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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단편집 상세페이지

카프카 단편집작품 소개

<카프카 단편집> 카프카는 20세기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20세기 중반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재발굴되었으며, 작품 속에서 ‘카프카적’인 독특한 세계를 형성하여 존재론적 질문과 근원적인 불안, 갈등을 통해 인간의 실존과 소외, 허무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고 있으며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다.
카프카는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던 지금의 체코 프라하에서 상인 헤르만(Hermann)과 뢰비(Löwy) 가문인 율리(Julie)의 아들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상류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장신구 등을 팔기 시작해 규모를 키운 아버지의 사업으로 12시간씩 일하는 부모를 대신해 보모와 하인들이 카프카와 그의 형제들을 돌봤다. 카프카는 어린 시절 성격이 유약하고 체구가 작았던 데 반해, 자수성가한 상인이며 체구가 크고 독선적인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로 인해 억압받았던 카프카는 일찍이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자기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와 실존, 소외와 허무를 작품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카프카는 1901년 프라하 구시가지의 독일계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프라하의 카를페르디난트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바꿔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08년 7월 노동자재해보험국의 관리로 취직하여 1921년 폐결핵 악화로 장기휴가를 얻어 은퇴를 하기 전까지 근무했다.
그는 일생 동안 세 차례의 약혼과 파혼을 겪었는데, 두 차례는 펠리체 바우어와의 약혼이었으며, 한 차례는 1919년 율리 보리체크와의 약혼이었다. 이때 보리체크에 대한 아버지의 반대와 갈등을 계기로 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독선적인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답하는 형식으로 쓰인 편지글로, 결국 아버지에게 부치지 못한 채 사후 책으로 발간되었지만 카프카와 그의 문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부정적 긍정성으로서 카프카 문학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버지 대한 문답을 통해 카프카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작품이다. 겉보기에는 큰 파장 없는 삶이었으나 카프카의 내면은 불행한 고뇌의 삶이었다.
그의 고뇌는 출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과 커다란 상처에 시달렸다. 그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민족적 강인함을 이어온 동방의 정통 유대인이 아닌 유럽화된 서방 유대인에 속했다.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므로 기독교 사회에는 영원히 속할 수 없었다. 독일어를 사용했으나 체코인은 아니었고 보헤미아계 독일인도 아니었으며, 보헤미아에서 태어났으나 오스트리아에 속하지도 않았다. 또한 노동자재해보험국의 관리였으므로 일반 서민 계급은 아니었으며, 상인 가문에서 태어났으므로 노동자 계급도 아니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무수한 세계에 속하면서,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카프카의 문학은 유별나게 그의 생애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카프카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독일의 영향력 있는 문예작가 빌헬름 엠리히(Wilhelm Emrich)는 카프카의 문학이 지니는 특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모든 작품은 하나의 통일된 핵심적인 ‘약속’에 의해 그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하나의 작품은 서로 다른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면 하나의 근원적인 구조에 의해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카프카의 생애는 실존주의가 탄생하기까지의 배경과 일치하는데 기계 문명에 의한 인간의 평균화, 자기 소외, 공동 사회와 개인의 대립, 존재의 독자적인 방법으로써 실존의 자각 등 이처럼 인간의 실존이 사회 구조적으로 위협받기 시작한 20세기 초, 위기 상황 속에서 카프카의 문학이 탄생했다.
카프카에게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소속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존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속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소속과 무소속, 존재와 비존재, 내면의 고뇌와 무수한 존재론적 질문— 그에 답하는 실존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관찰》 《시골 의사》 《단식 수도자》는 카프카의 소품과 단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관찰》은 1912년 출간된 카프카의 첫 작품집으로 〈국도의 아이들〉 〈경마 기수를 위한 사색〉 〈불운하다는 것〉 등 1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20년에 출간된 두 번째 작품집 《시골 의사》는 자신의 외삼촌 지크프리트 뢰비를 모델로 삼아 자전적인 요소를 담은 〈시골 의사〉와 내면의 근원적인 갈등을 형상화해서 다룬 〈서커스 관중석에서〉 〈황제의 사자〉 〈어느 학술원에의 보고〉 등 1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24년, 키얼링 요양소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면서 교정을 본 원고이자 마지막 작품집인 《단식 수도자》는 폐결핵으로 후두가 부어 점차 말하기와 음식 섭취가 어려운 상황이 영향을 주었는지 〈단식 수도자〉 외 〈최초의 고민〉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 등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단식 수도자〉의 단식 광대는 전형적인 카프카적 인물로서, 사회 전반에 소속되지 못하고 소외되고 희생되는 개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카프카의 처음과 죽음을 함께한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수도자》를 한데 묶은 이 책 《카프카 단편집》은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카프카가 일생 동안 한 치 양보 없이 전개해온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을 오늘날 다시 새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저자 소개

1883년
7월 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던 지금의 체코 프라하에서 상인 헤르만과 뢰비 가문인 율리의 아들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남. 아버지의 사업으로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부모를 대신해 보모와 하인들이 카프카와 그의 형제들을 돌봄. 카프카의 남동생 게오르크와 하인리히는 영아기에 사망.

