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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소설 e북 역사/시대물

월담

소장단권판매가4,200
전권정가16,800
판매가16,800
월담 표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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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담 5권 (완결)
    월담 5권 (완결)
    • 등록일 2017.04.11.
    • 글자수 약 15.3만 자
    • 4,200

  • 월담 4권
    월담 4권
    • 등록일 2017.04.11.
    • 글자수 약 15만 자
    • 4,200

  • 월담 3권
    월담 3권
    • 등록일 2017.04.11.
    • 글자수 약 15.6만 자
    • 4,200

  • 월담 2권
    월담 2권
    • 등록일 2017.04.11.
    • 글자수 약 15.6만 자
    • 4,200

  • 월담 1권
    월담 1권
    • 등록일 2017.04.11.
    • 글자수 약 5.3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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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담작품 소개

<월담> 동양 시대물, 궁정물, 코믹/개그물, 황제공, 강공, 열혈공, 부지런공, 노력이쵝오공, 절륜공 애독자공, 집착공, 능글공, 광공, 절륜공, 오해공, 후회공, 사랑꾼공, 후궁수, 까칠수, 무심수, 발을절으수, 재능수, 인기작가수, 도망수, 자유를달라수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서자에 절름발이인 복태.
그는 가택 연금과도 같던 오랜 세월에 지쳐
‘태복’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썼다가 장안의 화제가 된다.
그 소설이 바로 ‘신발 수집가의 서재’.
-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황가에 태어났으나 숨죽여 살아야 했던 셋째 황자.
그는 정신병인 척 가장하다가 두 황자를 죽이고
스스로 제국의 황제, ‘자황(自皇)’이 된다.
- 세상에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에만 갇혀 있던 복태는
황권 강화를 위한 정략혼의 제물로써 황제의 후궁이 된다.
그런데 황제인 자황은 태복 선생이 쓴 '신발 수집가의 서재'를 인생작으로 꼽는 열성 독자.
어느 때고 태복선생과 소설에 대한 애정을 토로하는 자황에게
복태는 그만 질려 버리고, 그에게 들킬까 연재를 중단한다.

“짐이 마음을 먹었는데 사람 하나 못 찾겠는가.”
‘으아아아아아아!! 다가오지 마! 당신은 태풍이야!
산들바람이고 싶은 나와는 흐름 자체가 다르다고!’

열혈 황제의 집착 쩌는 애독자 생활과
평범하고 느긋한 생활을 좋아하는 소설가의
아슬아슬 찌릿찌릿 지지고 볶는 황궁 연애실록!

“짐을 얼마큼 연모 하시오?”
“이 아득한 밤공기가 폐하의 향기로 가득 찰 만큼 연모합니다.”
“아주 짐밖에 보는 모르는 사람이네.
짐도 연모하오. 연모하오. 연모하오. 연모하오.”
“폐하, 그만요! 항상 과하다니까요!”


