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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사람이 좋아 상세페이지

BL 소설 e북 현대물

조용한 사람이 좋아

소장단권판매가2,300
전권정가4,600
판매가4,600
조용한 사람이 좋아 표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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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사람이 좋아 2권 (완결)
    조용한 사람이 좋아 2권 (완결)
    • 등록일 2017.03.07.
    • 글자수 약 8.7만 자
    • 2,300

  • 조용한 사람이 좋아 1권
    조용한 사람이 좋아 1권
    • 등록일 2017.03.07.
    • 글자수 약 9.3만 자
    •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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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가이드

「남극의 조류원」 : '조류원장'이라 불리는 인신매매범 하진. '새'를 사육하여 팔아 넘기던 그의 일상에 태양처럼 밝은 남자 해리스가 등장한다.
「조용한 사람이 좋아」 : '숲의 뮤게'라는 이반 카페를 운영하는 바람둥이 뮤게. 재규어의 열정이 그의 바람기를 잠재울 수 있을까?

*연작이란? 스토리상 연관성이 있는 로맨스 소설 시리즈. 각 작품이 독립적이지만, 시리즈를 모두 모아 보시면 스토리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조용한 사람이 좋아작품 소개

<조용한 사람이 좋아> 현대물, 질투, 리버스, 미인공, 대형견공, 연하공, 재벌공, 집착공, 초딩공, 강수, 냉혈수, 무심수, 개아가수, 유혹수, 연상수, 상처수, 후회수, 삽질물, 성장물, 수시점


우리 사이에 대화는 무슨 대화.
난 조용한 사람이 좋았다.

이반 카페 ‘숲의 뮤게’ 오너 ‘뮤게’.
난잡한 소문이 무성한 그는 사실 연애포비아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모든 마음이 식어 버리는데.

“뮤게.”
“응? 왜 그래?”
“나랑 사귀자.”
오싹, 얼음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왜, 우리 지금까지도 괜찮았잖아?”

그런 뮤게의 스테디한 섹스파트너 ‘재규어’.
그는 화려한 외모에 육식동물 같은 성격을 가지고도
연애공포증인 뮤게를 보며 속을 끓이고…….

“넌 항상 그래. 그 새끼만 만나면 내가 꼭 그 새끼라도 되는 것처럼 발정하잖아.”
“아니야. 안 그래.”
“그 사람 대신이라도 좋겠다고, 정말 나답지 않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랑을 무서워하게 만든 뮤게의 과거,
그리고 둘 사이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
그 와중에 화장실에서 만난 한 남자는…… ‘조류원장’?!
무수한 소음 속에서 뮤게는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찾아낼 수 있을까.

〈남극의 조류원〉 그 세계의 또 다른 이야기.
‘숲의 뮤게’를 오가는 셀러브리티들의 세련된 어덜트 로맨스!


