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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상세페이지

BL 소설 e북 판타지물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소장단권판매가4,500
전권정가13,500
판매가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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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3권 (완결)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3권 (완결)
    • 등록일 2017.10.17.
    • 글자수 약 19.3만 자
    • 4,500

  •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2권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2권
    • 등록일 2017.10.17.
    • 글자수 약 20만 자
    • 4,500

  •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1권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1권
    • 등록일 2017.10.17.
    • 글자수 약 19.9만 자
    • 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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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작품 소개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키워드 : 시대물, 동양풍, 판타지물, 무협, 차원이동/영혼바뀜, 회귀물, 초능력, 재회, 다정공, 헌신공, 강공, 능글공, 사랑꾼공, 절륜공, 천재공, 미인수, 까칠수, 단정수, 상처수, 능력수, 병약수, 달달물, 사건물, 3인칭시점, 먼치킨공, 마법사공, 의원수, 꽃싫수

-1부-

남궁세가의 병약하고 성질 나쁜 도련님 남궁연.
취미는 몸종 백모란 괴롭히기.
평소처럼 백모란을 괴롭히던 어느 날, 연은 갑자기 정신을 잃게 된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연의 눈에 보이는 건 낯선 방의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넋을 놓았다.
자신이 여덟 살의 어린 백모란이 되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심지어 어린 ‘남궁연’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
그렇게 10년을 자신에게 괴롭힘당하며 살고 다시 남궁연의 몸으로 돌아온 연.
그리고 어디로 튕겨 나갔는지 알 수 없던 모란의 혼도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듣자 하니 내 몸을 이렇게 만든 게 너라면서?”
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자는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이내 씩 웃었다.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 전에…… 변명 정도는 들어 주도록 할까.”
그리고 자신이 부러트린 연의 팔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어딘가 무섭고 기이하게 굴다가도
아픈 몸을 치료해 주겠다며 다정하게 구는 모란을,
연은 자꾸 피하고만 싶은데.

“꺼져!”
“귀엽기는.”
“꺼지라니까!”


이계를 정벌하고 돌아온 먼치킨 마법사 모란과
피를 토하도록 병약한 남궁세가 도련님의 사랑스럽고도 살벌한 힐링기.

〈Bondage&Marriage〉와 〈Tear&Dear〉 작가의 본격 판타지 무협 로맨스!


-2부-

‘내 생각에는, 어쩌면 내가 모란을 조금쯤은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정원에 매번 피는 꽃도, 그 꽃을 피우는 모란도 점점 익숙해진 연.
그리고 찢어진 영혼을 봉합하는 ‘치료’의 과정,
모란과의 관계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농밀해진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연은 그에게 마음을 고백하는데…….

“내가…… 내가 당신을 연모하고 있어, 모란.”
“연아, 나는…….”


하지만 모란의 반응이 기대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연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만
그럴 틈도 없이 상황은 이상하게 꼬여 간다.

무언가 퍽 연의 등을 무겁게 후려갈겼다. 연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닥으로 엎어졌다. 갑자기 묵직한 것이 몸에 얹힌 탓이었다. 다행히도 허공을 징징 울리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기묘한 감각은 사라졌다.
“이, 이게 뭐…….”
“모, 모란…….”


모란을 애타게 찾는 또 다른 ‘존재’의 등장과
숨 가쁘도록 휘몰아치는 사건들, 그리고 연의 ‘병’.
이 가운데 모란과 연은 과연 무사히 애정을 피워 낼 수 있을까.

“차원을 넘어간다는 말은, 아예…… 다른 세계로 가 버린다는 의미야?”

〈Bondage&Marriage〉와 〈Tear&Dear〉 작가의 본격 판타지 무협 로맨스!


출판사 서평

[본문 발췌]

