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북스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새로 고침(F5)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북스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RIDIBOOKS

리디북스 검색

최근 검색어

'검색어 저장 끄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리디북스 카테고리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화가들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예술/문화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화가들

구매종이책 정가20,000
전자책 정가20,000
판매가20,000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화가들

책 소개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화가들>

[Introduction]

-모네를 중심으로 일어난 프랑스 인상주의 혁명(革命)

프랑스 파리에서 140년 전인 1874년에 클로드 모네가 주도하여 공식적으로 인상주의가 등장했다. 그는 화가, 조각가, 판화가 등 30명의 인원으로 '익명(匿名)의 예술가 그룹’을 모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역사적인 제1회 인상파 전시를 사진사 나다르(Nadar)의 아틀리에에서 개최했다. 전시된 작품의 총수는 165점이었다. 그리고 1886년까지 12년 동안 여덟 번의 전시로 이어가면서 많은 난관을 거쳤다. 인상파는 서구미술 역사에 일대 변혁(變革)을 이루었다. 한마디로 서구미술의 혁명(革命)이었다.

-미국은 The Ten을 중심으로 인상주의 혁명(革命)

미국에서 인상주의는 불과 4년 후인 1878년부터 최초의 전시가 보스턴에서 개최되었다. 그 후에 프랑스 인상파들의 작품전시가 뉴욕 등 전국적으로 연이어 이어졌다. 또한 유럽에 진출한 미국 화가들도 귀국하여 인상주의 작품의 전시와 창작 및 교육을 이어갔다.
미국에서 최고 권위의 단체이며 1877년에 설립된 미국화가협회(美國畵家協會)는 20년이 경과된 1897년까지 아카데믹 미술이 인상주의에 보다 우위를 인정하면서 보수적인 협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1897년에 협회에 소속된 화가 중에 10명이 탈퇴(脫退)하는 일이 생겼다. 이들은 전원이 유럽 유학파 출신의 중진화가들로서 프랑스에서 모네가 주동한 것처럼 인상주의를 표방했다. 이들은 프레드릭 C. 하삼 등 평균 40대 초반의 실력 있는 화가들이었다.

'The Ten'은 ‘10인의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 (Ten American Impressonism Painters)의 약칭(略稱)이다. 미국에서 인상주의 화가그룹이 결성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모네와 같이 미국 미술의 나아갈 방향을 인상주의로 표방하면서 당시 전통미술의 보수(保守)와 상업주의(商業主義)에 빠진 미국화가협회를 탈퇴했다. 협회는 이들 멤버들에게 이기적인 행위로 비난했다.

-미술환경의 변화에 적응치 못한 미국화가협회는 폐쇄

뉴욕에 본부를 둔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Design)는 1863년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14년 후인 1877년에 아카데미의 운영이 보수적(保守的)이라는 이유로 미국화가협회(Associated American Artists)로 분리(分離) 신설되었다. 이 시기는 유럽에서 제3회 인상파 전시회가 열릴 때였으나 미국에는 전파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897년 12월에 10명의 화가들 즉 The Ten이 반기(反旗)를 들었다. 주된 이유는 협회가 과거 20년 전에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로부터 분리될 때의 이유처럼 보수적(保守的)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화가협회는 29년간을 지속하다가 The Ten 멤버로부터 이와 똑같이 보수적이라는 사유로 문제시되고 결국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다시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합병된 것이었다.
미국화가협회는 상업주의(商業主義)라는 주된 문제도 작용했다. 또한 협회는 자체의 문제 즉 협회의 일부 간부들이 배심(陪審)없이 자기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The Ten은 미국화가협회에서 탈퇴했다. 일부 협회의 회원들도 드디어 The Ten의 탈퇴행위를 두둔하는 성명까지도 나왔다.
미국화가협회는 그 후 활기를 잃다가 1906년에 종말(終末)을 고했다. 즉 협회의 모체(母體)인 뉴욕의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다시 합병(合倂)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The Ten이 구성된 지 8년 후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1934년에 과거 미국화가협회가 폐쇄된 후 28년 만에 <미국화가연합>으로 재구성하였다.
The Ten은 미국이 1916년에 참전한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던 1918년까지 전시를 활발히 개최하였다. 그들은 1898년 3월에 뉴욕의 ‘뒤랑 뤼엘 갤러리’에서 제1회 The Ten 전을 개최하고 1918년까지 20년 동안 32회에 걸쳐 그룹의 전시회를 뉴욕과 보스턴 등의 도시에서 이어갔다. 일반 애호가들은 다음에 열릴 전시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멤버들의 평균나이가 40대초에 출발하여 60대를 넘어서자 마지막 회고전을 뉴욕에서 개최하고 각자의 인상주의 스타일의 작업으로 돌아갔다.