출판사 서평

〈본문 발췌〉
한때는 이 키친이 내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기서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만들고는 했다. 그닥 부엌일을 하지 않았던 서진 때문에, 아직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훤히 안다. 녀석은 내가 쓰던 것들을 모두 고스란히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에게 주방기구를 업그레이드 하거나 그릇을 바꾸는 센스를 바라는 건 무리다.
잠시 적막한 식탁 앞에 앉아 손바닥에 턱을 궤고 생각에 잠겼다.
나 참. 나 뭘 하고 있는 거지? 여긴 내 자리가 아니야.
A4용지 몇 장을 가지고 와서 부지런히 펜대를 놀리기 시작한다. 가장 간단하게 만드는 아무쥬 부슈(입을 즐겁게 하기 위한, 메뉴가 나오기 이전에 나오는 요리), 퓌레, 필요한 소스의 레시피를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재료를 어디에 넣어 두었는지, 재료 다듬는 법, 레시피, 남은 재료 보관법까지. 전부 종이 위에 옮기고 나니 손에서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무슨 기념일이랬지?
하하, 아무렴 어때?
그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올 때야 짐 때문에 택시를 타고 왔지만, 왕복으로 그런 호화로운 짓을 하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동안, 이 빌어먹을 정거장조차 미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큼 익숙하단 사실에 짜증이 솟구쳤다.
도대체 무슨 짓이야? 나는 병신이냐? 여하간 오지랖 하고는.
신경질적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어디에도 담배는 없다. 하아. 길고 긴 한 숨을 내쉬며 잔돈을 챙겼다.
지잉― 지잉―
“여보세요? 아, 나. 나와 있는데. 삼성동. 오게? 일 안해? 어, 여기…….”
있는 곳을 주절주절 떠들고 통화를 종료하고 나서야, 스스로를 내려다보았다. 일하다가 나와서 단정하긴 한데, 너무 아저씨처럼 보이진 않으려나? 땀 냄새는 나지 않으려나? 킁킁거려 보았다.
아, 무슨 짓을 해도 포스 철철 흘러넘치는 멋진 아저씨가 되고 싶다. 무더운 날씨에 아무리 노동에 힘써도 땀 따위는 안 흘리는 그런 만화 캐릭터 같은 인간은 될 수 없는 건가?
잠시 뒤, 정류장 앞에 붉은색 재규어 컨버터블 한 대가 멈추어 섰다. 창문이 내려가고 고개를 내민 재규어 군이 피식 웃었다.
“웬 궁상이냐?”
네 눈에도 궁상떠는 걸로 보이냐? 조금 좌절하며 조수석에 올라타서 벨트를 매는데 녀석이 핀잔을 주었다.
“면허나 좀 따.”
“운전은 무서워.”
“하여튼 골 때리는 새끼. 남들 다 하는 걸, 뭘 그렇게 유난을. 면허 따면 내가 차 사 줄게.”
“미쳤냐?”
녀석이 바람에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을 매만져 주며 웃었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가끔 이렇게 녀석의 다정함에 위로를 받았다. 다정다감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손바닥의 열기가 전달되는 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눈을 감고 그 다정함에 기대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졌다. 그가 말했다.
“어제는 미안했다.”
“미안해할 상대는 나보다 그 사람인 거 아냐?”
맞은 건 그 사람이잖아. 나는 풀스윙으로 널 때린 거고. 그나저나 너는 괜찮은 거냐? 아주 멀쩡해 보인다, 너. 내 어깨에 이마를 부비는 녀석을 쓰다듬으며 잠시 그대로 쉬었다. 금방 느긋한 기분을 되찾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점심 먹었어?”
“별로 입맛 없어.”
“양갱이가 같이 식사하자던데.”
“양갱이?”
“에디 테일러 고든.”
양갱이라, 그것 참 친근하게 들리는 구나. 실소를 터뜨리자 재규어는 미간을 팍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어제 그 새끼. 내 전 어머니가 데리고 들어왔던 자식이야. 지금은 피로 보나 호적으로 보나 전혀 관계없지만.”
나는 결혼을 한 번만 해서 내 단순한 머리의 과부하를 예방해 주신 우리 부모님께 잠시 감사를 드리며, “그래서 뭐?” 하고 되물었다.
“지긋지긋한 놈이야.”
재규어는 원한으로 사무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뭐든 경쟁하려 들어. 대부분은 내가 이기지만. 졸업 파티 때 그 녀석 파트너를 가로채서 물 먹인 이후로는 뭐에 씐 것처럼 죽자고 덤벼든다고. 특히 내가 사귀던 사람은 무슨 변태 짓을 해서든 빼앗으니까.”
그 반대 아니야?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물론 재규어 군은 훈훈한 몸매와 그럴싸한 마스크, 뽐낼 수 있는 재력과 특정인들은 환장하고 달려들 만한 명성을 가졌다. 그러나 싸가지 없음과 철딱서니 없음, 다소 폭력적인 성향에 나잇값 못 함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에디 테일러 고든 쪽이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열등감을 가진 쪽은 바로 너 아니야?
“아무튼.”
인상을 팍 쓴 그가 끙끙 거리다가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 새끼가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도 다 날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걸 거야.”
피해망상 아니면 자의식 과잉일 거라 생각한다.
