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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 상세페이지

무기여 잘 있거라작품 소개

<무기여 잘 있거라> “이 소설은 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상식을 비웃는 전쟁의 폭력과 가혹한 운명의 힘….
이에 필사적으로 맞서는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 〈타임〉지가 뽑은 20세기 영문소설 100선
★ 미국 대학 위원회 선정 SAT 추천 도서
★ 작가 피터 박스올 선정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 서울대학교 선정 동서 고전 200선


출판사 서평

1914년 8월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발발 당시 헤밍웨이는 시카고 서쪽에 있는 오크 파크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고교 졸업 두 달 전이었던 1917년 4월 2일 미국이 연합국 편에 서서 참전을 선언하자 그는 즉시 입대를 자원하지만 불합격하고 만다. 1913년 권투를 배우다가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이 크게 나빠졌는데 이것이 이유가 되었다.
고교 졸업 후 그는 캔자스시티로 가서 일간지 〈스타(The Star)〉의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참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접지 못했다. 그리하여 1918년 봄에 헤밍웨이와 신문사 동료인 테드 브럼백(Ted Brumback)은 이탈리아 군대에서 앰뷸런스를 운전하고 지휘하는 장교가 되기 위해 미국 적십자사에 지원한다. 두 사람은 5월 23일 뉴욕을 떠나 프랑스로 갔고, 6월 4일 이탈리아의 임지에 도착했다.
이때 헤밍웨이는 포살타에 주둔한 이탈리아 군대에 초콜릿과 담배를 보급하는 업무에 자원했다. 그러다가 7월 8일 박격포 파편을 220여 군데나 맞는 큰 부상을 입어 밀라노의 미국 적십자사 병원에 후송되었고, 그 후 3개월에 걸친 수술과 치료 과정을 거쳐 퇴원한 다음 이탈리아 보병부대에 잠깐 배속되었다가 1919년에 제대해 미국으로 돌아왔다.
헤밍웨이가 실전을 경험한 기간은 겨우 한 달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냥, 투우, 수렵 등 스스로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평생에 걸쳐 체험하고 연구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또한 철저하게 연구했고, 이를 통해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과 사건들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논평한 초기 비평가들이 헤밍웨이가 소설 속 장소들과 사건들을 직접 목격했다고 믿음은 물론 이탈리아 독자들까지도 헤밍웨이가 현장에 있었다고 확신할 정도였는데, 소설 속의 중요한 사건인 카포레토 퇴각 장면이 실제와 너무나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1918년 11월 11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졌을 때, 헤밍웨이는 여전히 밀라노의 미국 적십자사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때 그는 7년 연상인 간호사 아그네스 본 크로프스키(Agnes von Kurowsky)와 연애를 시작했다. 아그네스는 독일계 미국인의 딸로서 펜실베이니아 저먼에서 태어나 뉴욕 벨뷰 종합병원에서 간호사 연수를 받고서 정식 간호사가 된 여성이었다. 연애는 5개월 정도 이어졌고,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18년 12월 9일이었다. 1919년 1월 4일 적십자사에서 제대하여 귀국한 헤밍웨이는 그해 3월 아그네스로부터 관계를 청산하자는 결별 편지를 받았다. 헤밍웨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당시 아그네스에게 그보다 멋진 연상의 남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1918년 헤밍웨이를 만났을 당시 아그네스는 경험이 풍부하고 원숙한 28세의 여성이었는데, 소설 속의 캐서린 바클리와는 간호사라는 직업과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다는 점만 일치할 뿐 그 외에는 유사점이 없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종전 후에도 적십자사에 근무하다가 결혼했으나 이혼한 후 자녀 없이 독신으로 살다가 1984년에 사망했다.
헤밍웨이를 가리켜 흔히 피츠제럴드, 포크너와 함께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한다. ‘잃어버린 세대’란 미국의 여류 소설가이자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이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느낀 절망과 허무감을 문학에 반영한 젊은 세대의 작가들’을 가리킨 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성인이 되고, 전쟁과 사회적 대격변 때문에 인생에 환멸을 느껴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세대’ 전체를 통칭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 또한 ‘잃어버린 세대’에 속한 젊은이 중 한 사람인 셈인데, 헤밍웨이는 아그네스를 만나고 10년이 흐른 후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해서 아그네스와의 연애 경험과 ‘잃어버린 세대’의 사상을 한 그릇에 넣어 녹임으로써 『무기여 잘 있거라』를 탄생시켰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서 ‘덫(trap)’ 또는 ‘생물적 덫(biological trap)’ 그리고 ‘단독 평화 조약(separate peace)’을 가장 인상적인 표현으로 꼽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세상이 인간을 죽이려 들고, 착한 사람과 온순한 사람과 용감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죽이려 들기 때문이 아닐는지. 그러한 덫에 빠져 있는 인간은 매 순간 투쟁하면서 그 자신의 인생법칙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개인이 투쟁하지 않는 한, 삶은 그에게 어떤 해결안도 제시해 주지 않으면서 궁극적으로는 그 개인을 죽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가 소설의 초반부와 중반부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현실이다. 소설의 후반부는 그런 현실에 저항하면서 대열에서 이탈하여 혼자서 ‘단독 평화 조약’을 맺고 그것의 구체적 실천으로 나아가다가 스위스 로잔의 한 병원에서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소설의 제목 『무기여 잘 있거라』는 두 가지 대상에 작별을 고한다. 탈리아멘토 강에 뛰어들어 단독 평화 조약을 맺은 헨리가 전쟁, 즉 ‘무기(arms)’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나는 혼자 있게 되어 좋았다. 신문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쟁 기사를 보고 싶지 않았다. 전쟁에 대한 건 다 잊어버릴 참이었다. 나는 혼자서 단독 평화 조약을 맺은 것이다.’ (본문 중)