서장(序章)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백모란’은 눈을 떴다. 전날 밤이 늦도록 불안함에 떨었던 게 무색하게도 마음은 지극히 평온했다. 덮고 있던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문을 열어 보니 하늘이 흐려 해가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바람이 차갑다 못해 칼날같이 매서웠다. 그의 기억대로였다.
운명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모란은 옷을 갈아입고 얼음장 같은 물에 깨끗이 세안을 했다. 용모를 단정히 한 후에는 자박자박 조용히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자그마치 십 년을 산 곳이었다. 그는 이 집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란,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막 일어났는지 옆집의 문 밖으로 종종거리며 걸어 나오던 아이가 종알거렸다. 금년 여섯 살 난 여아로 그다지 붙임성 없는 모란에게도 친근하게 굴곤 했다. 대답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휘둥그레 뜬 눈으로 바라보고는 후다닥 뛰어 제 집으로 도망쳤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다시 머리만 내밀어 수줍게 미소 지었다. 모란도 옅게 미소 지었다.
그는 의원(醫院)에 가는 중 이웃 몇을 더 만났다. 어릴 적 모친을 일찍 여의고 혼자 자란 모란인지라 다들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그 호의도 오늘로 끝이겠지.’
쓴 미소가 지어졌다. 의원에 도착한 모란이 들어가기 전 잠시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
“사부님.”
정좌(正坐)하고 약초를 다듬고 있던 진은록이 고개를 돌렸다. 모란이 새삼 이 작고 낡은 의당을 둘러보았다. 십 년 동안 지내 집보다도 더 집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익숙하다 못해 몸에 배인 약초들의 냄새…….
“모란아.”
이름을 부르고는 바라보는 진은록의 시선이 날카로웠다. 그는 과묵하지만 언제나 환자들의 증상을 관찰하는 일이 직업인지라 사소한 것 하나 놓치는 법이 없는 의원(醫員)이었다. 동시에 모란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한참 그를 바라보던 모란은 진은록이 다듬던 약초를 내려 두었을 때에야 입을 열었다.
“오늘 날이 상당히 춥습니다.”
“……환자가 많겠구나.”
모란이 말을 돌리자 진은록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얼핏 겉으로는 냉정해 보여도 속으로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챘음에도 추궁하지 않는 건 모란을 배려하기 때문일 터였다.
옆에 앉아 약초를 같이 다듬으며 모란은 진은록의 모습을 살폈다. 수수하지만 깨끗한 백삼, 정갈한 차림새, 고아한 태도와 존경받아 마땅한 인격. 그의 인생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존재였다.
‘사부님께 나는 훌륭한 제자였습니까?’
차마 입 밖으로는 낼 수 없어 속으로 묻고는 완전히 다듬은 약초를 정리했다. 목각함까지 차곡차곡 정리하고 난 뒤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부님, 저는 잠시 남궁가(南宮家)에 다녀오겠습니다.”
“또 너를 부르더냐?”
드물게도 진은록이 혀를 찼다. 그가 혀를 차는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모란은 그저 그렇다고 대답할 따름이었다. 이 모든 게 자업자득임을 알면서도 입 안이 썼다. 다시 사부님을 사부라고 부를 수 있는 때가 올까?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으니 지금 흘러가는 모든 시간이 소중했다.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원을 나서기 전, 모란은 가능한 한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절을 올려도 몇 번을 올렸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문을 나서고도 그는 두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마침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날 남궁세가(南宮世家)는 무림 구파일방 오대세가 중에서도 감히 천하제일이라고 칭해도 될 만한 가문이었다. 직계에서부터 방계까지 재능이 출중한 자들이 넘쳤고 가문에 소속된 장원의 수는 헤아리기 힘들었다. 그뿐이랴, 여러 표국과의 계약으로 매달 막대한 상납금도 받고 있었다. 가문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전성기였다.
때문에 대문을 들어서기도 전부터 시비(侍婢)나 하인, 변변찮은 방문객들은 종종 남궁세가의 위용에 압박되곤 했다. 그러나 모란은 달랐다. 이 거대한 가문은 그에게 있어 다른 의미의 집이었다.
조금의 긴장감도 없이 무심하게 대문을 통과한 모란은 귀하고 비싼 청기와가 깔린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어릴 적부터 밥 먹듯이 드나든 곳이라 모란을 제지하거나 신분 검사를 하는 무사는 한 명도 없었다.
이윽고 그는 성영문(成永門)을 지나 화정당(花亭堂)에 이르렀다. 여덟 살부터 열여덟 살인 지금까지 모신 도련님인, 남궁연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화정당에 들어서려 하자 문지기 무사인 원형이 슥 가로막고 섰다. 하도 자주 왔다 갔다 하여 원형이나 모란이나 서로 얼굴이 익숙했다. 원형이 근엄하게 물었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도련님께서 오늘 아침 시중을 들라고 명하셨습니다.”
원형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가 잠깐 굳게 닫힌 문 너머를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지냈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오는 곳이지만 이렇게 보니 모란은 기분이 새삼스러웠다.
“아직 기상하지 않으셨을 텐데.”
“도련님 성격 아시잖습니까. 일어나셨을 때 바로 보이지 않으면 또 저만 경을 칠 겁니다.”
혀를 찬 원형이 가타부타 말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모란이 여덟 살일 때부터 남궁연이 쥐 잡듯이 잡아 대는 걸 본 사람이었다. 남궁연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엉망인 몰골로 나오는 모란에게 간식거리를 쥐여 줄 정도로 정이 많은 남자이기도 했다.
