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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상세페이지

종교 종교일반 ,   종교 기독교(개신교)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21세기 이슈들과 신학적 성경 읽기
소장종이책 정가14,000
전자책 정가30%9,800
판매가9,800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작품 소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기독교는 나이 들고 어리석은 자들이나 믿는 종교” 취급을 받던 사회주의 세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볼프, 전쟁과 인종청소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은 깨어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안고 씨름해 왔다. 그는 이 책에서 성경의 명령을 주입하기보다 종교를 초월한 성경 읽기의 유익과 삶의 방식을 배우기 위한 신학 하기, 타인을 비판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찾기 등 흑과 백을 나누는 이원론이 아닌 다양한 성경 해석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볼프 박사는 이 작은 책에서 지구적 차원의 교회의 통일과 종교간 대화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상을 맛보여 준다. 심오하지만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볼프의 신학 세계를 경험하기 원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멋진 초대장이 될 것이다.

이 책의 특징
- 한 권의 책으로 미로슬라브 볼프의 다양한 신학적 사색을 맛볼 수 있다.
- 급변하는 현대 문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상에 등 돌리지 않을 수 있는 ‘온건한 차별성’의 길을 알려준다.
-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기독교만을 진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대화의 장을 열어준다.
- 항상 더 큰 만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흐름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이 책의 종이책은 2012년에 도서출판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출간되었으며, 이 전자책에 사용된 본문은 그 종이책과 동일합니다. M어게인 시리즈에 속하는 이 책은 볼프의 책으로는 첫 한국어 전자책이 되는 것을 기념하여 epub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출판사 서평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지만, 미로슬라브 볼프처럼 성경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를 바탕으로 성찰한 신학자들의 저서들만이 오랜 수명을 누릴 것이다. 이 책은 볼프가 바로 그런 인물임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는 상당 기간 동안 독자들에게 풍성한 유익을 선사할 것이다. _티모시 라르센 교수 (휘튼 칼리지)

한 손에 성경을, 다른 손에 신문을 든 채 신앙적으로 살고자 씨름하는 독자들에게 많은 통찰력과 지혜를 선사하는 책이다. _존 프랭크 교수 (비블리컬 신학교)

사랑과 진리에 굶주린 세상에서 성경과 신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서로 연결시키는 볼프의 지혜롭고 명쾌한 책이다. 건전한 성경신학과 다원주의 문화의 대화를 시도한 탁월한 저서로 높이 추천하고 싶다. _티모시 조지 교수 (샘포드 대학교 비슨 신학교)

“저자인 미로슬라브 볼프는 이 문제를 놓고 씨름하면서 성경과 우리 삶을 연결하고, 신학적 신념들을 실천적 신앙과 함께 풀어내기 위해 고민한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학문적 노력과 실천적 사례를 ‘신학적 읽기’라고 부른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두 영역의 연결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1부에서 주로 다루고 2, 3부에선 실제 말씀과 현실을 오가는 말씀읽기의 사례를 보여준다.” _성결신문
“화해와 포용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의 신학 입문서로 ‘21세기 이슈들과 신학적 성경읽기’란 부제가 붙어 있다. 전쟁과 인종청소 현장에서 볼프는 ‘그리스도인은 깨어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안고 씨름해 왔다. 그는 이 책에서 성경의 명령을 주입하기보다 종교를 초월한 성경 읽기의 유익과 삶의 방식을 배우기 위한 신학 하기, 타인을 비판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찾기 등 흑과 백을 나누는 이원론이 아닌 다양한 성경 해석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볼프는 여기서 전 지구적 차원의 교회 통일과 종교 간 대화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상을 맛보여 준다.” _국민일보
우리는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사이의 거리, 혹은 성경 본문의 본래적 의미를 찾는 주석적 물음과 성경 계시의 현재적 의미를 찾는 신앙적 물음 사이의 거리에 관해 말한다. 이 단절의 강은 학문보다 더 깊은 삶의 숲 속에서 발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자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오래전 옛날 말씀”과 오늘 내 삶의 연결이 만만찮다는 답답함을 느낀다. 가장 손쉬운 선택은 강을 건너지 않는 것이지만, 볼프는 두 세계에 다리를 놓고자 한다. 성경과 우리 삶을 연결하고, 신학적 신념들을 실천적 신앙의 몸짓으로 연결하려 한다. 그는 두 영역의 연결에 관한 다소 이론적인 논의뿐 아니라(1부), 실제 말씀과 현실을 오가는 말씀 읽기의 사례들을 보여줌으로써(2, 3부), 우리의 다리 놓기를 돕는다. 이런 통합적 읽기를 그는 “신학적” 읽기라 부른다.
아마 이 책의 백미는 볼프 자신이 신학적 물음을 가득 품고, 하지만 겸허하게, 성경 텍스트를 읽어가는 3장과 4장의 연구들일 것이다. 그는 다원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신앙공동체가 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물으며 “신학적” 성경 읽기를 통해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가령, 베드로전서 읽기에서 그는 그 해답을 “온건한 차별성”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실제 본문 읽기를 통해 세상과 교회의 거리가 주변 사회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아니라 산 소망을 소유한 공동체의 내적 체험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그래서 사회를 향한 교회의 몸짓에는 배척과 순응이 뒤엉킨다는 사실을 읽어낸다. 이렇게 그는 성경 본문의 논리를 무시한 조직신학자 리처드 니이버의 유형론도, 기독교적 자태의 복합적 성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신약학자 존 엘리엇의 연구도 넘어선다. 또한 내적 정체성에 근거한 요한복음의 날카롭지만 “특이한” 이원론이 세상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드러난다는 생각, 그래서 현대의 다원주의 사회에 오히려 유익한 것일 수 있다는 놀라운 주장 역시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치밀한 말씀 읽기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멋지게 보여준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삶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과 말씀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한때 저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나의 입장에서 보건대, 말씀과 신학적 사고의 이런 생산적 결합 배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한 사람, 그래서 말씀과 현실이 공히 소중한 그리스도인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 이 책의 독자들 역시 성경과 신학에 대한 우리의 이론적 성숙이 순종의 열망 속에서 가능해지고 또 의미 있게 된다는 사실을 거듭 되새기게 될 것이다. _권연경 교수 (숭실대 신약학)