그리고 출산 중 사망한 애인 캐서린의 ‘양팔(arms)’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 다른 하나다.
‘간호사들을 내보낸 다음 문을 닫고 불을 껐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각상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본문 중)
이 문장의 ‘조각상’은 구체적으로 캐서린의 양팔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방해하는 전쟁과 그에 맞서는 수단으로서 사랑이라는 방벽(防壁)을 설정했지만, 그 벽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헨리와 캐서린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비극은 심화되고 실존적 불안은 커진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삶에 집착하고 운명에 저항하지만 결국 무너진다. 무기를 버리고 전쟁터를 떠나기만 하면 불합리한 죽음에서 벗어나 일상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에게 운명의 폭력은 가혹하다. 그것을 깨달은 인간의 무력감이 묵직하게 가슴을 울린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보이는 헨리의 모습은 안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잠시 후 병실에서 나온 나는 병원을 벗어나 비를 맞으면서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본문 중)
작품에 나오는 결말은 이렇듯 짧은데, 헤밍웨이는 1958년 뉴욕에서 발행하는 문학 전문지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와의 인터뷰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은 39번이나 고쳐 쓴 뒤에야 결정한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헤밍웨이의 손자이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인 션 헤밍웨이는 ‘할아버지가 언급한 결말은 39개지만 실제로는 47개가 넘는다.’고 말한다. 1979년부터 미국 보스턴 케네디 도서관에 보관 중인 할아버지의 원고를 분석해 각기 다른 47개의 결말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이들 결말은 한두 개의 짧은 문장으로 이뤄진 것부터 여러 단락으로 구성된 것까지 다양한데, 그중 하나는 이러하다.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캐서린은 죽었고, 당신도 나도 죽을 것이다. 이게 내가 당신에게 약속할 수 있는 전부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의 원고를 80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다고 한다. 그가 파리에서 거주하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말년인 1957년부터 1960년 사이에 쓴 에세이 30여 편을 묶은 에세이집 『파리 스케치』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도 있다.
“나는 늘 한 대목을 끝낼 때까지 글을 썼고, 다음에 어떻게 쓸지 감이 오면 그때 멈췄다. 그런 식으로 다음 날에도 어떻게든 계속 작업을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 때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작은 오렌지 껍질을 눌러 불꽃 가장자리에 즙을 짜 넣고 타닥거리며 피어오르는 파란 불꽃을 바라보곤 했다. 일어나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걱정할 것 없어. 계속 글을 써 왔고 이번에도 쓰게 될 테니. 제대로 된 진짜 문장 하나만 쓰면 돼.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진실한 것을 쓰라고.’” (‘스타인 여사의 가르침’ 중에서)
헤밍웨이가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Stephen Edwin King)은 “책은 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목수가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집을 짓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세계 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전쟁소설로 꼽힌다. 그만큼 전장과 후방의 대조적인 상황, 전쟁에 임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생각 등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전쟁에 대한 냉소와 비판을 작품 곳곳에 짙게 깔아놓았다.
미국인이면서 이탈리아 부대에 소속되어 있고, 전투 부대가 아니라 구급차 부대에 소속된 헨리는 처음엔 “나에게 이 전쟁은 영화에 나오는 전쟁만큼이나 위험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투가 아닌 마카로니와 치즈를 먹던 중에 포탄을 맞아 부상을 입고 훈장을 받았으며, 적군이 아닌 겁먹은 아군의 총에 후임병을 잃고, 퇴각 중에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명목 아래 대열에서 이탈된 군인에게 탈영 및 간첩 혐의를 뒤집어씌우려는 헌병에게 붙잡혀 처형될 위기에 놓이는 등의 상황을 통해 논리와 상식을 거부하는 전쟁의 비인간성과 비합리성, 기이한 특성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전쟁소설인 동시에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헤밍웨이 스스로 ‘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만큼 애잔한 사랑 이야기이다. 자기 삶에 무심하던 주인공은 비참한 전장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면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의 공허함, 세상에 내던져진 채 죽음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 그래서 더 소중한 사랑, 교감의 가치를 깨닫는다.
하드보일드 기법(hard-boiled style, 1930년 전후 미국 문학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문학이나 영화에서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인물이나 사실을 냉정하게 묘사하거나 표현하는 기법. 2007년 국립국어원에서는 순화된 용어로 ‘냉혹 기법’을 제시)에 풍부한 시적 요소를 더해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작품은 연극, 영화, 드라마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지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저자 프로필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 국적 미국
  • 출생-사망 1899년 7월 21일 - 1961년 7월 2일
  • 학력 1917년 오크파크리버포레스트고등학교
  • 경력 캐나다 토론토지 특파원
    캔자스시티 스타지 기자
  • 데뷔 1923년 단편집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
  • 수상 1954년 노벨문학상
    1953년 퓰리처상

