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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전근대편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정치/사회

역사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전근대편

소통하는 한국사

구매종이책 정가17,000
전자책 정가11,900(30%)
판매가11,900

책 소개

<역사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전근대편> 한국사 대중화의 선봉에 선 최태성의 감동적인 한국사 강의!
역사는 사실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학문이다!
수많은 사건과 등장인물, 왕조별 역대 왕의 이름을 줄줄 외워야 ‘역사 좀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역사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 이런 역사는 죽은 역사다. 역사(歷史)는 문자 그대로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혹은 그 기록”이란 뜻이기에 인류사 구석구석을 채운 사람들을 먼저 만나야 한다. 인간이 빠진 역사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을 만난 다음에는 그들과 가슴을 열고 대화해보자. 물리적 시공간을 뛰어넘은 삶의 보편성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즉, 몇 백 년 전 사람들의 고민과 21세기를 살아가는 내 고민이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또 하나, 한국사에 다가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안에 숨어 있는 역사의 DNA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는 나의 삶에서 역사를 발견하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신식군대를 만들어 여기 복무하는 사람들은 우대하면서 구식군대에 복무하는 사람들에겐 차별을 가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마주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 상황을 현재 당신이 처한 상황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차별을 감수하며 그대로 참을 것인가, 시정을 요구하며 분연히 일어설 것인가? 역사의 DNA란 바로 이런 것이다. 책에서 발견한 사건, 혹은 역사 속에서 만난 어떤 사안을 두고 “나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내가 볼 때는 이렇게 했어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때 그 사람들은 이렇게 했을까?” 하면서 끊임없이 WHY라고 묻는 그 본능을 말한다. 이렇게 역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WHY를 묻는 순간,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 순간부터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오늘이 된다.
저자 최태성은 근 20여 년 동안 교사로 봉직하다가 2017년, ‘전 국민을 위한 역사 교사’로서 활동하겠다고 선언한 후 〈별★별한국사 연구소〉를 설립하여 온라인 사이트에서 한국사 무료 강의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가슴에 각인하고, 역사 앞에 바로 서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진정성 넘치는 역사 멘토다. 그는 또한 한국사 공부가 ‘나’를 알아가는 중요한 도구라고 말한다.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는지 확인하게 되는 과정이 바로 역사임을 믿는 까닭이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시간을 역사와 함께하며, 한국사 대중화 붐과 더불어 여러 채널에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른 지금, 우리는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역사 앞에 선다. 공부를 위해, 순수한 학구열을 채우고자, 좋은 성적을 받고자…. 이렇듯 이유와 목적은 다르지만 우리가 역사와 마주하는 순간 기억해야 할 게 하나 있다. 바로 “나의 오늘은 역사 속에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까?” 하는 점이다. 이야기체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선사시대로부터 고대국가와 고려를 거쳐 근대 태동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우리 역사를 감동적으로 들려주는 살아 있는 한국사 강의다. 한국사 대중화의 선봉에 선 저자의 교양서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가 역사 앞에 바로 서기를 바라는 모든 독자에게 따뜻하고 진실한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달라도 역사 공부의 본질은 하나다
“왜 한국사 공부를 하려고 합니까?” 하고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 비슷한 대답이 나온다. “요즘 한국사 모르면 교양 없는 사람 취급 받아요”, “우리나라 역사니까 당연히 알아야죠.”, “역사를 알아야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대요.” 등등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관심을 가지는 목적 자체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들여다보면 안타깝다. 대다수 사람들이 ‘몇 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 ‘이 유물은 OO시대 것이다’, ‘XX왕은 동생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등등 단편적인 사실만 머릿속에 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 사람들이 왜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일을 현재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지와 같은 고민들을 놓치게 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사건 이면에 숨어 있는 선후관계와 배경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종종 어떤 책의 저자나 강연자의 시각에 의존하는 학습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다양한 층위의 해석이 가능한 이유다. 따라서 역사 공부란 본질적으로 ‘열린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죽은 역사는 잊어라, 이제는 살아 있는 한국사를 만날 때다!
저자 최태성은 이제까지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린 친구들의 ‘역사 멘토’로 살아 왔다. 이제 그는 “전 국민의 역사 멘토가 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교단을 떠났고 여러 반대를 무릅쓰고 대한민국에 ‘무료 한국사 강의 오픈’이라는 전대미문의 교육혁명을 일으켰다. 그가 이렇게까지 모험을 감행한 이유는 단 하나, “전 국민이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스스로 역사 앞에 설 때 개인과 국가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든 강연을 듣든 수용자가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 집중하면 듣고 보고 익힌 많은 것들을 서서히 잊게 마련이다. 돌아서는 순간 죽은 지식이 된다. 하지만 스스로 고민하면서 깨달은 것들은 절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슴속에 남아 나와 함께 성장한다. 성장을 거듭하다가 어느 순간 나의 가치관이 되고 인생관이 된다. 역사는 인류의 흔적이자 삶의 궤적이며 흐름이다. 따라서 매 순간 성찰과 토론을 통해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조명하고 부활시킬 때 비로소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죽은 역사에서 벗어나 현재의 나를 숨 쉬게 해주는 역사,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을 준비하는 자의 역사로 바로 설 수 있다.