한 마디 했다.
“우린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그놈은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보지.”
“그런데 지금 그를 만나러 가는 거라고?”
“아아, 양갱이 놈 지금 우리 본가에 들어와 있거든.”
“아무 사이도 아니라더니?”
이해가 안 가서 가만히 있자 녀석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버지가 유난히 녀석을 예뻐하셔. 같이 살 때 워낙에 양갱이 놈이 아버질 따르기도 했고, 아버지는 똑똑한 인간을 좋아하니까.”
너네 집안은 할리우드냐? 그제야 내 귀까지 들어왔던 발 없는 소문 하나가 기억났다. 처음 만났을 무렵에만 해도 재규어는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을 숲의 뮤게 구석 자리에서 조용히 읽던 조금 별난 청년이었었다. 그 모습이 꽤나 취향이었기 때문에 말을 걸어 볼 생각도 들었던 것이고.
아무튼 그 무렵 떠돌던 소문들이 꽤나 요란했었지. 재규어의 전 연인은 꽤 유명한 모델이었고 둘은 유명세만큼이나 화려한 연애를 즐긴 모양이었다. 워낙에 유명세를 치른 커플이었던 만큼 재규어가 차였다는 소문이 돌 때는 온갖 억측이 난무했었다.
그래, 그때 나는 이 침울해 있는 아기 고양이를 꽤나 가련하게 여겼었다. 그랬으니 모처럼 친절을 베풀 마음도 들었던 것이겠지. 아무튼 그 무렵에는 그랬었다. 세월 참.
만약 그 소문의 상대와 헤어지게 된 것도 에디 테일러 고든의 탓이라면, 그 무렵 시름에 잠겨 있던 재규어를 떠올려 보건대, 에디에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는지 조금 납득이 갈 것 같기도 했다.
본질은 가벼운 녀석이 한동안이지만 우수에 차서 실연에 아파했던 걸 보면 아마도 죽을 지경이었던 게 틀림없다.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그렇담 녀석은 이미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거잖아.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래, 착하다.” 하고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평소에는 사진기를 만지는 그 손을, 나는 많이 좋아했다. 그 적당한 온기와 섬세한 모양. 그 손을 잡아채 얼굴을 묻고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햇볕에 말리는 빨래 냄새가 났다. 풋풋한 비누 향에 마음이 편해졌다.
재규어는 잠깐 당황하는 것 같더니 금세 가만히 자기 손을 내게 맡겼다. 나는 잠깐 그 손에 키스를 얹어 주고는 그가 운전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에 몸을 내맡긴 사이, 우리는 ‘장 루이스(캐주얼 레스토랑)’ 앞에 도착했다.
장 루이스는 처음이었다.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있다. 로만 터너(뉴욕, 미슐랭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의 쉐프)가 낸 한국 진출 레스토랑 1호점으로, 개점한지는 2년 정도 된 곳이다. 처음 로만 터너의 레스토랑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밤잠까지 설쳐 가며 기대했던 것 치고는 한 번도 발길을 하지 않았었다.
미니멀한 레스토랑의 입구를 보며 자리에 멈추어 서자 재규어가 돌아보았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발걸음을 떼며 이상한 기대감과 뿌리 깊은 상실감이 가슴을 뒤흔들었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순전히 뉴욕에서 맛보았던 로만 터너의 요리 때문이었다. 고개를 흔들며 장 루이스의 입구에 첫발을 디뎠다.
지중해 햇살 같은 조명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딘가 소금 냄새를 풍기는 청량한 공기가 온몸을 폭신하게 감쌌다.
맛있는 냄새.
런치 시간이 이미 지난지라 내부는 많이 북적이지는 않았다. 손님들은 모두 기분 좋은 얼굴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2층으로 안내되어 가며 나는 잠시 감상에 빠져들었다. 로만 터너의 요리를 처음 맛보았을 때, 그가 한국에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면 꼭 일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준비도 되어 있었지.
2층에 있는 손님은 몇 명의 외국인과 커플 몇 쌍으로, 1층에 비해 한산한 편이었다. 인테리어는 최대한 절제되어 있었지만 색상만큼은 남국의 해변처럼 따사로웠다.
미리 와서 앉아 있던 어젯밤의 남자는 우리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디 테일러 고든. 낮에 본 그는 더 신사적이고 더 잘생겼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의 나신을 떠올리고 있자니 그가 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 과묵해 보이는 신사가 정말로 어젯밤에 나와 함께 있었어? 새삼스럽게 재규어를 향한 원망이 밀려들었다.
“연락하겠다고 했죠, 뮤게 씨?”
“이렇게 빨리, 이런 형태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군요.”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 당신은 눈앞에 이 사나운 재규어에게 습격당했고 나는 재규어를 후려 팼으니까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레스토랑이죠.”
그의 신사적인 미소가 좋았다. 마주 웃으며 답했다.
“저도 기대가 크네요.”
