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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상세페이지

BL 소설 e북 판타지물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소장단권판매가3,800
전권정가11,400
판매가11,400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표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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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4권 (완결)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4권 (완결)
    • 등록일 2017.02.14.
    • 글자수 약 15.8만 자
    • 3,800

  •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3권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3권
    • 등록일 2017.02.14.
    • 글자수 약 13.3만 자
    • 3,800

  •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2권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2권
    • 등록일 2017.02.14.
    • 글자수 약 15.9만 자
    • 3,800

  •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1권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1권
    • 등록일 2017.02.14.
    • 글자수 약 4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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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가이드

「주인 없는 개 클로이」: 특별경찰청 기동단장 '조이'는 샌시족의 순혈 왕 '클로이'를 기동단으로 스카우트한다. 능력 좋은 단장님과의 밀당 로맨스!
「흡혈귀의 왕-포식자의 만찬」: 흡혈귀 '하티'는 인류 멸망의 위기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주인 없는 개 클로이> 이후의 이야기

*연작이란? 스토리상 연관성이 있는 로맨스 소설 시리즈. 각 작품이 독립적이지만, 시리즈를 모두 모아 보시면 스토리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작품 소개

<흡혈귀의 왕 : 포식자의 만찬> <키워드>
판타지물, SF/미래물, 사건물, 고어요소 있음, 서브공 있음, 다정공, 강공, 연하공, 대형견공, 호구공, 헌신공, 스토커공, 재벌공, 인외존재, 퇴폐미수, 유혹수, 우월수

좀비 세상이 온다는데 큰일 났다!
잡아먹을 사람들이 죄다 없어져 버리면 어쩌죠?

아주 먼 옛날,
그저 인간을 포식하는 것밖에 모르는 흡혈귀가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살의 밤을 일으키는 악마,
달을 쫓아 달리는 늑대,
마왕 하티라 불리며 아주 오랫동안 마음껏 먹어 치웠습니다.
그렇게 그는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은 괴물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좀비화시키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 멸망의 위기가 닥쳐오자
고대부터 살아온 대식가 흡혈귀 하티는
식량 공급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아들 카스파르와 함께 전 세계를 누빈다.

우여곡절을 겪고 틈틈이 식사(?)도 하는 동안
어느새 하티는 카스파르의 헌신적인 애정에 길들여진다.

“아버지, 충분히 드셨습니까?”
“이젠 배 안 고프다. 예까진 무슨 일이냐?”
“외출이 길어지셔서 아버지 마중 나왔지요.”
덩치 큰 남자는 생글거리며 맨발 사내를 안아 들었다.
“그럼 해가 뜨기 전에 돌아가실까요?”

한편, 적의 본거지를 찾아낸 후
흡혈귀를 비롯한 신비의 종족들과 특별경찰청 기동단까지 총 투입된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최종 작전이 펼쳐지는데...?!

끝없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네가 없는 것은 어떤 의미도 없어.
네가 있는 것이 유의미한 거지.’

<주인 없는 개 클로이> 그 후, 미친 세상 속을 휘젓고 다니는
몇천 년 묵은 미모의 흡혈귀 하티와 카스파르의 로드무비형 판타스틱 액션 SF!

하티와 카스파르의 데이트도 외전으로 첫 공개!


출판사 서평

〈본문 발췌〉
로드 하티

동틀 새벽 무렵, 아침 맞이 준비로 집안은 분주해진다. 밤낮이 뒤바뀐 인간이 있듯이 흡혈귀들에게도 아침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시간이 아니었다.
특별 제작한 SPF190짜리 선크림을 전신에 꼼꼼히 잘 펴 바르고, 그 위에 햇빛을 차단하는 방어구들을 차분히 장착했다. 살결이라고는 드러나지 않도록 껴입는 것이 관건이다. 긴팔, 긴바지 정장에 발목을 덮는 목이 긴 양말, 구두, 손에는 장갑, 목에는 머플러, 머리와 얼굴엔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장착.
거울을 보니 이런 수상쩍은 놈이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아무렴 어때? 현시대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훌륭한 시대다. 피부라곤 조금도 드러내지 않은 그는 태평스레 중얼거렸다.
“태닝은 역시 아침 태닝이지.”
테라스에 나가자 새벽녘의 어스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막 여행을 했을 때 쓰던 캐노피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테라스에 설치해 뒀다. 하늘하늘 휘날리는 천 자락 사이로 들어가서 느긋하게 선베드에 몸을 뉘었다. 이제 10분 후면 태양이 떠오른다.
그 광경은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일출 감상은 꼭 심장이 뛴다는 착각이 들 만큼 스릴 넘치는 유희였다.

“아!”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거대한 불덩어리, 생명의 근원, 파괴의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이 물러가고 세상의 온갖 암흑에 속해 있는 것들은 지저 깊은 곳으로 꼭꼭 몸을 숨겼다.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힘도 태양 빛 아래에선 완전히 고사하여 진득한 탈력감이 몰려들면서 몸이 축 늘어졌다. 절로 몸이 떨려 왔다. 최근 그를 이토록 전율하게 하는 것은 겨우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역시 저것만은 두렵다. 근원적인 공포와 마주하는 감각이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자학적인 동시에 어쩐지 눈물이 나고 있다고 착각이 들 만큼 감동적이었다.
언젠가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 이런 보호 장비 안에 숨지 않고― 맨몸, 맨눈으로 저 태양을 마주할 수 있다면― 바로 불길에 활활 불타올라 버리겠지만, 그마저도 영광스럽겠지.
그는 탄식하고야 말았다.
“이 세상은 완벽해!”
먹이가 되는 인류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번식하고, 또 자신 같은 괴물마저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문명을 발달시켰다. 무수한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그를 둘러싼 세계는 종말을 모르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레코드판이 돌아간다. 스피커로 라벨의 볼레로가 흘러나와 이윽고 절정을 맞이했다.
아주 완벽한 아침이었다.

