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자작가의 영식, 멜리안 레이슨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원래도 썩 대단치 않았던 자존심을 구기고 학술원 동창인 헬레나를 찾아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곤경에 빠진 가족을 구하기 위해, 부유하고 고귀한 공녀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서. “나와 결혼하는 건 어때요?” “뭐라고요?” “결혼이요. 나와 결혼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어요.” 맹세컨대, 그런 식으로 청혼을 받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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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님을 원한 적 없다. 영화 속 블링블링한 로맨스도 꿈꾼 적 없었고. 한국인 유학생 서유하의 꿈이자 목표는 단 하나였다. 던필드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고, 세계적인 대기업에 취직하여 억대 연봉 받기. 그래서였을까. 만인의 우상, 영국이 낳은 최고의 신사라는 ‘제프리 해스터’께서 오직 그녀에게만 심술궂을 때도 별 개의치 않았던 건. 짜증스럽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놀랍지도 않았고. 머리 딱딱한 귀족 백인 남자애에게 뭘 바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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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쩍 말라서 더 왜소해 보이는 그 애. 8살 유은태는 첫날부터 손이 많이 가는 문제아였다. 또래보다 작은 주제에 겁도 없이 저보다 훨씬 큰 오빠들한테 덤비고 대들었다. “누나, 나 이거 뚜껑이 안 따져…….” 하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유순해 애교 많은 집고양이처럼 누나, 누나 하며 따라다니던 아이였는데. “이제 안 해. 누나 동생 그런 거.” 미동 없이 나를 주시하고 있을 뿐인데도 192cm의 유은태에게선 위압감이 느껴졌다. 늘 수줍게 웃던 8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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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였다가, 서로가 첫사랑이었다가, 이제는 그저 상사와 부하 직원. “전 항상 사장님의 혜안과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놀라는걸요.” 대외적으로는 합이 좋은 사장과 비서. 그러나 그 속은 다르다. “윤서희, 내가 너 좋다고 하면?”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왜?” “겁쟁이시잖아요.” “…….” “그때 고백 못 했으면 그 정도의 마음인 겁니다. 10년 넘게 아무것도 못 했으면 그 정도의 마음인 거예요.” “나 원망해? 진작 고백 안 해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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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빙의한 하이틴 영화의 남주인공에게 수학 과외를 해 주게 되었다. 빌어먹을 추천서가 뭐라고! “기하학 말고 다른 것도 잘해? 이를테면, 키스 같은 거?” 그냥 과외만 해 주고 튈 생각이었는데, 남주인공은 왜 저딴 질문을 하는 것이며, “나 예전부터 너 좋, 좋아했어…! 홈커밍 파트너가 되어 줘!” 소꿉친구인 놈은 또 왜 저러고, “내 연주 보러 우리 집 갈래?” 학교 유일한 밴드의 보컬은 왜 내게 추파를 던지는가? “클로이, 미안하지만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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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가문에서는 귀하의 학식과 단정한 품성을 높이 사, 크로 가문의 자제 교육을 맡아 주실 가정 교사로 초빙하고자 합니다.] 타계한 부친의 앞으로 온 장난 편지 같은 가정 교사 공고문. 동생의 요양원비를 위해 록산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택에 발을 들였다. “저녁 시간이 되어 모시러 왔습니다.” 건장한 사내가 소리 없는 걸음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이상할 건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차림만 빼면. 넓은 어깨를 따라 팽팽하게 당겨진 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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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혼식에 제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객도, 예복도, 식순도. 제대로 갖춘 것은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심지어 신랑조차 없는 결혼을 신관이 허가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마족의 부정한 핏줄이 왕국에 번성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런 명목으로 여왕이 친히 맺어준 괴물 여공작의 결혼 상대는 젊고 아리따운 여자였다. 그것도 마족 공포증이 있어 마족 혼혈인 공작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는 불쌍한 여자. 자신을 두려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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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전 세계에 단 세 명뿐인 S급 에스퍼, 강찬성. 무서울 것 없는 그녀에게도 유일한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가이드팀 팀장 오서주를 향한 6년 짝사랑이다. 과거, 서주가 남자 에스퍼를 편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된 찬성. 가이드에게 미쳐 집착하는 흔한 에스퍼들처럼 추해지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서주를 향한 마음을 철저히 숨기며 거리를 둔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센터 내 최악의 매칭률인 ‘7%’를 기록하며 접점 없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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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에스퍼를 싫어했다. 남의 몸을 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끔찍했으니까. 그들을 위해서 가이드들이 몸을 내줘야 한다는 게 혐오스러웠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가이드로 발현된 날은, 그야말로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나연, 넌 내가 가이딩 한 번 받으려고 안달하는 게 좋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매정할 리가 없어.” “하아, 존나 좋아……. 여기에서 죽어도 좋을 만큼.” 그래서 내가 문시현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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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이후 무너진 집안을 지탱하기 위해 목장과 술집을 오가며 삶을 버텨 온 클로이. 현실의 굴레에 갇혀 하루하루 시들어 가던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오는 길에 돈을 다 써 버려서 얼마 안 남았는데……. 주변에 묵을 곳이 있을까요? 여관이든 모텔이든 상관없어요.” 은은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쳤다. 클로이는 직감했다. 그가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저희 집이 근처인데… 하룻밤 묵고 가실래요?” * * *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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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것」을 이렇게 칭하곤 했다. 신. 마신. 천사. 악마. 구원. 재앙. 때로는 선으로, 때로는 악으로,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깨어났다. 그리고 제물을 받고 소환자의 소원을 이루어주었다. “이 세상은 평화와 사랑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번 대 소환자의 소원은. “악이여, 세상을 멸망시켜주십시오!” 좀 이해가 안 갔지만. 어쨌든 재앙이 깨어났다.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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