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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소통의 정치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정치/사회

법과 소통의 정치

율곡의 정치적 사고 | 나루를 묻다 7
소장종이책 정가28,000
전자책 정가30%19,600
판매가1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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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소통의 정치작품 소개

<법과 소통의 정치> 율곡을 율곡의 자리로: '성리학자' 율곡이 아니라 조선의 '정치가 율곡'을 복원하다
2009년 봄부터 여름까지, 대한민국의 국회는 소위 '언론법'이라는 주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율곡이었다면 대한민국의 국회가 그토록 열렬하게 매달렸던 '언론법'이라는 것이 도대체 민생과 국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의심하였을 것이고, 민생과 국사에 그다지 관련도 없는 일에 매달려 모든 것을 팽개쳤던 의원들의 행태에 분노하고 끝내는 허탈해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또 무엇보다도 일반 백성들이 느끼는 감정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설파했던 율곡이 '세종시 문제'를 설득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를 보았다면, 무엇이 중요한지를 직시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 『법과 소통의 정치』를 읽어본다면 이런 율곡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율곡이 살았던 16세기는 흔히 성리학의 전성기로 평가된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율곡의 모습 또한 성리학자로서의 면모이다. 하지만 16세기는 학문적으로는 꽃을 피웠을지 몰라도 정치적 상황은 쇠락의 길로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율곡이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관념적인 철학 속에서만 율곡의 모습을 찾으려 했지, 율곡이 누구보다도 현실 정치에 깊이 관여했던 날 선 정치가였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율곡 이이는 29세(1564년)에 관직에 진출하여 49세(1584년)에 작고할 때까지 (40대 초중반에 낙향하여 몇 년간 학문에 몰두한 시기를 제외하면) 평생을 조선 정치의 현장에서 오로지 산적한 민생 문제의 해결과 안민(安民)을 위해 고투하고, 정책을 개발 집행하고, 잘못된 법을 고치고, 인사 문제와 공론 문제를 혁파하여 소통하고자 애썼던 '위대한 정치가'였다.
이 책은 성리학자 율곡이 아니라 정치가 율곡의 '정치적 사고'를 날 것 그대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조선의 정치가 율곡을 복원해냄으로써 율곡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 문제를 현장에서 찾지 않고 개념화된 세련된 이론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정치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정치를 이론에 종속시키며, 종국에는 정치는 사라지고 이론만 남게 되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 율곡의 이기론, 심성론 등은 모두 율곡이 자신의 위정관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지, 결코 율곡이 철학 이론을 체계화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율곡의 정치적 사고를 복원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꾸 개념화, 이념화, 논리화하려는 세태에서 벗어나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진솔하게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관념적인 철학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 현실에 주목한다
율곡을 다룬 기존 연구들이 주로 철학적 이론을 중심으로 율곡을 설명해왔다면, 이 책의 특징적인 점은 율곡이 현실 정치에서 실제로 보고 듣고 느낀 다양한 정치적 경험들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율곡의 정치사상(political thought)이 아닌 정치적 사고(political thinking)에 초점을 맞춘다. '사상'이 다양한 '사고'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라면, '사고'는 그 결과를 탄생시킨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다양하고 투박한 의식과 행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적 사고'는 정치에 대한 살아 있는 생각들의 보고(寶庫)이다. 이 책은 율곡의 정치적 사고를 재구성하기 위해 2차적인 '글'보다는 1차적인 '말'에 주목한다. 율곡이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율곡 자신의 정치적 아이디어와 언어로 재해석하고, 상소문, 『경연일기』, 편지 등 1차 자료를 우선적으로 해석한다.
상소문은 조선의 정치 현실에 대한 율곡 자신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율곡전서』에 총 130편이 실려 있다. 율곡의 삶과 관직 생활이 여타 사람들보다 짧다는 것을 고려할 때 적지 않은 편수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매우 적극적으로 조선 현실에 대해 언급했고, 따라서 율곡의 관점에서 볼 때 조선 정치의 현실이 매우 위급하였음을 반증한다. 또한 율곡의 정치적 사고와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자료로는 명종 20년(1565)부터 선조 14년(1581)까지 17년 동안의 정치사를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경연일기(經筵日記)』가 있다. 이 일기에서 율곡은 당시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건들에 대처하는 국왕 및 신료들의 태도와 논쟁들을 자신의 생각, 비판과 함께 시기별로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 실록에 기록된 율곡의 주장과 말, 그리고 율곡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조선 정치의 현실에 대해 토로한 부분들을 분석 자료로 삼는다. 이 자료들은 율곡이 자신의 정치적 아이디어와 정치적 삶을 어떻게 연계시키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이 책은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율곡이 그의 관직 생활을 통해 표출한 정치적 사고를 검토한다.
율곡의 정치적 사고는 전(前) 철학적-전(前) 성리학적인 투박하고 진솔한 율곡 자신의 '말' 속에 숨겨져 있고, 이를 당시의 정치 현실과 결부시켜야만 그것이 가지는 올바른 정치적 의미를 재조망할 수 있으며, 이때 비로소 '경세가'로서 율곡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출해낸 율곡의 정치적 사고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법'과 '소통'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다.

