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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상세페이지

소설 일본 소설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구매종이책 정가14,000
전자책 정가11,200(20%)
판매가11,200

책 소개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재일 한국인 3세 작가의 제51회 문예상 수상작!
높은 문학성과 압도적인 필력이 빚어낸 경이로운 작품!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로맨틱 ‘악녀 소설’ 탄생



“이 개똥 같은 세계에서 제가 살아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는 문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마이니치 신문》 작가 인터뷰 중에서

“이 소설에는 안이한 희망 의존증을 과감히 베어내는 힘이 있다. 참된 희망은 그 끝에 존재한다.”
- 호시노 도모유키

“일단 이 세계에 말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다. 오사카판 『실락원』 같은 으스스한 이야기에 못 박혀버렸다.”
- 야마다 에이미





◎ 작품 소개

제51회 문예상을 수상한 재일 한국인 3세 작가에게 쏟아진 심사위원들의 격찬
이토록 이질적인 체력으로 서술된 소설은 지금까지 없었다!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로 제51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 욘도쿠는 일본 문학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다. 문예상은 일본의 출판사인 가와데쇼보신샤(河出書房新社)에서 1962년에 설립한 문학상으로, 기성 문단에서는 보기 힘든 창조적 발상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신예를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일본 문학계에 새로운 재능을 송출하기로 정평이 난 문예상을 통해 데뷔한 이들은 야마다 에이미, 아시하라 스나오, 와타야 리사, 나카무라 코우 등으로, 그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와타야 리사를 비롯한 세 명의 수상자가 연이어 아쿠타가와 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며 실력을 가진 신예를 단번에 저명 작가로 만들어주는 전례가 많은 문학상으로도 유명해졌다.
이 욘도쿠는 재일 한국인 3세다. 원서의 ‘李龍德’이라는 한자 이름 옆에는 ‘이용덕’이 아니라 ‘이 욘도쿠’라는 발음이 적혀 있다. 李龍德, 이용덕, 그리고 이 욘도쿠. 이 이름 자체에서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온 그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이 깊이 묻어나온다.

살인, 엽기, 고문, 학살…… 세계의 잔혹사와 함께하는 기묘한 섹스
사신 같은 여자에게 빠져든 한 남자의 파멸 본능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류 대학을 목표로 공부 중인 삼수생 도쿠야마는 이자카야 동료들을 따라 찾은 단란주점에서 그곳의 넘버원인 열아홉 살의 하쓰미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넘버원에 걸맞은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는 도쿠야마를 보자마자 어찌 된 일인지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린다. 그 기묘한 태도에 화가 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도쿠야마였지만 그녀가 몰래 건넨 명함을 펴보지도 않고 버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힘들거나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주세요. 언제든지.’
이상한 메시지에 기겁하여 하쓰미를 냉대하는 도쿠야마의 태도는 아랑곳없이 그의 생활 깊숙이 파고드는 하쓰미. 도쿠야마는 하쓰미가 엄청난 지식과 기억력으로 황홀하게 그려내는 ‘세계의 잔혹사’를 들으며 기묘한 섹스에 탐닉한다. 찐득하게 달라붙는 그녀의 염세적 세계관에 침식된 그는 결국 가족, 친구, 동료 등 외부와의 연결 고리를 하나씩 끊어간다. 몸도 마음도 샴쌍둥이처럼 붙어버린 두 사람은 기어이 한없이 투명해져만 가는 운명을 향해 몸을 던진다. 그 운명의 끝에서 그들이 맞닥뜨릴 삶의 비의란 과연 무엇일까.

『마농 레스코』를 뛰어넘는 희대의 로맨틱 ‘악녀 소설’
역사상 가장 모던하고 세련된 ‘동반자살 스토리’ 탄생!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결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차라리 좀 더 깊고, 절실하고, 뼛속까지 엮인 두 사람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단순히 강렬하고 뜨거운 사랑이라고 정리하기에는 미진한 고통스러운 맺어짐과 지옥 속의 극락, 달콤한 꿀 속에 빠져 익사하는 것과도 같은 충격적 스토리가 펼쳐진다.
하쓰미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인간의 추악하고 교활하며 야비하고 쩨쩨한 면을 언제나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다. 허세로 가득 찬 인간, 우월감을 감추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인간, 약자를 무시하고 착취하면서도 겉으로는 위선을 떠는 인간 등을 거침없이 논파하고, 그들의 상처를 도려내 땅바닥에 내던져버린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추함을 손바닥 위에 놓고 데굴데굴 굴리는 하쓰미의 모습은 쾌감과 공포감을 동시에 선사하며 아찔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뛰어난 문학은 때로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분명 나 하나뿐일 거야’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작품의 등장인물을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 작가가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나 자신의 내면을 대변한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하쓰미의 결벽함, 도쿠야마의 우유부단함, 가타오카의 비겁함, 히우라의 지질함을 우리는 저마다 지니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무시무시한 각성 효과를 나타낸다. 그저 소설을 읽고 있을 뿐인데 흙투성이 손이 들어와 내장을 휘젓는 듯한, 독자를 코너에 몰아넣고 이렇게 생겨먹은 자신의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또 묻는 문학 본연의 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욘도쿠 작가가 그려낸 절망적인 풍경에 한 줄기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은 절망을 철저히 지켜본 끝에 다다른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만큼이나 환멸과 타락에 빠진 끝에 찾아낸 ‘희망’은 세간에 흔히 떠도는 싸구려 희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소설의 가치, 문학의 가치는 이런 새로운 지평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 해외 추천사

