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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작품 소개

<하얼빈> 호텔이 키타이스카야의 중심지에 있자 방이 행길편인 까닭에 창 기슭에 의자를 가져가면 바로 눈 아래에 거리가 내려다 보인다. 삼층 위의 창으로는 사람도 자그만하게 보이고 수레도 단정하게 보이며 모든 풍물이 가뜬가뜬 그 자신 잘 정돈되어 보인다. 그러면서도 쉴새없는 요란한 음향은 어디선지도 없이 한결같이 솟으면서 영원의 연속같이 하루 하루를 지배하고 있다.
이른 새벽 침대 속으로 들려오는 우유를 나르는 바퀴소리에서 시작되는 음향이 점점 우렁차게 커지면서 밤중 삼경을 넘어 다시 이른 새벽으로 이어질 때까지 파도소리같이 연속되는 것이다. 인간생활에는 반드시 음향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는 이 삼층의 전망을 즐겨해서 방에 머무르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창가 의자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침 비스듬히 해가 드는 거리에 사람들의 왕래가 차츰차츰 늘어가려 할 때와 저녁 후 등불 켜진 거리에 막 밤이 시작되려 할 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조각돌을 깔아 놓은 두툴두툴한 길바닥을 지나는 마차와 자동차와 발소리의 뚜벅뚜벅 거칠은 속에 신선한 기운이 넘쳐 들리고 여자들의 화장한 용모가 선명하게 눈을 끄는 것도 이런 때이다. 그러나 반드시 또렷한 주의와 목적이 없이 다만 하염없이 그 어지럽게 움직이는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보는 동안에 번번이 슬퍼져 감을 느낀다. 이유를 똑똑히 가리킬 수 없는 근심이 눈시울에 서리워진다. 인간생활은 또 공연히 근심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 근심의 곡절을 따져 낼 수 없는 것이, 그 짧은 여행이 원래 걱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어서 고향에 불행을 두고 떠난 것도 아니요 눈앞에 불행이 놓인 것도 아닌 까닭이다. 마음에 드는 거리를 실컷 보고 입에 맞는 음식을 실컷 먹으면서 흡족할 때까지 소풍을 하면 그만인 것이요, 또 그 요량으로 떠났던 여행인 것이나 마음은 반드시 무시로 즐겁지마는 않다.
호텔 아래편 식당에는 늙은 보이의 은근한 시중과 함께 기름진 버터며 로서아 수프며 풍준한 진미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나 그 깨끗한 식탁을 대하면서도 어딘지 없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한 것은 웬일일까. 며칠만에는 식당으로 내려가기조차 귀찮아서 방 보이에게 분부해 늦은 아침식사는 대개 방에서 빵과 커피로 대신하게 되었다. 초인종으로 보이를 불러 그릇을 치우고는 다시 창에 가서 의자에 앉곤 한다. 행길에는 사람들이 훨씬 늘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는 길과 목적을 뉘 알수 있으랴. 나는 키타이스카야 거리를 사랑한다. 사랑하므로 마음에 근심이 솟는 것일까.
“왜 이리도 변해 가는구 이 거리는. 해마다.”
변해 간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듯 시선은 초점을 잃고 아득해 간다.
지금 눈 아래의 거리는 사실 벌써 작년 여행에 본 그 거리는 아니다. 각각으로 변하는 인상이 속일 수 없는 자취를 거리에 적어간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변했거니와 모든 풍물이 적지 아니 달라졌다. 낡고 그윽한 것이 점점 허덕거리며 물러서는 뒷자리에 새것이 부락스럽게 밀려드는 꼴이 손에 잡을 듯이 알려진다. 이 위대한 교대의 인상으로 말미암아 하얼빈의 애수는 겹겹으로 서리워 가는 것이다.
“나는 이 변화를 보러 해마다 오는 것일까. ─ 이 변화를 보러.”
혼자 속으로 생각하자는 것이 그만 남에게 들려주는 결과가 되었다. ─ 우연히 등뒤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던 까닭이다. 노크를 듣고 보이인 줄만 알고 콧소리를 질렀더니 살며시 들어와 선 것이 뜻밖에도 유우라이다. 돌아다보고 나는 놀랐다.
“왜 놀라세요.”
“너무도 의외여서.”
“오겠다구 약속하지 않았어요.”
“약속 받은 것은 나두 기억하지만. ─ 아무리 약속을 했기로서니.”
“말을 어기는 사람인 줄 아세요. 밤까지 별로 일두 없구 해서 일찌감치 나서 봤지요.”
“하얼빈의 변화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 ─”
하며 다시 창을 향하니 유우라도 의자를 끌어다가 탁자 맞은편에 앉는다.
“어쩌는 수 없는 일이죠. 될 대로 되는 수밖엔요.”
철없는 무관심일까. 대담한 체관일까. 표정 없는 순간의 그의 눈이 아름답다. 슬픈 얼굴보다도 평온한 그 얼굴이 얼마나 더 효과적이었을까.


<작가 소개>
하얼빈(哈爾濱)
판권


저자 소개

소설가(1907~1942). 호는 가산(可山). 1928년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온 이후, 초기에는 경향 문학 작품을 발표하다가, 점차 자연과의 교감을 묘사한 서정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작품에 <메밀꽃 필 무렵>, <화분(花粉)>, <벽공무한(碧空無限)> 따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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