화정당에 들어선 모란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위명(威名)이 쟁쟁한 남궁세가임에도 볼품없는 정원이다. 아무리 겨울이라 하여도 동백꽃이나 매화나무 몇 그루쯤은 있을 법했으나 꽃 한 송이 보이지 않았다. 겨울뿐만이 아니다. 여름에도 이 정원에는 꽃이 피는 일이 없었다. 화정당(花亭堂)이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앞뜰의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간 모란이 가만히 서서 문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다시 복잡해졌지만 이내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이각(二刻) 정도를 기다렸을까, 마침내 문이 열리며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터운 망토를 걸치고 나온 청년, 남궁연은 안색이 희다 못해 창백했다. 소매 밑으로 언뜻 드러나는 손목은 무인임에도 마른 태가 났으며 찌푸린 미간에서는 예민한 성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곧잘 바위니 나무니 하는 단단한 것들에 비교되는 무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시들어 죽어 버리는 난(蘭)과 같았다. 혹은 모친을 닮아 수려하고 섬세한 외모가 수국이나…… 국화 같기도 하였다.
모란은 잠시 자신의 강건한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이치고도 강건함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이 육체와는 아주 달랐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모란을 발견하자마자 남궁연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모란은 대꾸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이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자그마치 십 년이었다. 길고도 길었으나, 짧다면 짧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 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영영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백모란이, 남궁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바로 이 날을.
백모란은, 아니…… ‘남궁연’은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제 발로 걷어차고 이렇게 자신의 운명을 찾아왔다. ‘연’은 이렇게 십 년 만에, 단 한 번도 행복한 적 없던 제 인생을 되찾으러 돌아왔다.
“남궁연.”
연은 자그마치 십 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어 불렀다. 고작 하인이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남궁연은 잠시간 말문이 막혔다. 고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싸늘한 얼굴에는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는 살기가 어렸다. 눈빛이 밑도 끝도 없는 혐오와 경멸로 번득였다. 연이 얌전히 남궁연의 시중을 들 때에도 이따금 보던 시선이었다.
“남궁연.”
연이 한 번 더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는 웃었다. 다음 단어를 입에 내는 것은 더 쉬웠다. 통쾌하기까지 했다.
“이 병신아.”
다음 순간으로 찾아온 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눈앞이 잠시 까마득 멀어졌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에 그는 형편없이 땅 위를 구르고 있었다. 아무리 그 수준이 낮고 몸 상태가 안 좋다 해도 남궁연은 무인이었고, 남궁세가의 차남이었다. 그저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을 뿐인 백모란의 몸으로 덤빌 상대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봐.”
퍼억! 잔인한 발길질이 이어졌다. 얼마나 세게 걷어차였는지 몸이 잠시간 붕 뜰 정도의 타격이었다. 혈이 뒤틀리고 내상이 가해지는 고통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차인 곳을 다시 차일 적에는 상대가 정말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걸 잘 느낄 수 있었다.
연은 이해했다. 그가 그랬고, 연 자신이 그랬으니까. 백모란을 죽이고 싶어 하는 저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가운데, 마침내 이 소란을 알아차렸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채이고 밟혀 얼음장 같은 차가운 바닥을 구르면서 연이 쿨럭쿨럭 기침했다. 경악한 원형이 달려와 남궁연을 말렸다.
“도련님, 모란은 무공을 배우지 않은 녀석입니다! 이러시다가 죽이겠습니다.”
“이거 놔!”
연은 속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으며 고개를 들었다. 증오가 뚝뚝 떨어지는 눈을 한 남궁연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화정당 문 밖으로는 제법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은 ‘백모란’이 피 칠갑을 한 모습에 하나같이 기겁하고 있었다.
“아까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
다시 잔인한 발길질에 채인 연은 하늘을 보며 드러누웠다. 숨도 쉬기 어려운 게, 아무래도 방금 채이며 몸 어딘가가 부러진 게 분명했다. 몸속이 뒤틀리고 꼬이는 극심한 통증에도 연은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나 이렇게 하고 싶었다. 십 년 동안 이 몸에서 지내면서도 이 대화는 조금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잊을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비웃는 게 분명한 표정에 원형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남궁연은 분노에 얼굴이 희게 질렸다. 연은 그 분노에 쐐기를 박았다. 피에 물든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병…신 새끼…….”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입모양은 분명했다. 말리느라 애를 쓰고 있는 원형이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 구경꾼들은 못 보고, 오로지 남궁연만이 볼 수 있는 모욕이었다. 더는 참을 수 없던 남궁연이 이를 갈며 발을 크게 들어 올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연의 정신은 그만 까마득하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주강이 남궁연을 제지하고 있었다.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익은 남궁연도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으며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걸 시야에 담으며 연은 눈을 감았다.
이제야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갈 때였다.