엄청난 역량이다. 지금까지의 일본 문학과는 이질적인 체력으로 서술되었고 나는 이 점에, 과장스럽게 말하자면, 압도되었다.
- 호사카 가즈시(소설가)

이 소설의 덫에 완전히 걸려들었다. 주술적인 언어의 힘에 의해 봉인이 풀려버린 ‘카운터 악의’의 공포와 쾌락. 하쓰미가 도쿠야마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모습은 세계를 멸망시키는 행위의 상징이다. 그 과정을 언어의 힘으로 보여주려는 도전은 그야말로 문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안이한 희망 의존증을 과감히 베어내는 힘이 이 소설에는, 있다. 참된 희망은 그 끝에 존재한다. 두말할 것 없는 수상작.
- 호시노 도모유키(소설가)

일단 이 세계에 말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다. 오사카 주소(十三)판 『실락원』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으스스한 이야기에 못 박혀버렸다.
- 야마다 에이미(소설가)

이 무슨 독(毒)인가. 세계를 고문하는 듯한 이 허무와 저주. 박수!
- 후지사와 슈(소설가)

폭발적인 질주와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제하는 힘이 서로 다투는 가운데 태어난 작품. 주인공이 걸어가는 암흑의 여행길에 함께 빨려 들어가고, 그렇게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주위의 풍경이 평소와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야말로 아득히 먼 곳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 《마이니치 신문》




◎ 이 욘도쿠 작가 인터뷰

‘동반자살’ 암흑의 여행길 - 《마이니치 신문》(2014. 11. 25.)

“약해진 사람이 베갯머리에 놓고 되풀이해서 읽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내가 그랬으니까요. 사막에서 물을 찾듯이 서점에 나가 쓰무라 기쿠코 씨와 와타야 리사 씨의 소설에 힘을 얻곤 했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그러면서도 그로테스크하거나 눅눅하지 않은 소설을 써내고 싶습니다.”
그런 신념이 ‘동반자살’이라는 주제를 얻었다. 폭발적인 질주와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제하는 힘이 서로 다투는 가운데 태어난 것이 이 작품이다. 주인공이 걸어가는 암흑의 여행길에 함께 빨려 들어가고, 그렇게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주위의 풍경이 평소와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야말로 아득히 먼 곳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하쓰미는 세계를 고발하고 항의하며, 도쿠야마를 계몽해주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신이기도 하다. 도쿠야마는 서서히 파멸에의 소망을 가지게 된다.
두 사람이 교토에서 네트워크 비즈니스 집단과 대치하는 장면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고 한다. 돈이 전부라는 강력한 논리에 맞서는 하쓰미와 그런 하쓰미를 신봉하는 도쿠야마.
“이 부분을 극복한 덕분에 소설을 끝까지 써낼 수 있었습니다. 아니, 내가 썼다기보다 하쓰미가 이끌어주는 대로 따라갔다고 하는 게 맞겠지요.”
두 사람의 세계는 서서히 그 영역이 좁아지며 투명도가 더해간다. 언어의 의미가 희박해지는 과정을 그려낸 필력은 오랜 수련을 거친 기술이다.
마지막 부분의 하쓰미의 중얼거림에는 눈물이 난다.
“당신 탓이야.” “어렵게 차까지 샀는데.”
맨션 지하 주차장에는 빨간 새 차가 있었다. 왜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까. 보고 싶은 멋진 풍경도 없었을까.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진공(眞空), 그곳에 완전한 절망이 있었다.
인터뷰는 이 작품의 중요한 무대인 주소의 한 찻집에서 진행했다.
“이 개똥 같은 세계에서 제가 살아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이유는 문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쾌작(快作)을 거둔 작가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주소의 상점가 안으로 걸어갔다.




