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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술 상세페이지

소설 한국소설 ,   소설 국내 역사소설

칼과 술

이순신의 벗, 선거이 장수 이야기
소장종이책 정가15,000
전자책 정가30%10,500
판매가10,500

칼과 술작품 소개

<칼과 술>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과 용장 선거이의
무장으로서의 의리와 벗으로서의 우정을 그린 소설

『칼과 술』은 임진왜란을 함께 치르며 신뢰와 정리를 나눈 이순신과 선거이 장수의 이야기이다. 두 장수는 백성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심전심이었다.
이십 세에 보성 군수 추천으로 선전관이 된 무장 선거이는, 이십일 세 때 무과 급제한 뒤 삼십칠 세에 함경도 북병사 이일의 계청 군관으로 경성 읍성에 부임한다. 그리고 이순신은 조산보 만호로 이일 북병사에게 부임 신고를 하기 위해 읍성으로 온다. 선거이는 멀리 영강령을 넘어 눈 쌓인 길을, 말을 끌며 오고 있는 이순신을 한눈에 알아본다. 두 사람의 의리와 오랜 우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순신과 선거이는 만나자마자 활쏘기를 겨루며 장수로서의 기개를 서로 알아본다.
선거이는 함경도 조산보 만호 이순신이 녹둔도 전투에서 패전의 누명을 쓰고 하옥될 때 위로주를 권하고 적극적으로 변호해서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돕는다.
유성룡은 선거이에게 “일찍이 이순신을 만났고, 지금 선거이 군관을 보니 마치 범장이 조선 땅에 나타난 것 같이 든든하구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선거이는 거제 현령, 성주 목사, 전라 우수사를 거쳐 전라 병사가 되어 행주대첩에서 권율만큼 전공을 세웠으며 충청 수사가 된 뒤에는 이순신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산도로 내려가 왜적을 격퇴하는 데 일조한다. 당시 장수들은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선거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두 장수는 술잔을 기울이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임진왜란의 팍팍한 병영생활을 견디기도 했던 만큼 이순신은 극비리에 건조 중인 거북선을 선거이에게는 보여준다. 이때 선거이는 거북선을 건조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었던 목수들의 요미(급여 쌀)를 대서 이순신에게 큰 힘이 된다.
선거이는 이순신에게 마음의 증표로 칼을 선물받고(난중일기 1595. 7. 21.) 헤어지면서는 「증별선수사거이贈別宣水使居怡」라는 시를 받는다(난중일기 1595. 9. 14.). 한편 이순신은 선거이가 중병이 들어 고향 보성에 누워 있을 때 이례적으로 직접 문병 가서 위로한다(난중일기 1596. 9. 24.).
1598년 9월 선거이가 먼저 적탄에 전사하고 이어 두 달여 뒤에 이순신이 적탄에 전사함으로써 이 두 장수는 죽음의 때를 거의 같이하고 있다.
작가는 명량해전의 김억추, 진주성 전투의 최경회 등 임진왜란의 장수들을 미시사적으로 접근, 대하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에서 미처 세세히 조명하지 못했던 용장들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출판사 서평

▶ 작가의 말

선거이 장수는 내가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을 집필하는 동안 주목했던 인물들 중의 한 명이었다. 언젠가 선거이 장수만을 따로 재조명하고자 소망했는데 마침 연재할 기회가 생겨 집필하게 되었다.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이 국란을 극복한 임진왜란 충절의 인물들을 망원경으로 보았다면 이번 장편소설 『칼과 술』은 선거이 장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던 셈이다. 앞으로도 나는 『이순신의 7년』 후속 편처럼 이순신을 빛나게 했던 장수, 군관, 의병장, 의승장 등을 주인공 삼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계속 집필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칼과 술』은 그 첫 번째 작품이다.
(……)
나는 한 마디로 임진왜란 7년 전쟁 속에 숨겨진 이순신과 선거이 장수의 무인으로서 칼 같은 의리와 벗으로서 술 같은 우정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한국인의 참다운 덕목이 아닐까 싶다.