폐법을 혁파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

비록 태평스러운 세상이라 하더라도 습성에 물들어 안일하게 지내면 쇠퇴하고 마는데, 하물며 우리나라는 권세 있는 간신이 흐리고 어지럽게 하여 고질에 빠져온 지가 20년이나 되어 모든 법도가 무너지고 나라의 근본이 피폐하였으니, 만약 지금 인습만 따르고 고식적으로 세월만 흘려보낸다면 나랏일은 날로 어긋나서 장차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 구습을 씻어낸 연후에만 백 가지 폐단을 개혁할 수가 있고 온갖 공적을 빛나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옥당진시폐소(玉堂陳時弊疏)」 중에서

이른바 때에 알맞게 한다는 것은 때에 따라 변통을 하고 법을 마련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 대개 법이란 때에 따라 제정하는 것이니, 때가 바뀌면 법도 같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 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만언봉사(萬言封事)」 중에서

민생의 곤란이 오늘날보다 심한 때가 없었으니, 급히 폐단을 구제하여 먼저 백성들의 고통을 풀어준 뒤에라야 향약을 행할 수 있습니다. 덕으로 교화함은 곧 고량진미와 같은 것입니다만, 만일 비위가 극도로 손상되어 죽도 내려가지 않는다면 고량진미가 아무리 좋더라도 먹을 수 있겠습니까.
- 율곡의 『경연일기』(선조 7년 2월) 중에서

이 책이 율곡이 사용한 용어 중 가장 주목한 것은 폐(弊)이다. 율곡은 명종 19년(1564)부터 관직에 몸담았는데, 그의 관직 생활은 앞 시대의 권간들이 남긴 유폐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으로 시작되었다. 명종 통치기 문정왕후와 그녀를 중심으로 한 윤원형 등의 권간 세력들이 국맥과 국가의 기강을 약화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율곡은 문정왕후의 죽음을 개혁의 시점으로 삼고, 보우와 윤원형의 탄핵 그리고 을사 위훈 문제를 정치 쟁점으로 부각시켜 과거 청산 문제를 재차 제기했다. 율곡은 선대부터 참여했던 신료들 역시 과거 청산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인화성 높은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유폐의 원인을 제공했던 권간들이 사라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폐가 조선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율곡은 '법'과 만나게 된다. 이때 율곡이 인식한 법은 '엄벌성'과 '규율성'을 갖는 실정법만이 아니라, '관습과 관례'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율곡이 폐법 개혁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 것은 황해도 관찰사 등의 지방관 경험을 통해서였다. 율곡은 군정, 조세, 향약 제도 등이 폐법으로 작동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백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민생'이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율곡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의 차원이 아닌 백성이 편안한 안민(安民)의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율곡의 인식은 법에 대한 율곡의 새로운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율곡은 민생의 문제를 민생을 저해하는 요소들에 대한 사법적 사유 방식이나 경제적 사유 방식만으로 접근하거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부인한다. 율곡은 민생의 문제는 '정치적 문제'였음을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것이었다. 따라서 율곡은 역사적으로 '과거에 잘된 정치'를 과정과 방법의 측면에서 접근하여 본받는 '법'과의 소통에 주목한다. 달리 표현하면 정치와 역사 간의 소통이며, 현재와 과거 간의 소통이다. 이 점이 바로 율곡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법의 개념이다. 율곡이 법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바로 올바른 정치의 방향이다.

소통의 부재를 염려하고 민정을 파악하라

지금 민중의 노여움이 쌓인 것이 마치 오래 막혀 있던 강물이 터놓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지는 것과 같아서, 공론(公論)이 나라 사람들에게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막아낼 수가 없으니, 곧 민중의 감정을 따라서 국시(國是)를 안정시키는 것은 바로 오늘날에 해야 할 일입니다.
- 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옥당논을사위훈차(玉堂論乙巳僞勳箚)」 중에서

삼가 살피건대, 작(爵)은 덕망이 있는 이에게 명하는 것이요, 관(官)은 능력이 있는 이에게 맡기는 것이니, 성군의 나라 다스림은 어진 이에게 맡기고 능한 이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금상은 그렇지 아니하여 선비로서 인망이 있는 이는 반드시 교격하다고 의심하여 지나치게 억압하고, 인망도 없고 학식도 없이 어물어물 추종하는 자는 높이 우대하며 두터이 포상하여 띄워 올려 대관을 제수한다. …… 거조(擧措)가 이와 같으니 인심과 세도가 물과 같이 아래로만 내려가서 구제할 수 없게 됨이 당연하다.
- 율곡의 『경연일기』(선조 14년 4월) 중에서