당신과 내가 소통하는 세상, 오늘이 곧 내일이 되어도 좋은 세상을 꿈꾸자
저자는 한국사를 대하는 두 개의 키워드로 ‘소통’과 ‘꿈’을 제시한다. ‘소통’의 전제는 만남과 나눔이다. 만나서 마음을 나누어야 소통이 가능하니까. 저자는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도 이런 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의 장면마다 혹은 행간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다 보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수월해진다고 말한다. 드러난 모습이나 사용하는 용어, 생활하는 방식 등은 다르지만 ‘한반도라는 동일한 지리적 조건 내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맥락은 같기 때문이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쟁점화하여 거기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참다운 소통은 요원해 보인다. 아마도 이것이 여전히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 아닐까? 두 번째 키워드인 ‘꿈’도 역사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열쇠다. 어떤 시대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역사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다. “한 사람이 꾸면 꿈에 그칠 뿐이지만 여러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기적을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는가? 저자가 한국사 공부의 핵심이 “사람을 만나 소통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출판사 서평

<본문 중에서>

잠시 타임슬립을 해서 1990년대로 가볼게요. 대한민국의 1990년대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사회 곳곳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던 시기입니다. ‘독재타도, 호헌철폐’의 외침과 최루탄 가스로 얼룩졌던 엄혹한 1980년대를 지나 민주화의 열매를 누리기 시작했던 때인데요. 그 당시 안방극장을 온통 사로잡은 역사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바로 〈용의 눈물〉입니다. 초반에는 시청자들이 “또 이성계냐?” “또 왕자의 난이냐?” 하면서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기어이 국민드라마에 적을 올린 작품이 되었습니다.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 초기를 다룬 이 드라마의 내용엔 딱히 새로울 것이 없었어요. 연출자와 배우들만 다를 뿐 역성혁명을 다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몰입했어요. 조금씩 달라진 연출자의 의도나 해석, 배우들의 연기를 분석하려고 그랬을까요? 물론 그런 분들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드라마를 시청했을 겁니다. “요즘과 다를 바 없군.” “나라면 저러지 못했을 텐데, 정말 용감하군!” “역사는 반복되는 거야.”
그렇습니다. 바로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낸 것입니다.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인물들을 보면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과 이웃을 지키려고 애썼던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렸을 겁니다. 시대와 조건이 변한다 해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는 보편적 진리를 수용하면서요. 저는 이러한 공감의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역사적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라고 봅니다._〈호모 히스토리쿠스의 탄생〉 중에서

