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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상세페이지

소설 프랑스 소설 ,   소설 서양 고전문학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세계문학전집 050
소장종이책 정가10,000
전자책 정가30%7,000
판매가7,000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작품 소개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추천평>

세상 모든 책이 불탈 때 단 몇 권의 책을 구할 수 있다면 성경과,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들, 그리고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구하겠다.
- 앙드레 지드

볼테르만이 모든 사회 불안 요소들이 서로 맞물린 이 거대하고 무서운 세상과의 투쟁에 응했다. 바람처럼 가볍고 천둥처럼 강력한 그의 무기는 펜이었다. 그는 이 무기를 가지고 싸웠고 승리했다.
- 빅토르 위고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의 끝부분에 나오는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훈이다.
- 귀스타프 플로베르

볼테르는 일평생 인간의 오류를 고발하기에 전념했다.
- 귀스타브 랑송(문학비평가)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처럼 유쾌하게 비관주의를 논한 책은 없을 것이다. 일찍이 이 세상이 슬프다는 것을 배우면서 이토록 사람들이 마음껏 웃은 적은 없었다.
- 윌 듀런트(철학자)

나는『미크로메가스』를 읽고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반어적인 어조에 힘입어 천문학과 철학, 일반 과학에 대해 깨우칠 수 있었다.
- 조엘 드 로시니(미래학자)




‘빛의 세기’를 밝힌 위대한 사상가 볼테르
기지와 재치가 넘치는 그의 대표작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있고, 독일에 종교개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 _빅토르 위고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대표작 두 편을 담았다. 시리우스 별에서 온 외계인 미크로메가스의 지구탐방기 『미크로메가스』(1752)는 오늘날 공상과학 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볼테르의 기막힌 문학적 상상력과 간결하고 빠른 리듬의 문체가 돋보인다. 볼테르의 철학사상을 명쾌하고 기지 넘치게 풀어낸 풍자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1759)는 모순된 사회와 정치, 부패한 성직자, 종교의 불관용을 신랄히 비판하며 인간의 운명은 오직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그의 계몽사상을 잘 보여준다. 누구보다 사상의 자유를 중시하고 실용적인 태도를 간과하지 않으며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사회 비판의 선봉에 섰던 볼테르의 지혜와 통찰은 두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성의 빛으로 무장한 불온한 정신, 볼테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했던 미셸 푸코는 볼테르를 보편적 지식인의 대표로 칭한 바 있다. 지식이 고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오늘날에는 지식인의 역할도 과거와는 다르겠지만, 어느 시대에서나 공통되는 지식인의 요건이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지,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 한다면 볼테르야말로 삶 속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볼테르에게는 시인, 극작가, 역사가, 철학자라는 다양한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실제로 그는 많은 극작품과 서사시를 썼다. 그의 비극은 라신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서사시는 호메로스와 비교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역사서 분야에서도 『칼 12세의 역사』 『루이 14세의 세기』 등의 저서로 고대의 역사가 아닌 가까운 과거의 역사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사료 편찬관으로서 많은 자료를 남겼다. 하지만 볼테르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현대성과 생명력을 갖는 것은 극작품이나 역사서가 아니라 시인이자 극작가인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160여 개의 필명으로 발표했던 수많은 철학 콩트들과 매일 아침마다 써서 유럽 각국의 지인들에게 보냈던 4만 통에 이르는 편지들, 간편한 형식으로 편리하게 휴대하고 보급하도록 하여 지적 투쟁의 무기로 삼았던 소책자들이다. 볼테르는 여타의 철학자들처럼 인간의 본성이나 세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나 체계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철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이성의 고귀한 힘을 옹호하며 모든 권위와 신념, 지식을 시험대에 올려놓았으며 광신과 불의를 고발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을 위해 펜으로써 공론을 제기하고 이끌어갔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에 값하는 것이리라.
볼테르가 태어난 시기는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시절이었고, 신앙의 자유를 허락했던 낭트칙령이 폐지되어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허용되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볼테르는 뛰어난 지성과 특유의 독설로 모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권력을 비웃으며 기존의 관념들을 풍자하고 조롱했다. 그때까지 절대적인 종교와 권력을 그처럼 노골적으로 비아냥댄 사람은 없었다. 또한 볼테르는 평생 교회와 성직자들의 그릇된 권위와 광신을 공격했다. 언제나 불경함은 그의 죄목이었고 권위를 겁내지 않는 불온하고 신랄한 태도는 그만의 개성이었고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재치와 빈정거림은 그의 문체의 뼈대를 이루었다.

『미크로메가스』와『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웃음을 통해서 지성에 호소하는, 명쾌하고 신랄하며 빠른 리듬의 문체가 매력인 볼테르의 대표작들이다.

우주의 미물인 인간의 오류와 지혜에 관한 성찰, 『미크로메가스』

‘철학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미크로메가스』는 1752년에 출판된 작품으로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외계인의 우주 여행이라는 기발한 소재를 통해 다양성과 상대성의 가치를 역설하고 인간의 오류와 인간 행동의 부조리를 경쾌한 어조로 풍자한다. 미크로메가스는 그리스어로 ‘작다’라는 뜻의 미크로와 ‘크다’라는 뜻의 메가스가 합쳐진 말로 이 이름 속에 이미 상대성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시리우스 별의 궁정에서 추방을 당한 뒤 우주를 여행하며 다양성에 눈을 뜬 미크로메가스는 실제로 궁정에서 쫓겨나 여러 곳을 떠돌아다녔던 볼테르의 분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영국을 여행하고 나서 경험과 관찰에 근거하여 진구를 추구하는 방법의 중요성을 깨달은 볼테르의 면모가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최선이 아닌 세상의 악과 부조리,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캉디드』는 가장 유명한 볼테르의 철학소설로 작가의 명성이 정점에 달한 64세에 집필하여 175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재기발랄한 문체로 실제 사건과 허구를 교묘히 결합하고 당시의 시대상을 재치 있게 풍자해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순진하게 낙관론을 믿던 캉디드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낙관론을 풍자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열거하며 보편적인 인간 조건을 성찰하게 한다. “모든 것은 최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라이프니츠의 낙관론과 모든 일은 반드시 그에 대한 ‘충족 이유’가 있고 신의 예정된 조화에 의해 ‘원인과 결과’를 따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예정조화설을 풍자하려는 의도가 작품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이 세상의 우연한 사건과 우연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따져보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 정신적인 악과 육체적인 악에 대해, 자유와 필요에 대해” 토론하고 “가능한 최선의 세상에 대해, 악의 근원에 대해, 영혼의 본성과 예정 조화에 대해” 추론하길 제안하며 독자들에게 논쟁과 성찰을 유도한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저자 - 볼테르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Sceaux)성(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L'Ingenu)』(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역자 - 이병애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목원대학교, 배재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연구논문으로는 「폴 발레리의 잠과 깨어남」 「프랑스 산문시의 한 행로-베르트랑, 보들레르, 자콥의 산문시를 중심으로」가 있고 역서로는 피아제의 『교육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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