_정찬주(「작가의 말 ―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선거이」에서)


▶ 주요 내용

눈보라
선조 19년 1월 하순. 매서운 칼바람 속에 함박눈이 퍼붓는 함경도 경성 읍성을 향해 말을 끌며 한 사내가 다가온다. 며칠 전에 부임해온 군관 선거이는 그가 이순신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순신이 조산보 만호로 부임할 것이라는 공문을 미리 받아보았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여진족을 제압한 김종서가 두만강 유역에 육진(부령, 회령, 종성, 온성, 경원, 경흥)을 설치했을 만큼 함경도에는 여진족의 약탈과 침략이 빈번했다.

새벽 활쏘기
선거이는 새벽을 가르는 활 소리에 이끌려 활터로 간다. 활을 잡고 있는 이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습사를 하는 이순신이었다. 선거이는 이순신의 권유로 활을 잡는다. 두 장수는 1순을 쏘고 다시 1순을 쏘며 사실상 서로를 알게 된다. 이순신은 선거이가 궁금해하던 무장으로의 전환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조식
북청사 이일은 이순신의 부임 신고를 받고 관례대로 닭의 피로 충성을 다짐하는 조식을 치른다. 이일은 자신이 어떻게 함경도 일대 여진족을 평정했는지를 길게 말하고 이순신의 전략을 묻는다. 강구대변이라고 대답하는 이순신. 선거이는 이일과 이순신의 전술이 다름을 간파한다. 이일이 공격적이라면 이순신은 방어적이었다. 조산보로 떠나는 이순신을 나루터까지 배웅하며 선거이는 이순신과 벗이 된 것처럼 마음이 훈훈하다.

순시
선거이는 이일 북병사의 육진 순시 길에 동행한다. 계청 군관으로서 점고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부령과 회령은 부사가 공석이었다. 위험한 변방이라고 갖은 핑계를 대고 임명을 받은 자들이 부임을 회피한 탓이었다. 종성 부사는 대낮부터 술냄새를 풍겼다. 온성만은 달랐다. 왕족으로서 임금과 대신들의 경계를 받고 있는 이억기 부사는 통솔 능력이 있었다. 이억기는 선거이에게 이순신과의 좋은 인연을 말해준다.

조산보
선거이는 이순신의 경흥부 보고가 완벽하다고 판단했다. 이일은 트집을 잡지 못했고 이경록 경흥 부사도 탄복했다. 선거이는 오는 길에 잡아온 여진족 장정을 쓸 데가 있을 거라면서 이순신에게 선물로 준다. 임금이 보낸 녹둔도 둔전관 김경눌의 담력이 의심스러웠던 이순신과 선거이는 여진족 장정을 보내 김경눌을 시험한다. 이순신은 선거이의 용의주도함에 내심 놀란다.

녹둔도
이순신을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으로 제수한다는 임금의 교지를 전하면서 선거이는 녹둔도의 애로사항을 파악한다. 가장 큰 문제는 추수 때라 오랑캐의 약탈 침략이 불 보듯 빤한데 군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게다가 녹둔도는 툭 터진 평지여서 토성이 있다지만 모래언덕이나 다름없었다. 선거이는 이일 병사에게 군사 증원을 간청하지만 이일은 이런저런 구실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드디어 여진족이 쳐들어오고 이순신과 이경록 부사가 천신만고 끝에 격퇴하고 호추 마니응개의 목을 베어 걸지만 아군의 피해가 너무 컸다. 이일은 크게 화를 내고 이경록과 이순신을 수금한다는 상소를 올린다.

하옥
선거이와 온성 부사 이억기는 이순신과 이경록이 패군지장은 아니라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 선거이는 이억기에게 구명을 부탁하고 이억기는 이일에게 두 장수가 여진족을 토벌할 기회를 주자고 하지만 이일은 대답하지 않는다. 선거이는 이억기에게 이항복 수찬과 김명원 좌찬에게 구명 편지를 띄워달라고 부탁한다. 선거이는 갑옷을 벗은 무명 바지저고리 차림의 이순신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주를 권한다.