출판사 서평

〈 본문 발췌 〉
아직 해조차 뜨지 않은 묘시(卯時 : 5시~7시). 황궁은 부지런한 황제 때문에 매일 이른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침상에서 일어나 앉아 세숫물을 가져오는 궁녀를 기다리는 황제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굵지만 섬세하게 내려오는 얼굴선과 티끌 한 점 없는 매끄러운 피부가 그가 미남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살짝 탄 살색은 어려서부터 혼자 갈고닦은 무예를 지금까지도 지속해 왔다는 증거였다. 짙은 눈썹과 그 아래 자리한 깊어 보이는 눈매를 가지고 있어 쉽게 여심을 휘어잡았고, 그의 드높은 기상처럼 콧날 또한 오뚝했다. 입은 작지 않고 붉은 것이 생기 있었다. 그가 웃을 때면 반달처럼 휘어지는 눈과 입 때문에 해맑아 보이기까지 했다.
환관의 시중을 받아 몸과 의복을 정갈히 한 황제는 편전으로 향했다. 6척(약 180cm)이나 되는 훤칠한 키만큼 기다란 다리를 가진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뒤를 따르는 환관들이 바삐 걸음을 했다. 각 기관을 담당하는 신료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다가 황제가 들자 모두 일어서 예를 갖추었다.
“간밤에 모두 평안들 하셨소?”
화려한 황금 용으로 치장된 의자에 앉아 신료들을 내려다보며 자황이 말했다. 낮게 깔리는 저음이 친절함을 담고 있었다. 그는 항상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신료들의 안부를 묻곤 했다. 그는 선황제들과는 달리 염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염세적이기는커녕 그가 사용하는 어휘는 배다른 두 형제를 죽이며 황좌에 오른 이치고는 밝았고, 과정이야 어찌 됐든 황제의 정치 태도와 업적으로 봤을 때 자황은 성군이었다. 하지만 예전 그의 이면을 알고 있는 신료들로서는 이 편전 회의가 마냥 편안한 자리일 수만은 없었다.
“예……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한 신료가 대표하여 말하자 뒤이어 모든 신료가 입을 모아 말했다. 생기 있는 자황의 목소리와는 비교되게, 위축되고 불편함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기운 없는 목소리였다.
“이리 보람찬 하루이거늘, 모두들 표정에 왜 그리 기운이 없는 것이오? 삶이 축복이고 각자에게 매달린 의무 또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인 것을.”
자황은 자신의 기운이 맑고 긍정적이라면 다른 이들의 기운까지 그리 만들 수 있을 거라 여기며 항상 밝은 태도를 보여 왔다.
“경들 얼굴을 보니 지금이 마치 밤 같소.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되었을 뿐이니 활기차게 갑시다. 자, 첫 안건이 무엇이오?”
자황은 이전 어느 황제들보다 자신의 삶에 매우 만족해하는 밝은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오늘날과 같이 항상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자신에게 복태라는 부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