***

눈을 뜨자 낯익은 얼굴 몇몇이 보였다.
“아버지!”
“징그럽게 아버지 타령은!”
그는 넌더리를 내며 관에서 몸을 일으켰다. 관을 보는 종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꺼림칙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제 손으로 관 뚜껑을 여닫는 게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은 눈치였다.
이상하기도 하지. 자신의 관은 고전적인 취향의 침실이다. 아주 아늑해서 때때로는 10년이고 100년이고 쭉 관에서 나오지 않고 내리 자고 싶어질 때도 있다. 실제로 괘씸한 종속들이 그를 관에 넣고 땅에 묻어 버린 적도 있었다. 덕분에 도로 파내 꺼내 줄 때까지 몇십 년을 땅속에 갇혀 있었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는 침실인데도 버릴 수 없다니, 이 아늑함이 얼마나 위대한지 놈들도 좀 알아야 할 텐데.
“지난밤 또 사냥 나가셨더군요?”
이놈의 잔소리쟁이는 끝도 없이 떠든다.
“먹이라면 얼마든지 가져다줄 테니 제발 사냥 다니지 마시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내 입에 풀칠은 스스로 하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니?”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뒤처리가 얼마나 복잡한지 아세요? 게다가 이웃 혈족들의 눈치는 또 어떻고요?”
“딴 놈들 불평 따위를 내가 왜 신경 써?”
“아버지!”
“시끄럽다. 귀 아직 멀쩡해.”
그는 고풍스러운 방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에 난 커다란 창으로 별빛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호흡에 의미는 없지만 밤의 냄새를 맡을 수는 있었다. 그 음습하고 안락한 향기에 온몸에서 혈기가 빠듯하게 휘돌아 몰아친다. 이빨이 근지러웠다. 먹고 자고 약탈하고, 이 이상의 삶이 또 어딨다고 그걸 방해하는지.
유희 중 최고는 피를 마시는 것. 생명을 갈취하고 죽은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섭식 행위다. 그것만은 역시 수억 번을 반복해도 질리지 않았다. 그 환희와 희열과 목숨의 구차함과 세계의 틈새에서 억지로 발붙이며 연명하는 괴리감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있을까?
잔소리꾼이 따라붙었다.
“어디 가세요?”
“어딜 가건?”
“식사부터 하시죠.”
잔소리꾼은 그가 또 밖에 나가 사고 칠까 두려운지 우선 그에게 먹이부터 먹이려 들었다.
“아직 떠먹여 줘야 할 정도로 늙진 않았다.”
“어린 소녀입니다. 마음에 드실걸요. 약에 취하지도 않았고요.”
그는 솔깃한 제의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왕성한 흡혈귀였다. 갓 흡혈귀가 된 놈들도 자신처럼 허기지진 않을 것이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대식가 식성은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사냥 행위 그 자체를 즐겼다.
물론 오래 살아온 만큼― 이를테면 땅속에 갇혔을 때처럼 몇십 년을 섭식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기분이 좀 좋지 않아질 뿐, 아니, 심각하게 나빠질 뿐― 딱히 육신을 움직이는 데 무리가 간다거나 하는 허약한 체질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굳이 이 허기를 달래며 포식자의 본능을 참아야 한단 말인가? 살아가는 한 그게 가장 큰 쾌락인데.
요즘 것들이야말로 노인네 근성으로 가득하다. 세금 징수원들처럼 규칙을 적용하고 계산하고 따지기를 좋아한다. 노예처럼 일하고 봉급 타듯 피를 마신다. 수도사도 아닌데 쾌락을 등한시한다. 그러면서 고상한 체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대체 이놈들의 정체성은 뭐란 말인가?
세상이 바뀌면서 흡혈귀의 본질마저 변했는지, 당연한 행위를 당연하게 하는 자신이 지금은 이단자 취급을 당했다. 아니, 이치에서 벗어나 죽음에서 부활하였으니 사실 자신은 늘 이단자였다. 다만 다른 흡혈귀들이 아닌 척하는 껍데기를 덮어썼을 뿐이다. 음흉하고 약삭빠른 괴물들! 그는 싫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인상을 썼다.
“잔소리꾼들 같으니.”
“아버지! 식사는요?”
“너나 많이 먹으렴.”
그리고 그는 말릴 새도 없이 창틀에 뛰어올라 그대로 뛰어내렸다. 밤바람 속에 얼굴을 파묻고 구름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펄럭펄럭 나부끼는 옷을 날개처럼 퍼덕이며 저택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맨발에 흙더미가 부스러지고 바닥에는 발 모양을 본뜬 발자국이 찍혔다. 몇 걸음 걷지 않아 그의 마음은 잔뜩 들뜨고 금세 행복으로 차올랐다. 밤은 자신만의 시간이다. 오늘 밤도 그는 내키는 대로 먹어 치울 작정이었다.

