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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상세페이지

소설 독일 소설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문득 2)
소장종이책 정가11,500
전자책 정가30%8,050
판매가8,050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작품 소개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인간 존재의 숙명적 불안과 닫힌 사회의 부조리를
함축적 은유로 그린 매혹적 상징주의의 세계

이 책에 실린 카프카의 소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이 말하는 소설과 동물이 말하는 소설. 이중 전자, 곧 인간이 말하는 소설은 인간 존재의 숙명적 불안과 닫힌 사회의 부조리를 전해준다. 대개의 작가들이 그렇듯 카프카에게도 자전적인 작품들이 있는데, 둘 다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전혀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수도 없는 어떤 부자父子의 이야기인 「판결」과 법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골 남자와 문지기와의 실랑이를 그린 「법 앞에」가 그렇다. 그런데 그 세계는 “꿈과 같은 나의 내면의 삶을 서술하는 것이 다른 모든 것을 부차적으로 만들었다”는 카프카의 말처럼 함축적 은유를 통해 제시됨으로써 매혹적인 상징주의의 세계로 재창조된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 카프카는 문학을 ‘기도의 형식’이자 ‘구제의 수단’으로 여겼다. 그는 문학을 통해 자유로운 인간을, 그리고 따뜻한 공동체를 꿈꿨다. 그는 문학을 통해 세계의 부정성을 넘어설 수 있으며 세상과 화해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기에 문학을 통한 ‘변신’을 믿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철창 안에 갇힌 ‘빨간페터’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다른 개들을 연구하는 어떤 개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쥐의 족속인 가수 ‘요제피네’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러한 믿음이 그 자신에게는 허사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카프카는 유언으로 자신의 작품이 포함된 모든 서류를 불태워줄 것을 희망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의 원고를 관리했던 막스 브로트Max Brod는 이를 따르지 않고 그의 유작, 일기, 편지 등을 출판했다. 덕분에 우리는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존재의 불안과 인간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선사받을 수 있었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던 카프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그의 말마따나 날을 벼린 도끼가 되어 굳어 있는 우리의 머리와 멈춰 있는 우리의 심장을 부숴버릴 것이다.


출판사 서평

카프카여, 또 다른 변신들과 함께 우리들에게로 다시 날아온 ‘검은 까마귀’여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그레고르 잠자’가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독자들은 잠자 자신만큼이나 그 ‘변신’에 대해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충격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어서 오래도록 「변신」을 그리고 그것을 쓴 프란츠 카프카를 기억하게 한다. 그 강렬함만큼이나 「변신」은 위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이런 것을 쓰도록 허락받은 작가가 있다는 것을 몰랐구나!”라며 탄식했겠는가?

그런데 그 강렬함이 만들어낸 기억이 카프카에게는, 그리고 아직 읽히길 기다리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게는 부당하면서도 나쁜 일이 되어버렸다. 「변신」만큼이나 강렬하고 위대한 작품들에게는, 그 작품들로 이루어진 ‘카프카’에게는 말이다. 카프카를 「변신」의 작가로만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 또 다른 변신들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기도 하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비웃을 수는 없다. 그런 행위는 의무를 저버리는 짓이다. 우리 중에 가장 못된 인간들이 요제피네에게 하는 가장 못된 짓이라고는 이따금 “요제피네를 보면 웃음이 사라져”라고 말하는 일뿐이다.
_「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중에서

우리의 법과 제도는 모두, 그 가운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몇 안 되고 많은 것을 잊어버렸는데, 우리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행복에서, 함께 사는 따듯한 삶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한다.
_「어느 개의 연구」 중에서

믿어지는가? 저 위트로 가득한 말들이, 부드럽고 따뜻한 말들이 잔인하고 냉혹하고 처절한 「변신」의 말들을 만들어낸 카프카의 말들이라는 것이! 모든 위대한 작가들이 그렇듯 카프카의 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아니 지극히 복잡하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 문득 시리즈의 첫 번째 작가 이상이 까마귀의 눈으로 세계를 보았듯 카프카도 그랬으니 말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의 성이 이미 자신의 모국어인 체코어로 ‘검은 까마귀’였으니.

