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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2016년 3월호 (월간) 상세페이지

잡지 문학/교양

인물과 사상 2016년 3월호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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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2016년 3월호 (월간)작품 소개

<인물과 사상 2016년 3월호 (월간)> 명랑 독서
서민의 「명랑 독서」에서는 짝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살펴본다. 박범신의 『당신』은 치매에 걸린 노부부를 통해 삶과 사랑의 현상, 그리고 그 이면에 대해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 주호백은 어린 시절부터 짝사랑하던 희옥과 결혼해서 평생을 헌신하며 살았다. 주호백은 희옥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어도,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말년에 치매에 걸리면서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본심이 튀어나온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에게 욕을 퍼붓고 손찌검을 하기도 한다. 차라리 물러날 때를 알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면 주호백의 삶은 조금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짝사랑의 비극은 비단 남녀 관계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주호백을 영남에, 희옥을 새누리당에, 희옥이 마음에 두었던 김가인이라는 남자를 강남에 대입하면 우리 정치권의 지독한 짝사랑의 풍경이 보인다.

강준만의 정치 이야기
이번 호부터 강준만 교수의 ‘정치 이야기’가 새롭게 연재된다. 그동안 한국 정치의 위선과 기만에 대해 탁월한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쓴소리를 한 강준만 교수의 정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첫 번째로 「왜 호남은 ‘친노’에 등을 돌렸는가?: 호남을 인질로 이용하는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는 일부 진보주의자들이 어떻게 ‘호남의 인질화’를 시도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오늘날 ‘빨갱이’ 혐오가 사라진 게 아니듯이, ‘전라도’ 혐오 역시 사라진 게 아니다. 이는 야당 분열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전라도 욕이 홍수처럼 흘러넘친다. 보수보다는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이 더 욕해댄다. 죽어라 하고 진보 쪽 정당에 몰표를 줘온 호남인들이 얼마나 밉겠는가. 문제는 진보의 호남 모멸이다. 배은망덕의 화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들은 파렴치하다. 이들을 ‘진보 일베’라고 불러야 하나? 호남 몰표는 ‘주머니 속의 공깃돌’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바로 그 호남 몰표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은 표를 얻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니들은 죽은 듯이 입 닫고 지내라”고 강요하면서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작태, 이게 바로 일부 진보주의자들의 민낯이다. 이런 ‘싸가지 없는 진보’를 언제까지 감내해야 하는가?

인물 FOCUS
김환표의 「잭 도시: ‘트위터의 부활’은 가능한가?」에서는 IT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트위터가 과연 부활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트위터는 창립 이래 2013년까지 한 번도 이익을 낸 적이 없으며, 2015년 10월 현재 누적 손실액만 거의 2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장에서는 트위터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대기업에 인수될 것이라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전 세계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는 극찬을 들었던 트위터는 어쩌다가 이 지경에 처한 것일까? 트위터 개념을 최초로 떠올린 잭 도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잭 도시는 트위터 부활 프로젝트로 동영상 서비스, 저널리즘 영역 진출 등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영은 냉담하다. 트위터가 페이스북을 모방하고 있다거나 트위터의 140자 제한을 무너뜨려 트위터 고유의 정체성을 흔들었다는 비판이다. 과연 트위터는 부활할 수 있을까?

살림살이 경제학
강수돌의 「경제 위기가 삶의 위기로 나타나는 까닭」에서는 자본주의 위기가 서민 삶의 위기로 전화하는 현실을 고찰한다. 저자는 이 현상이 민중의 삶이 자본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 보고, 민중이 위기에 몰린 자본의 책임 전가를 수용하고, 순응하는 이유로 크게 3가지를 든다. 첫째는 ‘강자 동일시’다. 이런 심리의 배경에는 폭력에 대한 저항이 결국에는 아무 소용없다는 좌절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둘째는 착각 또는 환상이다. 성공적인 개인이나 과거에 집착해 언젠가 좋은 시절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셋째는 정당화의 문제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협소한 이해관계에 몰두한 결과,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당화 논리에 갇힌다. 그렇다면 민중의 삶을 위기에서 구하는 길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탈동일시’다. 지금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내면화해온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되짚어보고, 인간다운 삶의 관점, 즉 인간적 필요의 관점에서 취사선택을 해야 한다.

외교로 보는 세계
안문석의 「‘배제의 외교’에 매몰된 박근혜 정부」에서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제재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외교정책에 대해 살펴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외교안보분야 신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6자회담 무용론을 제기했다. 북한을 뺀 5자회담을 논한 것으로 극단적인 배제 외교다. 그러나 이런 5 대 1 구도의 북한 압박 시나리오에 중국은 반대하고 있다. 북중관계가 생각보다 공고하기 때문이다. 외교는 도덕이 아니라 현실이다. 남북관계는 안 하면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더 후퇴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5자도 모자라 3자로 가고 있고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독자제재 카드까지 써버렸다. 사드(THAAD)도 한반도에 배치하기로 한미가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이런 마이너스 외교로는 북핵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배제의 외교’에서 ‘포용의 외교’로 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최후의 선비들
함규진의 「김창숙: 거센 성질의 소년, 유교의 신화가 되다」에서는 흔들림 없는 신념과 행동력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김창숙에 대해 알아본다. 김창숙은 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활동가의 길을 걸었다. 1909년에는 일진회가 한일합방을 청원한 일을 두고 탄핵서를 올렸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1925년에는 재정난에 시달리던 독립운동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둔전(屯田)’ 조성용으로 모금을 했으나, 모금액에 목표에 미치지 못하자 이 돈을 왜정 기관을 파괴하고 친일 부호들을 박멸하는 일에 썼다. 상하이 체류 중 건강 악화로 병원 신세가 길어진 탓에 일본인들에게 발각되어 고국으로 압송되었고, 대구의 감옥에서 앉은뱅이가 될 정도로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기개를 잃지 않았다. 초로의 나이에도 이승만 하야를 주장하며 야권의 결집을 위해 애썼으며, 죽기 전까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야말로 김창숙은 ‘자신보다 더 큰 가치’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지켜낸 선비의 표본이었다.