***

자정이 되자 로드 하티가 도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주시하는 눈들은 기척을 죽이고 그의 뒤를 따랐다. 하티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 아주 성가신 흡혈귀였으며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괴물이기도 했다. 당연히 자신을 지켜보는 눈들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태도로 무신경하게 걸음을 옮겼다.
영주 하티가 롱아일랜드에 자리 잡은 이후, 매일 밤 그는 맨발로 뉴욕의 뒷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모른다. 소문만이 무성했다.
혈족의 이름과 그의 이름이 그러하듯 하티(히타이트) 출신의 목동이란 말도 있었고 바빌론의 신관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 그의 이름이 신화 속 인간을 포식하는 늑대 하티에게서 따왔다 여겨 게르만족의 전사가 부활한 것이라 믿기도 했다.
그러나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가장 오래된 성의 영주 루파(LUPA)조차도 그녀가 태어난 로마에서 하티를 목도한 적이 여러 번 있었노라 증언한 바가 있다. 그 시절에도 그는 하룻밤에 마을 하나를 통째로 잡아먹을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흡혈귀였다고 했다. 전승되는 흡혈귀의 문헌을 찾아보면 그의 흔적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뿌리는 악마의 이야기들. 유럽 전역에 걸친 대학살의 기록이었다.
즉, 하티는 루파(LUPA)만큼 오래 살았거나 그보다 더 오래된 자였다. 어쩌면 일부 그를 숭상하는 이들이 말하듯, 정말로 모든 흡혈귀의 근원이자 시조일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아무리 거슬려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사냥하지 말아 달라 가신들을 통해 요청할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그에게 제재를 가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감시만 할 뿐이었다.

그는 사실 오래된 괴물이긴 해도 혈족을 이끄는 영주는 아니었다. 애당초 그에게는 혈족을 이끌 성의나 의지가 없었다. 오히려 성격만 놓고 본다면 귀족으로서의 소양이나 기품, 우아함은커녕 쓰레기라 단언해도 좋을 정도였다. 아마도 왕성한 식성으로 인해 내키는 대로 포식하다 보니 가끔 우연의 산물로 그에게 종속된 흡혈귀들이 새로 탄생하는 것을 그 자신도 막을 수 없었던 것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수의 종속들이 그를 떠받들어 모실 뿐, 그에게 로드라는 호칭은 아까웠다. 어쨌든 오늘도 그는 이끄는 이 하나 없이 혼자서 밤거리를 배회했다. 집 근처를 산책이라도 하는 듯한 가벼운 분위기였다.

얼마나 오래전이었던가?
원래 영주 하티는 대국(大國)의 국민 전체를 먹어 치운 것만큼이나 많은 인간을 잡아먹었던지라― 아주 으스스한 기운을 풍겼다고 한다. 숨결에서조차 피 냄새가 스며 나왔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눈빛에선 도축자의 살기가 번뜩였다. 오죽하면 밤거리에서 그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을까?
그랬던 살기가 그 99년의 유폐 이후 싹 사라졌다. 땅속에서 발굴한 그의 관은 썩어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로드 하티는 아주 유순한 사람처럼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늘 그의 몸을 감싸고 떠돌던 피 냄새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날아가던 참새가 손가락 끝에 내려앉을 수도 있을 만큼 변했다. 어처구니없는 대변화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본질까지 변한 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었고, 동족들로 하여금 그를 땅에 파묻게 했던 그의 식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티 영주입니다. 오늘도 부랑자 같은 꼬락서니를 하고 배회하고 있습니다.”
“놓치지 말고 주시하세요.”
영주 하티는 워낙 눈에 띄는 편이라 어지간히 허튼짓을 하지 않는 한 감시자들이 그를 시선에서 놓치기도 힘들었다.

대체로 고대부터 존재해 온 흡혈귀는 키가 작았다. 그러나 그는 작지 않았다. 고대 게르만족의 평균키가 175cm를 넘었다던데 그가 게르만족이라면 평균을 조금 웃도는 선이고, 로마인(평균 160cm 초반)이라면 특출하게 큰 편이었다.
덩치는 크지 않았다. 뼈대가 가늘고 팔다리는 길쭉하게 뻗어 있었다. 몸이라곤 쓰지 않는 학자나 신관처럼도 보였다. 겉으로 봐선 무해할뿐더러 우아하고 고상하기만 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는 태생부터 난폭한 괴물이었다. 그 무자비한 성정은 로마의 검투사나 게르만 전사로 추측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아무도 그의 기원을 몰랐지만.
출신을 짐작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외모 탓이었다. 특정 종의 특징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너풀거리는 머리카락은 눈 덮인 설산의 북극 늑대처럼 하얗게 세었고, 눈동자는 색이 흐렸다. 옅은 갈색으로도 보이고 밝은 카키색으로도 보인다. 어떨 때는 맑은 에메랄드 바다색으로 반짝이기도 했지만 대개는 흐릿한 초록색으로 보였다. 언뜻 봐서는 백색증을 앓는 이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큰 키에 백인 특유의 하얀 피부는 페르시아 제국이 건설되기 전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지배하던 메디아인의 특징 같기도 했고, 유럽계 게르만족 같기도 했다. 백색증이 아니라면 하얀색의 결 좋은 머리는 슬라브족의 특징일 수도 있었다.
얼굴은 갸름하고 날카로웠다. 처진 눈이 아니었다면 굉장히 매서운 인상이 되었을 것이다. 대신 슬쩍 처진 눈꼬리 덕분에 나른한 인상을 풍겼다. 지켜본 결과 그 느긋한 눈매에 긴장감이 돌 때는 오직 먹이를 잡아먹을 때뿐이었다. 콧대는 로마인처럼 높았다.
고대인 특유의 이목구비의 굴곡은 종을 초월하여 신비롭도록 우아하기만 했다.
그 귀족적인 외모로 나른한 눈빛을 보내올 때면 누구든지 간에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것처럼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후드를 덮어쓴 그의 눈동자가 고양잇과 짐승의 눈처럼 어둠 속에서도 번뜩였다.
말하자면 그는 달을 쫓는 늑대라는 이름이 더없이 잘 어울리게끔, 신비 그 자체를 두르고 있었다. 지금처럼 어둠 속에서 맨발로 도시를 거니는 모습조차 욕망을 분탕질했다.
21세기에 살아 움직이는 고대인이라니. 루파(LUPA)를 볼 때 느끼는 신비로움과 경탄은 그에게서도 비껴가지 않았다. 다만 그가 살아온 세월답게 조금만 더 지혜롭거나 절제할 줄 아는 괴물이었다면 그의 위상도 지금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쉽게 말해 얼굴이 아까운 성질머리란 거다. 겉과 안의 차이가 매력적인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솔직히 하티 수준에 이르게 되면 민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하얀 흡혈귀의 걸음이 불빛으로 환한 밤거리에서 멈췄다. 밤이면 문을 닫는 가게들 대신 오히려 점등하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브루클린의 어떤 거리였다. 적당한 곳에 멈춘 그는 느긋하게 벽에 몸을 기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고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그를 불렀다.
“어이, 거기.”
그 목소리에 따라 하티는 벽에서 몸을 일으켜 차도 쪽으로 몇 걸음 다가와 섰다.