친구이자 「밀레나에의 편지」의 편집자인 빌리 하스가 말했듯 “(당시의) 프라하에서 태어나지 않고 프라하에서 살아보지 않은 자는 카프카의 문학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그의 삶과 문학은 이미 충분히 복잡한 것이었다. 카프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헤미아 왕국에서 태어나 서른다섯 살에는 같은 곳에 살면서도 체코의 국민이 되어야 했다. 그는 체코인이면서도 자신의 문학을 담기에는 충분치 않은 수준의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해야 했다. 또한 그는 프라하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에게는 시오니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몸과 마음이 쉬어야 할 집에서는 기질적으로 너무도 다른,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끊임없이 갈등해야만 했다. “저는 문학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고 문학 이외의 것이 될 수 없으며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라는 카프카의 저 말이 문학적 비유로서뿐만 아니라 삶을 위한 다짐으로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문학은 인간이 하는 일종의 진지한 농담일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의 삶은 그로 하여금 농담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문학을 하고자 했고, 그래서 그는 농담이 되기로 했다. 검은 까마귀의 눈으로 벌레로부터 원숭이, 개, 두더지를 거쳐 쥐로 이어지는 변신들을 통해 그는 농담 그 자체가 되었다. 그리고 이윽고 자신의 말마따나 문학 그 자체가 되었다.

저마다 한때 「변신」과 함께 기억 속으로 날아갔던 ‘문학 그 자체’가 다른 변신들을 데리고 우리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로소 카프카의 세계를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조심스레 권해본다. 우리들에게로 다시 날아온 ‘검은 까마귀’를 위해, 그의 또 다른 변신들을 위해, 무엇보다 가녀린 몸으로 “거의 모든 생명력을 짜낸다는 듯” 노래하는 요제피네라는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농담을 위해.

문득은 공명의 문학 브랜드 스피리투스가 야심차게 소개하는 문학 시리즈다. 시대를 초월해 문학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들을 다시 호출해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글文을 얻을 수 있는得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득 시리즈는 이상과 프란츠 카프카에 이어 에드거 앨런 포, 허먼 멜빌, 세르반테스, 김동인, 현진건, 채만식 그리고 김유정 등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을 수 없었던 그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새로운 장이 되고자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의 내용 및 특징

인간 존재의 숙명적 불안과 닫힌 사회의 부조리를
함축적 은유로 그린 매혹적 상징주의의 세계

이 책에 실린 카프카의 소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이 말하는 소설과 동물이 말하는 소설. 이중 전자, 곧 인간이 말하는 소설은 인간 존재의 숙명적 불안과 닫힌 사회의 부조리를 전해준다. 대개의 작가들이 그렇듯 카프카에게도 자전적인 작품들이 있는데, 둘 다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전혀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수도 없는 어떤 부자父子의 이야기인 「판결」과 법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골 남자와 문지기와의 실랑이를 그린 「법 앞에」가 그렇다. 그런데 그 세계는 “꿈과 같은 나의 내면의 삶을 서술하는 것이 다른 모든 것을 부차적으로 만들었다”는 카프카의 말처럼 함축적 은유를 통해 제시됨으로써 매혹적인 상징주의의 세계로 재창조된다.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과 인간의 삶에 대한 희망을 전하는 복화술

카프카는 인간 존재의 숙명적 불안과 닫힌 사회의 부조리를 함축적 은유를 통해 그려낸 작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흉측한 벌레뿐 아니라 원숭이, 개, 두더지 그리고 심지어 쥐로 추정되는 존재들로 나타난다. 카프카는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이후에도 다양한 종족으로 변신해가며 끊임없이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이렇듯 카프카가 우화적 모티브를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화, 정확히는 동화에 대한 그의 관심 때문일 것이다.

“피비린내 나지 않는 동화란 없습니다. 동화란 어느 것이나 다 피와 불안의 심처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이것이 모든 동화의 유사성입니다. 표면은 다릅니다. 북유럽의 동화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동화같이 풍부하고 공상적 동물상으로 차 있지는 않으나, 알맹이인 동경의 깊이는 같은 것입니다.”