황실 후궁들이 거처하는 처소들 중에서도 침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 있었다. 그곳은 궁녀조차 제대로 자리를 지키지 않는 처소였다. 그곳에는 자황의 후궁인 위복태라는 사람이 홀로 살고 있었다.
신시(申時 : 3시~5시)쯤 처소 안쪽 방에서 부스럭거리며 그가 일어났다. 그의 주변에는 아침까지 소설을 쓰다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문방사우가 흩어져 있었다. 쓰다 버린 종이는 대충 구겨져 방 곳곳을 배회하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지필묵과 낙관이 아직 찍히지 않은 책이 놓여 있었다. 그 책은 간밤에 막 완성한 그의 소설이었다. 복태는 책을 바라보며 ‘태복(太福)’이라는 낙관을 찍으려다가 황실 정기 연회가 있는 날인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시각이 다 되어 슬슬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먹으로 얼룩진 의복은 흐트러졌고, 정갈하게 묶었던 머리카락은 흩어져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창문으로 다가가 그것을 활짝 열었다. 해가 쨍쨍해야 할 시각인데 밖은 어두웠고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도 오는데 연회가 취소됐다는 소식은 안 오나? 안 그래도 나가기 싫은 연회였는데 비까지 내리니 더 나가기가 싫어졌다.
“날씨가 좋아도, 안 좋아도…… 뭐 달라지는 게 없네.”
복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창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는 처소 궁녀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 세숫물로 대충 세수와 양치만 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신을 신었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한숨을 쉬고는 우산을 펴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과는 다르게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처소 궁녀가 처소에 잘 붙어 있지 않아 혼자 모든 걸 준비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비록 다리를 절지만 뛰자고 하자면 얼마든지 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걸어갔다.
이미 연회가 시작한 지 일각(약 15분)이 흐르고 나서야 복태는 연회장에 도착했다. 연회장 가운데에는 기다란 상이 있었고 제일 상석에는 당연히 황제인 자황이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나란히 후궁들이 앉았다. 자황과 가장 가까이에 앉을수록 이야기를 나누고 눈에 띌 기회가 많았기에 후궁들은 항상 보이지 않는 자리싸움을 했었다. 후궁 중에서는 복태처럼 남자도 있었는데 여자 못지않은 미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는 복태와는 달리 황제의 눈에 들고 싶어 했고 현재는 황제의 옆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복태는 문 앞에서 출석 여부를 확인하는 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는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남은 자리는 황제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뿐이었다. 후궁들은 모두 황제의 눈에 들고자 그만 바라보고 있었고, 황제 또한 후궁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집중했다. 아무도 그의 등장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복태도 눈에 띄고 싶지 않았기에 그 부분에 감사함을 느끼며 황제를 향해 고개만 잠시 숙였다가 구석 자리에 앉았다. 복태는 맞은편,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보이는 비를 바라보다가 생각에 빠졌다.
그는 항상 이 황실에서 완벽하게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 내리는 듯 내리지 않는 듯 뿌옇게 자리했다가 언젠가는 사라질 이 안개비처럼 자신도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가 이 궁에서 홀연히 사라지고자 했다. 언젠가 이 궁에서 월담을 하더라도 그 누구도 자신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지금 옆에서 떠드는 저들은 자신을 기억하기에는 너무 완벽한 자신들만의 세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권세가의 가주지만 자신은 서자였고 절름발이였다. 그런 자를 세도가의 자식들인 후궁들은 경쟁 상대로 봐 주지도 않았을뿐더러 없는 사람 취급을 했기에, 자신의 소망대로 지내다 사라지기에는 딱 맞는 환경이었다.
복태는 밖에 내리는 안개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렇게 밝은 곳에서는 조금만 저 빗속으로 들어가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안개비 속에 들어간 자신을 보려면 똑같이 안개비로 들어와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저들은 추적추적한 이 빗속으로 절대 스스로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이곳에서 안개비처럼 사라지는 상상을 하며 복태는 부푼 기대감에 빙그레 웃음 지었다.
그때 후궁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에게 다가갔다. 그 후궁은 간의대부(諫議大夫 : 황제에게 간하고 정치의 득과 실을 논하던 관원) 황만의 여식 황 재인(才人 : 정3품)이었다. 황 재인은 바닥에 글귀가 적힌 비단신을 들고 있다가 황제에게 선물했다. 비단신을 받은 황제는 반달 웃음을 지어 보이며 크게 기뻐했다.
“오오, 이 글귀를 보아하니 태복 선생의 작품이구려. 짐이 좋아하는 글귀이오.”
자황은 들뜬 표정으로 신을 이리저리 쳐다보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 모습에 새삼 다시 반한 황 재인 또한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며 황제에게 대답했다.