의자왕 재위 말에 실정이 이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만,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왕이었기에 역사적 평가가 더욱 혹독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무튼 의자왕 역시 신라의 여러 성을 공격하는 등 신라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나・당연합군에게 맞서기엔 역부족이었어요. 결국 나・당연합군에게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백제는 멸망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건 아니에요. 흑치상지, 도침, 복신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이 전개되거든요. 왜도 백제의 부흥 운동을 지원했고요. 하지만 백강 전투에서 백제와 일본 연합군이 나・당연합군에 대패하면서 백제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사비, 지금의 부여에 가면 백제의 멸망을 지켜봤던 유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온전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킨 백제의 유일한 건축물 정림사지 5층 석탑. 백제의 미를 대표하는 이 우아한 탑의 몸돌에는 아픈 흔적이 남아 있어요. 당의 장수 소정방은 백제를 정벌한 후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세운 기념탑’이라는 글귀를 새겨놓습니다. 그래서 한때 일본인들에 의해 ‘평제탑’이라 불리기도 했죠. 그리고 1993년 능산리 절터 발굴 과정에서 백제 금동 대향로가 발견됩니다. 백제의 사상과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유물인데요. 그처럼 엄청난 보물을 미처 가져가지 못하고 진흙 속에 파묻어야 했다면 나・당연합군이 밀고 들어올 때 백제의 마지막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_〈꽃잎처럼 스러지다〉 중에서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지배층에 보내는 위험신호였어요. ‘이대로는 안 되니 어서 개혁하라’는 일종의 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종은 즉위 초 개혁 정치를 좀 하는가 싶더니 이내 정치를 멀리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집니다. 정치 기강은 더욱 문란해질 수밖에 없지요. 문벌귀족 역시 이겼다고 기고만장합니다. 자기들 배 불리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문벌귀족들은 또한 군인에게 지급되던 군인전軍人田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요. 중앙군인 2군 6위는 직업군인입니다. 월급을 받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니 군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문벌귀족들은 자신의 특권을 강화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느라 무신을 차별합니다. 재상으로의 승진도 제한하고, 심지어 과거시험에 무과를 두지도 않았어요.
무신들이 어느 정도로 수모와 차별을 겪었는지 일화를 하나 보겠습니다. 무신 중에 부하들의 존경을 받는 정중부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에게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다가가 말해요. “이봐, 영감. 무관들은 수염도 안 탄다며?” 하면서 촛불로 정중부의 수염에 불을 붙입니다. 정중부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서 수모를 당했으니 분노와 수치 때문에 눈물이 났을 겁니다._〈모순은 폭발한다〉 중에서

이제 서인과 남인만 남았습니다.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당이 되었지만 남인의 정치 참여를 허용합니다. 공존이라는 붕당정치의 원칙이 한동안 지켜져요. 그러다가 서인과 남인이 한판 붙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현종 때 일어난 예송禮訟입니다. 예송은 ‘예절에 관한 논란’이라는 뜻입니다. 예절 논란이 정치의 중심에 있다니, 요즘 시각으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아무리 건국이념이 성리학이고, 대다수 사대부와 백성들이 성리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를 받들었던 시대라 해도 정말로 예법 자체가 문제시되었던 걸까요? 아니면 예법이라도 걸고 넘어져야 했을 만큼 뭔가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인조 때 친명배금정책이 나오면서 호란이 벌어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거예요. 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집권층은 자신들의 치부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왜란 때도 그랬잖아요. 전쟁 중 가장 먼저 도망친 사람은 바로 왕과 지배층이었죠. 민중이 보기엔 얼마나 참담합니까? 뿐만 아니에요. 왜란 때 경복궁이 불탑니다. 이 화재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한양의 민중이었습니다. “백성을 돌보는 부모라면서 우릴 버리고 줄행랑을 쳐? 나쁜 놈들!” 하면서 불을 질러버린 겁니다. 이때 한 번 양반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고요, 호란 때 또 한 번 떨어집니다. 친명이다, 배금이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전쟁을 불러일으키더니 오랑캐 놈들한테는 절대 항복할 수 없다며 온갖 폼을 다 잡아놓고…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인조가 이마로 땅을 찧으며 항복하지 않았습니까? 민중이 그걸 다 본 거예요. 양반들도 이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도성으로 돌아오자마자 땅에 떨어진 권위부터 주워 올리려 듭니다. 이때 그 방편으로 삼은 것이 예법이에요. 예법이란 눈에 띄지 않는 통치 수단이기도 합니다. 성리학을 내세워 위아래 구분을 명확히 해줄수록 통치가 쉬워지는데요. 예송이 바로 대표적인 예입니다._〈서인과 남인 예송을 벌이다〉 중에서