카프카는 ‘공상적 동물상’을 통해 ‘피와 불안의 심처’를 드러내려 했고, 동시에 무언가에 대한 ‘동경의 깊이’를 추구했다. 하지만 이는 모순되는 것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었다. 카프카는 이 모순됨, 즉 피와 불안으로 이루어진 존재를 그리면서 동시에 그 존재에 대한 동경, 애정을 표현하는 일의 모순됨을 극복하기 위해 ‘공상적 동물상’을 끌어왔고, 이들의 눈과 입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과 인간의 삶에 대한 믿음, 정확히는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전했다. 마치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 복화술처럼 말이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는 인간의 것 중 악수를 처음으로 배운 원숭이 ‘빨간페터’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저와 전혀 어울리지 않고, 건성으로 어떤 원숭이한테서 따온 이름”이라고 규정한다. 이름은 한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오지 않는 미래가 아닌, 지나가고 있는 현재가 아닌, 과거를 통해 규정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인간들은 그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구상에 걸어 다니는 모든 생물체는 원숭이 시절을 뒤꿈치를 간질이는 바람 정도로 생각합니다. 보잘것없는 침팬지든, 위대한 아킬레스든.
_「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중에서

‘빨간페터’가 인간의 흉내를 낸 것은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따라서 ‘자유’를 얻는 일이 아니었고 스스로 짊어진 ‘멍에’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숭이로서의 과거를 잃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혼자’였던 원숭이가 인간의 흉내를 냄으로써 인간으로 편입되는 것은 자유를 잃어버리는 일, 존재를 상실하는 일임을 알려주는 ‘빨간페터’의 음성 속에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웠던 과거를 떠올린다.

카프카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예술에 대한 찬가!

카프카의 세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중에서도 이 책의 표제작인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은 예술에 대한 그의 고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에서 아주 귀중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는 예술에 대한 많은 견해를 쏟아냈지만, 정작 작품 속에서는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예술이란 어떤 것일까?

그러나 요제피네 앞에서 들으면 그것은 단순히 휘파람이 아니다. 요제피네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 보기도 해야 된다. 우리가 노상 불어대는 휘파람과 다를 바 없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일단 특별한 점이 있는데, 별것 아닌 평범한 일을 하기 위해 진지하게 자세를 잡고 선다는 점이다. 호두를 까는 일은 알다시피 예술이 아니다. 그러므로 즐거움을 준답시고 관객을 모아놓고 그 앞에서 호두를 까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관객이 좋아한다면 그 행위는 단순한 호두 까기가 아닌 것이다.
_「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중에서

카프카에게 예술은 그라는 존재 자체이자 그의 삶 자체였다. 따라서 그것은 “별것 아닌 평범한 일을 하기 위해 진지하게 자세를 잡고” 서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사람들 혹은 쥐들, 그러니까 대중들은 어떠한가? 요제피네가 자신의 예술과 휘파람 사이에 그 어떤 연관성도 인정하지 않음에도 대중들은 그녀의 노래를 별것 아닌 휘파람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정확히 자신이 정한 방식으로 감탄하기를 원하지만, 대중들은 ‘철부지 같은’ ‘열광과 갈채’만을 보낼 뿐이다. 이런 요제피네에서 뒤샹이 그려지는 것은 왜일까?

이 작품은 뒤샹의 「샘」이 발표하고 7년 뒤에 쓰인 작품이다. 요제피네는 ‘귀머거리 앞에서 노래한다’고 말한다. 「샘」 앞에서 당대의 사람들은 ‘예술머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열광과 갈채’가 없지는 않았다. 뒤샹은 아마도 이를 보며 자신이 말하는 ‘진정한 이해’를 포기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열광과 갈채는 음악을 즐기기에는 너무 늙은 존재들의 노래 듣기 같은 것이었을 테니까. 이는 카프카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카프카에게 예술, 곧 요제피네의 노래이자 그 자신의 문학은 “슬픈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운명에 의해 내쳐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필요한 만큼 일하고 최대한 썼다. 요제피네 또한 필요한 만큼의 노동을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노래를 불렀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공동체의 불안한 삶을 위해서였다.