“예, 폐하. 아버님께 말씀드려 어렵사리 구한 것이옵니다. 신첩도 폐하처럼 신에 새겨진 그 글귀에 마음이 통한지라.”
그녀는 자황의 마음에 들고자 그와 같은 부분에서 공감했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했다. 상상의 나래에 빠져 있던 복태는 황제의 입에서 ‘태복’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태복’은 자신의 필명이었다.
복태는 사실 소설가였다. 신분을 숨겨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비밀스럽게 집필해 왔다. 소설의 제목은 ‘신발 수집가의 서재’였다. 한 권으로 끝내지 않고 연재를 해 온 장편의 소설이었고, 그 최신판을 오늘 아침에 막 완성한 참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이러했다. 서재에 서책이 아닌 신발을 올려놓았던 어떤 남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불렀다. 그중 어떤 이가 그에게 이유를 묻자 그가 이리 답했다.
‘책 한 권보다 이 신에는 더 많은 삶의 글귀가 담겨 있지 않은가.’
그의 서재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낙담한 사연이나 고민을 털어놓았고 그는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서재에 올려놓은 신발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 바닥에 그들의 고민을 적어 선물했다. 신발을 선물 받은 방문자들은 그 신을 신고 슬픔을 극복하고 밑바닥에 적힌 글귀가 신을 신고 돌아다니면서 지워지고, 새로 도약하며 그 사람의 인생이 되어 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소설 각 화별로는 방문자들의 사연이 소개된 다음 해결되었고, 큰 흐름으로는 그 괴상한 신발 수집가의 정체와 사연에 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줄거리는, 그 신발 수집가가 그 서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누군가가 그가 신고 나갈 신발을 어딘가에 감춰 뒀기 때문이고, 감춰진 신발을 찾게 되는 순간에 비로소 그는 서재를 떠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자황은 비단신을 내려놓고 황 재인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다음 권이 나올 때가 지났는데 아직 나오지 않아서 적적하던 차였소. 마치 소설 안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이 신을 보고 있자니 마치이 세상 어딘가에 신발 수집가의 서재가 정말로 존재할 것 같은 기분이 드오.”
“폐하께 기쁨을 드려 가문의 광영이옵니다. 태복 선생의 글귀가 적힌 신은 진귀하여 구하기가 어려우나 폐하를 위하여 다른 신도 찾아 바치겠나이다.”
“기대하고 있겠소. 그나저나 저번 일화에서는 수집가의 이야기가 나와서 다음 내용을 어찌나 궁금하게 만들었던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집가가 서재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소? 그가 서재에 갇히기 전에 만났던 여인의 연심을 담은 꽃신을 자신의 서재 마룻바닥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그 꽃신이 사라질까 염려하여 문 앞에서 떠나지도 못하면서 말이오. 서재 밖으로 나갈 생각도 있고 여인에 대한 미련도 남아 있으면서 어찌해 그 소중한 꽃신을 밖에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오.”
“그가 결국 서재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행한 결말을 향한 암시가 아닐는지요?”
자황은 태복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의 작품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가 연회 자리에서 자신의 취향을 넌지시 말했고, 자황의 눈에 들고자 했던 이들의 입소문에 의해 태복은 더욱 유명해졌다. 원래 잘 팔리는 작가이긴 했지만 황제가 총애하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고 나서는 그의 작품이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들조차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책이 부족하여 못 팔 정도가 되었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라는 설도 있지요.”
다른 후궁이 황 재인을 의식하며 황제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들에게 밀릴 것 같았는지 다른 후궁들도 너도나도 소설 내용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자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서재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방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 작은 방이 그런 묘한 분위기를 풍길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서재에 방문하는 자들은 미련을 안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의 서재에는 망자는 신지 못하는 신발만 놓인 것이라는 추측도 우세하지요. 결론적으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집에서 산송장처럼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신세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들 결말을 두고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하는군요. 황제 폐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자황이 대답했다.
“그거야 작가 마음 아니겠소.”