2014.10.2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1899. 7. 21.∼1961. 7. 2.)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에서 6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캔자스시티의 일간지 〈스타〉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18년 5월 미국 적십자사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해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되나 박격포 파편을 220여 군데나 맞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병원에서 자신보다 7년 연상인 독일계 미국인 간호사 아그네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나이 차이를 의식한 그녀의 결별 선언으로 짧은 연애는 끝나고 말았다. (이 참전 경험은 10년 후 발표된 그의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의 바탕이 되었다. 작품 속 주인공인 프레더릭 헨리와 캐서린 바클리는 각각 헤밍웨이와 아그네스가 모델이다.)
1919년 귀국해 기자로 일하다가 1921년 〈토론토 스타 위클리〉지의 해외 특파원으로 파리로 가서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작가들과 교유하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23년 초기 작품 몇 편을 발표하고, 1924년에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를 펴냈다. 1926년에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의 상실과 허무를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하며 피츠제럴드, 포크너와 더불어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 작가로 주목받았다.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으로 큰 성공을 거뒀으며, 1952년에 발표한 『노인과 바다』로 1953년에 퓰리처상을 받았고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극도의 우울증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다가 1961년 62세의 나이로 아이다호 케첨의 자택에서 자살함으로써 삶을 마감했다.

역자 : 김지영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광고 기획 일과 더불어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목차

1부
2부
3부
4부
5부
작품 해설
작가의 삶과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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