一章 : 연과 모란, 모란과 연


남궁연(南宮淵).
그는 금년 스무 살의 청년이다. 또한 남궁세가 가주 남궁영명의 3남 2녀 중 차남이었으며 예민하고 아랫사람 괴롭히기 좋아하는 고약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남궁세가의 차남이라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명문 세가 내에서는 그다지 평이 좋지 않았다.
물론 성정 때문만은 아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며 자라난 후기지수들 중에는 성격이 고약한 자들이 제법 있었으니 성정 따위가 큰 결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낮게 평가되는 이유는 어릴 적 원인불명의 고열에 며칠을 앓아누운 뒤부터 허약해진 심신 때문이었다.
반면 남궁세가의 장남인 남궁연오(南宮鍊悟)는 올해 스물다섯으로 중원오룡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잠룡(潛龍)이었다. 문무(文武)에 있어 놀라운 재능을 소유했으며 대나무같이 다소 융통성이 없는 면은 있었으나 협(俠)과 의(義)를 아는 사내였다. 남을 이끄는 데에 있어서도 탁월했다. 외모도 사내답게 준수했으며 강골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장남과 차남은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남궁연은 장남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남궁연오와 달리 남궁연은 태어나서부터 스무 살이 되는 이때까지 부족하기만 한 인생을 살아왔다. 물질적으로 부족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의 모친인 모용단리는 연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병사하였다. 그렇다면 연에게는 있어서 모친이 애틋할 법도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는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딱히 모친의 애정을 받으며 자라난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유모의 손에서 길러져 어미의 젖 한번 물어 보지도 못했다.
오히려 남궁연오는 어린 동생인 연을 나름 어여삐 여기기는 하였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후기지수로서 동생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부친인 남궁영명은 연에게 거의 관심이 없었기에 모용단리가 작고한 뒤로 연은 죽 거의 혼자였다. 예민한 성격에는 그런 성장 환경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런 연에게 백모란은 좋지 않은 의미로 특별한 존재였다.
연은 열 살 때 심한 고열을 앓았고,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크게 앓은 뒤로는 몸이 현저하게 약해져 무공을 익혀도 큰 성취를 보기가 힘들었다. 머리는 좋은 편이라 무엇을 배워도 잘 이해하곤 했지만 남궁세가는 무가(武家)다. 과거 대대로 검황(劍皇)이며 검후(劍后)를 배출한 남궁가는 언제나 무(武)를 첫째로 쳤다. 아무리 다른 재능이 걸출해도 검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뒷배가 되어 줄 모친도 없고 검에 재능도 없으니 연이 받는 건 무관심한 시선뿐이었다. 의식주가 훌륭해도 마음은 외롭고 쓸쓸하였다. 몸이 아프니 성격은 예민해졌고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모든 말과 행동에 날이 섰다. 그 날카로운 성질이 주변의 만만하고 어린 하인에게 향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연은 언제나 자신의 하인인 백모란이 죽도록 싫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괴롭혔다. 저보다 두 살 어리기까지 한 어린아이니 어느 정도는 봐줄 법도 했건만 백모란을 향하는 손속은 항상 잔인했다. 제 앞에서 알짱거리는 게 꼴도 보기 싫은 데다가 이따금은 놀랍게도 그가 자신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싫으면 내쫓은 뒤 다른 하인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면 되는데도 그는 꼬박꼬박 백모란을 불러 괴롭혀 댔다. 백모란은 처음에는 반항을 하는가 싶다가 나중에는 체념했는지 고분고분해졌는데, 그게 오히려 연의 행동을 가혹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성격이 좋지 않다 해도 연은 다른 사람을 그렇게 괴롭힌 적은 없었다. 백모란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모란만 보면 시시때때로 손발이 나가곤 했다. 모욕적인 언사는 일상이었다. 당연히 그런 둘을 보는 눈과 귀가 있으니 세가 내에서 연의 평가는 점점 낮아지기만 했다.
모란도 자신처럼 모친을 일찍 여읜 탓일까? 아니면 자신과는 다르게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서였을까? 연은 종종 고민해 보았지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유 모를 괴롭힘은 점차 가혹해지기만 했다. 악의도 강해져만 갔다.
그렇게 연은 모란과 십 년을 같이 지냈다. 그럼에도 미운 정조차 들지 않았다. 모란도 연도 이 상황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쯤 사건이 터졌다. 연의 인생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사건이었다.
그날은 춥다 못해 바람이 칼날처럼 아렸다. 그래도 방안에서만 있자니 답답하여 문을 열고 나왔더니 밖에 부르지도 않은 백모란이 있었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 연은 성질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날도 춥고 짜증이 나니 화풀이를 하려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백모란이 아주 뚜렷한 음성으로 연의 이름을 불렀다. 남궁연, 하고.
감히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연은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금방 불같은 분노가 찾아왔다. 그동안 착한 척 얌전한 척하며 본 모습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진심으로 죽이고 싶었다.
간신히 검을 빼어 들지 않은 건 백모란이 무공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죽여도 진즉에 죽였을 것이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정말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노려보아도 백모란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다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이 병신아.”
