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 빠진 앞치마, 수명을 다한 붓, 굳은 물감. 갈라진 틈 사이로 물감이 스며들어 잔뜩 때 탄 손톱, 원래부터 그랬던 것 같은 얼룩덜룩한 손가락. 아등바등 살아가는 너와 달리 나는 무쓸모한 존재였다. “우리 헤어질까.” 너는 나를 버틸 수 없었고 나는 너를 붙잡아 둘 용기가 없었다. 술의 용기를 빌린 어느 늦봄, 너를 그리게 될 걸 알면서도 이별을 통보했다. * * * “형은 지금도 도망만 가네.” “…….” 생각의 틈을 깨고 들어오는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