디너였다면 감격해서 울었을지도 몰라요. 여기 요리는 비싸니까.
재규어는 질색을 하며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앉으려고 노력했다. 반면 에디는 아예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그 태도 차이만 보더라도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알 것만 같아서 조금 웃음이 났다.
메뉴를 보는 동안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영영 내 손에는 안 닿을 것 같았던 메뉴를 손에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렇게 한참을 감격에 빠져 있는데 재규어가 얄밉게 내 손에서 메뉴판을 뺏었다.
“보면 뭘 아냐?”
저 밉상.
“토스트에 마요네즈나 발라 먹는 주제에.”
이죽거리는 저 입술을 쥐고 흔들어 버릴까? 하다가 조용히 째려봤다. 재규어는 오만불손한 얼굴로 에디를 깔아 봤다.
“백날 공들여 봐라. 입맛 싸구려가 넘어오나.”
휴가 내내 재규어네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한 번씩 번갈아 가며 끼니를 책임졌었다. 내 순서일 때 나는, 아침엔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줬고 오후엔 토스트에 마요네즈를 발라 줬다. 기분이 정말 좋으면 나름 라면을 끓여 주기도 했고, 마트에서 사 온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내주기도……. 아,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끌고 가거나 근사한 한식점으로 데이트, 출장 요리사까지 불러 실컷 분위기 내려고 했던 녀석에게는 미안하게도 나는 뭘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식사는 배만 차게 하면 되니까.
갑자기 우울해졌다.
재규어 손에 들려 있는, 천국행을 약속한 것 같은 메뉴가 한낱 배불리기에 지나지 않는 허구성 가득한 종이 쪼가리로 보였다. 내 기분이 처진 게 눈에 띌 정도였는지, 장난치던 재규어의 얼굴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에디는 사려 깊게 자기 메뉴를 보여 주더니 하나하나 메뉴를 설명하며 추천해 주었다. 희미하게 웃으며 감사를 표하자 그가 말했다.
“우리 사귑시다, 뮤게.”
이 말을 할 때, 에디의 얼굴이 어땠냐 하면, 숲의 뮤게 오픈 전 부동산 계약할 때 전 주인의 “그럼 권리금은 3천으로 하지.” 하고 제시했을 때와 똑같았다. 무슨 사귀자는 소리를 그렇게 무뚝뚝하게 합니까?
재규어는 반대로 안절부절,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에디를 노려보았다.
그럼 나는 어땠냐고?
의외로 괜찮았다. 사랑해는 안 되지만 사귀자는 오케이인 건가? 아니면 상대가 이 남자라서 괜찮은 건가? 그러고 보니 보통은 좋아해요, 다음 수순으로 우리 사귈래요?잖아. 나, 교제하자는 고백은 한 번도 못 들어 봤네. 한번 자 보자는 유혹은 끝도 없이 따라다녔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은 기분에, 나는 담담하게 에디를 마주 보았다. 그는 담담해 보였다. 나도 담담했다. 어쩌면 사랑같이 의미가 불분명한 감정 없이도 우리는 잘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을 일도 없겠지. 큰 기대 없이 그런대로 서로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잘 공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요?”
내 질문에 에디를 노려보던 재규어가 시선을 돌려 나를 보았다. 내 목소리에 동요가 없었듯이, 대답하는 에디도 덤덤하기만 했다.
“류재인과 함께 당신을 공유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거든요.”
그는 경멸로 가득 찬 눈으로 재규어를 힐끗 쳐다보았다.
“정식으로 사귀는 사람으로서, 그 전의 섹스 파트너들은 정리해 달라고 요청할 생각입니다.”
그거 나름 합리적으로 들리는데? 재규어를 정리 대상 1호로 삼을 계획입니까? 그래도 낯부끄러운 소리를 지껄여 정떨어지게 만들지 않는 그의 건조함이 마음에 들었다. 류재인과 에디 테일러 고든의 싸움의 연장선에 내가 끼인 건 분명했다. 그러나 약간의 복잡함과 소란을 감수하고라도 ‘누군가와 교제 중인 뮤게’라는 포지션이 탐나기도 했다.
애정 같은 건 필요 없어. 나라도 나를 사랑해 주지 못할 것 같으니까. 이놈의 바람기를 잠재우려는 방편으로 교제라는 계약을 맺는 건 썩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괜찮긴 하지만…….”
날 째려보는 재규어의 시선이 얼마나 사납던지 더럭 겁을 먹었다. 여기서 “yes”라고 했다간 날 때릴 것 같은데. 응? 때릴 거야? 가만히 재규어를 마주 보자 그의 눈에서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존나 때릴 거야’ 하는 대답이 들리는 것 같아서 조금 움츠러들었다. 이 새끼가 일으킨 상해 사건을 한두 번 봤어야지. 이런 반응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다. 나는 좀 비굴해 보여도 내 몸의 안위는 지키면서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생각해 볼게요.”
결국 뒤로 미루듯 대답하고는 메뉴를 골랐다. 능숙하게 주문하는 내 모습이 의외였는지, 재규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역시 모르겠어. 재규어 군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다른 섹스 파트너는 괜찮지만 사귀는 건 안 되는 건가? 아니면 상대가 단지 여기 이 신사적인 마스크의 남자라서 싫은 거야? 잘 모르겠다.