보복전
선조 21년 1월 14일. 이천오백여 명의 토벌군은 좌군과 우군으로 나뉘어 대대적으로 오랑캐 토벌전에 돌입한다. 선거이는 화열부대를 맡은 이순신을 찾아 격려한다. 이일의 지휘 아래 토별군은 여진족의 삼백여 개 부락을 초토화하는 대전과를 올린다. 선거이는 전투 성과를 밝히는 장계에 이일의 허락을 받아 백의종군 중인 이경록과 이순신의 사면을 건의하는 초안을 작성한다.

작별
선거이는 이순신을 찾아 이심전심 온갖 잡사를 다 잊게 해주는 활쏘기를 한다. 선거이는 곧 거제 현령을 제수받아 떠나게 되고 이순신은 사면을 받았으나 직속상관인 이일 북병사의 명이 떨어지지 않아 고향으로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이순신이 안타까운 선거이는 이순신과 군관청에서 이별주를 마신다.

백성의 마음
거제로 가는 길에 선거이는 젊은이들이 모두 징발되었거나 관아로 사역 나가 정작 농사지을 장정이 없음을 알게 된다. 현령이 너무 자주 바뀐 데다 가장마저 한두 달씩 빈 탓에 군율이 흐트러지고 기강이 무너진 거제현에 부임한 선거이. 군사와 무기의 숫자는 장부와 달랐고 진휼창은 텅 비어 있었으므로 선거이는 자신의 노마료를 진휼창에 귀속시키고 농번기의 사역 금지, 군사 훈련과 군졸들이 잡아온 바닷고기를 뭍으로 보내 곡식으로 바꾸는 등 군기를 세우고 군창과 진휼창을 채운다. 청백리로 뽑힌 선거이는 정3품 성주 목사를 제수받는다.

흉년의 선정
선조 21년 초가을. 폭우로 삼남 일대 농작물이 물에 잠긴다. 선거이는 군창과 진휼창을 열어 성주 읍성의 마을 사람들을 구휼한다. 이 일로 의금부도사 유담이 내려온다. 유담은 조사 끝에 선거이의 결백을 치하하는 술자리를 열고 조정에 그의 선정을 알린다.

내우외환
선거이는 전주 감영에서 온 판관 전인주에게서 정여립의 대동계 이야기와 이순신이 전주 감영의 조방장으로 와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선거이는 이순신의 복귀 소식에 기뻐서 술잔을 기울인다. 한편, 서인들이 정여립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 같다던 선거이의 예감이 맞아떨어진다. 선거이는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조정에는 믿기 힘든 역모 사건의 광풍이 몰아치고 나라 밖에서는 왜적이 조선 침략을 준비하고 있음이었다.

술과 개떡
전라 우수사로 온 10월 16일 밤에 선거이는 지난 2월에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에게 편지를 쓴다. 적조했다는 것과 이순신이 우수영으로 오든지 선거이 자신이 좌수영으로 가든지 만날 날을 기다린다는 편지였다. 선거이는 마을 유지들을 초대, 태평정에서 술과 개떡으로 부족한 물자에 대해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내고 군사적으로는 우수영의 지형을 완전히 숙지한다.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오는 길은 두 곳밖에 없었다. 진도 왼쪽인 울돌목과 오른쪽인 진도 바다뿐이었다.

명량
선거이는 우수영에서도 자신의 노마료를 군창으로 귀속시킨다. 또한 양민들이 울돌목이라고 부르는 명량의 지형과 바닷물의 흐름에 대한 정보를 듣고 전쟁의 승패가 이 명량에 달려 있음을 직감한다. 울돌목 조류는 하루에 네 번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데 밀물과 썰물이 바꿔지기 두 시간 전에 물살이 귀신 소리를 내며 소용돌이친다는 것, 바뀔 때 삼십 분가량 바닷물이 멈추는 때를 이용한다면 공격과 후퇴가 용이할 것이었다.

