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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드라마다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미국은 드라마다

주제가 있는 미국사 2
소장종이책 정가16,000
전자책 정가30%11,200
판매가11,200
미국은 드라마다 표지 이미지

미국은 드라마다작품 소개

<미국은 드라마다> “인간은 꿈 없이 살 수 없다!”
“미국은 언제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꿈이었다!”


미국을 무한한 ‘기회의 땅’으로 여기는 ‘아메리칸 드림’의 역사는 400년이 넘었다. 파란만장과 우여곡절이 있는 미국 역사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역사의 드라마틱한 흥미성이 가장 뛰어난 나라가 미국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이 ‘초초강대국’으로 불릴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것도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고속 ‘압축성장’으로 말이다. 대니얼 부어스틴은 “신생국 미국은 유럽이 2,000년 동안 경험했던 것을 한두 세기로 역사를 압축시켜 놓았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인의 절대다수가 결코 이룰 수 없는 ‘사기’라는 게 충분히 밝혀졌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은 건국 이전부터 주로 성공의 열망에 들뜬 사람들이 몰려든 곳이다. 세상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철학은 낡아빠진 유럽이나 하라는 게 미국인들의 태도였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아메리칸 백일몽’이라는 다른 이름을 얻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은 더욱더 질긴 생명력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꿈 없이 살 순 없으며, 현실이 고달플수록 꿈에 매달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꿈은 어디로 갔나?

1607년 4월 24일 오늘날의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근처의 체사피크만에 남자 144명을 태운 배 3척이 도착했다. 이들은 제임스 강 하구에 첫 번째 식민지인 제임스타운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3년 후인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만의 플리머스에 정착촌을 건설했다. 미국인들에게 플리머스는 ‘추수감사절’을 연상시키지만, 제임스타운은 ‘식인’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제임스타운은 미국과 영국 모두에게 지우고 싶은 역사였고, 그런 이유로 포카혼타스 신화는 탄생했는지 모른다.
1620년 11월 11일 남자 41명이 메이플라워호에서 짤막한 자치 정부 선언문에 서명했다. 이것이 북아메리카 최초의 성문헌법으로 간주되는 ‘메이플라워 서약’이다. 플리머스라는 항구도시에 정착한 이들은 첫해 겨울에 영양실조와 질병 등으로 반이 죽었다. 다음해에는 인디언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었는데, 인디언들은 이들에게 물고기를 잡고 옥수수를 기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10월 첫 번째 추수 후 감사절 파티를 열고 이날을 ‘감사의 날’로 선포했다. 이게 바로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은 인디언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 이주민들은 인디언들의 무덤을 파헤지고, 옥수수와 밀과 콩 낱알을 훔치고, 인디언들을 총으로 쏴서 죽였다. 추수감사절이 추수강탈절이 된 것이다. 이들이 이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며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이주민들은 원주민을 배반하고 땅을 빼앗았던 것이다.
1682년 윌리엄 펜은 펜실베이니아로 건너왔다. 영국 찰스 2세가 그에게 뉴욕과 메릴랜드 사이의 넓은 땅을 하사했는데, 그는 아버지 펜의 이름을 따라서 펜실베이니아라 불렀다. ‘펜의 숲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델라웨어 강과 슈일킬 강 사이에 그리스어로 ‘형제애’라는 뜻을 가진 도시 필라델피아를 설계했다. 그는 투표에 의한 총독 선출, 평등주의 지향, 인디언과의 공존공생 등 진보적 정책을 펼쳤지만, 그의 삶은 험난하고 불행했다.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반신불수가 되어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가 죽은 후 세월이 흐를수록 이주민과 인디언들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펜의 ‘거룩한 실험’과 ‘펜실베이니아의 꿈’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미국,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혁명은 ‘공포’와 ‘신화’를 먹고사는가? 미국의 독립전쟁이 이를 증명한다. 8년간 지상전과 해전을 합쳐 1,300번 이상의 전투가 벌어진 미국의 독립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살상했다. 거기에서 살아남은 영국의 왕당파들은 캐나다로 피신해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인해 캐나다가 탄생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역사가 크레인 브린턴은 “미국 혁명에는 공포정치의 흔적이 분명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탈출하지 못한 왕당파에 대한 가혹한 보복을 두고 한 말이다. 그후 미국은 전쟁 영웅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서 독립전쟁 최초의 영웅인 폴 리비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사실과 많이 다른 역사 왜곡으로 영웅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서 만들어진 신화라고 말한다.
1786년 여름, 전쟁 영웅이자 독립군 육군 대령인 대니얼 셰이즈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불리한 법을 제정한 정치인에게 항의하기 위해 700명을 이끌고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로 행진하며 도시를 한 바퀴 돌았다. 그후 셰이즈는 무장한 병력 1,000명을 이끌고 보스턴으로 진군했고,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였지만 주동자 13명이 사형당하고, 셰이즈는 도주했으나 이후 굶주림에 사망했다. 이게 바로 ‘셰이즈의 반란’이다. 이 반란의 파장은 엄청났다. 정부 인사들이 강력한 통제 수단을 만들기 위해 ‘국가 헌법’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모든 주의 대표 55명이 ‘미국 헌법’을 만들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물론 이 미국 헌법은 기득권자들의 재산 증식을 위한 경제적 문서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말이다.
미국사에서 187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를 ‘도금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이른바 ‘날강도 귀족’들이 사실상 대부분의 주의회와 연방사법부, 상원을 지배한 가운데 겉만 번지르르한 기만과 강탈의 기운이 충만한 때였다. 공직자들은 뇌물을 받고 횡령을 저지르는 일을 밥 먹듯이 했다. 인디언들에게 돌아갈 예산까지 착복해 보호구역 인디언들이 굶주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히 1880년대 미국의 철도 산업을 지배한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는 대표적 ‘날강도 귀족’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받았다. ‘날강도 귀족’의 전성시대에 미국은 과연 ‘문명시대’를 거치지 않고 ‘야만시대’에서 ‘데카당스시대’로 건너뛴 걸까? 이는 미국의 놀라운 압축성장이 초래한 진풍경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에서는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미국사와 미국 정치 이론의 필독서’라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토크빌은 미국은 유럽과 달리 사회적 평등이 잘 실현되어 있고 사법권의 독립, 언론 자유, 지방자치 등 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만개하고 있는 것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돈에 대한 숭배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하는 나라를 미국 이외의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국의 이상과 현실을 보는 듯하다.