재규어 군은 연신 피부 따가워지는 살기로 식사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사실 그의 풋내 나는 위협에 겁먹을 만한 사람은 이 식탁에는 없었다. 에디는 자신의 입으로 ‘뮤게 씨를 만지는 게 너무 기분 좋아서 정신을 놓고 있는 바람에 당했지만 평소라면 제가 더 많이 패 줬을 거’라고 태연히 당사자 앞에서 말할 정도였다.
그가 배짱이 두둑해 겁을 먹지 않는 데 반해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재규어는 절대 내게 손을 올리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딱히 그를 미치게 만들 만큼 약 올린 적이 없어서 ‘절대’라는 말을 쓰는 게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랬다.
그래서 나는 편하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아프게 하면 고소할 거야. 합의금이나 두둑하게 받아 낸 뒤에 다시는 얼굴 안 보면 되지, 뭐.
“무슨 못된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웃어?”
재규어가 못된 입술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타박을 줬다.
“네가 엉엉 울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생각.”
“뭐? 내가 뭘 잘못했다고 빌어?”
음식이 나오기 전에 나는 귀의 감각을 활짝 개방하여 소리를 수집했다. 잠시 후면 정신없이 복잡해질 시간이다. 이런 때가 아니면 요리가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힘들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음식의 풍미를 더해 줄 음악, 굴 껍데기를 까는 소리, 국물을 마시는 소리, 부드럽게 칼질하는 소리.
주문한 음식이 도착한 후에는 좀 더 경건한 마음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우선 시각적인 자극에 완전히 넋을 놓았다. 에디가 음식을 권했을 때에야 포크를 들고 잠시 요리에게 사과를 했다. 나 같은 게 먹어서 미안.
“…….”
황홀했다.
물론 로만 터너가 직접 키친을 지키고 있을 리는 없다. 그에게 배운 쉐프가 그의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 앞에 내놓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조금씩 입 안에 음식을 덜어 넣는 동안 나는 거의 말이 없었다. 하지만 기쁨에 절로 눈꼬리가 휘어지는 걸 스스로 알 수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는 동안 나는 시종일관 행복해했기 때문에 에디는 물론이고 탈 많은 재규어까지 내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판차넬라가 나온 접시를 완전히 비운 후, 곧이어 나오는 모든 접시를 걸신들린 듯 비웠다. 질린 눈으로 보는 재규어의 시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대시해 준 맞은편 남자에 대한 내숭도 지금은 제 차례가 못 되었다. 새우를 씹을 때마다 입 안에 퍼져 나가는 향긋한 즙은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아무튼 내 앞에서 ‘먹어 주세요.’ 하고 기다리는 접시 위의 요리들이 훨씬 아름답고 사랑스러웠고, 맛있을 터였다.
습관처럼 로켓 살사 베르데(여러 가지 허브로 맛을 낸 녹색 소스)를 맛보았다. 올리브유의 양이라든가, 들어간 로켓과 차이브의 비율, 사용된 소금의 종류 등을 알아맞히려 혀를 굴리다가 금방 관뒀다.
나 뭘하고 있는 거지? 머릿속으로 요리 재료가 접시 위에 올려지기 전까지 변신해 가는 과정이 그려지다 끊어진 테이프처럼 지직, 멈추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다가 갑자기 우울해하는 등, 얌전하지 못한 내 식사 매너에 에디와 재규어는 포크를 놀리기보다 나를 관찰하기로 결정했나 보다. 입 안으로 음식을 덜어 옮기는 대신 나를 보고 있는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정말 맛있네요.” 하고 말하며 생긋 웃었다.
“맛있게 드시네요.”
“네. 먹어 없어지는 게 아까울 정도네요.”
“그런 센스가 있으면 라면 좀 작작 먹어.”
“라면은 예술이지.”
인스턴트 식품으로 둘러싸여 살아가는 요리사 지망생이었던 나는, 지금은 뭐든 간편하게 배만 채울 수 있는 것, 밀가루 나트륨 덩어리, 에너지 바 따위를 즐겨 먹었다. 때문에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 바다 냄새, 흙내, 신선한 올리브유의 향긋함 같은 것들은 어딘지 지금의 나 자신과는 너무 멀어져 버린 것 같았다.
아무튼 에디 씨와는 사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와 잘해 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반쯤 흥미로 “당신 안에 넣게 해 줄 거면 사귀어요.”라고 말하려고 했던 게 어이없을 정도로 눈앞의 남자가 싫어졌다.
이 변덕. 잘생기고 온몸에서 부티 나는, 장 루이스를 제일 좋아한다는 영국인이 내 연인이 된다고? 그리고 그와 사귀는 동안은 그에게만 엉덩이를 흔들어야 된다는 말씀? 편리한 정부네.