◎ 본문 발췌

계속 어렴풋한 위화감을 풍기는 그 책장 앞에 가서 섰다. 저절로 흠칫했다. 줄줄이 꽂힌 책의 제목에 ‘살인’, ‘잔혹’, ‘지옥’, ‘엽기’, ‘고문’, ‘학살’ 같은 오싹한 단어가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느낌표가 유난히 많고 폰트도 일일이 피투성이를 모방한 것처럼 과장스럽다.
“이런 거 좋아해?”
도쿠야마는 등 뒤에 누워 있는 하쓰미에게 물었다.
하쓰미는 고개를 들어 팔베개를 하고 “이런 거라니, 뭔데요?”라고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코에 걸린 목소리를 냈다.
“저기 ‘살인의 뭐뭐’라든가 ‘학살의 뭐뭐’라든가 ‘고문 백과전서’라든가, 어쩐지 악몽을 꿀 것 같은 책들이잖아.”
“아, 그거요?” 하쓰미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요.”라고 침대 위에서 큰대자로 우우우 기지개를 켜고 나서 말했다. “거기에 인간의 악의를 모두 다 진열하고 싶어요.”
― 65쪽 중에서

“역시 괴짜구나, 너. 아주 상당히 괴짜야.”
“네, 근데 그만두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둘게요. 내다버리라고 하면 내일이라도 전부 다 버릴 거예요. 어차피 물건일 뿐이니까.”
0 “나는.” 하쓰미가 말을 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달라, 그런 말은 안 해요. 절대로 안 할 거예요.”
“아니, 자, 잠깐만.”
“안 돼요?”
“안 되다니, 그런 말은 한마디도 안 했어. 그보다 너는 지금 그대로가 좋아. 지금 그대로 괜찮다고. 아니, 그보다 우리, 서로 안 지도 얼마 안 됐고, 개성적인 면도 뭐랄까, 좀 괴짜라서 좋아, 재밌어. 그야 약간 멈칫한 건 사실이지. 여자 방에서 〈흠뻑 젖은 욕정〉이라는 포르노 비디오를 발견하면, 그야 그렇잖아?”
― 67~68쪽 중에서

“이 잡지.” 하쓰미는 책장 아랫단에서 대형 사이즈의 경제 잡지를 꺼냈다. “여기 특집호에 이 시대를 주도하는 경영인, 성공인 들의 반생이니 인터뷰니 하는 게 실려 있는데, 이것도 진짜 지독해요. 지독하고, 대단해요. 그럴싸한 거짓말만 한가득. 또는 참 잘도 이런 말을 지껄이는구나, 감탄이 터지는 폭언들. 하긴 블랙기업이니 격차사회라는 게 주목받기 전이니까 이런 말도 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진짜 끔찍해요. 옛날 『여공애사』의 경영자들과 기본적으로 달라진 게 전혀 없어요. 부정(不正)은 방편일 뿐이고 법률은 족쇄로 써먹고, 아무튼 자신들이 하는 일은 국가를 위한 것이니까 찍소리하지 마라, 우울증도 과로사도 노동자의 자기 책임이다, 마음대로 앉지 마라, 마음대로 쉬지 마라, 마음대로 밥 먹지 마라, 마음대로 살지 마라, 마음대로 죽지 마라, 그런 식이에요. 놀고 있죠. 놀고 있고, 진짜 저질이고 천박해요.”
이런 이야기를 아주 즐겁게 하는구나, 하고 도쿠야마는 느꼈다. ‘끔찍하다’든가 ‘진짜 저질’이라는 말을 할 때, 하쓰미는 표정을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심지어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 71~72쪽 중에서

똑같은 놀이에 한없이 열중하는 아이처럼 하쓰미는 간단히 덫에 빠져들었다. 둘이서 알몸으로 침대 시트를 둘둘 말고 누워 있을 때 시력 좋은 도쿠야마는 책장의 책등을 보며 적당한 책을 골라냈다. 이를테면 “『중국의 3대 악녀』는 어때?”라고 운을 떼면 하쓰미는 열의를 담아 그 상세한 내용을 이것저것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도쿠야마는 시트 속으로 기어들어가 하쓰미의 곳곳을 더듬었다. ‘불경(不敬)’이라는 말이 수없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뭐가 어찌 됐건 즐거움이 더 컸다. 이야기를 끝내고 마침내 장난꾸러기를 찾아냈다는 듯이 하쓰미가 시트 속에 기어들어간 도쿠야마의 어깨를 와악 하고 깨물면 그 길로 덮쳐들어 한 덩어리로 시트를 휘감으며 드잡이를 하는 장난에 뛰어들고, 그러다가 점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평범하게 섹스를 시작하는 것보다 한층 각별하게 쾌락이 깊었다.
이런 도입부가 두 사람의 습관이 되었다.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타고난 것인지, 하쓰미는 매번 할 때마다 똑같은 패턴에 널름 걸려들었다. 학습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그런 점이 또한 도쿠야마에게는 너무도 재미있게 느껴져서, 인륜에 어긋난 이 놀이를 그만둘 수 없었다.
― 90~91쪽 중에서

