만 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치우친 그리스 철학 중심의 고대철학 연구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키케로, 그리고 헬레니즘의 모든 철학은 21세기의 세계화와 혼미를 타개하는 데 믿음직한 아군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철학은 변론과 결부해야 한다는 것, 국가 정치라는 공공 공간에 철학이 적극적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키케로를 통해서 주체적 문제가 되어야만 한다. 정치에 관해서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키케로의 시대에는 없는 지구적 세계, 지구적 국제 관계라는 세계적인 전망 가운데서 재고해야 된다. 또한 국민이 정치적 공간·활동으로서의 공간에 참여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를 키케로에게 몰입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