문제는 유폐 이후 그의 얼굴에서 유순한 인상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처진 눈꼬리로 눈웃음을 치며 생글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식욕이 당긴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는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제법 어린 나이에 맞이한 덕분에 겉보기엔 풋내 날 정도로 아주 파릇파릇한 젊은이였다. 물론 그 속 모를 눈빛을 제대로 마주하고 나면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게 되겠지만.
어쨌거나 그는 인간이 느끼기에 그다지 위협적인 외관은 아니었다. 무표정하게 짐승 같은 눈을 번뜩이지만 않으면 말이다.
그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확인한 차 안의 남자가 만족스러운 얼굴이 된다. 일견 황홀경에 빠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남자를 향해 하티는 도톰한 붉을 입술을 달싹이며 닳고 닳은 남창처럼 웃음을 흘렸다. 그는 나긋한 어조로 가격을 말했다.
“오랄은 30$, 뒤로는 50$.”
“좋아, 타.”
그는 고양이처럼 느긋한 태도로 조수석 문을 열고는 냉큼 올라탔다. 그러자 그대로 하티를 태운 차량은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자들도 바쁘게 뒤따랐다. 물론 남자는 만족스러운 밤을 보내기보다 온몸의 피를 빨리고 날이 밝기 전에 아무 거리에나 버려질 것이다.
“정말 악취미야.”
영주라는 자가 음탕하게 남자를 유혹해서 먹어 치우니, 혈족의 체면이 남아날 리 없다. 뒤따르는 자 중 하티의 혈족이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고대 흡혈귀의 종속인 덕분에 그들 역시 보통의 흡혈귀보다는 훨씬 강했고, 또 주인과는 다르게 빈틈없이 지혜롭다는 점이었다.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그들이 제 주인 챙기기에 바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다른 혈족으로서도 참 보기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인적이 드문 주차장, 어둠 속에서 흰색 머리카락이 짐승의 갈기처럼 흔들렸다. 덩달아 자동차도 거칠게 흔들렸다.
남자는 눈만 크게 치뜬 채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고 있었다. 열린 목구멍에서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제 귀로 들려왔다. 피가 끓어올라 눈앞이 흐려졌다.
삶이 그의 곁에서 멀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죽음이 그의 목 뒤에서 서늘한 손길을 뻗어오고 있었다. 죽음의 느낌은 섬뜩하도록 차가웠다.
이윽고 축 늘어지는 남자의 상체를 부둥켜 잡으며 하티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온통 붉게 피 칠갑 되어 있었다. 그는 혀로 입가를 핥으며 숨을 골랐다. 사신이 남자의 목을 베어 가는 모습을 나른하게 처진 눈매로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조수석으로 건너가 편하게 앉았다. 손끝에 온기가 돌았다. 한동안은 인간의 체온과 비슷할 정도로 몸이 데워져 있을 것이다. 한바탕 오르가즘을 느끼고 난 것처럼 기분 좋은 탈력감에 가르랑거렸다.
그는 누가 이런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순찰 중이던 경찰의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다시 포식을 즐길 수 있을 텐데.
“귀찮은 놈들.”
그러나 그런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들은 뜨거운 피로 가득 찬 인간이 아니라 마셨다가는 가닥가닥 혈관이 끊어져 고통스럽게만 할 흡혈귀들이었다. 먹지도 못하고 방해만 되는, 쓸모라곤 없는 족속들이었다. 세상에서 흡혈귀는 자기 혼자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영주 하티는 차 문을 열고 나와 어둠 속을 응시했다. 낯익은 녀석들도 있었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얼굴들도 있었다. 그는 잠깐 그들을 보다가 발끝에 힘을 줘서 날아올랐다. 건물의 외벽을 잡고 땅 위를 달리듯 위로 뛰어 올라갔다. 건물 그림자에 몸을 묻자 어둠은 온전히 그의 모습을 숨겨 주었다. 그런 방식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검은 표범처럼 달려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순식간에 경치가 뒤바뀌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로수를 통해 보도로 뛰어내렸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그가 갑자기 툭 뛰어내리자 지나가던 피자 배달부가 깜짝 놀라 오토바이를 휘청거렸다. 그래도 하티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시간을 확인하고는 느긋하게 지하철역으로 들어섰다. 밤은 아직 길었다.