“아무튼 행복은 꿈에 지나지 않고 고통이야말로 현실이에요.”
도쿠야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쓰미는 말했다.
“아예 죽는 건 어때요?”
“참내, 뭔 소리야.”
도쿠야마는 웃었다. 강가의 다른 커플들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들은 어떤 대화를 하고 있을까.
“아니, 진짜예요. 오래 살아봤자 좋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점점 나빠지기만 하지. 죽을 거라면 한시라도 빨리, 젊어서 아직 상처가 적은 동안이 좋아요.”
“얘가 진짜, 뭔 소릴 하는 거야.”
“죽읍시다. 동반자살, 그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 방법이에요. 유일한 방법,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의지와 목적과 결과가 일치하고 게다가 성공의 순간이 그대로 영원이 되는 유일한 아이디어. 동반자살하자고요. 응? 응?”
― 164쪽 중에서

“도쿠야마, 웬 어울리지도 않는 소리를 해?” 가타오카는 말했다. “소문에 듣던 대로 역시 좋지 않은 여자 친구인 모양이구나.”
이건 또 뭔가, 소문이라니? 도쿠야마는 내심 씁쓸했다.
“어떻게 할 거야, 그 여자 친구하고?”
“어떻게 하기는, 뭘요? 그냥 평범하게 결혼하고 살겠죠, 하쓰미하고.”
전에 후지쿠라에게 들은 말을 이번에는 자신의 주장처럼 대답했다.
가타오카가 이번에는 도쿠야마의 어깨에 손을 척 얹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또 우는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침울해진 얼굴이 어슴푸레한 가운데 떠올랐다.
“아무튼 죽어도 괜찮다는 그 얘기, 좋지 않아.” 가타오카가 말했다. “도쿠야마에게 좋지 않아. 아니, 그보다 도쿠야마답지 않아. 너답지 않다고, 그런 건. 역시나 악녀였네. 그것도 상상 이상으로.”
“악녀라니…….”
반사적으로 도쿠야마는 마녀사냥으로 화형에 처해지는 하쓰미의 모습을 연상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하쓰미였다.
“죽는다느니, 그런 소리 못하게 할 거야. 절대로 내가 못하게 하겠어. 진심이건 농담이건, 내가 절대로 그런 건 허락 못해.”
― 188~189쪽 중에서

아르바이트를 막 시작했을 무렵, 도쿠야마는 히우라를 동경하고 우치바에게 의지했다. 양쪽 다 실수였다고 도쿠야마는 이제 마음을 비웠다. 우정을 나누려 했던 것조차 잊고 싶은 과거였다.
“비겁한 놈이야, 넌.” 도쿠야마는 말을 이었다. 하쓰미의 빙의가 느껴졌다. “너 같은 놈이 유대인 싣고 아우슈비츠로 달리는 열차를 태연히 손 흔들며 배웅할 놈이지. 후투족으로 태어나면 투치족을 죽이고 투치족으로 태어나면 후투족을 죽이고, 민족 정화라는 명목의 성폭행 수용소에 동료들과 몰려가 킬킬거리면서 그 짓거리를 할 놈이야. 그러고는 ‘어쩔 수 없잖냐, 인간의 본성이니까’라는 걸로 뭉개버리지.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져도 ‘시대가 그런 시대였으니까 딱히 누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라는 걸로 뭉개버려. 그런 놈이야, 너란 놈은.”
세 사람이 일제히 입을 헤벌리고 멍해져버린 것을 도쿠야마는 피부로 느꼈다.
― 211~212쪽 중에서



저자 소개

※ 저자소개


이름: 이용덕(李龍德)약력: 1976~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 한국인 3세사이타마 현에서 출생하여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 한국인 3세로,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를 졸업했으며, 2014년 제51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주인공 도쿠야마가 걸어가는 암흑의 여행길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무시무시한 필력은 엄청난 수련의 결과물로 심사위원 전원의 격찬을 받았다. “약해진 사람이 베갯머리에 놓고 되풀이해서 읽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거나 눅눅하지 않은 소설을 써내고 싶어요.”라는 작가의 말처럼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는 파멸을 향한 폭발적인 질주와 그 질주에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힘이 팽팽히 다투는 가운데 태어난 작품이다.

★ 문예상: 야마다 에이미부터 와타야 리사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대형 신인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 문예상은 1962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문학계에 끊임없이 새로운 재능을 송출하고 있다.
※ 역자소개


이름: 양윤옥약력: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2005년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달』,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 『굽이치는 달』,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악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여자 없는 남자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올림픽의 몸값』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1.
2.
3.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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