평양공 선형
장조카 선의경이 「선평양공행장」을 들고 선거이를 찾아온다. 외손인 일두 정여창이 지은 행장으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평양공 선형의 일대기이다. 행장에 격발된 선거이는 나라에 충성할 것을 새삼 다짐하고 별시에 합격한 장조카 선의경에게 비어 있는 군창 군관 직을 맡긴다.

이순신의 편지
선조 25년 임진년 1월. 선거이는 옛정이 듬뿍 배인 이순신의 편지를 받는다. 선거이는 구절 중에 ‘임진년에는 샛바람이 드셀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구절에 주목한다. 이순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순신이 무언가 단단히 작심하고 있음을 편지에서 느낀 선거이는 좌수영으로 직접 가서 이순신을 만나 볼 결심을 하고 길을 떠난다.

거북선 비밀 건조
선거이를 본 이순신은 크게 반기며 송희립 참좌 군관과 정걸 조방장을 인사시킨다. 셋은 비밀리에 거북선 건조를 논의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순신은 선거이에게 장졸들이 한 사람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거북선을 건조하는데 조정에 알리면 건조 기간에 드는 목수들 임금부터 문제 삼아 못하게 할 것이므로 비밀리에 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거이는 깜짝 놀란다. 그러나 거북선 선소를 둘러보면서 목수들 요미(급여 쌀)로 고향 보성에서 우선 백 석을 모아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순신은 감격한다.

유비무환
우수영으로 돌아온 선거이는 무기를 주조하기 위해 군창을 점검한다. 대장장이들에게 넉넉한 요미를 지급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군창 군관 선의경이 백 석 요미를 어렵사리 좌수영으로 보내고 돌아오자 선거이는 거북선에 대한 함구를 당부하고 곧바로 무기 제조에 돌입한다. 칼과 창, 갈고리와 총통을 주조하고 전선을 수리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서두른다.

뜻밖의 교지
전선 수리와 총통 주조까지 끝낸 선거이는 오곡밥과 노루, 토끼 고기로 삶은 뭇국으로 장졸들에게 특식을 먹인다. 그때 선거이를 정3품 통훈대부 동래 수사로 임명하는 임금의 교지가 날아든다. 새로 오는 우수사가 이억기여서 선거이는 안도한다. 선거이는 예정대로 시범 화포 사격을 진행시킨다. 양민들과 우수영 장졸들이 하나가 되는 시범 훈련이었다.

전라도 병마절도사
선거이는 비변사에 동래 수사를 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관철시켜 종2품 가선대부 전라도 병마절도사 임명장을 받는다. 가는 길에 고향 보성에 들러 장조카 선의경을 데리고 서둘러 전라도 병영성 동문에 도착해보니 기이하게도 동문이 텅 비어 있다. 수문장은 물론 성문지기 군졸도 없다. 오십삼 주 육진을 거느리는 육군 본부의 동문이 무방비였다. 선거이는 동문 군사 셋을 효수, 군기를 세운다.

임진년 비보
선거이가 전라 병사로 부임한 지 한 달여 만에 왜군 선봉대가 부산에 침입한다. 송상헌, 정발, 윤흥신 등이 순절하고 부산진성, 동래성, 다대포진성이 함락된다. 경상 좌수사 박홍이 도망치고 경상 우수사 원균도 박홍처럼 우수영 전선들을 대부분 좌침시키고 남해 등지로 떠돈다. 선거이는 자신이 동래 수사로 순절했어야 하다고 자책한다. 연이어 선조가 파천 길에 올랐다는 비보가 날아든다. 조선에 천운이 들어 평양성의 고니시 유카나가가 군수물자를 보급받지 못하자 1593년 1월 8일 조명연합군과 서산대사의 승군이 평양성을 탈환한다. 선거이는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권율이 있는 수원 독성산성으로 올라간다.

작전회의
한양을 수복하기 위해 권율은 행주산성을 중심으로 군사를 재편한다. 작전회의에서 권율은 왜군 주둔지인 광교산까지 쳐들어가 왜군 육백여 명을 사살한 선거이에게 행주산성의 주력부대를 지원하는 임무를 맡기고 화살을 실은 정걸의 충청도 배가 무사히 한강에 들도록 엄호하는 임무까지도 맡긴다.

