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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 상세페이지

나의 소원작품 소개

<나의 소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그 시절에도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이 있었다. 주자학에 매여 사대사상과 당파싸움에 매였던 이조 오백년과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레닌을 쫒는 독립운동가들을 신랄히 비판했던 목소리가 여기 있다.

프롤로그를 백범일지에 나오는 김구의 글로 대신한다.



나는 생각하였다. 우리 선인들은 한, 당, 송, 원, 명, 청 시대에 끊임없이 사절이 내왕하면서 왜 이 나라의 좋은 것은 못 배워 오고 궂은 것만 들여왔는고. 의관 문물 실준중화(衣冠 文物 實遵中和: 의관과 문물은 모두 중국의 것을 좇는다)라는 것이 이조 오백 년의 당책이라 하건마는 머리 아픈 망건과 기타 망하기 좋은 것뿐이요, 이용후생에 관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민족의 머리에 틀어박힌 것은 원수의 사대사상뿐이 아니냐. 주자학을 주자 이상으로 발달시킨 결과는 공수위좌(拱手爲座)하여 손가락 하나 안 놀리고 주둥이만 까게 하여서 민족의 원기를 소진하여 버리니 남는 것은 편협한 당파싸움과 의뢰심뿐이다.



오늘날로 보아서 요새 일부 청년들이 제정신을 잃고 러시아로 조국을 삼고 레닌을 국부로 삼아서 이제까지의 민족혁명은 두 번 피 흘릴 운동이니, 대번에 사회주의 혁명을 한다고 떠들던 자들이 레닌의 말 한 마디에 돌연히 민족혁명이야말로 그들의 진면목인 것처럼 들고 나오지 않는가. 주자님의 방구까지 향기롭게 여기던 부류들 모양으로 레닌의 똥까지 달다고 하는 청년들을 보게 되니 한심한 일이다. 나는 반드시 주자를 옳다고도 아니하고 마르크스를 그르다고도 아니한다. 내가 청년 제군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를 잃지 말란 말이다. 우리의 역사적 이상, 우리의 민족성, 우리의 환경에 맞는 나라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밤낮 저를 잃고 남만 높여서 남의 발뒤꿈치를 따르는 것으로 장한 체를 말라는 것이다. 제 뇌로, 제 정신으로 생각하란 말이다.



나는 어떠한 의미로든지 독재정치를 배격한다. 나는 우리 동포를 향하여서 부르짖는다. 결코 독재정치가 아니되도록 조심하라고, 우리 동포 각 개인이 십분의 언론 자유를 누려서 국민 전체의 의견대로 되는 정치를 하는 나라를 건설하자고, 일부 당파나 어떤 한 계급의 철학으로 다른 다수를 강제함이 없고, 또 현재의 우리들의 이론으로 우리 자손의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속박함이 없는 나라, 천지와 같이 넓고 자유로운 나라, 그러면서도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나라를 건설하자고. <김구 백범일지 중>


저자 프로필

김구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76년 8월 29일 - 1949년 6월 26일
  • 경력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1928년 한국독립당 총재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장
    팔봉도소 접주
    1893년 동학 접주
  • 수상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2014.11.2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김구(金九, 1876년 8월 29일 (1876년 음력 7월 11일) - 1949년 6월 26일)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한인애국단을 이끌었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역임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몰락 양반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 이후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다. 호는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 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 자를 따서 지었다. 19세 때 이름을 창수(昌洙)로 바꾸었다가, 37세(1912년)에 거북 '구'(龜)였던 이름을 아홉 '구'(九)로 바꾸었다. 젊어서 동학교도 였고, 불교에 귀의해서 법명 원종(圓宗)을 얻은 승려였으며, 신민회에서 활동하면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양산학교, 보강학교 등에서 교육자로 교편을 잡기도 했고, 해서교육총회 학무총감으로도 활동했다. 교육·계몽 운동 중 일본 제국 경찰에 연행되어 수감되기도 하였다. 한인애국당을 조직하여 이봉창의 동경 의거,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사건 등을 지휘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임시정부 법통 운동과, 이승만, 김성수 등과 함께 신탁 통치 반대 운동과 미소 공동위원회 반대 운동을 추진하였으며, 1948년 1월부터 남북 협상에 참여했다.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저서로는 백범일지가 있다. 백범일지는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국민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이다.

목차

한국문학클래식 김구 나의 소원
작가소개
프롤로그
나의 소원
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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