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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상세페이지

리디 info

* 본 도서는 본문이 일부 외국어(영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서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작품 소개

<인간 불평등 기원론> 1753년 디종의 아카데미는 현상 논문의 주제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출했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자연법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는가?’ 루소는 1750년 《과학과 예술론 Discours sur les sciences et les arts》이 1등으로 당선되어 이름을 떨쳤으나 다시 응모하였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논문은 너무나 대범하여서 아카데미 심사원들은 그에게 상을 줄 수가 없었다. 루소의 이 논문은 18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저작 중의 하나다. 이 속에는 사유재산제가 인간들의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주장하여 현대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주장들이 담겨져 있으며, 《사회계약론》의 기틀을 이루고 있다. 즉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자기 보존의 본능에 의해 서로 고립되어 생활하고, 그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그쳤다. 따라서 미개인은 미덕도 악덕도 모르고, 신체적 불평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이 평등하였다. 그러나 사유제(私有制)를 탄생시킨 문명이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강자의 횡령과 약자의 약탈이 시작되어 끔찍한 전쟁상태에 이른다. 사회가 문명화될수록 가장 힘이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든다. 즉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주인과 노예의 상태를 제도화하여 불평등을 영속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기존의 법과 정치제도는 모두 이를 보호하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변혁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당시의 절대 왕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저자 -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6.28 ~ 1778.7.2)
스위스 제네바에서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9일 만에 어머니가 출산 후유증으로 죽자 아버지에 의해 양육되었다. 10세 때는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외삼촌에게 맡겨졌으며, 이후 아버지는 재혼하였다. 14살의 루소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다시는 서로 마주치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기이한 유전은 루소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원인이 되었다. 《에밀》이라는 교육론을 쓴 것은 이 시기에 자신이 겪었던 방황의 경험이 토대가 되었다. 2년 뒤인 16세 때인 1728년 제네바를 떠나 그때부터 유럽을 떠돌며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하인, 비서, 음악 개인 교사, 가정교사 등으로 일하면서 스위스와 프랑스 등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청년기를 보냈다. 이 기간에 바랑 남작부인을 만나 1732년부터 1740년까지 샹베리 샤르메트에서 음악에 몰두하고, 많은 독서를 하며 다방면에 걸친 교양을 쌓았다.

1742년 파리로 나와 디드로, 달랑베르, 콩디약 등과 친교를 맺고, 진행 중인 《백과전서》의 음악 관련 항목을 집필하였다. 1745년 루소는 여러 귀족부인과 사귀었지만, 결국 23살의 세탁부 하녀인 테레즈 르 바쇠르와 오랜 동거를 거친 후 결혼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다섯 명의 아이들은 모두 고아원에 맡겼다. 1750년 디종의 아카데미 현상 논문인 《과학과 예술론 Discours sur les sciences et les arts》이 1등으로 당선되어 이름을 떨쳤으며, 작사·작곡한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가 공연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 뒤 《인간 불평등 기원론 Discours sur l’origine de l’inegalite parmi les hommes》(1755), 《정치 경제론 De l’economie politique》(1755), 《언어기원론 Essai sur l’origine des langues》 등을 쓰면서 디드로를 비롯한 백과전서파 철학자나 볼테르 등과의 견해 차이를 분명히 하였다. 특히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연극에 관한 편지 Lettre a d’Alembert》(1758) 이후 연극의 사회적 기능의 문제 때문에 디드로와 의견 충돌이 있은 후 1년 뒤 절교했다. 대단한 성공을 가져온 서간체 연애소설 《신(新) 엘로이즈 Nouvelle Heloise》(1761)가 파리에서 간행되었으며, 이후 자유와 평등을 논한 《민약론(民約論) Du Contrat social》(1762), 소설 형식을 빌어 쓴 교육론 《에밀 Emile》(1762)을 차례로 출판하였다. 그러나 이신론 사상이 드러나는 《에밀》의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 부분의 철회를 요구받는 등 사상적으로 탄압을 받았다. 루소는 체포령을 피해 스위스, 영국 등으로 도피하였다. 영국에서 흄과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후, 프랑스로 돌아와 각지를 전전하면서 자전적 작품인 《고백록 Les Confessions》을 집필하였다.
1768년에 1745년 이래로 함께 지내온 테레즈 르 바쇠르와 정식으로 결혼하였다. 그 후 파리에 정착한 루소는 자기변론적 작품인 《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 Rousseau juge de Jean-Jacques》를 쓰고,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Les Reveries du promeneur solitaire》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1778년 파리 북쪽 에름농빌에서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유민권 사상은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 1794년 유해를 팡테옹(위인들을 합사(合祀)하는 파리의 성당)으로 옮겨 볼테르와 나란히 묻혔다.

역자 - 이상옥

목차

제네바 공화국에 바침
서문
인간 불평등의 기반과 기원에 관한 논문
제 1 부
제 2 부
루소의 주석
루소 연보

<영문판>
DEDICATION TO THE REPUBLIC OF GENEVA
PREFACE
A DISSERTATION ON THE ORIGIN AND FOUNDATION OF THE INEQUALITY OF MANKIND
THE FIRST PART
THE SECOND 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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