……하고 말할 적에는, 연의 이성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얼마나 죽이고 싶던지 백모란이 피를 토하고 발끝에 딱딱한 게 채여도, 문지기며 사람들이 말려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멈춘 건 모란이 마지막으로 피를 토하고는 까무룩 정신을 잃을 때였다. 주위 사람들의 경악 어린 시선을 받으며 연이 비틀 뒤로 물러났다. 추운 날씨에 숨이 찰 정도로 두들겨 패서인지 아니면 심적인 소모가 있어서인지 그는 그대로 까무러치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연의 눈에 보이는 건 낯선 방의 풍경이었다.
머리 위로는 흙과 나무, 그리고 지푸라기를 성기게 엮어 인 천장이 있었다. 찬 기운이 올라오는 나무 바닥은 연이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다. 화정당이 아니다. 화정당에는 이렇게 허름한 곳은 없다.
이내 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의 몸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어리고 낯설었다. 가장 낯선 것은 곁을 지키고 있다가 저를 모란이라고 부르며 걱정 어린 얼굴로 대하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랬다. 연은 여덟 살의 어린 백모란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넋을 놓았다. 자신이 백모란이 되었다니, 그것도 여덟 살의 어린 백모란이 되었다니 이럴 수가 있나.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당사자인 연조차 이건 꿈이 아닐까 몇 번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정신적인 충격은 고스란히 어린 몸으로 전해졌다. 연은 몇 날 며칠을 고열을 내며 앓았다. 열 살 때 그랬던 것처럼 죽을 듯이 온 몸이 들끓는 고통에 시달렸다.
하나뿐인 아들이 그렇게 앓으니 모란의 모친은 몹시 걱정하여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성껏 간호했다. 낯설기만 한 여인을 보는 연의 눈에는 눈물이 성글게 맺혔다가 굴러 떨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모란을 괴롭힌 죄 값을 받는 것인가?
열로 혼몽해진 가운데 밭일과 바느질로 거칠어진 손이 이마의 땀을 훔쳐 낼 때면 제 어미의 곱고 보드라운 손과 겹쳐 보이곤 했다. 정작 연의 모친이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는데도.
연이 진은록을 만나게 된 건 그가 앓아누운 지 사흘째의 일이었다. 이러다가 제 자식에게 큰일이라도 날까 염려스러웠던 모란의 어미가 데려온 것이었다. 열기에 흐릿해진 눈으로 연은 작고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진은록을 보았다. 곱고 알록달록한 비단 옷도 아닌데, 그저 깨끗한 흰 옷일 뿐인데 움직임 하나, 내뱉는 말 하나가 고아했다.
원인불명의 열이 모두 가라앉고 난 뒤에도 연은 한참을 적응 못하고 단기간 실어증을 앓았다. 모란의 모친이 무얼 해도 고개만 젓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불은 불편했고 식사도 거칠고 맛이 없이 입에 맞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몸이 바뀐 충격이 가장 컸다. 잠깐 괜찮아졌다가도 다시 열이 나기 일쑤라 진은록은 한동안 연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경기까지 하여 모란의 모친은 일을 하러 나가는 동안 그를 진은록의 의원(醫院)에 데려다 놓았다. 그게 사제지간의 시작이었다.
아마도 뛰어난 의원인 진은록의 입장에서는 이유 없는 열이나 실어증이 이해가지 않았을 것이다. 의원에 데려다 놓은 건 증상이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어도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라고, 연은 추측했다.
아무튼 그렇게 가게 된 진은록의 작은 의원은 매일같이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로 바빴다. 연은 첫날은 아무런 의욕도 없이 하루 종일 한자리에 앉아 있다가 다음날부터는 차츰 진은록의 의술 활동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진은록의 의술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침 한두 번 놓고 나면 기어서 온 사람이 걸어서 나갔으며, 얼굴이 희거나 파랗게 질린 사람에게 약을 지어 주면 얼마 후 건강한 혈색으로 돌아와 감자나 쌀, 야채 따위의 식량을 보답으로 들고 돌아왔다.
종종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찾아와 간청하는 때도 있었다. 진은록은 그 어떤 사람이든 치료를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대신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에게 받는 치료 값이 달랐다.
진은록은 연이 의서나 자신이 침을 놓는 행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가 중풍 환자를 치료하는 동안 연이 의서를 뒤적이자 눈여겨보고는 늦은 밤 환자들이 다 돌아가고 난 뒤에 물었다.
“배우고 싶으냐?”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그는 다음날 연에게 낡고 깨끗한 책을 한 권 가져다주었다. 무언가 하여 열어 보니 천자문이었다. 아무리 몸이 여덟 살이어도 정신연령은 스무 살인 연은 대충 훑어보는 시늉을 하고는 진은록에게 도로 내밀었다. 모란의 몸으로 들어온 후로 처음으로 그가 입을 열었다.
“모두 읽을 줄 압니다.”
크게 앓고 난 뒤 아이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어 한 말에 의심하거나 부정할 법도 했지만 진은록은 눈썹만 한번 찌푸리고는 말았다. 대신 가타부타 말없이 기초적인 경맥학서(經脈學書)를 가져다주었다. 무인으로서 혈도 자리 정도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알고 있던 연이 막히는 곳 없이 이해하자 그때부터 진은록의 본격적인 가르침이 시작 되었다. 연은 정식적으로 그의 제자가 되었다.
진은록의 치료와 모란 모친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에 연의 몸은, 아니 어린 모란의 몸은 곧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러나 일상은 그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연은 모란이 처한 처지를 깨닫고 말았다. 바로 어린 백모란이 어린 연의 하인이자 몸종이었다는 점이다. 완전히 회복되었으니 그는 다시 도련님의 수발을 위해 남궁가로 불려가야만 했다.
열 살의 남궁연은 병마로 지쳐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보자마자 혐오와 경멸 어린 표정을 떠올리는 자기 자신을 보며 연은 다시금 충격을 받았다. 그랬다. 지금의 자신은 스무 살이나 혹은 열 살의 연이 아닌 여덟 살의 어린 모란이었다.