-프랑스와 미국의 인상파에 대한 여론(輿論)과 사회적 수용(受容)의 차이

인상주의에 대한 사회적인 반대와 호응 등의 여론은 미국과 프랑스를 비교하여 19세기 말부터 크게 달랐다. 먼저 프랑스는 오랜 전통으로 아카데믹 미술에 대한 보수 성향(保守 性向)이 강했다. 정부나 미술학교의 교수 및 비평가들은 모두 새롭고 혁명적인 인상주의에 대하여 일제히 반대했다. 그 결과 화가들의 등용문(登龍門)인 파리살롱(Paris Salon)의 배심(陪審)에서부터 인상파 화가들은 낙선되었고 전시의 길도 막혀 버렸다.
인상파들의 제1회 전시에서 ‘익명(匿名)의 화가그룹’으로 명칭을 내건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이들은 1888년까지 12년 동안 여덟 번의 전시를 하였지만 인상주의라는 하나의 구심점(求心點)은 없었다. 제1회 전시회부터 마지막의 제8회 전시까지 인상주의 뿐 아니라 사실주의와 신인상주의 및 상징주의 등 다양한 경향과 화풍의 화가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환경은 프랑스와 크게 달랐다. 1970년 전후에 프랑스에서 인상파가 발아(發芽)되던 시기는 미국은 1861년~1865년에 걸친 남북전쟁(南北戰爭, 시민전쟁)을 종료하면서 국내가 안정되었고 산업전반에 눈부신 부흥을 이루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예술의 수도(首都)인 파리와 독일의 뮌헨 등으로 몰려들었다. 또한 화가들은 저명한 프랑스의 ‘에콜 데 보자르’와 ‘줄리앙 아카데미’ 및 독일의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아카데믹의 사실주의 고전화풍을 공부했다.
그들은 귀국하기 전부터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며 귀국 후에는 그림 작업과 더불어 미술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또한 미국의 전역에서 1885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프랑스 모네의 지베르니(Giverny)와 같은 화가마을을 조성했다. 이와 같이 미국 국민들이 혁신의 사조(思潮)에 민감했고 특히 새로운 인상주의 화풍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술학교에서 수업과 화가마을로 인하여 제2세대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크게 양성되었다.
The Ten의 중심 멤버인 프레드릭 C. 하삼과 윌러드 L. 메트캐프가 활동한 올드라임(Old lyme) 화가마을(Artists Colony)은 바로 대표적인 ‘미국의 지베르니’가 되었다. 현재는 플로렌스 그리스울드 미술관(Florence Griswold House and Museum)이 되면서 미국 인상주의의 메카가 된 것이다.
The Ten의 멤버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미술을 진취적으로 혁신시킨 공로를 쌓았다. 나아가 미국의 인상주의는 프랑스와 다르게 20세기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시켜 현대미술의 흐름에 중심의 역할을 했다. 특히 미국사회에서 The Ten은 오늘날과 같이 인상주의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不滅)의 화파(畵派)’를 이루는데 초석(礎石)을 다졌다. 따라서 The Ten은 1874년에 프랑스에서 모네와 같은 변혁자(變革者)의 존재와 같았다. 미국의 현대미술을 인상주의로 하여금 세계미술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도록 노력한 미국의 변혁자(變革者 Change Agent)가 된 것이다.