책속에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의 경우,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동시에 당신의 거룩한 책이 당신에게 신성하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나의 거룩한 책은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거룩한 책은 나에게 신성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동일한 의미에서 그렇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익을 얻으려고 우리가 다함께 신성한 책들을 읽을 때 그 책들이 모두에게 꼭 거룩해야 할 필요는 없다. 각 사람이 타인의 거룩한 책을 고전적인 영적 텍스트로 취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로 다른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열린 자세를 갖고 “고전”의 강물이 “신성한”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어귀에서 서로 마주칠 때 그들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어질 것이다. (51. 신학적 성경 읽기)

나는 성경을 신성한 텍스트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으로,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처소로, 하나님이 오늘날의 모든 인류와 각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통로로 사용하는 과거의 텍스트로,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되 내적으로는 풍성하고 다양성 가득한 텍스트로 읽는다. 또, 의미들을 기호화하고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굴절시키는 텍스트로, 수용적 태도로 또 상상력을 동원해 관여할 뿐 아니라 신뢰와 비판적 판단과 함께 접근해야 할 텍스트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규정짓되 기독교 공동체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하는 텍스트로 읽는다.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인을 “거류민과 나그네”로 부른 것에 관해 논의하든지(3장), 인간의 수고의 헛됨에 관한 전도서의 경고를 논하든지(6장), 사도 요한이 말한 “빛과 어둠”의 대립적 이원성을 다루든지(4장),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그의 주장을 거론하든지(5장), 사도 바울의 신학 작업 방식에서 무언가를 배우든지(2장) 간에, 이런 신념들은 내가 성경을 읽는 틀과 성경을 해석하는 렌즈를 구성하고 있다. 나는 나름대로, 성경의 샘물을 마시고 성경을 신학적으로 읽은 과거의 신학자들에게 합류한 결과, 하나님 앞에서 사랑의 삶을 영위하고 이웃과 더불어 기쁘게 살아가는 하나의 인생관을 확립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이 글들이 독자들에게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처소인 성경, 곧 그 마르지 않는 샘에 와서 생수를 마시라고 권하는 초대장의 역할을 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52. 신학적 성경 읽기)

여기서 베드로전서가 강조하는 선교적인 거리를 온건한 차별성(soft difference)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이는 약한 차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차별성은 결코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차별성은 강하긴 하지만 딱딱하지는 않다. 자신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은 딱딱함을 낳는다. 이런 딱딱함과 손을 잡는 차별성은 언제나 타인에게 양자택일의 대안을 제시한다. 즉, 순종하든지 배척당하든지, “나와 같이 되든지 나를 떠나든지” 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선교에서 딱딱한 차별성은 공개적인 혹은 감춰진 압력과 조작, 위협과 함께 작동한다. 다른 한편, 온건한 차별성을 택하겠다는 결심은 베드로전서가 독자들에게 반복해서 권유하는 두려움 없는 태도(3:14, 3:6)를 전제로 한다. 스스로 안정된 사람들 좀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하나님 안에서 안정감을 찾은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온건한 차별성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은 타인을 복종시키거나 비난할 필요가 없고, 타인에게 그들 나름의 존재가 되도록 공간을 허용할 수 있다. 온건한 차별성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경우, 선교는 기본적으로 증언과 초대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들은 압력이나 조작 없이 타인을 설득하려 하고, 때로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그렇게 한다(3:1). (109. 온건한 차별성)