괴물이 되어 잔뜩 겁줘 물어 죽이거나, 추수하는 농부처럼 부지런히 목을 따거나 그도 아니면 흔히 그 옛날 능력 없는 흡혈귀들이 사냥감을 고를 때 그러했던 것처럼 몸을 파는 약자 행세를 해 유혹하거나. 뭐 요즘은 대체로 인간 장사를 하는 놈들에게 공급받아 식사를 한다지만, 하티의 취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 죽기 싫어하는 날것의 생명을 약탈하는 쪽이었다. 그 방법은 스스로 수고를 들이기만 한다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위협하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길을 걷는 하티를 불러 세웠다. 그가 못 들은 체하며 그러나 충분히 따라잡힐 정도로 느리게 걷자니 누군가가 난폭하게 그의 어깨를 잡아챘다.
“어이, 이 남창 새끼가! 누구 허락 받고 여기서 장사야?”
하티는 성난 얼굴로 돌려세우는 사람들을 보며 “아파요.” 하고 몸을 움츠렸다. 남자 중 한 명이 그런 하티의 얼굴을 손으로 잡아채더니 배려 없는 손길로 이리저리 돌리며 뜯어봤다. 그러더니 하티가 쓰고 있는 후드를 벗겼다. 양털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한가득 쏟아져 내렸다. 남자들은 후드 청년의 예상 밖의 외모에 놀란 것 같았다.
하티는 겁먹은 눈으로 그들을 올려다보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쥔 남자의 손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애원하듯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저, 이것 좀…….”
“이것 봐라!”
감탄이 스며든 목소리가 핥듯이 하티의 목을 훑었다. 얼굴을 놓아준 남자가 짐짓 위협하듯 으르렁거렸다.
“누구 허락받고 여기서 호모질이야?”
“죄송, 잘못했어요, 여긴 다신 안 올 테니까.”
윽박지르는 소리에 하티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그 애처로운 얼굴을 보며 남자가 비열하게 웃었다.
“누가 오지 말랬나? 규칙이 있으니까 따르라는 거지.”
그를 훑어보던 다른 남자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 발은 또 왜 그 모양이야?”
“신발을 잃어버려서.”
하티가 얼굴을 붉히며 발을 꼼지락거리자 남자 중 하나가 혀를 찼다. 그러더니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하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여기서 장사를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돼. 그보다 너라면 좀 더 돈이 될 만한 게 있는데, 어때?”
“네?”
남자는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돈을 그렸다.
“돈 필요한 거 아냐?”
하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 파는 것보다 훨씬 돈이 된다고. 한두 시간이면 몇백 불은 그냥 벌걸? 평소 하던 거 카메라 돌아가는 데서 하기만 하면 돼. 어때, 소개해 줄까?”
아아― 멍한 표정의 하티는 조금 망설인 후 백치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하티를 앞으로 밀치듯이 끌고 들어온 남자는 으슥한 어느 뒷문 앞 쓰레기통에 앉았다. 그리고 바지 지퍼를 내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자, 빨아 봐.”
남자는 주춤주춤 다가오는 하티를 핥듯이 바라보았다. 특히 도톰한 붉은 입술에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그가 물었다.
“제법 빨아 봤나? 혀는 좀 쓸 줄 알고?”
부끄러운 듯 시선을 떨군 하티가 “조금요.”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나 받고 빨아 주지?”
“……30불.”
“그래? 이번엔 공짜로 빨아야겠어. 이건 테스트니까.”
“네.”
“대신 잘 빨면 더 좋은 데 소개해 주지. 열심히 해 봐.”
남자는 이 예쁘고 고상한 얼굴에 좆을 박아 댈 생각을 하자 잔뜩 달아올랐다. 하티가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저, 부탁드려요.”
그러더니 남자를 올려다보며 나른하게 처진 눈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에 남자는 감탄사 같은 욕을 내뱉으며 하티의 뺨을 쓰다듬었다.
“저 다리 만지는 거 좋아해서요.”
“그래서?”
“엉덩이 좀 들어 주실래요?”
“뭐?”
갑자기 사람이 돌변한 듯 겁먹은 태도를 버린 하티가 눈웃음을 치자 남자는 홀린 듯이 그가 시키는 대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하티는 망설이지도 않고 남자의 바지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남자의 허벅지 안쪽을 쓸며 더 다가와 앉았다. 몽롱하게 풀린 남자의 눈이 황홀한 듯 하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하티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살결을 스치고 쓰다듬으며 예민한 허벅다리 안쪽 피부를 어루만졌다. 사내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쾌감에 부르르 떨어 보이고는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하아― 갈보 년이.”
아직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흥분으로 성기가 바싹 일어섰다. 하티는 웃으며 남자의 허벅지 안쪽에 얼굴을 기댔다. 보드라운 살결이 허벅지 안쪽 살에 와 닿고 머리카락이 다리를 간질였다. 남자의 숨결이 부쩍 거칠어졌다.
“한 번 싸고 나면 정말 소개해 주는 거죠?”
하티가 말할 때마다 허벅지 안쪽이 저려 왔다. 따뜻한 입김이 애무하듯 솜털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래― 돈방석에 앉게 해 줄 테니까, 이년아, 씨발, 빨리!”
“고마워요.”
쪽, 하고 허벅지 안쪽에 키스하는 조그마한 머리통이 사람을 미치게 했다. 결국 참지 못한 사내가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틀어잡아 성난 자지에 들이밀려는데 뭔가 허벅지 안쪽이 뜨끔했다.
“……어?”
예쁜 얼굴 아래로 시뻘건 살점이 보였다. 소년이 입을 우물거리며 퉤, 하고 뱉어 내는 것은 자신의 허벅지 안쪽 살인 것 같았다. 새빨간 혀로 입술을 축이고 가냘픈 숨을 내뱉은 하티는 뜯겨 나간 허벅지 안쪽에 얼굴을 묻었다. 끊어진 대동맥에 입을 처박고 실컷 빨아 당겼다. 흔든 후 바로 딴 탄산처럼 뜨거운 피 분수가 한가득 그를 적셨다. 혀로 여린 살결을 헤집으며 어미젖을 빠는 아기처럼 빨아 댔다.
남자는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퍼덕였지만, 순식간에 체내의 수분이 빨려 나가 큰소리 한번 못 내 보고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양껏 들이마신 하티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파리한 안색으로 고개를 젖히고 말이 없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나른한 눈가에 촉촉하게 젖은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하아― 차암― 열심히 빨아 줬는데 정신을 놓을 만큼 좋았던 건가?”
물론 남자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큭큭 웃은 그는 아직도 흘러내리는 피에 입술을 비비며 혀로 핥아 댔다. 남자의 피는 아직도 따뜻했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죽어 버리고― 싸늘하게 식을 것이었다. 하티는 배시시 웃으며 늘어진 남자에게 말했다.
“하는 수 없지, 그럼 소개는 다른 남자한테 받도록 할게.”
그 말처럼― 골목 안쪽으로 들어간 일행이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일행인 다른 남자가 제 발로 개미굴로 기어 들어왔다. 그가 골목 입구에서 안쪽을 보며 소리쳤다.
“어이! 아직이야?”
대답은 당연하게도 돌아오지 못했다.
“미친놈. 아주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혀를 찬 그는 어두컴컴한 통로로 걸어 들어왔다.
“작작 좀 하고 빨리 싸. ……어이?”
바로 뒤까지 다가온 남자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손을 뻗어 하티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헉! 씨발! 이게 뭐야!?”
시선이 마주친 하티의 눈동자가 잔인한 쾌락으로 빛났다. 그 즉시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남겨 놓고 공중으로 붕 떴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팽개쳐져 내장이 진탕 되어 찌그러졌다. 코끼리에게 밟힌 꼴로 쿨럭, 쿨럭 조각난 내장을 입으로 토하며 남자는 꿈틀거렸다.
하티는 그런 남자의 등에 올라타 앉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듯 그의 한 팔을 들어 쓰다듬었다. 하아― 하아― 하티의 초점이 흐려지고 뜨거운 숨결이 대기 중에 흩어졌다. 그는 남자의 옷을 찢어발겨 맨살이 드러나게 하여, 아주 연한 안쪽 팔뚝 살을 혀로 핥았다.
“금방 아프지 않게 되니까― 조금만 참아요.”
그리고 살기등등하게 길어진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북,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입 안 가득 따뜻한 피가 흘러들어 왔다. 하티는 허리를 뒤틀며 쾌락으로 몸을 떨었다. 찬란했던 생명의 파편이 산산이 흩어지며 해변의 모래알처럼 반짝거렸다. 언젠가 보았던 한여름의 백사장이 떠올랐다. 태양 빛이 쏟아져 내리고 파도는 끊임없이 몰아치고 건강한 아이들은 나체로 헤엄을 치던 그 풍경. 빛처럼 반짝이고 순식간에 사라져 갈 가장 싱그러운 때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영화로밖에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했다. 생의 환희란 그토록 찰나와 같았추가다. 그것을 빨아들이며 그는 허기를 달래고 꿈을 꾸고 행복을 맛보았다. 그리고 다시 얼음처럼 차가운 어둠이 찾아왔다.