우리의 삶은 매우 불안하다. 하루하루가 놀라움과 공포, 희망과 경악의 연속이다. 동료들이 매일 밤낮으로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 모든 일을 혼자 견디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동료들이 도와줄 때조차도 힘들 때가 드물지 않다. 때때로 원래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부담 때문에 수천의 어깨가 떨리기도 한다. 그럴 때 요제피네는 자신이 나서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_「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중에서

카프카에게 예술은, 문학은 ‘혼자 견디기란 불가능’한 삶을 위한, 떨리는 수천의 어깨를 위한 노래였다. 그러나 요제피네의 노래를 요제피네가 갈망하는 그런 의미의 즐거움으로 듣지 못했던 사람들 혹은 쥐들처럼 당대의 독자들은 카프카의 문학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카프카는 요제피네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예술에 대한 공식적이고 분명한, 오랜 시간에 걸쳐 효력을 유지하는, 지금까지 알려진 명성을 훨씬 능가하는 인정”을 손에 넣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곧 닥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음에도 “이 요구를 계속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둘 중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으로 썼다. 그리고 결국 우리 민족의 영원한 역사 속에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처럼 사라졌다. 한 단계 더 높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믿으며.

책은 우리 내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 카프카는 문학을 ‘기도의 형식’이자 ‘구제의 수단’으로 여겼다. 그는 문학을 통해 자유로운 인간을, 그리고 따뜻한 공동체를 꿈꿨다. 그는 문학을 통해 세계의 부정성을 넘어설 수 있으며 세상과 화해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기에 문학을 통한 ‘변신’을 믿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철창 안에 갇힌 ‘빨간페터’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다른 개들을 연구하는 어떤 개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쥐의 족속인 가수 ‘요제피네’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러한 믿음이 그 자신에게는 허사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카프카는 유언으로 자신의 작품이 포함된 모든 서류를 불태워줄 것을 희망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의 원고를 관리했던 막스 브로트Max Brod는 이를 따르지 않고 그의 유작, 일기, 편지 등을 출판했다. 덕분에 우리는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존재의 불안과 인간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선사받을 수 있었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던 카프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그의 말마따나 날을 벼린 도끼가 되어 굳어 있는 우리의 머리와 멈춰 있는 우리의 심장을 부숴버릴 것이다. 그래서 물어본다. 자, 그 도끼에 깨질 준비가 되셨는가, 독자들이여. 문학이 존재하는 한, 인간 내면의 언 바다를 깨는 도끼를 만든 문학의 헤파이토스로 기억될 카프카를 다시 혹은 비로소 만날 준비가 진정 되셨는가?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평가

이 얼마나 진기하고 흥분되며 독창적이면서 또 즐거움을 주는 책인가! 이것은 너무나 정교한 거미줄이며 상상의 세계의 건축물이다.
_헤르만 헤세Herman Hesse

카프카의 작품 가운데 나와 관계가 없거나 나를 놀라게 하지 않는 구절은 없다.
_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20세기 문학의 시작 현대문학의 신화가 된 카프카의 불멸의 단편들! 카프카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들은 꿈처럼 형상화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꿈의 바보짓을 정확히 흉내냄으로써 생의 기괴한 그림자놀이를 비웃고 있다. 그러나 만일 그 웃음이, 비애의 그 웃음이 우리가 가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최상의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카프카의 그 응시들을 세계문학이 낳은 가장 읽을 만한 작품으로서 평가하게 될 것이다.
_토마스 만Thomas Mann

각 시대를 대표했던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와 같은 작가를 20세기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카프카가 1순위일 것이다.
_W. H. 오든Wystan Hugh Auden

음울한 신화와 폭력적인 사회 제도를 고발한다.
_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카프카는 활자화된 ‘투란도트’이다. 이 점을 알아차리고도 달아나지 않기로 한 자는 자기 머리를 내밀거나 아니면 차라리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야 하며 앞 사람의 전철을 밟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_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플로베르와 카프카를 읽지 않았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_알랭 로브그리예Alain Robbe-Grillet


저자 프로필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 국적 독일
  • 출생-사망 1883년 7월 3일 - 1924년 6월 3일
  • 학력 1906년 프라하대학교 법학과 박사
  • 경력 1908년 노동자재해보험국
  • 데뷔 1912년 소설 실종자