포크를 내려놓고 에디가 시킨 와인으로 입 안을 헹구었다. 취향 한번 고급이네요. 내가 당신 마음에 찰 리가 없단 건 본인도 알고 있죠? 금방 질리겠지만, 아무튼 질리기 전까지 서로에게 충실한 척 연기하는 게 대체 무슨 재미야?
시시해져서 오히려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얼굴 근육도 훨씬 의도대로 능숙히 움직여졌다. 식사를 즐기기보다는 이 식사에 함께해 준 동료들을 위해 그럴싸한 연극을 하기로 했다. 그들을 존경하고, 훌륭한 식사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다는 의도를 충분히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 건 쉬운 일이다.
나는 당신에게 완전히 빠진 ‘적당히 구슬리기 쉬운 남자’랍니다. 가끔 나이프를 움직여 접시 위의 음식을 썰었지만 눈앞에 놓인 천국행 티켓을 입 안에 넣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잠시 실례.”
냅킨을 일어난 자리에 놓아두자 재규어가 시선으로 붙잡았다. 힐끔 화장실로 통하는 통로를 턱으로 가리키자 그제야 자신의 접시로 시선을 돌리는 그가 귀여웠다. 하여튼 어린애 같다니까.
화장실로 들어서며 이대로 나가 버리는 건 지나친 실례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고 보니 나 오늘 식욕이 없었지. 거울을 보자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레스토랑 안을 채우고 있었던 손님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하. 나 참.”
내가 어떤 꼴이었는지도 몰랐었어? 재규어를 기다리다가 옷차림을 걱정했었잖아. 일하다 나와서 마트에서 쇼핑하고 얼떨결에 이런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끌려왔던 나는, 비교를 하자면―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보다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백치미가 느껴지는 순진해 빠진 미소를 지으며 어수룩한 말을 늘어놓는 청년의 모습을 그 위에 씌웠다.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 봐요.’ ‘모두 다 훌륭해요, 고마워요.’
뭐든 상대를 띄워 줄 생각이다. 비싼 점심 값을 치르는데 그 정도 서비스야 당연하지.
이 화장실 밖에서는 한 테이블에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터였다. 혹은 내가 모르는 감정으로 서로를 보며.
장 루이스의 요리, 감정 없이 나와 사귀자는 사람, 그 옆에 내 오랜 섹스 파트너.
피식, 실소를 터뜨리며 시선을 돌리다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남자와 거울 안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눈을 마주친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어쩐 일인지 실례란 걸 알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런 사람도 화장실에 오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품위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무례하게 쳐다보고 있자니 그 사람이 이쪽을 보고 돌아섰다. 그리고 똑바로 시선을 맞추었다. 그 서늘한 눈동자에 정신이 들어, 시선을 돌리는데 그가 말했다.
“오랜만이군요. 비둘기 씨.”
오랜만? 흠칫 놀라서 다시 보자, 어딘가 음산할 정도로 서늘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 사람이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다이내믹하게 변하는 그 표정 변화는 꼭 가면을 쓴 것처럼 극적인 동시에, 그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변신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오랜 친구라도 보듯 정감 넘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내가 이 사람과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인지 기억을 더듬었다. 꼭 그를 기억해 내 그에게 똑같은 마음으로 답해 주고 싶은 욕구가 가슴 가득 차올랐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이 사람을 몰랐다. 설령 스쳐 지나가듯 만난 인연이라도 상대가 이 사람이라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실례지만 구면인가요?”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살풋 웃음 지어 보였다.
“아아― 그럴 리가요.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을 뿐. 이런 곳에서 보게 되니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아는 척을 해 버렸네요. 이거 실례.”