십 년 전 과거의 자신이 모란에게 했던 괴롭힘을 고스란히 그대로 받으면서 연은 처음에는 반항도 해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자 깨달음이 찾아왔다. 자신은 지금 과거에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미래이자 현재인, 스무 살의 연이 열여덟 살의 모란을 두들겨 패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바로 그때가.
연은 자신이 정교하게 잘 짜여진 운명을 따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니 그 다음은 쉬웠다. 그저 십 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인내하면 됐다.
뜻밖에도 이 시간은 연에게 있어 마냥 힘들거나 괴롭지만은 않았다. 연과는 다르게 백모란의 어린 몸은 매우 건강하고 또…… 건강했다. 고뿔 한번 걸리는 일이 없었고 힘도 좋았다. 아무리 고된 일을 해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모란의 몸에 들어온 지 일 년도 채 안 되어 모란의 모친은 폐렴으로 작고하였으나 연에게는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받은 모정은 가랑비처럼 연을 적시고 무르게 만들었다.
남궁연일 때는 없던 친구, 이웃, 스승……. 그 모든 게 낯설면서도 행복하고 좋았다. 딱 하나, ‘남궁연’ 도련님이—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괴롭히는 것만 뺀다면, 다소 빈궁하고 이따금 굶는 일이 있긴 해도 거의 완벽한 삶이었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 정해진 그날이 다가오면 올수록 연은 심한 갈등에 시달렸다. 그의 사부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실력이지만 이제 의술 실력이 많이 숙달되어 그는 제대로 된 의원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이웃과 환자들이 제게 보내는 신망이 그토록 좋을 수가 없었다.
왜 남궁연으로 돌아가야 하나? 이렇게 좋은데 남궁연으로 살아야 하나? 저를 좋아하는 사람 한 명 없는 그 외롭고 가련한 삶으로?
몇 날 며칠을 고민했으나 결국 내린 결론은 남궁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백모란이 아닌 남궁연이었으니까. 그게 이치인 것이다.
연은 바로 ‘그날’, 새벽이 밝자마자 진은록에게 인사를 올리고 남궁가로 향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지 어떨지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해야 옳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날에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제 인생을 제대로 고쳐 놓을 무언가가.
그렇게 연은 반항도 없이 남궁연이 자신을 가혹하게 두드려 패도록 내버려 두었다……. 마침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고 난 뒤 연은 무의식중에 지난 과거들을 꿈꾸었다.
열 살의 자신, 스무 살의 자신…….
여덟 살의 백모란, 열여덟 살의 백모란…….
그가 가졌던 두 명의 어머니들과 은록, 형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억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도, 연은 두려워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한참을 주먹만 꽉 쥐고 있다가 그는 익숙한 냄새를 알아차렸다. 약초 냄새였다. 약초 냄새 하니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건 그의 사부인 진은록이었다. 연이 억지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누군가가 있었다.
“사…부님?”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상대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의 의원이었다. 아플 적마다 연을 진료하는 세가 의원 중 한 명이었다. 연이 깨어난 걸 알아차리자 의원은 다시 손목을 잡아 맥을 짚어 보면서 물었다.
“도련님, 정신이 드십니까?”
돌아…왔구나……. 연이 멍하니 제 손을 들어 보았다. 햇빛에 잘 익어서 짙은 모란의 피부와는 달리 희고 말랐다. 그리고 차가웠다. 자신의 몸이 한참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바로 어제 일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란으로의 삶이 마치 긴 꿈을 꾼 것처럼 느껴졌다. 연이 멍하니 대답 없이 앉아 있어도 의원은 익숙하다는 듯 제 할 일을 다 했다.
“기가 허해지셨습니다. 보신에 좋은 약탕을 올려놓고 갈 테니 식사 후에 드십시오.”
“…….”
“그럼 저는 이만…….”
한참을 제 손끝만 내려다보던 연이 주섬주섬 치료 도구를 챙기던 의원을 붙잡았다.
“내가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일각(一刻)이 채 안 됩니다. 몸이 큰 충격을 받아 잠시 의식을 잃으신 것이니 큰 이상은 없을 겁니다.”
대답하고는 그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여전히 멍한 채로 연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는 꿈을 여러 번 꾼 적 있기에 이번에도 꿈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꿈이 이렇게 생생할 리가 없었다.
연은 면경을 들여다보았다. 볼 때마다 낯선 느낌이 들던 백모란의 몸과 얼굴과는 다르게 익숙했다. 한참 동안이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백모란과는 다르게 혈색 없는 흰 얼굴이……. 그러나 백모란의 시선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이럴 때……가 아니지.”
식은땀을 닦아 내며 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강한 몸에 있다가 돌아와서 그런지 이 몸이 더 안 좋게 느껴졌다.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니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주강이었다. 그의 호위무사며…… 동시에 ‘백모란’이 제법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또한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테지.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 연의 입맛이 썼다.
주강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이는데 얼핏 연을 스치는 시선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전에는 몰랐으나 연은 이제 알 수 있었다.
“도련님, 어딜 가십니까?”
주강의 질문을 연은 그냥 무시했다. 대답할 기분도 아니었고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신발을 신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언제 흐렸냐는 듯 맑게 개어 있었다. 뜰에는 핏자국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죽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내상이 제법 심각할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면서도 연은 등골이 서늘했다.