타종교에 대한 요한복음의 태도를 “배타주의”로 부르는 것은 그것이 타종교를 부인한다는,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중요한 점은 그 종교가 (구원의 길로서의) 다른 경쟁자들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종교가 그들과 관련하여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다. 정체성은 대립적이고 배타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 즉, 나는 스스로 닫혀 있고, 나는 타자가 아닌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체성은 비대립적이고 포용적으로 규정될 수도 있다. 즉, 나는 처음부터 타자가 살고 있는 존재이고, 나는 부분적으로 타자인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정체성의 대립적 정의와 비대립적 정의의 핵심은 자아 속에 타자성이 있는지 여부가 아니다. 어느 정도의 타자성은 언제나 자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오히려 자아 편에서 자기 속에 있는 타자성의 현존을 인식하는 일이다. (149. 특이한 정치)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다른 한편, 이보다 깊은 차원에서 보면, 하나님이 행하는 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했는지-이루 헤아릴 수 없게, 무조건적으로, 보편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용서하면서-를 아는 문제다.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고 또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이는 다시 루터의 관심사에 주목하게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면, 하나님이 누구인지, 특히 우리와 관련하여 어떤 분인지를 올바로 아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편지는 곳곳에서 “바른 교리”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인지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이해하면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고픈 동기가 생긴다. 이 두 번째 차원에서, 하나님을 보고 감동을 받아 그분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데 이르는 것이다. (p. 192. 하나님은 사랑이라)

만족을 모르는 인간 속성의 타당한 “대상”은 오로지 무한한 하나님의 신비밖에 없다. 칼 라너(Karl Rahner)가 지적하듯이, 하나님을 아는 최고의 행위는 “그 신비의 폐지나 감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신비의 궁극적인 선포”에 해당한다. 하나님을 아는 행위 하나하나는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고 또 그것을 불러일으킨다. 즉, 하나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인간의 갈증을 채워주고 심화시킨다는 말이다. 인간의 영의 끊임없는 움직임은 무한한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최후의 안식에 도달하기 시작한다. (p. 233. 무한을 향한 갈망)


저자 소개

지은이 미로슬라브 볼프 (Miroslav Volf)
크로아티아 오시예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독교가 어리석은 자들이나 믿는 것으로 치부되던 사회주의 세계에서 오순절 교회 목사의 아들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슬로베니아로 망명하여 피신하며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었고, 이러한 그의 성장배경과 경험은 갈등과 배제의 상황에서 어떻게 기독교 신앙이 화해와 포용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하는 토양이 된다. 풀러 신학교에서 석사(M. A.)를 독일 튜빙겐 대학교에서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의 지도로 박사학위(Dr. Theol.)를 받았다. 풀러 신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예일대학교 신학부의 헨리라이트(Henry B. Wright) 조직신학 교수이자 예일대학교 부설 ‘신앙과 문화 연구소’의 소장이다. 저서로는 『삼위일체와 교회』(새물결플러스), 『배제와 포용』(IVP), 『베풂과 용서』(복 있는 사람) 등이 있다.

옮긴이 홍병룡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IVP 대표간사로 일했다.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와 기독교학문연구소(ICS)에서 공부했으며, 호주에서 한국학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는 『제자도와 영성 형성』(국제제자훈련원),『소명』(IVP),『완전한 진리』,『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복 있는 사람) 외에 다수가 있다.

목차

추천의 글 (권연경)

PART 1 신학을 한다는 것
1. 신학적 성경 읽기
2.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한 신학

PART 2 다원주의 세계와 신앙 공동체
3. 온건한 차별성: 베드로전서에서의 교회와 문화
4. 특이한 정치: 요한복음, 이원론, 그리고 현대의 다원주의

PART 3 하나님과 맘몬
5. 하나님은 사랑이라: 이슬람과의 대화에 비춰본 기독교 기본진리에 대한 성경적 성찰
6. 무한을 향한 갈망: 기독교 신앙과 경제성장의 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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