-미국 인상주의 거장들의 국내 소개

오늘날 「 The Ten 」에 대한 평가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제 세계적으로 인상주의 미술의 거장(巨匠)이라고 인정되고 있다. 국내에서 미국 인상주의에 대한 소개는 유럽 인상파 화가들에 비하여 늦었고 따라서「 The Ten 」의 거장들을 소개하는 책은 거의 없었다. 이 책의 내용에는 명칭은 The Ten이지만 실제 활동한 11명의 화가를 소개하고 있다. 총 650점의 작품을 각자 생애 중에 나타나는 화풍(畵風) 즉 스타일 별로 선정하고 일부는 설명을 같이 붙였다. 종이책보다 전자책 e-Book에 적합하게 그림위주로 편집해 보았다.
The Ten 그룹을 구성하는데 주동적인 화가는 프레드릭 C. 하삼인데 ‘미국적인 인상주의’에 가장 특징적인 화가로서 이름이 났다. 그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일생동안 3,000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책에 70점을 골라 실었다. 그리고 윌러드 L. 메트캐프는 모네가 1883년에 정착한 지베르니(Giverny)를 1885년에 처음으로 방문하고 4년을 같이 생활하여 ‘모네의 추종자’로 호칭되면서 정통적인 초기 인상주의를 대변했다. 그리고 인상파 화가로서 시적(詩的) 상상력과 실험적인 작품은 모네와 비견되는 존 H. 트와치먼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뉴욕과 보스턴에서 학생과 친구로서 만났고 프랑스에서도 같은 학교와 스승 밑에서 생활하여 서로가 평소에 잘 알고 있었고 특히 유럽에서 당시 인상파의 스타일과 장래의 미술 흐름을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The Ten 멤버 중에 다른 화가인 체이스는 2,000점을 제작했다. 참고로 인상파의 대부(代父)인 클로드 모네는 평생 동안 8,000점을 그렸다. 이러한 작품들은 프랑스나 미국 등 전 세계의 만국박람회 (萬國博覽會) 무대를 통하여 전파시키는데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어느 화가나 마찬가지로 일생을 통해 표현되는 각자의 화풍과 스타일 및 기법은 한가지로 꾸준히 지속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화가는 주위환경과 시기에 따라 미적 영감(靈感)과 감동(感動) 및 뉘앙스(Nuance)에 영향을 받아 그림 스타일도 차츰 변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The Ten 멤버들도 작품 스타일이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배운 아카데믹한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와 더불어 인상주의(印象主義)와 색조주의(色調主義 Tonalism) 및 장식적 인상주의 (裝飾的 印象主義 Decolative Impressionism)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 화가의 배열순서는 편의상 생년을 기준으로 출생이 빠른 화가를 먼저 기술했다. 각 화가의 작품 배열은 풍경화, 인물화, 초상화, 벽화, 누드화 및 정물화 순으로 되어 있다.

-The Ten의 공통적인 특색(特色)

▶ 인상주의 화풍과 아카데믹 화풍의 재능을 겸비(兼備)

The Ten은 미국에서 유명한 미술학교를 마치고 주위의 추천 등으로 유럽에 진출한 화가들이다. 그들은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 (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와 뉴욕의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National Academy Museum and School : National Academy of Design) 및 보스턴 미술관 학교 (School of the Museum of Fine Arts, Boston) 등 유명한 미술학교를 먼저 나왔다,
그리고 더 높은 교육을 위하여 프랑스 파리와 독일 뮌헨 등으로 진출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저명한 당대 최고의 거장들 밑에서 배웠다. 그들은 아카데믹 미술인 사실주의(寫實主義) 화풍으로 주로 인물과 초상화를 익혔고 파리살롱의 배심(陪審)에 통과하여 영예스런 전시는 물론이고 만국박람회 등에서 상(賞)을 받은 유럽파의 명실 공히 엘리트 화가였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발아되기 시작한 인상주의를 직접 체험하고 예의 주시한 화가들이다. 일부는 모네가 정착한 지베르니를 방문하면서 정착했다. 더불어 모네와 함께 정통적인 인상주의 미술을 실험하고 새로운 기법과 화풍을 실제로 익혔다. The Ten의 나머지는 귀국하여 프랑스 인상주의 미술에 종래 미국에서 주도하던 허드슨 강 파(派)의 사실주의 미술을 결합(結合)하여 미국적인 고유의 화풍으로 이루어 나갔다.