행주대첩
선거이는 행주산성 전투부터 아군의 승리를 확신했다. 왜군은 평양성 전투 이후 사기가 꺾여 있었으므로 군사가 아군보다 훨씬 많다고 하나 공격은 날카롭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선거이의 정예 지원군은 한강을 건너 산성의 주력군을 지원, 왜군의 전력을 위축시켰고 정걸의 화살을 실은 배를 끝까지 기다려 엄호함으로써 승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바다의 이순신, 육지의 선거이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왜 수군을 대파한 뒤 패전한 왜장들은 섬이나 바닷가에 왜성을 쌓고 명나라 장수와 강화 협상을 꾀한다. 선거이는 이순신에게 육지의 전황을 전하는 편지를 쓴다. 후퇴하는 왜적의 무리가 노략질을 하고 있으니 서글프다며 창원의 거센 왜적을 토벌하는 대로 한산도로 내려가겠노라는 편지를 최경회의 군관 편에 보낸다.

미리 부르는 이별가
이순신은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전우로 선거이를 생각했다. 선거이도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순신의 한산도 통제영에 합류한다. 왜적은 왜성 안에서 간헐적으로 위협 공격을 하고 있을 뿐 전면전을 피하고 있었으므로 전투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선거이가 풍습증으로 자리에 눕는다. 이순신은 몇 차례 문병 끝에 선거이의 병이 심각함을 알고 낙심하여 환도를 마음의 정표로 주고 이별의 술자리를 갖는다.

귀향
한산도 통제영을 떠났으나 선거이에게는 중풍의 조짐이 있었다.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제수받은 선거이는 병조에 사직서를 낸다. 병판 이항복은 의원을 보내 선거이를 고향까지 동행하도록 한다. 그만큼 병세가 위태로웠던 것이다. 선거이는 귀향길에 널린 아사자들을 보고 통탄하며 묻어준다. 선거이는 고향 집에 도착하자마자 혼절한다, 이순신은 선거이의 고향 집을 찾아 위로한다.

장부는 충의를 따를 뿐
이순신이 왕명을 거역했다는 죄목으로 하옥되었다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한 선거이는 도원수영으로 가 싸울 결심을 한다. 선거이는 어쩐지 울산 왜성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 자신의 운명일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1598년 9월 21일. 울산 왜성. 총공격에 앞서 선거이는 선봉군 선봉장을 자진한다. 철수하는 명군과 달리 선봉대를 이끌고 왜군을 압도하던 선거이는 적탄에 쓰러진다. 1598년 11월 19일 광양만에서 이순신도 적탄에 쓰러진다.


저자 프로필

정찬주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3년 2월 11일
  • 학력 1980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 학사
  • 경력 1985년 샘터 편집부 부장
    1985년 샘터 편집부 차장
  • 데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 수상 2011년 화쟁문화대상
    2010년 제23회 동국문학상
    1996년 제5회 행원문학상

2014.11.2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정찬주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발표해왔다.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현재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 이불재耳佛齋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이순신의 7년』(전 7권), 『단군의 아들』, 『천강에 비친 달』, 『인연 1, 2』,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다산의 사랑』, 『소설 무소유』, 『산은 산 물은 물』, 『가야산 정진불 1, 2』, 『다불』, 『만행』, 『대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산문집 『법정스님의 뒷모습』,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부처님 8대 인연 이야기』, 『암자로 가는 길』,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돈황 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정찬주의 다인기행』, 『뜰 앞의 잣나무』, 『불국기행』,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 동자』 등이 있다.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 2011년 화쟁문화대상, 2018년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작가의 말

눈보라
새벽 활쏘기
조식
순시
조산보
녹둔도
하옥
보복전
작별
백성의 마음
흉년의 선정
내우외환
술과 개떡
명량
평양공 선형
이순신의 편지
거북선 비밀 건조
유비무환
뜻밖의 교지
전라도 병마절도사
임진년 비보
작전회의
행주대첩
바다의 이순신, 육지의 선거이
미리 부르는 이별가
귀향
장부는 충의를 따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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