백모란의 집으로 향하면서 연의 마음은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넘실거렸다. 이제 백모란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백모란의 원래 혼이 돌아오나? 아니면, 그저 그대로 텅 빈 몸이 되나? 연은 부디 전자이기를 바랐다. 마음이 급하니 경공을 써서 몸을 날리는데 돌연 주강이 가로 막았다.
“도련님!”
“비켜, 주강.”
어떤 상처든지 다친 바로 직후의 처치가 중요하다. 물론 사부가 얼마나 상처 치료를 잘 해 놓았겠냐마는 연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게다가 아까 얻어맞으면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 정도면 모란도 정신을 차렸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패 놓았으면 충분하지 않냐는 의미였다. 연은 잠시 주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은록도 과묵한 편이었으나 주강은 그보다도 더 말수가 적은 사내였다. 모란이었을 적 주강과 나름 대화를 트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말을 건네는 경우도 없고 붙임성도 없었으나 좋은 사람이었다. 실력도 좋았고. 그러나 그런 점이 지금은 방해였다.
‘해임한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연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호위를 맡고 있기는 하나 주강은 자신의 사람은 아니었다. 비키지 않으면 해임한다고 윽박질러도 그에게는 아무런 협박도 되지 않는다. 잠시 고민하다가 연은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해코지하려고 가는 게 아니니까 비켜.”
“…….”
“주강, 비키라고 했어.”
눈도 깜박이지 않고 노려보자 마침내 주강이 물러났다. 연이 발에 힘을 주어 몸을 날렸다. 고작 경공술 좀 펼쳤다고 숨이 차, 속으로 빌어먹을, 하고 욕을 지껄였다.
도착해 보니 백모란의 집 근처에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연이 도착하자마자 찬물이라도 뿌린 것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따가운 시선들을 헤치며 연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따라 들어오기 전에 주강의 면전 앞에서 탁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다행히 주강은 연이 닫은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런…….”
연이 혀를 찼다. 이불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백모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서둘러 정좌하여 맥을 짚었다. 늑골에 금이 갔고 팔과 다리가 부러졌으나 뼈가 부러진 건 그다지 위중하지도 않았다. 위험한 건 내상을 입으면서 뒤틀린 혈도였다.
진찰을 해 보니 기문혈(期門穴), 중완혈(中婉穴)부터 시작해 그 부근 총 일곱 가지의 혈도에 문제가 있었다. 연은 백모란의 옆에 놓인 침구(鍼灸)들을 발견했다. 그의 사부가 들렀다 간 게 분명했다. 아마 진은록도 연과 똑같은 진단을 내렸겠지. 그리고 가지고 있는 침구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뼈는 진은록이 맞춰 두었으니 손대지 않아도 괜찮았다. 연이 깊게 심호흡을 하며 백모란의 몸에 손을 얹었다.
백모란의 몸에 들어간 날부터 연은 매일매일 이날을 떠올리고 곱씹고 외웠다. 그는 혹여라도 실수로 자신의 몸에 돌아가지 못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드는 의문이 있었다. 자신이 그리도 심하게 구타했는데 백모란의 몸은 과연 괜찮을 것인가? 평범한 사람인데?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수준의 폭행이었다. 연은 무언가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꼈다.
고민한 끝에 연은 백모란의 몸으로 직접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을 익혔다. 남궁세가의 직계만 배울 수 있는 내공심법이었다. 모든 내공심법이 그렇지만 창궁대연신공은 특히나 정갈한 내공을 단련하는 데 특별났다. 백모란의 몸을 마음대로 쓰고 자신의 괴롭힘으로 몸을 혹사시키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보상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연은 원래대로 돌아온 뒤에는 내상을 입은 백모란을 추궁과혈(椎宮過穴)하여 치료할 생각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공을 주입하는 방식을 이용할 계획이었는데, 이는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시행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래도 이렇듯 자신의 내공을 흘려 넣어 뒤틀린 혈을 바로잡으면 불구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터였다.
제 내공을 소모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있으나 마나 한 내공이 아니던가……. 연은 사부로부터 의술을 배우면서 무인으로서의 미래는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다만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서로가 가능한 비슷하거나 같은 성질의 심법을 가져야만 했다. 진은록에게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의 내공의 성질은 남궁세가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남궁세가의 내공이 정순한 물과 같다면 진은록의 내공은 번개와도 같았다. 그래서 연은 백모란의 몸으로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을 배운 것이다. 그는 최대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었다.
연은 일단 운기조식 하듯 혈도를 한 바퀴 따라 흘려 넣었다. 그 과정에서 미세하게 뒤틀린 혈도 두 개도 잡아냈다. 다른 사람의 몸이었으면 모르고 지나갔겠지만 자신이 한번 썼던 몸이었으니 알아채는 것이 쉬웠다.
평상시 몸과 다른 점을 샅샅이 훑어 낸 뒤 그는 본격적인 치료를 실행했다. 기문혈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다른 혈도를 원래대로 고치고 나자 온몸에 진력이 빠지고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아…….”