“폐하시라면 태복 선생을 황궁으로 불러들여 그 심중을 떠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자황은 턱을 어루만지며 잠시 생각했다. 다음 소설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재미보다 남들보다 먼저 다음 내용을 알게 되는 재미가 더 쏠쏠할 것 같았다.
“짐이 부르면 과연 그가 올까요?”
“황제 폐하의 부름인데 어찌 안 올 수가 있겠습니까? 가문의 영광이니 버선발로 황궁까지 뛰어올 것입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복태는 차를 마시다가 멈칫했다. 찻잔에 가려진 입가에는 곤란한 미소가 삐뚤대고 있었다.
‘이미 황제 폐하 옆…… 아니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여기 앉아 있습니다만.’
복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후궁들과의 연회에서 왜 자기 소설에 대한 얘기만 하는지! 황제에 눈에 들고자 함이겠지. 황제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신발 수집가의 서재’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겠고.
‘줏대 같은 거라곤 없는 사람들 같으니! 아아…… 그나저나 계속 내 소설 이야기만 해 대면 휩쓸려 버린다. 사람들 시선에! 기준에. 아아…… 이런 흐름은 별로인데……. 내 세상이 흔들려. 위험해…… 위험해!’
이런 복태의 마음을 모르는 황제와 후궁들은 계속하여 소설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문제는 그 작가가 태복이라는 필명만 있을 뿐, 그가 어디 사는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설마 황제 폐하께서 사람 하나 못 찾아내시겠습니까? 작정하고 숨으려 드는 자가 아닐 바에야.”
“짐이 이토록 호의적인데 왜 숨으려 하겠소? 그래! 사람을 풀어 찾아보라 명해야겠소.”
자황의 말에 모두들 수긍하였고, 자황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그런 점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복태의 마음속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마음의 평화를 찾자……. 찾아야 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마음의 평화를 찾…… 기는 개뿔! 으아아아아아아!! 다가오지 마! 당신은 태풍이야! 산들바람이고 싶은 나와는 흐름 자체가 다르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마음속 절규와는 달리 복태의 겉모습은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 하지만 자신이 뱉은 말을 바로 실행에 옮겨 명을 내린 자황의 말과 기대에 들뜬 호탕한 웃음소리가 연회장 안에 울려 퍼지자 눈썹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연회장을 가득 메운 저들의 웃음소리가 커지자 복태의 마음속 절규 또한 커지고 있었다.
복태는 항상 의욕이 넘치는 자황이 자신과는 달라 서로 상성이 맞지 않다고 여겨 왔다. 자황은 항상 주위 사람을 자황의 기준대로 휩쓸리게 했다. 그가 황제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의 기질과 성정이 그러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휩쓸리는 것에 아주 질색하는 자가 바로 복태였다. 그러니 부부라 해도 서로 잘 맞지 않으면 멀찍이 떨어지는 것이 서로의 정신 건강에 좋다고 복태는 생각했다.
자황과의 혼인은 정치적 관계 맺음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첫날밤도 갖지 않고(절대 첫날밤을 치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첫날밤을 안 치러서 좋았다. 정말이다.) 국경 시찰을 해야 한다며 갑자기 의욕에 넘쳐선 말을 타고 밤에 궁을 나섰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자황은 수많은 후궁 사이에서 복태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것이다.
‘역시 당신과는 안 맞아. 당신과 나는 상성도 안 맞을뿐더러 그놈의 의욕 때문에 당신, 내가 후궁인 것도 기억 못 하잖아. 항상 그렇게 의욕이 넘치지. 지금도 그 의욕을 불태우고 있고! 뭐든 당장 해낼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인간인데……. 으아! 하우! 우아아!! 상성이 안 맞는 걸 떠나서…… 왜 내가 그녀를 정리하는 심정을 소설 속에 집어넣은 거지?! 아무리 그때 감정이 그러했고 딱히 쓸 내용이 없었다지만 왜 하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후우 ……후우! 마음의 평화를 찾자……, 그래. 설사 황제가 태복이 나라는 것을 알아차린대도 소설 속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일 뿐, 내 실제 이야기라는 것은 모를 거야……. 으으, 아니야! 알아챌지도 몰라……. 황제가 얼마나 소름 돋는 애호가인데! 저런 애호가 반대야, 반대!’
“폭풍우다…….”
마음속 혼란에 복태는 육성으로 낮게 읊조렸다. 하지만 복태의 옆에 앉아 있던 다른 후궁은 복태의 말을 들었고, 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조용한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후궁은 잠시 복태를 이상한 눈으로 흘겨보다가 다시 자황에게 시선을 돌리며 그의 장단에 맞춰 웃었다.
폭풍우다……. 마음에 폭풍이 몰아치고 주변 사람들에 의해 내 몸이 휩쓸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복태가 가장 싫어하는 감정 상태였다. 폭풍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복태의 귀에 이어지는 자황의 말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와 꽂혔다.
“세상엔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아무것도 없소. 짐이 마음을 먹었는데 사람 하나 못 찾겠는가.”
복태는 연회에 참석한 이후 처음으로 황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황제를 바라보는 복태의 얼굴에 분노를 억누르는 가장된 웃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염병할!!!’



