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큐레이션: 로맨스·로판·BL 편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곧 장르다

남녀 혹은 남남의 사랑을 소재로 하는 로맨스·로맨스판타지·BL 장르문학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웹소설 시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룬다. 대개 ‘여성향 웹소설’로 묶이곤 하지만, 장르 고유의 독자적 성격 역시 분명하기에 로맨스 웹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가 BL 웹소설도 즐겨 읽을 거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웹소설 큐레이션: 로맨스·로판·BL 편>은 각 장르의 특징과 역사를 훑는 동시에 매력적인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로맨스와 BL의 핵심을 관통하는 동시에 각 장르의 특성과 매력을 망라한다. 나아가 ‘여성향 웹소설’에 막 관심을 가진 독자도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멋진 단초를 제공한다.

“01 로맨스, 사랑의 다양한 얼굴들”은 로맨스의 고전적인 남자 주인공에 비해 다소 부족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주역으로 활약하는 ‘연하남’이나 ‘조신남’을 통해 로맨스 장르의 새로운 흐름을 짚어낸다. 물론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쟁취한 결혼이나, 핍박받는 역사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사랑 같은 전형적인 로맨스 서사는 여전히 독자에게 사랑받는다. 현실에서는 절대 수용 불가한 나쁜 남자와의 로맨스가 ‘19금’이나 ‘고수위’ 키워드로 인기몰이하는 것도 독자의 다양한 수요를 대변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로맨스 장르는 계속 확장하고 있다. ‘회귀, 빙의, 환생’ 같은 판타지 요소와 결부한 로맨스는 실패한 사랑을 뒤로 하고 과거로, 게임으로, 혹은 전생해서 새로운 사랑에 다다른다. 또한 하이틴 로맨스 장르가 증가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로맨스 장르의 독자층은 성인에서 10대로 점점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로맨스는 사랑의 뜨거운 불길이 여타의 다른 조건들을 부숴버리고 성공적인 연애와 결혼을 통해 안정적으로 사회에 안착하기를 바라는, 다소 아이러니한 바람을 이뤄주는 장르다. 그중에서도 ‘계약 결혼’ 혹은 ‘계약 연애’는 이 아이러니를 성공적으로 봉합해내는 로맨스의 대표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권력과 재력을 다 가진 남주인공이 다급히 연애 혹은 결혼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처지가 어려운 여주인공과 계약을 맺고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클리셰는 전형적인 로맨스 스토리 라인의 일종이다.
- 계약도 로맨스다 中 –

“02 로맨스판타지, 환상 세계를 개척하는 여성들의 모험담”은 현실 밖의 판타지 세계에서 약진하는 여성에 주목한다. <아도니스>나 <황제의 여기사> 같이 ‘걸크러시’와 ‘여기사물’을 키워드로 하는 작품부터, 시한부 삶을 소재로 하되 여자 주인공의 행복에 집중하는 <건강이 없습니다>나 <시한부 엑스트라의 시간> 같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로맨스판타지 속의 여성 서사는 사뭇 다채롭다. 익숙한 동화 속 여성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연애 시뮬레이션부터 헌터물까지 각양각색 ‘게임 시스템‘이 로맨스판타지 장르에서 작동하는 광경도 무척 흥미롭다. <내 안드로이드>나 <낙원의 이론>처럼 로맨스판타지가 천착하는 사랑에 SF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로맨스판타지 장르 안에서의 죽음은 다르다. 죽음은 인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선사한다. 흔히 ‘회귀, 빙의, 환생’의 앞 글자를 따 ‘회빙환’이라고 말하는 로맨스판타지의 소재들이 그렇다. 아무리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더라도 과거로 돌아가거나(회귀), 다른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의 인생을 살거나(빙의), 혹은 다시 태어나는 방식(환생)으로 인물들은 삶을 계속 이어나간다. 로맨스판타지 장르 안에서 죽음은 새롭고도 더 나은 삶을 보장하기 위해 으레 거쳐야 하는, 다소 가벼운 통과의례가 되었다.
- 시한부 인생이 슬픔만은 아니라오 中 -

“03 BL, 남자들의 사랑에 관한 탐미적 로망”은 작품 키워드를 중심으로 사회적 금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다른 장르와 손쉽게 융합하는 BL의 다채로운 면모를 두루 살핀다. 로맨스 장르에서는 다소 식상해진 스포츠물이 BL에서는 오히려 남성 간의 은밀한 공간을 부각시킬 수 있어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과 결합할 만큼 인기 있는 소재다. 기존 장르물도 예외는 아니다. SF와 결합한 작품(<은하수를 횡단하는 택시 운전사><붉은 바다>)이나 공포 소재와 결합한 미스터리·오컬트물(<죽은 애인에게서 메일이 온다><오, 나의 사탄 새끼>)은 다른 장르를 포용하고 활용하는 BL 장르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여기에 용이나 악마 같은 ‘인외존재’를 다룬 작품(<푸른 괴물의 껍질><상어에게서 토끼는 방법>)이나, 게임(<연애게임><사랑과 전쟁 in GAME>)부터 동양풍 궁중물(<바르도의 궁><인연>), 청춘게이물(<시맨틱 에러><자두사탕러브>)까지 이르면 BL의 경계는 오히려 기존 장르의 협소한 개념을 대체할 만큼 확장된다. 더욱이 BL은 서로 끌릴 수밖에 없는 알파와 오메가 형질의 두 남자를 그린 ‘오메가버스’나, 운명의 상대가 될 사람의 이름이 몸에 적혀 있다는 ‘네임버스’ 같은 특유의 세계관을 장르화해 연애 서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BL 작가들은 다른 여성향 장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스토리 라인이나 소재, 감성, 문체까지도 시도하며 독자들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만큼 BL은 다변화된 스토리를 접할 수 있다는 특장점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두 사람이 비슷한 연령대가 아닌 중년 남성이 한 축을 담당하고 이것이 트렌디한 키워드가 되는 등 다른 여성향 장르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 비교하자면, 로맨스나 로맨스판타지에서 남자 주인공을 40대 이상으로 설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이차가 나는 커플을 만들더라도 여자 주인공의 나이를 낮게 설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한마디로 여성향 웹소설 중 BL이 가장 클리셰를 피해 가는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BL의 시작은 취향을 저격하는 키워드로부터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