1889년
여동생 엘리(Elli) 태어남.

1890년
여동생 발리(Valli) 태어남.

1892년
여동생 오틀라(Ottla) 태어남. 세 여동생은 이후 나치 강제 수용소로 흩어져 죽음을 맞이함. 그 중 유독 각별했던 오틀라는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1889년
프라하 구시가지의 4년제 초등학교인 플라이쉬마르크트(Fleischmarkt) 초등학교에 다님.

1893~1901년
프라하 구시가지의 독일계 김나지움에 다니며 평생지기인 루돌프 일로비(Rudolf Illowy)와 오스카 폴락(Oskar Polak) 등과 교제. 이 시기에 문학에 마음을 두고 습작. 1900년 17세 여름, 체코 동부 모라비아 지방의 시골의사인 외삼촌 지크프리트 뢰비의 집에서 방학을 보냄. 니체의 전작을 읽기 시작.

1901~1906년
프라하의 독일계 대학인 카를페르디난트대학에서 학업. 화학을 공부하다가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한 학기 동안 독문학을 공부함.

1902년
뮌헨 여행을 하며 독문학을 전공할 계획을 세우지만 프라하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함. 10월, 평생지기 막스 브로트(이후 카프카의 유고를 직접 출판)를 만남.

1904~1905년
카프카의 첫 문학작품 〈어떤 투쟁의 기록〉 집필 시작. 막스 브로트, 오스카르 바움, 펠릭스 벨취와 정기적으로 프라하 유대계 문인 그룹 ‘프라하 서클’ 형성.

1906년
막스 베버의 동생인 알프레드 베버의 지도로 프라하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 취득. 10월부터 프라하 민사법원과 형사법원에서 1년간 법률 실습.

1907년
미완성 단편 〈시골에서의 혼례 준비〉 집필 시작. 10월 첫 직장인 이탈리아계 민간 보험회사 입사해 9개월간 근무.

1908년
《휘페리온(Hyperion)》지에 8편의 산문 소품 첫 발표. 7월부터 1922년 7월 프라하 소재 노동자재해보험국로 이직해 조기 퇴직할 때까지 14년간 법률가로 근무하는 동안 성실하고 지적이며 유머 있다는 평판을 받음.

1909년
《휘페리온(Hyperion)》지에 〈어떤 투쟁의 기록〉의 일부인 〈취한 자와의 대화〉 게재. 막스 브로트 형제와 함께 휴가를 보냄.

1910년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함. 5월 법률 고문으로 승진. 대중 집회 등 참석, 동유럽 유대인 순회극단의 연극을 자주 관람.

1911년
프리틀란트(현재 러시아 프라브딘스크)와 독일 라이헨베르크로 공무 여행. 막스 브로트와 함께 북부 이탈리아의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냄. 10월 유대인 극단 배우 이차크 뢰비와 교제하며 유대인이 공유하는 문학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됨. 첫 장편소설 〈실종자〉(1927년 막스 브로트가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출판) 집필 시작.

1912년
8월, 막스 브로트의 소개로 펠리체 바우어와 첫 만남. 9월부터 서신을 활발히 주고받음. 9월, 하룻밤 사이에 〈선고(Das Urteil)〉 집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실종자(Der Verschollene)〉 7장까지 완성. 11~12월, 〈변신(Die Verwandlung)〉 집필. 12월, 첫 번째 작품집 《관찰(Betrachtung)》 출간. 프라하 작가모임에서 〈선고〉 최초 공개 낭독.

1913년
3월 부활제 때 베를린에 있는 펠리체의 집 첫 방문. 5월, 〈실종자〉의 첫 장인 〈화부(Der Heizer)〉를 별도 출간. 11월, 펠리체의 친구 그레테 블로호와 서신 교환. 키에르케고르 저작에 관심을 갖게 됨.

1914년
6월, 베를린에서 펠리체 바우어와 약혼. 7월, 베를린 호텔에서 파혼. 8월,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 카프카는 노동자재해보험국의 요청으로 징집 면제. 8월, 〈심판(Der Prozeβ)〉 집필에 몰두. 10월, 〈유형지에서(In der Strafkolonie)〉와 〈실종자〉 집필. 〈법 앞에서〉 집필, 별도 출간(이후 〈소송〉에 수록됨). 그레테 블로흐와 교제.

1915년
1월, 〈소송〉 집필 중단. 펠리체 바우어와 재회. 3월, 프라하 시내에 방을 얻어 독립. 11월, 《변신》 출간. 칼 슈테른하임이 카프카에게 폰타네상을 양보함. 카프카는 1913년 출판한 〈화부〉로 이 상을 수상함.