이 사람이 정말로 나를 안다면, 빈말로도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내 평판 때문이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지 불쾌하진 않았다. 뭐든 간에 저런 사람이 내게 흥미를 느낀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그렇다면 이 사람도 이쪽 사람?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데 그가 고개를 저었다. 꼭 거기서 멈추라는 제스쳐인 것 같았다.
“그쪽은…….”
상대가 나를 알고 있으니 나도 이름 정도는 묻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싶어 말문을 열었지만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잠깐 마주친 사람에게 그러는 건 오버인 것 같았다. 그렇게 말꼬리를 흐리자 그의 미소가 짙어졌다.
“별로 알아서 좋을 것 없는 사람입니다.”
무슨 뜻일까? 그는 대화를 끝내려는 듯 페이퍼로 꼼꼼하게 손을 닦고는 문 쪽을 향했다. 그러다가 문 앞에서 다시 멈추어 섰다.
“지나치게 섬세한 순결의 비둘기 씨.”
그 말은 꼭 환청같이 들렸다. 웃음기 어린 얼굴과는 다르게 그 서늘한 시선은 실험실의 모르모트를 관찰하는 것처럼 무감각하기만 했다. 겨우 그걸 눈치채고 오싹해졌다.
그가 말했다.
“절대로 불가능할 거라는 환상은 우스운 거예요. 그렇게 자만하다가는 큰코다칠걸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을뿐더러,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 한편 그의 시선이 지나치게 차가운 건 아닌가 싶어 서운해지기까지 했다. 우아하게 미소 지은 그는 재밌다는 듯 말을 이었다.
“서서히 중독되어 가는 관계도 있는 법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댁의 파트너는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것 같군요.”
다음 순간 문이 열리고 재규어가 들어섰다. 그는 재규어를 보더니 입매를 말아 올리며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실례.”
이상한 만남이었다. 놀란 얼굴의 재규어가 얼떨떨하게 서 있는 나를 보았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화장실에서 할 일이 뭐가 그렇게 많다고 그런 질문이야? 아니, 그것보다 우리, 지나가던 사람이 저렇게 거만을 떨며 한소리 할 만큼 구설수에 오르게 된 거야? 내가 너의 그 모델 남친 같은 위치가 된 거냐고?
“괜찮아?”
내 표정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거울을 흘깃 보았더니 내 얼굴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조류원장하고 무슨 일 있었어?”
재규어의 그 말에 필요 이상으로 놀라 버렸다. 뭘 하고 있었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조류원장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나간 문을 황망하게 돌아보았다. 방금 그 사람이 조류원장이었다고?
“뭐야? 몰랐어?”
뒷세계 유흥에는 별 인연이 없는 나라도 바 앞에 서서 일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sm클럽의 여왕님이라고 했던가? 아니, 조금 다른 개념이었던 것 같은데. 마음씨는 좋지만 다소 어두운 밤놀이를 좋아하던 손님의 충고가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여러 사람 피눈물 흘리게 만들고 꼬리 길게 돌아다니다간 조류원장에게 잡혀갈 거야.’
할머니가 베개 맡에서 손주에게 해 줄 법한 괴담이었지. 잡혀간다고? 그럼 인신매매범? 내 조악한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조금 전의 남자와 매치가 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재규어가 말했다.
“아무튼 다시는 그 사람과 엮이지 마.”
“별로 엮이지 않았어.”
이 녀석도 겁내는 사람이 다 있네 싶어서 웃음이 났다. 그런 한편 분명 내게 관심이 있었다고 말한 그 사람의 정체 때문에 살짝 진땀이 났다.
“뮤게.”
재규어는 야, 너, 이봐, 이 자식 등등, 참 다양한 호칭으로 나를 불렀지만 뮤게, 하고 간지럽게 부르는 무드는 없는 녀석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는 꼭 처음 만났을 무렵에 그랬던 것처럼 처량하게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양갱이가 마음에 들어? 그와 사귈 거야?”
이럴 때는 정말 어린 아이 같다니까. 난 저 애가 싫어. 쟤랑 놀지마. 꼭 그리 말하는 거 같았다.
“아니, 거절할 생각이야. 식사는 고맙지만 어쩔 수 없지. 잘 안 맞을 것 같아.”
눈에 띄게 좋아하는 꼬마를 보며 빙긋 웃었다. 나도 쟤가 싫어. 너랑만 놀게. 아, 마지막 건 거짓말이지만. 난 너한테 푹 빠져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하는 얼굴로 그가 안달 날 정도로만 그의 손목을 잡고 손가락으로 손목 안쪽을 쓸었다.