목숨이 끊어진 시체의 팔을 놓아 버린 하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통 앞이 붉게 물들고 젖어 있었다. 정액을 흘리며 성기를 내놓은 남자 역시 어느샌가 심장이 멎어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시체장사꾼들이 나타났다. 그들 사이에는 역시나 덩치 큰 사내, 그의 가장 가까운 종도 있었다. 그가 엉망이 되어 있는 하티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버지.”
실질적으로 하티의 혈족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는 하티의 세 번째 자식 카스파르였다.
세 번째 자식이라고는 해도 무리를 이끌었던 자 중 세 번째라는 것뿐이지 실제로 하티의 몇 번째 종인지는 모른다. 덧붙이자면 첫째와 둘째는 살해되었다. 불멸자라 하더라도 심장이 파괴되면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그들은 영주 하티의 손에 심장이 꿰뚫려 아침 해 아래로 추방당해 불태워졌다고 한다.
대체로 예속된 흡혈귀는 자신의 창조주에게 지고한 복종을 바친다. 그렇긴 해도 하티의 자식들에게는 그 복종의 의미가 좀 남달랐다. 하티는 자신들에게 무관심한 창조주였다. 그는 피를 주는 인간과는 달리 도움이 안 되는 동족을 업신여겼다. 무관심을 넘어 성가시게 여겼다. 그런 무차별적인 박해는 자신의 종이라고 해서 딱히 피해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대체로는 없느니 못한 해충 취급이었다.
그런데도 하티의 종들은 그를 사랑했다. 신성하게 떠받들고 끔찍이 보살펴야 할 대상처럼 유난을 떨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록스타를 쫓아다니는 그루피 수준이었다. 민폐 그 자체인 아버지를 진심으로 경애했다. 다른 혈족이 보기에는 ‘대체 왜 저러고 사나?’ 싶을 정도로 처절한 짝사랑이었다.
카스파르는 그런 팬덤의 정점에 선 흡혈귀, 말하자면 팬클럽 회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를 향한 그의 애정은 이미 도를 넘었으며,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치를 거슬러 광기로 치달은 지 오래였다. 파더 콤플렉스 따위로 얕보면 곤란하다. 아버지가 원한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갈라 내장도 꺼내 씹어 먹을 수 있었다.
그렇긴 해도 카스파르 역시 혈족의 지도자. 사랑하는 아버지가 마음껏 식성대로 허기를 채울 수 있도록 돕고 싶었지만, 다른 혈족이 요구하는 바에 대해서도 익히 공감하고 있었다.
하티의 존재는 인간과 흡혈귀 모두를 붕괴시킬 만한 요소였다. 그는 흡혈귀 역사상 한 손에 꼽히는 대식가였다. 나머지 대식가들이 모조리 영원의 종말을 맞이했으니 결국 그는 마지막 남은 대식가인 셈이었다. 확실히 그의 식사량은 사회의 존속 자체를 위협했다.
그가 먹어 치우는 양이 하루에 최저로 잡아 두 명이면 한 달에 60명, 일 년이면 730명이 넘는다. 10년이면 7,300명이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 무슨 전쟁 지역도 아니고 혈족의 생활 터전은 뉴욕이었다. 게다가 바이오리듬이 폭주하는 날에는 하룻밤 새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먹어 치우는 아버지이지 않은가?
애초에 현대에 이르러서 다른 흡혈귀들은 식사를 한다고 해서 무는 족족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 한 번 인간을 사면 잘 먹이고 살찌워 언제까지고 피를 빨아먹는다. 효율성의 재고. 인간에게나 흡혈귀에게나 인기 최고의 경제관념이다. 결국 지금 시대에 그처럼 무식하게 살인하는 괴물은 멸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일각에서는 하티 영주를 다시 땅에 파묻어 버리라고까지 했다. 그도 아니면 내전 지역으로 이사하든가. 덕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으로 팬클럽 회장 카스파르는 똑똑하고 유능하며 사려 깊고 상냥한 한편 어딘가 좀 비뚤어진 흡혈귀로 자라 버렸다.
어쨌거나 하티의 세 번째 자식 카스파르는 행복한 가족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오늘도 아버지를 마중 나왔다. 이 정도 성의도 보여 주지 않으면 당장에 다른 이웃의 혈족들이 온갖 불평불만을 싣고 물어뜯으러 달려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권속들의 요청을 듣자마자 날아왔더니 바로 보이는 게 또 성대하게 한바탕한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만찬 매너는 어느 하나 얌전한 구석이 없었다. 먹으면서 온통 얼굴에 묻히고 몸에 흘리는 건 기본이고 음식들까지 엉망으로 짓이겨 놓고는 했다. 어떤 때 보면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다는 단지 죽이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포악했다.
인간을 먹는 것은 흡혈귀만이 아니었다. 같은 인간도 인간을 필요로 했다. 보통 하티가 먹고 남긴 고기는 인간 업자들에게 되파는 경우가 많았다. 쓸 만한 장기는 모두 재활용되는 것이었다. 성기를 내놓고 죽은 인간은 그나마 제법 팔리겠지만, 다른 한쪽은 건질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카스타르는 한숨을 내쉬며 하티에게 다가가서 그를 안아 들었다. 실컷 먹고 기분 좋아진 아버지는 이럴 때만 얌전했다. 보드라운 발바닥에 상처가 생기진 않았을까 그는 아버지의 발바닥을 혈족의 다른 아이에게 닦게 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시는 게 어때요?”
벌써 세 명이나 먹어 치웠잖아요? 영주 하티는 작게 하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스타르는 그런 하티의 얼굴에 묻은 피를 핥았다. 아버지는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금세 포기한 건지, 기분 좋아서 이 정도의 귀찮음은 허락해 주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축 늘어졌다. 그런 아버지가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 모르는 카스타르는 어미 개처럼 싹싹,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핥았다. 그리고 커다란 담요로 아버지를 덮어 가렸다.
“처리해.”
혈족들이 현장 정리를 시작했다. 그는 거리에 대기하고 있는 차에 하티를 태웠다. 이윽고 이런 거리에 통 어울리지 않는 근사한 롤스로이스 한 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리를 떠나갔다.