1916년
4월 로베르트 무질에 프라하에 있는 카프카 방문. 7월 펠리체 바우어와 관계가 회복되어 열흘간 휴가. 10월, 〈선고〉 출간. 11월, 펠리체 바우어와 뮌헨을 여행하며 〈유형지에서〉 두 번째 낭독. 여동생 오틀라가 마련해준 프라하의 작은 집에서 6개월간 머물며 《시골의사》에 수록될 단편 〈서커스의 관중석에서〉 〈이웃 마을〉 〈황제의 사자〉 등을 집필.

1917년
3월, 쇤보른(Schönborn) 궁으로 방을 옮김. 7월, 펠리체 바우어와 두 번째 약혼. 8월, 각혈 등 폐결핵 증세를 보임. 9월, 폐결핵을 진단받고 펠리체와 파혼 결심. 요양을 위해 여동생 오틀라가 경영하는 작은 농장 취라우에서 이듬해 5월까지 머물며 〈세이렌의 침묵〉 외 다수의 잠언 집필. 12월, 펠리체 바우어와 두 번째 파혼. 《오스트리아 조간신문》에 〈어느 학술원에의 보고〉 게재.

1918년
12월, 슐레지엔에서 4개월간 요양. 율리에 보리체크를 알게 됨.

1919년
5월, 《유형지에서》 출간. 9월, 아버지의 반대에도 율리에 보리체크와 약혼. 이런 갈등을 계기로 《아버님께 드리는 편지(Brief an den Vater)》 집필.

1920년
구스타프 야누흐가 카프카를 자주 찾아와 대화를 나눔(이를 토대로 1951년 〈카프카와의 대화〉 출간). 카프카 작품을 체코어로 번역한 밀레나 에젠스카와 편지를 주고받음. 5월, 두 번째 단편집 《시골 의사》 출판됨. 7월, 아버지의 반대로 율리에 보리체크와 파혼. 12월, 슬로바키아 마틀리아리 요양소에서 9개월간 지냄. 우화적 단편 〈포세이돈(Poseidon)〉, 〈밤에(Nachts)〉, 〈법의 문제(Zur Frage der Gesetze)〉, 〈팽이(Der Kreisel)〉 집필. 이용소 동료 환자이자 의대생이었던 로베르트 클롭슈톡과 친교.

1921년
8월, 프라하로 돌아와 직장 생활 복귀. 다음 해 은퇴할 때까지 장기휴가를 얻음. 10월, 밀레나 예젠스카에게 10년간 쓴 일기를 건넴. 막스 브로트에게 사후에 발견되는 자기 원고를 모두 불태워줄 것을 부탁함.

1922년
1월, 불면과 신경쇠약 증세를 보임. 체코 슈핀델뮐레에서 3주간 요양하며 마지막 장편소설 《성(Das Schloβ)》 집필 시작. 2월, 단편 〈단식 수도자(Ein Hungerkünstler)〉 〈어떤 개의 탐구(Forschungen eines Hundes)〉 등을 집필. 7월, 회사를 그만두고 연금을 받아 생활함. 8월, 신경쇠약 증세로 프라하 플라나에 있는 오틀라의 별장에서 요양하며 거주. 밀레나 예젠스카에게 《성》 원고를 건넴.

1923년
병상 생활이 잦아짐. 4월, 팔레스타인 이주 계획을 세우기도 함. 7월, 여동생 엘리 부부와 발트해 뮈리츠로 여행을 떠나 마지막 연인인 도라 디아만트를 만남. 9월, 도라 디아만트와 함께 살기 위해 프라하를 떠나 베를린으로 이주. 10월, 단편 〈작은 여인(Eine Kleine)〉과 겨울에 미완성작 〈굴(Der Bau)〉 집필.

1924년
3월, 막스 프로트가 건강이 악화된 카프카를 프라하로 데리고 옴. 마지막 작품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Josefine, die Sängerin)〉 집필. 4월, 점차 말하기와 음식 섭취가 힘들어짐. 비너발트 요양소를 거쳐 4월, 도라 디아만트와 로베르트 클롭슈톡과 동행해 두 사람의 간호를 받으며 빈 교외 키얼링 요양소에 마지막 시간을 보냄. 단편집 《단식 수도자》 원고 교정. 6월 3일, 호프만 요양소에서 사망. 6월 11일, 프라하 신유대인공동묘지에 안장. 8월, 마지막 작품집 《단식 수도자》 출판됨.

목차

판권소개
차례
이 책을 읽는 분에게
관찰
국도의 아이들
사기꾼의 가면을 벗기다
갑작스러운 산책
결심
등산
독신자의 불행
상인
넋을 잃고 밖을 바라보다
귀로
달려서 지나가는 사람들
승객
의상
거절
경마 기수를 위한 사색
거리를 향한 창
인디언이 되고 싶은 소망
수목
불운하다는 것
시골 의사
새 변호사
시골 의사
서커스의 관중석에서
낡은 페이지
법 앞에서
승냥이와 아랍인
탄갱 방문
이웃 마을
황제의 사자使者
가장의 걱정
열한 명의 아들
형제 살인

어느 학술원에의 보고
단식 수도자
최초의 고민
작은 여인
단식 수도자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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