2014.10.3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체코 출생, 유대계 독일어 소설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유대계 독일 작가.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소외, 허무를 다룬 소설가이다. 그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황 설정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끊임없이 추구한 실존주의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20세기 세상 속의 불안과 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이룩했다는 평을 받는다.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프라하의 독일어를 쓰는 중간계급의 유태인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자수성가한 상인으로 기골이 크고 독선적이었던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했다. 현실적이고 빈틈없는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의 모습이 몽상가에 불과했으며, 어린 카프카의 눈에 아버지는 지독한 일벌레에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사업의 성공에만 몰입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신분상승을 위해 어머니조차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그는 줄곧 남의 손에 의해 키워졌고, 그의 나이 두 살 때, 그리고 네 살 때 동생인 게오르크와 하인리히가 태어났지만 곧 죽고 마는 일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인 1889년 여동생 엘리가, 또 1년 뒤에는 발리가, 그리고 그 2년 뒤에는 오틀라가 태어나지만, 이 세 자매 역시 제2차 세계 대전의 광기에 희생당하고 만다. 아버지와의 불화와 동생들의 잇단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는 불안정한 유년기를 보낸다.
그의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상인의 기질이 보이지 않자 독일계 인문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킨다. 이곳에서 카프카는 '루돌프 일로비, 시오니스트 후고 베르크만, 에발트 펠릭스 프리브람, 오스카 폴락 등 평생을 두고 교유하는 몇 명의 중요한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1901년 프라하의 카를 페르디난트 대학에 진학한 카프카는 주로 문학과 예술사 강의에 흥미를 보였으나,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1906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법원에서 1년간의 수습 기간을 마친 뒤 일반 보험 회사에 입사한다.
1908년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상해 보험 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로는 죽기 2년 전인 1922년까지 그곳에서 법률고문으로 근무하는 한편, 오후 2시에 퇴근하여 밤늦도록 글을 썼다. 이 무렵 유럽의 노동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카프카는 공무 출장과 노동자들과의 접촉 등 이곳에서의 업무를 통해 관료기구의 무자비성,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와 이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내면을 속속들이 꿰뚫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에서 개인의 소외와 무력감에 대해 보여주는 깊은 통찰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19년 각혈을 했으나 의사의 진찰을 거부하다 증세가 악화되어 결국 요양소와 여동생들의 집을 전전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그는 죽을 때까지 함께한 도라 디만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비로소 일찍이 맛보지 못한 삶의 애착과 행복을 경험한다. 도라는 그의 곁을 밤낮으로 지키며 간호했지만 1924년, 병약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출세,결혼 등의 중압감에 쫓기며 글을 쓰다가 폐결핵에 영양부족까지 겹쳐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카프카는 평생 불행하게 지냈다. 프라하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생전에 카프카는 출판업자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발표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꺼렸으며, 발표된 작품들도 대중의 몰이해 속에 거의 팔리지도 않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유서에서 자신의 모든 글을 불태워줄 것을 부탁했을 만큼 쓰는 것 외의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타계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12년에 『실종자』(후에 『아메리카』로 개제), 『변신』을 쓰기 시작했고, 1914년에는 『유형지에서』와 『심판』 집필에 들어갔다. 1916년에는 단편집 『시골 의사』 등을 꾸준히 집필하나 폐결핵 발병과 연이은 파혼, 그리고 부자 갈등으로 인한 신경쇠약 증세로 1920년 말부터 1년 정도 휴식기를 보낸다. 1922년 1월 미완의 장편소설 『성』을 집필하기 시작하고, 같은 해 2월 단편소설 『단식 광대』를 완성하나 이후 폐결핵이 악화돼 1924년 6월 3일 빈 교외의 키어링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변신』 외에 대표작으로 『심판』, 『성城』, 『실종자』, 『유형지에서』,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시골의사』,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등 다수가 있다.

역자 : 김해생
번역작가.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나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과 일반대학원 독일어과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12회 한독번역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숙명여대와 한국외대에 출강하면서 번역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젊은 베르터의 슬픔』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마음을 훔치는 공간의 비밀』 『푸른 행성』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4개의 인간』 『얼음불』 『파우스트 박사』 『아이의 눈으로 보면 답이 보인다』 『굼벵이 주부』 『나도 카리스마로 승부한다』 등이 있다. 서강대학교 불문과에서 수학 후,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문학과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으며, 영어강사이기도 한 그는 출판번역 에이전시 베네트랜스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이코노미스트 2013 세계경제대전망』(공역), 『맥킨지 금융보고서』(공역), 『The Complete Beatles Chronicle』(공역), 『와인 아틀라스』(공역), 『스타트업 성공학』(공역) 등이 있다.

목차

판결
법 앞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시골 의사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어느 개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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