배가 부른 하티는 너그러워진다. 그는 포만감과 행복이 직결되는 남자였다. 카스파르는 평소처럼 일출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아버지의 옆에서 찬찬히 거들었다. 밤에는 부랑자처럼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면서 꼭 잠들기 직전만은 신사처럼 차려입는다. 이해하기 힘든 취미다. 어차피 해가 뜨고 감상 중인 한 곡이 끝나면 곧장 잠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마도 나름대로 태양을 향한 경외심을 바치는 것이리라.
하티의 세 번째 자식은 공손히 그의 벗은 옷가지를 받아 들며 말했다.
“사냥하고 싶으신 거라면, 사 온 인간들을 저택에 풀어놓겠습니다.”
“일 없다.”
“그럼 적어도 품위고 체통이고 없이 맨발로 부랑자처럼 거리를 거닐진 말아 주세요. 지금 이 모습으로도 좋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몸에 딱 맞는 양장을 차려입은 하티는 귀족 가의 아름다운 막내 도련님처럼 우아하고 품위 넘쳤다. 한껏 배를 채워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두 뺨과 도톰한 붉은 입술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적어도 이 모습이라면 다른 혈족이 비아냥거리듯 헐뜯거나 무시하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그의 아버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괴물이자 신비였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겉모습을 갖추기만 해도 밤의 일족들은 그 본질을 금세 기억해 낼 것이었다.
하티는 그런 생각을 하는 카스파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코웃음을 쳤다.
“내게 득 될 것 하나 없는 족속들인데 왜 내가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하지?”
카스파르는 손가락으로 두 눈꺼풀 위를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았다. 말썽쟁이 아버지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것만 같았다.
“너무 많이 드시잖아요? 세상이 바뀌었어요, 아버지. 인간들은 더 무자비해졌고요.”
“모처럼 맞는 소릴 하는구나. 그래, 내가 아무리 많이 먹어 치워도 인간이 스스로를 죽이는 수만큼은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구나.”
“다들 아버지처럼 되는 대로 먹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에 하티는 잔인하게 입매를 뒤틀며 웃었다.
“그럼 그놈들부터 죽여야지.”
먹이 경쟁 따위는 질색이다. 그는 영역 싸움이랍시고 피를 빠는 괴물들을 수두룩하게 죽여 왔다. 이제 와서 그런 청소를 새삼스레 꺼릴 리 없었다.
카스파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싸구려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것만이라도 그만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잔소리꾼아. 내가 왜 아직 널 불태워 버리지 않았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면전에서 그런 잔혹한 소리를 하는 하티다. 그를 사랑하는 카스파르는 이젠 이런 소릴 하도 많이 들어서 가슴이 따끔거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저 조그맣고 모양 좋은 머리통을 한 대 갈겨 줬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제법 하극상이 무르익은 푸념을 속으로 되뇔 정도였다.
그래도 카스파르의 비난과는 다르게 하티에게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남자를 먹이로 더 선호하는 까닭은 그들이 새끼를 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고대부터 살아온 그는 인간 사회는 모계 사회인 쪽이 훨씬 더 능률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인간이 양계장의 수컷 병아리를 태어나자마자 처분해 버리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인도적이었고.
왜 이 역겨운 것들은 산 채로 조금씩 인간을 뜯어 먹는 게 훨씬 더 비위 상하는 일인 줄 모르는 걸까? 적어도 하티는 천천히 죽어 가며 삶에 대한 희망도 욕망도 없이 마음이 죽어 버린 반송장을 먹고 싶진 않았다. 절망으로 얼룩진 그 맛은 자신들에게도 겨우 끼니를 때우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이로움도 없었다. 자신의 자식을 포함한 요즘 시대의 괴물들은 왜 그 사실을 외면하는 걸까?
산 인간들조차도 방목해 키운 고기를 선호하는 세상인데 말이야.