세상엔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복태의 이야기.

무영이 태어나던 해, 민가의 작은 집 안에서 숨을 헐떡이며 신음을 삼키는 여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허름한 이불로 볼록한 배와 발가벗은 아랫도리를 가리고 치아로 입술을 앙다문 채 이불을 쥐어뜯고 있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과 흑요석처럼 빛나는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아직 시기가 아닌데 아이가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비밀스럽게 이 아이를 낳아야 했다.
아이의 아버지인 위귀호는 지체 높은 귀족 신분에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황궁에서도 군기대신으로서 그러잖아도 명예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명예는 유명한 세도가의 딸이 그의 부인이었기에 얻은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부인의 말에는 꼼짝도 못하는 애처가 아닌 애처가 노릇을 해 왔다.
귀족 신분에 첩 한둘 얻는 것쯤이야 흠도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처가에 흠이 잡힐 일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를 밴 여자 하나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하고 이런 작은 집에 몰래 그녀를 피신하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간간이 들러 맛있는 것도 가져다주고, 어느 때는 사랑하고, 볼록한 배에 귀를 갖다 대고 말을 걸며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나누었다. 비록 숨겨진 여자였지만 그녀는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귀호의 장인의 생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귀호는 그녀와 아이가 걱정되었지만 아직 산달이 되려면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가족들과 다 함께 장인이 거주하는 지방으로 내려갔고, 하필이면 생신날에 산통이 시작돼 버린 것이었다.
양수가 터졌는지 이불이 축축한 게 느껴졌다. 아랫배 쪽이 묵직한 게 아이가 출구를 두드리고 있다고 자연스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었다. 오로지 그녀 스스로 모든 일을 해내야만 했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고 규칙적으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으으음!!”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 움직임에 마침내 아이의 신체 일부가 질 입구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발이 먼저 빠져나왔다. 아무도 가르쳐 줄 이 하나 없으니 그녀는 당연히 알아채지 못했고 계속하여 힘을 줬다. 이대로라면 아이는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었다. 질 입구에 발이 걸린 채 죽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위험한 것은 산모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는 결국 탈진하여 기절하고 말았다.
그렇게 몇 시진이 흘렀을까. 귀호가 떠나기 전, 부리던 종놈에게 그녀가 걱정되니 여기 남아 자주 들여다보라고 명령을 내렸었다. 그 종놈이 그녀에게 찾아갔고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야밤에 산파와 의원을 찾아 돌아다녔다. 산파는 쉽게 찾게 되어 먼저 집으로 보냈고, 의원은 좀처럼 닫힌 문을 열어 주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 급한 대로 로마에서 왔다는 서양 의원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니 산파는 피가 통하지 않아 시퍼레진 아기의 발을 잡고 다시 배 속으로 집어넣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의원은 사색이 되어 산모의 호흡부터 확인했지만 이미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숨이 끊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이의 맥박은 아직 뛰고 있었으나 그것도 머지않아 끊길 참이었다. 의원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산모는 죽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아기도 죽습니다.”
그 말에 종놈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의원의 다리에 매달리며 애원했다.
“아기…… 아기라도 살려 주십시오!”
“이 나라의 의술로는 아이를 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술이라면 가능합니다.”
“뭐든, 뭐든 해 주십시오. 이대로 둘 다 죽는다면 소인도 죽습니다!”
“알겠습니다. 가서 뜨거운 물과 깨끗한 마른 수건을 가져오세요.”
의원의 명령에 종놈은 얼른 방문을 나섰고, 의원은 가방에서 의술 도구를 꺼냈다. 그 안에는 산파가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상한 기구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의원이 그중에서 끝이 날카로워 보이는 칼을 집어 들자 산파는 기겁하며 도망을 쳤다. 의원은 개의치 않고 산모 옆에 자리를 잡고 칼로 그녀의 아랫배를 갈랐다.
뜨거운 물과 수건을 가져온 종놈은 산모의 배가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 자빠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당신 미쳤어?!”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내가 가져오라고 했던 거 가져오십시오!”
