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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 상세페이지

에세이/시

임화

일제강점기 한국문학 전집 060
소장전자책 정가9,800
판매가9,800

임화작품 소개

<임화> 임화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계급주의 이데올로기만을 앞세우던 당시의 카프 시단에서, 서정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시를 창작해 카프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만큼이나 그의 작품 또한 다양하게 변모한다. 여기에 실린 시들을 통해 임화의 폭 넓은 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임화는 시대적 상상력과 이데올로기 외에도 임화 시는 문학성을 제고하기 위한 시적 표현이나 형상화 방법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그 구체적 양상으로 우선 주목해 볼 것은 소통 구조와 미적 거리 등의 형상화 기법이다. 소통 구조에서 임화 시에는 표면적 화자와 표면적 청자의 양상이 가장 많이 나타나면서 화자만 등장하는 형태인 본격적 독백 시나 화자와 청자가 모두 등장하지 않는 사물 시(이미지 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점은 임화가 시의 창작 과정에서 일련의 대화적 ·서술적 담화 구조를 선호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미적 거리는 ‘부족한 거리(대상의 주관화)’, ‘지나친 거리(극적 이야기의 제시)’, ‘적절한 거리(사건의 내면화)’ 등이 다양하게 활용된다. 또한 이미지, 비유, 상징 등의 표현 기법도 빈도 높게 활용했다. 비유는 비교적 간단한 형태인 직유를 자주 사용했으며, 은유는 기본형인 계사형과 조사 활용형인 동·속격 ‘의’형, 그리고 용언 활용형인 동사형을 빈도 높게 활용했다. 이들은 임화 시의 표현미를 고양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으며, 그의 사상 편향의 시 내용에 시성(詩性)을 부여하는 데에 일조를 했다.



저자 프로필

임화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08년 10월 13일 - 1953년
  • 경력 카프 중앙위원회 서기장

2015.01.2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임화
본명은 임인식(林仁植)이다. 임화는 필명이다. 1908년 10월 13일, 서울 종로의 낙산 아래에 위치한 보통 가정에서 태어난다.
1926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는 한편, 카프(KAPF)에 가입해 이후 우리나라 프롤레타리아문학 활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 1927년에는 ‘임화’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다이즘 성격의 시를 발표하기도 한다. 카프에 몸을 담기 시작한 이래 일관되게 계급주의문학을 추구해 나갔다. 이듬해인 1928년에는 박영희의 지도를 받으며 김기진, 송영, 김영팔, 최서해, 최승일, 박팔양, 이기영, 안석영 등 카프 맹원들과 친교를 맺고 프로문학 운동에 더욱 깊숙이 관여한다.
1929년에 박영희의 도움으로 동경으로 가서 김남천, 안막 등을 만나 훗날 카프를 장악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이른바 제3전선파로 불리는 일본 유학파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카프시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다. 바로 이 시기, 도일을 전후해 단편 서사시 양식을 개척한다. 또한 이즈음에 김기진과 박영희의 이른바 내용·형식 논쟁이 일어나는데, 임화는 박영희의 편에 서서 김기진을 기회주의적 개 량형 활동가라고 비판한다. 이 무렵 영화에도 관심을 보여 <유랑>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한편 <혼가>를 직접 제작하여 개봉하기도 한다.
1931년, 동경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안막, 김남천, 권환 등과 손잡고 카프의 구세대 인물들을 일선에서 후퇴시키고 카프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1931년에 벌어진 일제의 카프 맹원들에 대한 제1차 검거 사건에서 박영희와 함께 체포되어 3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이듬해에 김남천 등과 함께 카프의 제2차 방향 전환을 주도한 후 최고 지도자인 서기장 자리에 오른다. 1934년에는 박영희의 전향 선언이 나오고 세칭 신건설사 사건(전주 사건)으로 불리는 카프 제2차 검거 사건이 일어난다. 이때에 카프 맹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 인물이었던 그는 폐병으로 투옥을 면한다. 그러나 조직 내외의 여건이 악화되자 임화는 1935년에 카프 해소파들과 함께 카프를 해산하기에 이른다.
1936년 이후 정세 악화로 문학을 통한 정치적 투쟁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자, 문학의 정치적·현실적인 문제보다는 그 본질 문제나 문학사 쪽으로 관심을 돌린다. 1938년에 이르러 첫 시집 ≪현해탄(玄海灘)≫을 발간하는데, 이 시집은 계급주의 이념과 서정성이 절실하게 조화를 이룬 수준 높은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이듬해에는 ≪개설 신문학사≫를 집필하고 1940년에는 일제 치하에서 가장 방대하고 수준 높은 평론집인 ≪문학의 논리≫를 발간하는 한편, 1944년에는 ≪조선 영화 연감≫과 ≪조선 영화 발달사≫ 등 영화 관련 저서를 집필하기도 한다.
광복이 되자 임화는 이원조, 김남천, 이태준 등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를 결성하고 그 중심인물이 된다. 1946년에는 위조지폐 사건인 이른바 ‘정판사 사건’이 터지면서 미군정의 남로당 탄압이 적극화되는데, 이 어려운 때에 임화는 남로당 외곽 단체인 ‘민전(民戰)’의 기획 차장을 맡아 남로당 문화 담당 최고 이론가로 활동한다. 그런 와중에도 1947년에는 제2시집 ≪찬가(讚歌)≫와 시선집 ≪회상시집(回想詩集)≫을 발간해 문학 활동을 꾸준히 전개한다. 미군정의 남로당원 탄압이 심해지자 끝내 월북해 황해도 해주로 이동한다.
1948년 이후 박헌영이 있는 평양으로 가서 그를 지지하는 문학 노선을 견지하면서 ‘조선문화예술총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한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을 따라 서울로 돌아와 잠시 머문 뒤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간다. 이때의 전선 체험은 1951년에 발간한 네 번째 시집 ≪너 어느 곳에 있느냐≫에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이듬해에 관제 비평가 엄호석 등에 의해 이 시집의 시편들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정치적 비판을 받는다. 1953년 8월 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부에서 미제의 고정간첩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목차

시집 <현해탄>
네거리의 순이
세월
암흑의 정신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나는 못 믿겠노라
옛 책(冊)
골프장(場)
다시 네거리에서

강(江)가로 가자

가을바람
벌레
안개 속
일년(一年)
하늘
최후의 염원
주유(侏儒)의 노래
적(敵)
지상의 시
너 하나 때문에
홍수 뒤
야행차 속
해협의 로맨티시즘
밤 갑판 위
해상에서
황무지
향수
내 청춘에 바치노라
지도
어린 태양이 말하되
고향을 지나며
다시 인젠 천공에 성좌가 있을 필요가 없다
월하의 대화
눈물의 해협
상륙
현해탄
구름은 나의 종복이다
새 옷을 갈아입으며
행복은 어디 있었느냐?
바다의 찬가
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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