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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상세페이지

책 소개

<형이상학> 고전을 맛보는 「지식을 만드는 지식 고전선집」 제666권 『형이상학』.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원전으로 삼아 총14권 중 5권을 골라 발췌 번역했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일반적 대답이 될 만한 핵심 부분만을 실었다. 모든 학문의 기초인 철학의 기초라고 할만한 '형이상학'에 대해 명쾌하게 배워나갈 수 있다. 특히 '존재론'에 중점을 두었다.


출판사 서평

기원전 50년 무렵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묶어 펴냈던 안드로니코스 로도스는 자연을 논하는 일련의 글(physika) 뒤에(meta) 일단의 글을 배치했다. 그러나 그 후속 논고에 붙일 적당한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 글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정보를 토대로 ‘자연학 후속서(ta meta ta physika)’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단순한 문서 분류 표찰에 불과하던 그 이름이 결과적으로 철학의 중핵에 해당하는 한 분과를 지칭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그것을 ‘지혜(sophia)’ 또는 ‘제일철학(pr?t? philosophia)’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철학’에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문서 분류라는 순전히 외적인 조건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칸트는 그의 형이상학 강의에서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은 “그 학문 자체와 아주 잘 들어맞기 때문에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을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개별 과학과 다르다. 그가 볼 때 형이상학은 두 가지 면에서 개별 과학을 능가한다. 첫째로, 형이상학이 다루는 대상은 맨 나중 것이고 가장 포괄적인 것이고 가장 높은 것이다. 둘째로, 형이상학적 앎은 가장 참된 앎이고 가장 확실한 앎이고 가장 높은 수준의 앎이다.

형이상학을 규정하는 것은 근원에 대한 천착과, 더 이상 소급해 올라갈 수 없는 제일가는 근거에 대한 탐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가는 원인의 탐구를 두 갈래로 세분해서 진행한다. 하나는 (1)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존재하는 것의 원리를 탐구하는 길이다. 이 길은 나중에 ‘존재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다른 다른 한 길은 (2) 최고의 존재자, 영원하고 움직이지 않고 신적인 존재자에 대한 관심으로 특징지어지는 탐구다. 이 길은 ‘신학’으로 연결된다. 이 책은 존재론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일반적인’ 대답이 될 만한 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저자 프로필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 국적 그리스
  • 출생-사망 0384년 - 0322년
  • 학력 아카데메이아

2017.04.1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B.C. 384년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로스(Stageiros) 출생.
B.C. 343년(혹은 34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 됨.
B.C. 335년(혹은 334년) 뤼케이온(Lyceion)이라는 학원을 세움.
『범주론』, 『명제론』, 『분석론』, 『궤변론』, 『오르가논』, 『형이상학』, 『자연철학』, 『천체론』, 『정신론』, 『정치학』 등 많은 저서를 남김.