그다음으로 아주 기가 막힌 인물이 등장합니다. 정약용이에요. 정약용은 그야말로 유럽의 다빈치 같은 인물로 인문과 과학기술을 제대로 통섭했던 학자입니다. 특히 수령이 지켜할 지침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 형벌의 운영에 관한 책인 『흠흠신서欽欽新書』, 제도의 개혁 원리를 다룬 『경세유표經世遺表』가 대표작입니다. 정말 박학다식한 조선 후기의 천재였는데요. 정약용은 여전론閭田論을 주장했다가 나중에는 정전론井田論을 들고 나옵니다. 여전론은 공동으로 생산하고 노동력에 따라 분배하자는 주장이에요. 상당히 사회주의적이죠? 이런 이유로 북한에서는 정약용을 한반도 최초의 사회주의 이론가로 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여전론은 균전론과 마찬가지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요. 그래서 좀 더 현실성 있는 정전론을 제시합니다. 정전론의 ‘정’은 ‘우물 정井’ 자예요. 글자 모양처럼 토지를 9등분한 뒤 여덟 개의 토지는 각 개인이 나눠 갖되 가운데 토지는 공동으로 경작하고, 여기서 나오는 생산물로 조세를 충당하자는 주장입니다.
한편 중상학파는 북학파라고도 하는데요. 정권을 거머쥔 노론 자제들이 주를 이루었죠. 이들은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기에 청에 유학을 다녀올 기회가 많았어요. 청의 발전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이들은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상학파는 이용후생利用厚生학파라고도 합니다.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히 하자는 것이 이용후생학파의 주장입니다. 중상학파는 성장주의자들로 이들의 목표는 생산력 향상입니다. 또한 청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자고 주장하는, 자본주의적 마인드가 상당한 사람들이에요._〈농업 중심의 개혁론과 상공업 중심의 개혁론〉 중에서


저자 프로필

최태성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사
  • 경력 대광고등학교 역사 교사
    EBS 한국사 강사
    2013년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2012년 EBS 역사자문위원

2015.09.3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_ 최태성
큰★별쌤으로 더 유명한 최태성은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광고등학교 등에서 20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EBS 한국사 대표 강사로서 500만 수험생과 만났다. KBS 1TV 〈역사저널 그날〉, KBS 라디오 FM대행진 〈별별 히스토리〉 코너 등 방송을 통해서도 한국사를 알리고 있다. 그는 “역사를 공부할 때는 무엇보다 먼저 ‘왜’라고 묻고, 그 시대 사람들과 가슴으로 ‘대화’하며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7년부터 ‘전 국민을 위한 역사 교사’로서 활동하겠다고 선언한 후 〈모두의 별★별한국사〉 사이트를 통해 한국사 무료 강의를 선보이고 있다. 별★별한국사 연구소장으로 일하며 한국사 연구와 더불어 각종 매체 출연과 강연을 통해 한국사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한눈에 사로잡는 한국사』, 『고급 한국사』, 『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 『중고등학생을 위한 한국사 읽기책』, 『큰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한국사』, 『최태성의 한국사 수호대』, 『최태성의 한국사 수업』 등 다수의 책과 중고등학교 교과서, 그리고 역사부도를 집필했다.

목차

〈1부 고대_그 옛날 하늘이 열리고〉
인간, 역사의 주인이 되다
역사와 만나는 시간 | 호모 히스토리쿠스의 탄생 | 평등하지만 아직은 배고픈 사회 | 최초의 혁명이 발생하다
역사시대가 열리다
계급의 출현 | 철제 농기구가 등장하다 | 단군조선과 위만조선
국가는 진화한다
연맹왕국의 시대가 열리다 | 유목의 DNA를 남긴 부여 | 고구려, 용맹하고 강인하게 성장하다 | 옥저와 동예는 왜 성장이 늦었을까? | 제정이 분리된 삼한
고구려와 가야
고대중앙집권국가의 탄생 | 고구려의 용트림 | 전성기를 구가한 고구려의 왕들 | 내분에 서 멸망으로 | 가야와 임나일본부
백제와 신라
백제는 성장이 빠른 나라였다 | 전성기, 위기, 그리고 안정기 | 꽃잎처럼 스러지다 | 늦깎이 나라 신라 | 개혁기를 빛낸 삼총사 | 전성기를 넘어 통일시대로
통일로 가는 길
7세기, 삼국을 둘러싼 국제 관계 | 3라운드 삼국통일
발해를 꿈꾸며
해동성국 발해 |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했을까? | 발해의 행정조직
민족 문화의 바탕을 이루다
신라 중대, 왕권 강화에 올인하다 | 비틀거리는 신라 하대
고대 문화의 꽃 종교
불교는 이데올로기일까, 문화일까? | 도교, 무위자연을 노래하다 | 교육의 중심이 된 유교
고대의 과학과 예술
고대의 과학 | 다양한 고분 양식 | 사회상을 보여주는 건축물과 불상들 | 탑에 대하여 | 삼국,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다