‘아메리칸 드림’은 끝났다!

미국의 역사가 파란만장과 더불어 우여곡절을 수반한 성공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른다. 미국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미국은 언제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꿈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1956년에 출간된 찰스 라이트 밀스의『파워 엘리트』에 의해 실증적으로 부정되었다. 이 책은 3,000만 달러 이상을 가진 미국의 대부호 275명 가운데 93퍼센트가 상속에 의해 부자가 된 사람들이란 걸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런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앙을 버리지도 않았다. 왜 그럴까?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은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 자신의 성취 가능성에 대해 훨씬 더 높게 평가하고 미래를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미국인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이념을 끊임없이 주입받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대부분의 사회현상에 이러한 이념을 적용하여 해석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어린이들이 어릴 때 흔히 부르는 동요인, ‘별에 소원을 빌 때, 네가 누구이건 중요치 않아. 너의 꿈은 이루어질 거야’라는 가사는 이 이념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어쩌면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인들에게 큰 힘을 발휘한 신화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너무 큰 성공을 했다는 데에 있다.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미국이라는 몸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유럽이라는 회충’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유럽적인 정열을 미국적인 열정으로 대체시키’자고 했다는데, “우리의 역사 전체는 인류를 위한 신의 섭리의 마지막 노력과도 같다”는 그 자신의 말을 되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미국만 세계의 최고 선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미국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다음과 같은 물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왜 정부는 현명한 소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왜 정부는 상처도 입기 전에 야단법석을 떨며 막으려 드는가?……왜 정부는 항상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며, 코페르니쿠스와 루터를 파문하고, 조지 워싱턴과 프랭클린을 ‘반역자’라 부르는가?”


저자 프로필

강준만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6년 1월 5일
  • 학력 1988년 위스콘신대학교메디슨캠퍼스 대학원 신문방송학 박사
    1984년 조지아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
    1980년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학사
  • 경력 전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
  • 수상 2005년 제4회 송건호 언론상

2023.08.0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별나다'라는 평가를 받는 얼마 안되는 지식인 중의 한명. 사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에게 '유별나다'는 평가는 흠이 되지는 않을 지는 몰라도 듣기에 좋은 소리는 아니다. 모름지기 지식인이라면 '젊어서는 관직에 나아가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물러나서는 후학 양성에 힘쓰는' 선비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강준만은 '유별난' 지식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강준만은 그런 소리들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입바른 소리를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느 세력에게나 퍼부어대며 책을 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별나다'는 사람은 강준만의 입바른 소리가 성가신 사람들에게서 나왔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이라면 겸손하고 자신의 의견을 직선적이고 감각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지식인 상에서 강준만은 완전히 반대쪽 극에 서있다. 강준만의 문체는 매우 직선적이고 도발적이라는 점에서 읽는 이를 통쾌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리고 강준만에 제기하는 문제 또한 그의 문체를 닮아 있다. 왜냐하면 강준만이 문제삼는 부분은 많은 부분이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준만의 비판은 더욱 전투적이고 신랄할 수 밖에 없다. 지역주의와 연고주의, 학벌 중심 주의, 비합리주의 등의 요소는 현재의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국 사회에 있어서 일종의 행동 규칙으로 정착된 면이 있다. '좋은 것이 좋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강준만의 비판은 바로 그러한 '은밀한 합의'를 불편하게 만드는 면을 가지고있다. 그런 점에서 강준만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그의 문체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강준만의 비판의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 너무나 직선적인 문체가 오히려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나아가서는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까지도 동의 의사를 표현하기에 부담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공격적이 방식은 논리와 합리성에서 벗어난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강준만의 대답은?
"매달 원고지 600장 분량의 글쓰기 작업을 한다. 그래서 문장과 논리가 거친 게 사실이다. 그게 내 단점이자 한계다. 그러나 내 글쓰기의 목적은 독자들에게 교양이나 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왕따」당할 각오를 하고 우리 사회의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다"