동틀 무렵, 카스파르는 테라스로 나가려는 아버지의 새하얀 머리카락에 고개를 묻었다. 흠뻑 들이마신 숨에선 달콤한 꿀 냄새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귀찮다는 듯 한 손으로 그를 떼어 낸 하티는 커다란 암막 천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테라스로 나아갔다. 카스파르는 그 뒷모습을 보며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레코드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곧이어 반짝이는 음의 파도가 몰아쳤다. 기지개를 켠 하티는 선베드 위에 올라가 잔뜩 천을 끌어모아 쥐고는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며 자리를 잡았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멀리서 새벽의 어스름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붉은 태양 빛이 수평선 너머로부터 치열하게 솟아올랐다. 저택의 모든 창문이 굳게 닫히고 두터운 암막 커튼은 일제히 빛이라곤 새어 들어올 수 없도록 조금의 빈틈도 없이 꼼꼼하게 쳐졌다.
카스파르 역시 테라스로 향하는 창문을 닫고 아버지가 몸을 누이는 관에 불편함이 없도록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관 옆에 둔 옷가지가 아무리 좋아도 아버지는 밤이 되면 엉성한 옷차림으로 신발도 신지 않고는 뛰어나가 버리겠지?
아아, 사랑스러운 아버지.
작게 한숨을 내쉰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애틋하게 테라스의 커튼을 움켜쥐고 그 너머에 있을 하티를 생각했다.


저자 프로필

벨벳골드마인

2015.07.1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벨벳골드마인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즐거운데 어쩌다가 출간까지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목차

서장
로드 하티
데드맨은 흡혈귀를 먹을 수 있을까?
늑대 사냥꾼, 로베라
아프리카로 소풍 왔습니다!
하티와 콩나무…… 가 아니라 덩쿨 사원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하티?
아프리카니스의 왕은 혼잣말을 잘한다.
특경청 사람들
뉴욕시티, 지금 안전합니까?
유쾌한 납치범과 엉망진창 스톡홀름 신드롬
그날의 시체들
심판의 날은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낮과 밤과 부활한 시체의 어떤 만남
아버지의 죄
Rush!
늑대의 보물
전쟁
굶주린 짐승들의 던전
숨 막히는 내일
진노의 장송곡
시체의 왕국, 배신자들은 정의를 모른다.
포식자의 만찬
버려진 도시의 아이들
후일담
외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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