〈2부 고려_귀족문화와 아트외교를 꽃 피우다〉
고려의 건국과 발전
역사 발전의 방향은 주도 세력에 따라 달라진다 | 민심을 먼저 돌아본 태조 | 광종, 개혁 카드를 꺼내들다 | 시정전시과를 도입한 경종 | 성종, 고려의 통치체제를 정립하다
모순은 발전을 잠식한다
고려 전기의 대외 관계 | 문벌귀족 사회가 동요하다 | 모순은 폭발한다
혼란을 넘어 새 시대로
무신정권, 종말을 고하다 | 몽골의 침입 | 원 간섭기와 공민왕의 개혁 정치 | 신흥무인세력의 성장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신분제는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을까? | 고려 지배층의 구성 | 고려의 피지배층을 이룬 사람들 | 다양한 사회제도 | 고려의 가족제도와 여성의 지위는 진보적이다 | 고려의 경제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사상과 종교
성리학, 새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되다 | 역사서에 시대정신을 담다 | 불교의 통합 운동 | 도교와 풍수지리설은 어떤 영향을 미쳤나?
과학과 예술의 경향
인쇄술과 무기 제작술이 꽃피다 | 고려의 건축 | 개성미와 파격미, 그리고 절정에 이른 화려함

〈3부 조선 전기_유교적 이상국가를 꿈꾸다〉
왕권이냐 신권이냐
조선의 탄생 | 태종이 눈물을 흘린 까닭 | 피어나라, 세종 르네상스 | 태평성대로 가는 길
조선의 행정조직
의정부 6조 체제로 구성한 중앙 관직 | 8도 체제로 편성한 지방 행정조직 | 조선시대엔 어떤 사람들이 군대에 갔을까? | 관리 등용 제도
민주정치의 단초일까, 파벌싸움의 원흉일까?
사림의 성장 | 4대 사화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결과다 | 붕당의 출현
조선 전기의 대외관계
실리를 취하고자 사대교린을 택하다 | 임진왜란과 이순신 | 7년 전쟁이 막을 내리다 | 광해군의 중립 외교
조선 전기의 경제
유교적 경제관에 따른 경제 정책을 실시하다 | 토지제도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 납세 의무
조선 사회의 이모저모
조선의 신분제 | 조선의 사회정책과 법률 | 향촌 사회의 모습들
민족문화의 융성
과학기술이 꽃피다 | 민족 고유의 글자를 만들다 | 편찬 사업과 인쇄술의 발달
성리학과 양반 문화의 발달
성리학의 발달 | 유교 건축의 발달 | 회화와 공예의 발달

〈4부 조선 후기_근대화의 싹이 트고 자라다〉
조선 후기의 통치체제
비변사, 최고 권력기관이 되다 | 붕당, 핵심 기구를 장악하다 | 중앙군과 지방군의 체제 변화
붕당정치는 어떻게 변질되었나?
동인, 북인과 남인으로 갈라지다 | 광해군, 그리고 인조반정 | 서인과 남인 예송을 벌이다 | 환국정쟁으로 붕당정치의 본질이 변하다
탕평정치에서 세도정치로
영조의 탕평정치 | 정조의 준론탕평 | 소수 가문이 권력을 독식하다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호란의 발생 | 북벌론에서 북학운동으로 |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관계
조선 후기 경제생활의 이모저모
조선 후기 수취제도의 변화 | 농업 경영의 변화 | 상업의 변화 | 수공업과 광업의 발달
조선 후기 신분제의 변화
신분제가 동요하다 | 상민들의 수를 늘려라 | 향촌 사회의 변화
농민들의 봉기가 이어지다
극에 달한 부정부패 |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다 | 농민봉기의 발생
학문과 사상의 변화
양명학, 반성리학을 외치다 | 농업 중심의 개혁론과 상공업 중심의 개혁론 | 국학, 우리 것에 관심을 기울이다
과학의 발달과 문화의 특징
서양문물의 전래와 과학기술의 발달 | 서민문화가 꽃피다 | 예술의 새로운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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