“사람의 배를 가르는 게 의원이 할 짓이야! 백정도 사람 배는 안 갈라!”
“아이마저 죽이고 싶습니까?”
의원이 서슬 퍼런 눈초리로 종놈을 협박했다. 의술에 대해 차근히 설명을 해 주기엔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다. 종놈은 저도 모르게 물과 수건을 내밀었고 그 이후 의원은 순조롭게 아이를 산모의 배 속에서 꺼냈다. 탯줄을 자르고 아이의 엉덩이를 쳐 울음을 터뜨리게 했고 그렇게 아이는 살아났다. 종놈은 아이고, 아이고 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의원은 아이의 다리를 살펴보다가 이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에게 장애가 남을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귀호가 돌아왔다. 종놈은 귀호에게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에 대해 자세히 고했다. 하지만 여자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낸 부분은 대충 얼버무렸고, 시체는 산에 잘 묻어 주었다고 말했다. 그 부분까지 사실대로 고해바쳤다가는 자신도 그 옆에 나란히 묻힐 게 뻔했다.
이야기를 들은 귀호는 깊은 슬픔에 눈물지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아이를 낳다가 죽음에 이르다니……. 게다가 아이는 평생 다리를 절게 생겼다고 한다. 태어나면서 어미를 잃은 불쌍한 아이가 자신을 보며 방긋방긋 웃는데 죄책감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불쌍한 아이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강해져야 했다. 집으로 데려가 부인에게 사실을 말하고 자신의 품 안에서 키울 것이라 다짐했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할 텐데 뭐가 좋을까……. 복태, 복태가 좋겠구나. 이처럼 불행하게 태어났으니 앞으로는 큰 복을 받으라는 의미이다.”
아이가 다시 생글생글 웃었다. 그 작고 여린 손이 귀호의 손가락을 부여잡았다.
“복태야. 이제 집에 가자꾸나.”
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온 귀호를 바라보던 부인은 잠시 얼이 나가 있다가 이내 곧 불같이 화를 내며 절대 받아 줄 수 없다 선언했다. 자신 몰래 딴 여자와 놀아난 것도 배신감에 치가 떨리는데 그 씨까지 뿌려 받아 오다니. 자신은 남편을 사랑하는데 남편은 마치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듯 느껴졌고, 자신의 배경만 원했나 하는 자격지심까지 들어 분해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천륜을 저버릴 수 없다는 남편의 간곡한 부탁의 말을 끝까지 무시할 만큼 못된 성정이 아니었기에 부인은 끝내 아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복태는 아버지의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 왔다. 덕분에 안 그래도 자신을 고깝게 여기는 마님과 도련님은 자신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그래서 잘 마주치지 않으려고, 주로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집을 전체적으로 봤을 땐 외진 곳이었지만, 볕이 잘 드는 방이었다. 부족하다 느낄 틈도 없이 아버지가 모든 것을 챙겨 주고 지켜봐 줘서 방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절름발이인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낄까 걱정하여 하는 행동이었지만 복태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비록 다리를 절지만 걸을 수 있었고, 빠르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뛸 수도 있었다. 다리가 조금 불편하다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할 것도 아닌데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자신은 결코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너무 완벽한 온실은 언제나 밀실이었다.
마루 아래 디딤돌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자신의 신발은 그 바닥이 항상 깨끗했다. 한 발짝만 나서도 바닥에 모래가 끼일 텐데, 그 한 발짝도 디딜 일이 없으니 언제나 그의 신발은 새 신발 그대로였다.
어느 날 복태는 신지도 못할 신발을 밖에 두어서 뭐하나 싶어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그 신발을 보며 세상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의미와 이야기를 부여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신발을 신을 수 없으니 그 누구보다 신발에 의미를 붙여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것이 복태의 생활이었고, 인생이었고, 세계였다.
방 안에서 생활하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일밖에 할 일이 없었기에 복태는 매일 서책만 파고 앉아 있었다. 다른 애들처럼 서당에 나가 서로의 지식을 겨루는 것은 해 보지 못했지만 자신이 더 똑똑할 것이라 짐작했다. 방 안에서 할 것이라곤 서책을 읽는 거밖에 없었으니까. 이처럼 계속 공부를 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나랏일을 하는 귀족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고, 장남인 자신의 형보다 두 배, 세 배 더 노력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