큰일을 할 군주는 반드시 존경하고 믿는 신하가 있어 서로 친근함이 부자와 같고, 서로 뜻이 맞기가 고기와 물과 같고, 서로 조화됨이 궁상(宮商)의 음률과 같고, 서로 합함이 계부(契符)와 같으니, 그런 뒤에는 말이 쓰이지 아니함이 없고, 도가 행해지지 아니함이 없고,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는 것입니다.
- 율곡의 「동호문답(東湖問答)」 중에서

폐에서 폐법으로 옮겨갔던 율곡의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후기에 이르러서는 폐정(弊政)이라는 문제로 옮겨가게 된다. 율곡은 폐법이 개혁되지 못하는 이유를 페정에서 찾고 있었다. 율곡이 인식한 당시 폐정의 핵심은 '소통'의 단절에 있었다. 그런데 법이라는 명칭이 아니라 구체적인 폐법에 주목한 것과 마찬가지로, 율곡은 정치에 있어서 단순한 제도상의 소통 그 자체보다는 비소통의 여러 가지 상황에 주목한다.
율곡이 지목한 폐정은 첫째는 잘못된 인사 문제였다. 율곡은 정치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민정(民情)을 파악하는 일이 시급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율곡은 백성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현실을 정치의 장에 전달하고, 나아가 스스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민정을 전달할 진정한 매개자의 역할이 요구된다. 민정을 제대로 전달해야만 임금과 백성들 간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매개자를 통한 진정한 소통을 위해 율곡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인사 정책이었다. 율곡의 인사 정책은, 관(官)과 작(爵)의 적절한 활용으로 모아진다. '관'이란 능력 있는 사람을 부리는 것을 의미하고 '작'이란 덕을 가진 자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율곡은 '관'과 '작'을 인사 문제에 적절하게 활용하여 민생을 좀먹는 폐법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나아가 정치에서 실무자와 조언자 간의 원활한 소통을 지향하였다.
둘째는 왜곡된 공론 문제였다. 율곡은 인사 문제와 공론 문제는 모두 '소통의 부재'라는 요소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인식한다. 율곡은 여기서 논(論)보다 의(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의를 살려냄으로써 정치의 장에서 소통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한다. '논'은 결론에 가까운 의미가 되며, '의'라는 말은 그 과정에 가까운 것이다. '논'이 혼자서 결단하는 것이라면, '의'는 더불어 함께 구체적인 사안들을 따져보는 것이다. 율곡의 비판은 '논'만 있지 '의'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라 그 자체보다 나라 '되기'에 주목했던 율곡

율곡의 '정치적 사고'는 그가 사용한 정치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율곡이 말하는 정치란 '정(政)을 행함으로써 치(治)를 이룩하는 것'으로, '정'은 현실 세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다양한 행위의 '과정'을 가리키는 반면, '치'는 그 행위가 바람직한 상태로 나타난 결과를 가리킨다. 율곡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임금이 신하에게 맡기는 것은 천지의 도입니다만, 맡기는 것에 사(邪)와 정(正)이 있어서 치란안위(治亂安危)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므로 군자에게 맡기면 정사가 다스려져서 태평하고, 소인에게 맡기면 정사가 천단되어 위태하며, 군자든 소인이든 맡기지 않으면 정사가 흩어져 어지럽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 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진시폐소(陳時弊疏)」 중에서

결국 율곡에게 정치란 '위험과 혼란이 아닌 편안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인간의 행위가 천단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제대로 다스려진 상태'를 가리킨다.
율곡에게 중요한 것은 나라 그 자체가 아니라 '나라가 되는 것', 달리 말하면 '과정'이었다. 그러한 율곡의 사고는 오늘의 우리에게 공동체 그 자체보다는 '공동체 되기'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한다. 성공도 발전도 위기도 결정된 궤도가 있어서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건을 만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노력한 결과가 드러난 것이 바로 우리가 만난 현실이다. 매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부딪히는 우리는 율곡의 정치적 역경을 통해 그 과정을 극복해가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율곡이 당시의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한 바가 지금 우리의 정치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데 하나의 지침이 되고,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가는 데 조언자가 되기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최진홍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나, 중동고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이 시대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로부터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율곡의 위정론: 퇴계의 치본론과 비교하여」(2009), 「법과 소통 그리고 정치: 율곡의 폐정개혁론을 중심으로」(2009)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서론

제1장 유폐 개혁
제1절 과거 청산
제2절 권간과 유폐
제3절 율곡의 정치관
제4절 있어야 할 정치와 현재 있는 정치

제2장 민생과 폐법
제1절 폐법론
제2절 폐법 개혁론
제3절 안민론: 애민과 안민
제4절 법과 정치

제3장 소통과 폐정
제1절 율곡의 조정 복귀
제2절 인사 문제 비판
제3절 공론 문제 비판과 붕당론
제4절 소통과 정치

제4장 민생과 소통의 관점에서 본 군도론
제1절 「동호문답」을 중심으로 한 율곡의 군도론
제2절 『성학집요』를 중심으로 한 율곡의 군도론
제3절 율곡 군도론의 정치적 의미
제4절 사람과 정치

결론: 율곡과 정·치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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