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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3 (완결) 상세페이지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3 (완결)작품 소개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3 (완결)> 과학적 증거로 찾아낸 한국사 통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THE HAN HISTORY DISCOVERED FROM THE SCIENTIFIC EVIDENCES)는 분자생물학·고고학·언어학·천문학 등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재해석한 한국사 통사다. 과학적 증거는 왜곡이 어렵다는 특성상, 문헌기록을 뒷받침하는 가치가 아니라, 우선하는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 과학적 증거가 문헌기록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삼국시대의 일식기록은 중국의 일식기록과 대부분 일치한다. 오기가 분명한, 일어나지 않은 일식까지 같은 날 관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일식관측지가 중국대륙인 한국 역대 왕조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한 쪽이 베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 한국은 누구나 관측 가능한 일식기록 말고도 전문가만이 관측할 수 있는 오행성결집, 태백주현 등도 독자기록으로 남겼고, 게다가 중국의 일식기록이 비정상적이라는, 절대 실측이 아니라는 증거는 수두룩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한국은 중국대륙에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 중국대륙에도 있었다.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의 진실성은 한단고기와 단기고사에 나오는 일식기록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조선시대의 일식기록 역시 중국대륙에서 관측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765년 2월 10일 일식이 문헌에 기원전 765년 4월로 기록된 것은 이 당시의 연초가 오늘날의 10월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왜곡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랑케도 실증사학을 주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랑케의 실증사학은 엄밀히 말해 ‘실증’이 아니며, 일본의 예에서 보듯 역사왜곡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역사왜곡을 끝낸 일본은 수십만 권의 한국 역사책을 분서한 뒤 “사실(史實)의 고증자료 없이는 한 줄의 역사도 기술할 수 없다”며 독일인 사학자까지 동원하여 실증사학 운운했다. 랑케는 먼저 역사왜곡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진정한 실증사학이라면, 과학적 방법만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에 의해서 역사기록을 검증해야 한다.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의 가치는 과학적 증거를 분석한 데 있다. 과학적 증거는 여타 문헌기록과 등가의 가치를 가지거나 하위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과학적 증거에 위배되는 문헌기록은 거짓이다.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제목에서 보듯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문헌해석했다.




저자 소개

저자 - 황영희(黃英熙)
1985년 3월 부산대학교 법학과 입학 1990년 2월 24일 부산대학교 법학과 졸업 졸업 이후 사학 연구, 200자 원고지 7천 매 가량의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집필

목차

9. 백제에 이어 고구려가 가라를 정복했다.
1) 가라는 식인종의 땅으로 북천했다.
2) 辛卯年好太王... 271년에 호태왕의 무당이 만든 96번째 구슬
3) 화랑세기는 가라의 성풍속기다.
4) 일본의 성문화는 중국의 거울이다.

10. 502년까지 후한이 진과 당을 갈라놓았다.
1) 고구려벽화의 실체는 한나라벽화다.
2) 375년, 후한 영토 한반도에 당이 침공했다.
3) 후한이 강남을 상실하기 전에는 삼국전쟁이 불가능했다.
4) 진 19세는 황태후를 인질로 삼아 천자가 되었다.
5) 만승(萬乘)의 천자는 백만 명을 징병했다.
6) 後晉(후진)은 가릉강 이서에서 건국했다.

11. 수천년사를 순수창작한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다.
1) 웅씨의 여라는 이름을 가진 임금들
2) 웅녀는 최후의 삼신이다.
3) 미개 여진족사를 한단사의 위치로 끌어올린 규원사화
4) 이유립은 한단고기를 조각내 재조합했다.
5) 한국사를 축소하자, 왜도 종이 위에서 한반도로 이동했다.

12. 송은 세계제국이었다.
1) 송은 평양에서 건국했다.
2) 서북면은 1258년, 동북면은 1269년에 상실했다.
3) 쌍성은 1368년이 아니라, 1356년에 격파됐다.
4) 번한은 몽고의 속국이 되고 고려는 망했다.
5) 중국은 의관하고서 인육에 구더기, 말똥을 주워 먹었던가.

13. 세계사 날조를 주도한 것은 韓族(한족)이다.
1) 여진이 망하자, 이안사는 몽고로 귀화했다.
2) 단기고사는 단군세기를 고친 위서다.
3) 숙신의 후예로서 말갈의 일족이 된 것은 제나라인이다.

14. 한제국의 멸망으로 서양이 동양을 추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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