저자 소개

저자 - 아리스토텔레스
제정 로마 시대에 제작된 흉상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 조각가였던 리시포스가 주군의 주문에 따라 조각한 것을 본떠 만들어졌을 공산이 큰데, 그 시절 만들어진 아리스토텔레스 흉상은 60세쯤 되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긴 턱수염, 넓은 입, 도톰한 아랫입술, 앞으로 툭 튀어나온 이마가 눈에 띄는데, 툭 튀어나온 이마는 그의 명민함과 강한 집중력을 암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시대는 그리스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했던 도시국가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던 때였다. 아테네가 정치적으로 패권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전성기였던 이른바 페리클레스 시대(BC 443∼BC 429년)는 이미 막을 내린 뒤였다. 카이로네이아에서 아테네와 테베 군이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 군에게 패배를 당하던 시절이다(BC 338년). 필리포스 왕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와 동시대를 살았다고 하면 언제쯤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BC 384년 그리스 북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국가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다. 플라톤과 달리 그는 아테네 귀족 가문의 후예는커녕 아테네 시민도 아니었다. 정치적 권리는 없이 체류 허가만 받은 거류 외국인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여느 사람과 다름이 없는 ‘장삼이사’였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부친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 왕실의 주치의였다. 명망 있는 집안의 자손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지만 후견인의 후원으로 당시에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당시 마케도니아 왕실 내에 조성되었던 긴장 때문이었을 텐데, 아리스토텔레스는 BC 367년, 그의 나이 17세 때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 아테네로 건너와 플라톤 문하에 들어간다.
20년 동안(BC 367∼BC 347년), 이른바 ‘제1차 아테네 체류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우리가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문제들을 익혀 나갔다. 그러나 그는 마냥 ‘학생’으로만 있지는 않았다. 플라톤과, 그리고 그의 동료들과 갑론을박하면서 그는 그 나름의 입장을 발전시켰다.
이미 제1차 아테네 체류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강의를 열었다. 그의 강의실에는 서판과 여러 가지 도구, 천문학 관련 도표가 있었고 벽에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는 후대에 가서 ≪오르가논≫이라는 표제 아래 취합된 논리학 관련 저작과 학문 이론 관련 저작, 폭넓게 수집된 자료집을 들 수 있으며, 그 밖에 자연(철)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의 초벌 원고도 이 시절에 만들어졌다. 시학 역시 이때 벌써 나왔을 공산이 크다.
아카데미를 창립하고 이끌었던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40여 년이나 연상이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나이 차이와 엇비슷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짐작건대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에 대해 품었던 감정은 플라톤이 호메로스에 대해 품었던 그것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1096a11∼17)에서 플라톤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꼭 플라톤이 ≪국가≫(595b)에서 호메로스와 시인들을 비판하는 것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탐구하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데아를 끌어들인 사람이 우리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를 구제하기 위해서라면 우리의 사사로운 감정을 돌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철학자임에야 더 그렇지 않겠는가.” 여기서 나온 격언이 바로 “amicus Plato, magis amica veritas”다. 번역하면 “나는 플라톤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훨씬 더 사랑한다”가 되겠다.
아테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에서 말했듯 거류 외국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폴리스 관련 일에는 끼어들지 않았지만, 정치학을 독자적인 학문으로 정립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정치적 실천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들 간의 중재역을 맡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된 일은 어디까지나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그의 강의는 명료하고 청중의 마음을 매료하는 것이었다. 독서를 즐기고 수집하고 분석하기를 즐겼던 그는 박학다식한, 그렇다고 해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친화적인, 세상이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교수의 전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아카데미학파의 견해만 알고 있던 게 아니었다. 소피스트들의 저작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의학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저작까지 섭렵했고, 그 외에 그리스 서정시, 서사시, 극작품들까지 꿰고 있었다. 더 나아가 당시 알려져 있던 헌법들까지 그야말로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BC 347년 플라톤이 세상을 뜨자 플라톤의 조카이자 상속인이었던 스페우시포스(BC 410∼BC 339년)가 아카데미의 수장이 된다. 그러자 아리스토텔레스는 37세의 나이로 아테네를 떠난다. 아카데미의 수장이 되지 못해 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위험해서였다. 그리스의 자유를 위협하는 친(親)마케도니아 인사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야 했기에 안정된 생활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룬 연구 성과는 아주 놀라울 정도다.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라 하겠다.
이후 12년 동안의 ‘편력 시기(BC 347∼BC 335 혹은 BC 334년)’를 그는 아카데미에서 동문수학하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지냈다. 그가 맨 처음 찾아갔던 사람은 소아시아 아소스의 군주였던 헤르미아스였다. 그의 환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학문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나중에 동료가 된 테오프라스토스(대략 BC 370∼BC 288년)를 알게 된 것도 이때인 듯싶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헤르미아스의 여동생(또는 조카딸) 피티아스와 결혼한 것도 이때인데, 이 결혼을 통해 그는 딸과 아들 니코마코스를 얻었다. 아테네 밖에 머물던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량의 동물학 관련 자료를 수집한다. 이들 자료는 관련된 연구와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동물학자의 명성을 부여한다.
BC 345년 헤르미아스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로 옮겨 간다. 2년 뒤 그는 필리포스 왕의 부름을 받아 당시 13세이던 알렉산드로스에게 가르침을 베푼다. 나중에 철학의 대가 반열에 오르는 한 사람이, 나중에 세계사에 이름을 떨치는 한 사람을 가르쳤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어디에도 저 이례적인 제자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마케도니아에 대한 아테네의 저항운동이 테베의 함락(BC 335년)으로 무산된 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야 학창 시절의 아테네로 돌아온다. 그의 ‘제2차 아테네 체류 시기(BC 335 혹은 BC 334∼BC 322년)’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 12년 동안 리케이온에서 일한다. 그 건축 양식 때문에 리케이온은 페리파토스라 불리는데, 페리파토스란 원래 ‘산책’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차양이 설치된 주랑(柱廊)’, ‘거닐며 토론하는 복도’를 의미했다.
리케이온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이 구속력이 있는 학술 공동체였는지는 불확실하다. 공식적으로 학교를 세울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외국인이라서 토지 취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는 ‘민족적인’ 성향이 강한 아테네에서 항상 의심 받는 이방인이었고 지적인 면에서는 외국인 학자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에,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도서와 다량의 교구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공개 강의 형식을 빌려 그가 젊었을 때 집필했던 저술들을 손질해 완결된 형태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BC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아테네를 떠난다. 그의 정치철학이 마케도니아의 관심에 반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反)마케도니아 책동에 희생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일찍이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독배를 들게 만들었던, 신을 믿지 않는다는 혐의로 고발되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테네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 두 번씩이나 죄를 짓지 않게 하겠다.”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넌지시 내비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머니의 고택이 있는 에우보이아 섬의 칼키스로 낙향한다. 그 얼마 후, BC 322년 10월 이름 모를 병을 앓다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내 피티아스 옆에 안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역자 - 한석환
한석환은 현재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콘스탄츠대학교와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교 방문 교수를 지냈다. 서양 고대 철학, 존재론, 수사학이 주된 연구 분야다.
주요 저서로는 ≪존재와 언어≫가 있으며, 역서로는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나눈 대화 세 마당≫(G. 버클리),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J. L. 아크릴), ≪철학자 플라톤≫(M. 보르트) 등이 있다. 그 밖에도 <하이데거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적 차이>, <인간의 본질과 폴리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의 철학적 기초>, <플라톤과 수사학>, <아우구스티누스와 수사학>, <‘존재론’의 신기루>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권
제2권
제4권
제6권
제7권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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