“그만 나갈까?”
그렇게 묻자 재규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말 잘 듣네.’ 하고 눈웃음을 쳤다.
“뮤게.”
“응? 왜 그래?”
“나랑 사귀자.”
오싹, 얼음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무슨 소리야?”
에디와 똑같은 소리를 할 작정이야?
“왜, 우리 지금까지도 괜찮았잖아?”
웃는 얼굴로 그에게 조근조근 달래듯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에디 때문에 화났어? 안달 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불에 덴 듯 뜨거워져서, 그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손을 놓았다.
“이런 요리를 좋아한다면 얼마든지 먹여 줄게.”
초딩이냐?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조르는 그 어리광 가득한 눈빛에 나는 마음이 아파졌다. 이름을 알아 좋을 것 없다던 조류원장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내 파트너가 인내심이 많다고요? 눈치도 없는데 뭘 바라겠어요?’
“미안하지만 재규어.”
나는 한숨을 참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서 ‘그래, 잘 부탁해.’라고 말해도, 난 어쩌면 오늘 밤에 다른 사람을 안고 있을지도 몰라. 내가 그런 사람인 건 잘 알잖아?”
“상관없어.”
“그럼 지금까지와는 다를 게 없어. 지금으로도 너는 특별해.”
사랑스러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당연한 것처럼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다니는 사람도 녀석뿐이었고, 파트너의 집까지 간 경우도 서진을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파트너의 일터에 가 본 것도, 가족과 연락처를 주고받은 것도 오직 녀석뿐이다. 지치면 지치는 대로, 기분 좋으면 좋은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재규어뿐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도 특별하다는 말은 분명하게 거절의 표현이었다.
굳이 변해야겠어? 이 관계가 마음에 안 들어? 역시 내 바람기가 지겨운 건가? 왜 그렇게 상처받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마음 아프게. 넌 내 어디가 좋으냐?
그렇게 자아도취적인 생각을 한 순간 가슴을 서늘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내가 좋아서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녀석의 얼굴에서 시선을 뗐다. 계속 그를 보고 있기 싫었다.
나는 녀석이 좋고, 때로는 사랑스러워 견디지 못할 정도로 예뻐해 주고 싶지만, 진지하게 만나고 싶진 않았다.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특별하게 대하는 정도가 적정선이다. 그 이상은 싫어. 나를 향한 그 눈에서 뭐가 보일까 봐 두려웠다.
시선을 맞추지 않고 그저 미소 지었다.
“넌, 섹스 하나는 환장하게 마음에 들거든. 그래서 웬만하면―”
그의 구두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쩐지 저열한 표정이 되어 있을 것 같아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널 오랫동안 만나고 싶어.”
“잘났군.”
그 목소리가 어딘지 스산했다. 재규어가 거칠게 내 턱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나는 그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좋아. 오늘은 딴 데로 새지마. 어디 그 환장하게 마음에 드는 거, 해 보자고.”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벨벳골드마인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즐거운데 어쩌다가 출간까지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목차

프롤로그
1. 쓰다듬어 주세요, 야옹~!
2. 숲의 뮤게의 뮤게
3. 왜 이러세요?
4. 돌아와요, 제발
5. 지하철 출구로 나오니 벚꽃이 흐드러지지
6. 저기,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7.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요
8. 달콤하고 다정하게 노래해요, 당신을 원해
9.모든 것은 한 여름 밤의 악몽처럼―
10. 그 남자들의 사정
11. 까맣고 사랑스러운 당신의 눈동자
12. 나는 그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지
13. 그리고 그들은 행복해질 준비가 되었습니다

last. 그 후 그들은
- epilogue 1
- epilogue 2
- epilogu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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