복태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복태는 아버지 귀호와 이복형인 용의가 공부를 하고 있는 방 앞에서 서성거렸다. 귀호는 시제를 치르듯 그동안 용의가 공부했던 서책들을 살펴보며 질문을 했고 용의는 그에 답변했다. 귀호가 다시 질문했고 이제까지 잘 대답했던 용의는 기억이 나지 않는지 답변을 하지 못하고 주춤거릴 때였다. 복태는 그 답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더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치기 어린 마음에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 그 답을 말해 버렸다. 귀호는 형도 풀지 못한 문제를 쉽게 풀어 버린 복태의 모습에 흐뭇했지만 복태는 서자였다. 형보다 잘난 아우는 있을 수 없고, 본 혈통인 용의보다 잘난 서자는 더더욱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안 그래도 질투심이 많은 용의는 복태의 잘난 체하는 얼굴이 꼴사나웠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 그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중에 반드시 되갚아 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귀호가 읽기라도 하듯, 한 번도 손을 올린 적이 없던 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태의 뺨을 후려쳤다.
“용의가 곧 대답할 참이었다. 그것 조금 안다 하여 용의를 조롱하려던 심산이더냐!”
복태는 아버지에게 맞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부분에서는 용의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귀호는 용의의 눈치를 살피다 더 혼내려는 사람처럼 복태를 질질 끌고 복태의 방으로 향했고, 방 안에 들어서면서 복태를 잡아끌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냥 아비가 주는 대로 먹고 입고,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남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는데 왜 안 될 일을 하겠다고 그리 애를 쓰는 것이냐.”
귀호는 일찌감치 복태가 품은 희망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똑똑한 아이이니만큼 그냥 내버려 둬도 크면 자기 주제를 알고 포기할 거로 생각했다. 감히 서자가 나랏일을 꿈꾼다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아니, 사실 아내 집안의 권세를 타고 간다면 무리하면 작은 관직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집안이 복태에게 그런 기회를 줄 리가 만무했다. 귀호는 사실 복태의 치기 어린 태도보다, 아내 집안의 힘이 자신의 온전한 힘이 되지 않은 것에 더 화가 났다. 그가 복태에게 내는 화는 사실은 모두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저는 도련님보다 글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항상 이 문밖에서 도련님이 글공부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어보시면 뭐든 잘 대답할 자신이 있습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복태의 태도에 귀호는 엄하게 꾸짖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가 잘해 봤자지! 병신으로 태어났는데 어찌 보통 사람을 따라잡아? 뭐든 잘해 봤자 딱 거기까지다. 네가 가진 복은 그저 아비에게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온실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왜 그걸 감사히 여기지 못하는 것이냐? 내가 어찌 만들어 준 온실인데! 너는 아무 데서나 막 자라기엔 너무 약하단 말이다……. 장애를 가지고 어찌 살 것이냐? 피조차 탁한 네가 무엇을 견딜 것이야.”
복태가 다리를 저는 것은 복태보다는 아버지 귀호의 자격지심이었다. 복태가 위를 바라볼 때마다 그 발목을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죄책감과 분노가 동시에 일어 복잡했다. 복태는 귀호가 야속했지만 포기할 줄 몰랐다.
“노력해서 아니 될 것은 없습니다.”
“아니! 안 된다. 네놈이 헛똑똑이로구나. 세상 물정 모르는 병신이구나! 세상에 나가 보거라. 네놈 생각과 그 말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야.”
“그럼 세상으로 나가게 해 주십시오. 세상으로 나가 배우겠습니다, 아버……, 어르신.”
귀호는 행여 세상으로 나갔다가 다쳐서 돌아올까 봐 걱정되어 복태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줄 수 없었다. 자기 자식인 복태가 그 하찮은 평민들한테 당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네가 가진 행복을 깨달을 때까지 이 문지방을 넘을 생각 말거라.”
귀호는 복태를 방 안에 가두었다. 복태는 문 앞에서 귀호를 연신 불러 댔지만 귀호는 단단히 마음먹고 뒤돌아 가 버렸다. 귀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복태는 문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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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쥬스

2016.03.0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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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바나나쥬스
무언가에 오랫동안 빠지지 않는 편인데 황제물을 좋아한 지 10년이 넘어섰습니다. 많은 황제물을 썼는데 이번만큼 긴 호흡으로 쓴 건 오래간만인 것 같습니다. 재밌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차

본편

-
외전

부부는 닮아 간다
짐보다 더 바람직하고 충성스런 독자가 작가님께 나타났다.
폐하께 나보다 더 젊고 신선한 작가가 나타났다.
부모의 자격
15년 후
외전 속의 외전 - 자황은 왜 소타의 소설을 끝까지 못 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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