지식인의 역할로 규정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준만은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한 사회과학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지식인의 사명이 바로 지식의 대중화에 있다고 여긴다. 굳이 대중이 지식을 생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좀 더 쉽고 간편하게 지식을 유통하고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그러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 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 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하는 데 선도적인 구실을 해왔다. 2011년에는 세간에 떠돌던 ‘강남 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냈고, 2012년에는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며 ‘안철수 현상’을 추적했을 뿐만 아니라 2013년 벽두엔 ‘증오 상업주의’를 화두로 던지며 2012년 대통령 선거와 한국 정치를 분석했다. 2012년에는 ‘멘토 열풍’에 주목했다. 이어 2012년 시대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라고 선언하며, 증오의 정치가 정치의 주요 동력과 콘텐츠가 되고 시종일관 진영 논리의 포로가 돼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증오 시대를 끝낼 적임자로 안철수를 꼽았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은 결국 ‘증오의 굿판’이 되고 말았다. 국민의 절반을 절망시키는 정치 현실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강준만은 모든 비극은 ‘증오 상업주의’에서 비롯됐으며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한국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분열과 절망의 정치를 끝내고 소통과 화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생활문화 사전』,『나의 정치학 사전』,『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세계문화 사전』,『선샤인 논술사전』,『대중문화의 겉과 속』(전3권),『한국인 코드』,『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글쓰기의 즐거움』,『대학생 글쓰기 특강』,『인간사색』,『한국 현대사 산책』(전18권) ,『한국 근대사 산책』『지방은 식민지다』, 『고종스타벅스에 가다』, 『입시전쟁 잔혹사』『대한민국 소통법』,『행복코드』『미국사 산책』,『세계문화전쟁』,『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안철수의 힘』, 『멘토의 시대』, 『강남 좌파』,『교양 영어 사전』, 『세계 문화의 겉과 속』『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교양 영어 사전 2』외 다수가 있다.

목차

머리말 | 왜 미국은 드라마인가?

왜 포카혼타스는 나오미 캠벨이 되었나? ‘포카혼타스 신화’의 탄생
‘추수감사절’인가, ‘추수강탈절’인가? ‘메이플라워’의 이상과 현실
펜실베이니아의 꿈은 어디로 갔나? 윌리엄 펜의 ‘거룩한 실험’
왜 청교도는 종교적 박해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나? 뉴잉글랜드의 ‘마녀사냥’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원조인가? 벤저민 프랭클린의 성공학
혁명은 ‘공포’와 ‘신화’를 먹고사는가? 미국 독립혁명의 정치학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는가? ‘전쟁 영웅’ 셰이즈의 반란
인간은 ‘커다란 짐승’인가, ‘생각하는 육체’인가? 해밀턴파와 제퍼슨파의 갈등
왜 미국의 국가國歌는 호전적인가? 1812년 미-영 전쟁
‘보통 사람들의 시대’인가, ‘지배 엘리트의 교체’인가? ‘잭슨 민주주의’의 명암
왜 지금도 자꾸 토크빌을 찾는가? 알렉시 드 토크빌의『미국의 민주주의』
왜 찰스 디킨스는 미국 신문과 전쟁을 벌였는가? 1830년대의 ‘페니 프레스’ 혁명
“신이 무엇을 이룩했는가?” 시간과 공간을 압축시킨 전신 혁명
왜 에머슨은 “유럽이라는 회충을 몰아내자!”고 외쳤는가? 미국의 지적 독립선언
텍사스 탈취는 미국의 ‘명백한 운명’이었나? 미국-멕시코 전쟁
“선생님은 왜 감옥 밖에 계십니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프레더릭 더글러스
‘경쟁’ 아닌 ‘협동’으로 살 수 없는가? ‘뉴하모니’에서 ‘솔트레이크시티’까지
울분과 탐욕의 폭발인가? 남북전쟁 직후의 미국 사회
‘거리의 소멸’과 ‘체험 공간의 팽창’인가? 전화의 발명
미국은 ‘야만시대’에서 ‘데카당스시대’로 건너뛰었나? ‘날강도 귀족’의 전성시대
‘백열등’이 ‘토지’의 문제를 은폐했나? 헨리 조지와 토머스 에디슨
‘미국은 영토 욕심이 없는 나라’인가? 조미수호조약
‘상상할 수도 없는 묵시록적 의미’인가? 알렌·언더우드·아펜젤러의 조선 입국
억만장자는 자연도태의 산물인가? 사회진화론과 칼뱅주의의 결합
기가 죽으면 저항 의지도 꺾이는가?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의 이론’
테일러가 마르크스보다 위대한가? 프레더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왜 시카고 시민은 마피아를 지지했을까? ‘밤의 대통령’ 알 카포네
왜 킨제이는 ‘20세기의 갈릴레이’가 되었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킨제이 보고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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