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의 습격으로 가족과 식솔들 대부분이 몰살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 여흔. 가족의 뒤를 따르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오라버니와 한 마지막 약속 때문에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사내아이로 위장한 채,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살며 탈출과 복수의 순간을 노릴 뿐이었다. 그런 여흔에게 한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그에게서는 바람 냄새가 났고, 그 손은 딱딱하지만 따뜻했다. 그의 손을 잡았을 때만이 시체같이 차가운 여흔의 몸에 뜨거운 피가 도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