반(反)기업 인문학
이번 호부터 문화평론가 박민영의 ‘반(反)기업 인문학’이 새롭게 연재된다. 이 연재에서는 인문학이 무엇이고, 그 인문학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로 「인문학은 대학에서 어떻게 붕괴되었는가?」에서는 학부제 시행에 따른 대학 공동체 붕괴와 인문학의 위기를 다룬다. 2001년 국공립대학 인문대학협의회는 ‘2001 인문학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에서는 “학부제 및 모집 단위 광역화에 대한 폐지”를 요구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시행되었다가, 김영삼 정권 때 부활한 학부제는 대학 공동체를 해체하고 인문학의 위기를 불러왔다. 일각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학자의 위기로 치환하고, 그들의 ‘밥그릇 논쟁’으로 폄하했다. 이런 논리는 인문학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형성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대학의 인문학 홀대로 학계 말단에 있는 인문학 강사들부터 점차 희생되고 있는 작금에, 장기성과 간접성과 ‘무용(無用)의 용(用)’을 특징으로 하는 인문학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그래야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할 혜안을 끌어낼 수 있다.

현대사 라이벌
김용관의 「이승만과 김일성」에서는 일제강점기 직후 이승만과 김정일이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지 살펴본다. 1945년 한국이 독립했을 때, 이승만은 일흔이었고 김일성은 서른셋이었다. 한 사람은 너무 늙었고 한 사람은 너무 젊었다. 하지만 이 둘은 강한 권력욕, 빨 빠른 시세 편승, 외세의 도움으로 각각 남과 북에서 권력을 잡는 데 성공했다. 이승만은 조선 왕실의 후손이자 하버드대학 석사와 프린스턴대학 박사라는 당시 보기 드문 학위를 갖고 있었다. 그는 연설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훌륭한 영어 실력으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김일성은 마적단을 이끌고 만주벌판을 누비며 일본군을 괴롭혀온 인물이다. 이 전설은 상당히 부풀려진 것이지만, ‘조선의 로빈 후드’를 기대하던 사람들은 그가 앳된 모습으로 나타나자 크게 동요하고, 그의 진위를 의심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소련 군정의 지지와 정치지도자들의 공백을 틈타 빠르게 권력을 장악했다.

박정희 시대의 대중예술
이영미의 「청년문화와 정치적 진보성은 어떤 관계였는가?」에서는 1970년대 꽃을 피운 청년문화가 정치적 진보성과 어떤 관계였는지 살펴본다. 1970년대의 포크는 이기적인 물욕․성욕 등에 대한 비판 성향의 작품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나름의 윤리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것은 1970년대 진행된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해 점점 심화되었던 물신화와 비윤리성 등에 대한 비판과 통하는 지점이었다. 청년문화의 양상이 다양했고 시기에 따라 꽤나 변화했으며, 그중 어떤 부류는 정치적 진보성의 흐름과 무관했지만, 또 다른 소수는 충분히 연대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정권과 기성세대가 진보적 세력과 자유주의적 청년문화를 한꺼번에 탄압했다는 점이야말로 후일 청년문화가 진보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높인 요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 1970년대에는 민주주의 등 사회 발전을 향한 움직임들이 자유주의적 문화를 ‘조금은’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시리즈

시리즈의 신간이 출간되면 설정하신 방법으로 알려드립니다.



목차

사진으로 읽는 세상 | 이태준

명랑 독서
짝사랑의 슬픔과 기쁨 | 서민

생각의 갤러리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즐기다 | 〈그림을, 봄〉

인터뷰: 강헌(대중음악평론가)
대중문화의 운명을 읽다 | 신기주

강준만의 정치 이야기
왜 호남은 ‘친노’에 등을 돌렸는가?: 호남을 인질로 이용하는 ‘싸가지 없는 진보’ | 강준만

인물 FOCUS
잭 도시: ‘트위터의 부활’은 가능한가? | 김환표

살림살이 경제학
경제 위기가 삶의 위기로 나타나는 까닭 | 강수돌

외교로 보는 세계
‘배제의 외교’에 매몰된 박근혜 정부 | 안문석

최후의 선비들
김창숙: 거센 성질의 소년, 유교의 신화가 되다 | 함규진

반(反)기업 인문학
인문학은 대학에서 어떻게 붕괴되었는가? | 박민영

현대사 라이벌
이승만과 김일성 | 김용관

박정희 시대의 대중예술
청년문화와 정치적 진보성은 어떤 관계였는가?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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