손을 떼어 낸 연이 숨을 골랐다. 식은땀 때문인지 아까보다 몸이 더 차게 식은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연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더는 경멸이나 혐오, 혹은 죽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때의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미안해, 백모란.”
그래도 십 년 동안 백모란의 재산도 나름대로 모아 두었고, 지금은 부상을 입었지만 나중에는 남궁세가의 심법 덕에 몸도 다시 건강해질 터. 지켜보다가 그의 상황이 어려워지면 몰래 도와줄 생각도 있었다. 그게 연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이 몸의 주인이 다시 돌아온다는 전제하에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연이 문을 열자 주강이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강은 연의 어깨너머로 백모란의 몸을 훑고는 말없이 옆으로 비켰다. 연이 신발을 신고 걸어가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수군거리고 있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잠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모두가 익숙한 얼굴들이다……. 환자로 찾아왔거나, 혹은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눴었지.
마음이 심란하여 도망치듯이 빠른 걸음으로 나오던 연은 진은록과 정통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냉정하고 침착한 그의 사부가 드물게도 살기 어린 시선을 보내는 바람에 연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는 연을 휙 지나 백모란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예상은 했으나 가슴이 덜컥 가라앉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진은록이 연을 그냥 지나친 건 그가 남궁세가의 차남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백모란을 치료하는 게 그의 우선 순위였기 때문이다.
연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왔을 때와는 달리 터덜터덜 다소 힘없는 발걸음이다. 진은록은 진맥을 하자마자 분명 뭔가 달라져도 크게 달라졌음을 바로 깨달을 것이다. 이미 진단을 해 보았으니 백모란의 상태가 위중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겠지. 그리고 잠깐 사이에 그 상태가 기적적으로 호전되어 있다는 것도 말이다. 한 달 정도 요양하면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오리란 것도.
허나 안다 한들 무엇을 어쩔 것인가? 어떻게 추측을 할 것인가? 항상 백모란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남궁연이 몸소 찾아와 치료해 주었다고? 그것도 의술의 의도 모를 도련님이? 의심을 가지겠지. 가지고도 남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차마 백모란의 몸이 불구가 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의원이면서 본인만큼 몸을 잘 아는 데다가 같은 심법을 가진 사람만이 완치할 수 있을 그런 내상이었다.
어차피 이제 더는 그의 사부가 아니었다. 그의 친구이자 아버지였던 이는 순식간에 남보다도 못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연이 코웃음을 쳤다. 제자를 그 꼴로 만들었으니 원수가 되면 되었겠지. 진은록이 목숨을 중히 여기는 의원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모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찾아와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연은 남궁세가로 들어가면서 천천히 속으로 이별을 고했다. 퍽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과 생이별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상황이다. 각오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각오를 한다고 모든 일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연은 오늘 아침 백모란의 몸으로 걸어온 길을 다시 따라 걸었다. 영성문을 지나 화정당으로 들어서니 뜰의 핏자국은 그사이 사라져 있었다. 그의 예민한 성정 때문에 화정당의 시비들은 꽤 바지런한 편이었다.
묵묵히 제 뒤를 쫓아온 주강에게는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채, 연은 성큼 방에 들어섰다. 겉옷 하나 안 걸치고 나갔다 왔더니 몸이 한기로 떨렸다. 그의 형인 남궁연오나 주강이 겨울에 외투는커녕 얇은 겉옷 하나 걸치고 다니는 것과는 달랐다. 연은 그래서 겨울이 유독 싫었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어떠한 이유’로 좋기도 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누우면서 연은 생각에 잠겼다. 백모란이 다시 깨어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영혼이 없으니 백치가 되나? 혹은 아예 깨어날 수가 없게 될까? 아니면 자신처럼 잠시 어디론가 갔던 영혼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걸까? 돌아온 그의 몸에는 이전의 기억들이 남아 있을까?
어려운 문제였고, 며칠 후 백모란이 깨기 전까지는 답을 찾기 어려운 의문들이기도 했다. 차게 식었던 몸이 체온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동안 연은 백모란으로 살아왔던 인생을 곱씹으며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저자 프로필

카르페XD

  • 수상 2022년 RIDI AWARDS BL소설 e북 최우수상 '너의 스탯이 보여!'

2023.01.1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대표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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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카르페XD
해피엔딩과 단것을 매우 사랑하는 작가입니다.
부족한 점 많은 글이지만
모쪼록 즐겁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D
Carpe Diem~!

목차

서장(序章)
一章 : 연과 모란, 모란과 연
二章 : 형제
三章 : 연회
四章 : 소룡대회
五章 : 의원
六章 : 모용세가
七章 : 사냥대회
八章 : 고립
九章 : 꽃
十章 : 정원
十一章 : 연리지
十二章 : 그래도 꽃은 핀다
후일담
외전 : 어느 꽃피는 날에
외전 : 금꽃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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