▶ 미국에서 공식적 교육기관의 미술교사로 활동하며 후진교육을 담당

그들은 새로운 인상주의가 앞으로 서구미술을 주도할 것을 심미적인 감각과 예지(叡智)로 예감했다. 그들은 귀국하여 작품 창작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인상주의가 정착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미술교사의 역할을 하면서 교육(敎育)을 통하여 많은 신진화가와 일반인을 키워 나갔다. 미국의 초기 인상주의 화가들 중에 유럽에서 경험한 11명의 The Ten 멤버뿐만 아니라 따로 300명에 달하는 지베르니아이츠 Givernyites (지베르니의 신봉자)라는 소위 인상주의의 정예부대(精銳部隊) 출신이 있었다. 이들은 모네의 화풍에 영감을 받았고 프랑스의 시골에서 어려운 창작생활을 경험하며 개척한 ‘모네의 신봉자’ 들이었다.
1870년대 이후 인상주의는 새로 탄생한 화파로서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없었다. The Ten의 11명 화가는 유럽에서 아카데믹한 리얼리즘 화풍을 교육받으면서 주로 인물화와 초상화를 터득했다. 이는 프랑스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와 줄리앙 아카데미(The Académie Julian) 및 독일 뮌헨의 왕립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Fine Arts, Munich)에서 이들을 가르친 교수들이 그러한 스타일의 거장화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인상주의는 단지 다른 화가의 모방(模倣)을 통하여 전달되는 실정이었다. 1886년 제8회로 인상파 전시가 종료되고 난 이후에 파리에서는 인상주의의 구심점이 사라졌다. 12년 동안 프랑스에서 행한 인상주의에 대한 핍박과 냉대 속에 그들은 반대하는 미술학교를 세울 수 없는 여건이었다. 또한 프랑스에서 인상주의에 관심이 있었던 다른 화가들은 반대의 분위기 때문에 탈 인상주의(脫 印象主義)에 더욱 염두에 두었다.
따라서 인상파에 관심을 가진 미국 등 18개국의 350명 화가들은 모네가 1883년부터 정착한 지베르니를 1885년부터 1914년까지 30년간 스스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후 The Ten 멤버와 지베르니아이츠는 미국으로 귀국하여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와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등 기존의 유명 미술학교에서 과거의 학생 신분이 아닌 교사가 되어 인상주의를 가르친 사실이 크게 유럽과는 달랐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대거 인상주의의 계승(繼承)과 인재양성(人才養成)이 이루어 진 것이다.
The Ten 멤버인 윌리엄 메릿 체이스는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20년 동안 4,000명의 제자를 길렀다. 특히 그는 미국화가협회의 회장직을 1885년부터 10년간 수행한 후에 1895년에 퇴임했다. 결국 체이스도 다시 7년 후인 1902년에 이미 형성된 The Ten에 합류하므로서 그룹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영향력을 높였다. 이와 같이 미국의 인상주의는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쇠퇴일로를 걷던 인상주의를 부활시키고 전성기를 이루었던 점이 달랐다.

▶ 미국 전역에 인상주의 화가마을(Art Colony)을 건설, 미국적 인상주의를 개발

그들은 주로 뉴욕과 보스턴에서 활동한 화가들이지만 외광(外光) 페인팅을 위하여 미국 전역으로 여행을 다녔다. 자연히 다양한 지역을 중심으로 예술공동체(Art Colony) 즉 화가마을을 형성해 나갔다. 그들은 인상주의의 특색인 외광회화의 소재를 찾으면서 독창적으로 스타일을 개발했고 ‘미국적인 인상주의’로 탈바꿈시켰다. 미국 인상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색은 이와 같이 과거 모네가 살던 지베르니의 화가들도 모네의 영향을 받았지만 각기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개발한 사실이다.
미국의 많은 화가들은 각자의 개성을 확연히 드러내면서 인상주의를 발전시켰다. 1880년대부터 인상주의는 뉴욕 (시네코크, 올드라임), 코네티컷 (코스콥), 매사추세츠 (글로스터, 프로빈스 타운, 케잎코드 타운), 펜실베이니아 (브라운), 메인 (몬헤건 섬), 캘리포니아 (라구나 비치, 몬트레일, 카르멜, 산타바바라, 패서디나. 뉴포트), 보스턴, 뉴멕시코 (타오스) 등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 모네의 정통적인 인상주의 화풍을 지속시키고 미국적 인상주의를 개발한 화가

프랑스에서는 제8회 인상파 전시가 끝난 직후에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등의 여러 가지 유파(類派)로 변천되었다. 프랑스에서 8회에 걸친 인상파 전시회에 참가한 쇠라, 시냑크, 앙그랑 등은 1890년대에 신인상주의(新印象主義)로 변천되었다. 또한 세잔느, 고갱 고흐 등은 인상주의에 반대하면서 영국의 로저 E. 프라이(Roger E. Fry)에 의해 명명(命名)된 바와 같이 후기 인상주의(後期 印象主義)로 변천했다.
이와 같이 20세기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인상주의였다. 즉 인상주의가 후대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인상주의의 다른 전위예술(前衛藝術 Avant­garde) 화가들은 인상파의 화풍을 모방하여 생기기 시작했다. 즉 고흐는 표현주의(表現主義)에, 세잔느는 입체주의(立體主義)에 영향을 끼치면서 19세기 미술을 20세기 미술로 끌어 올렸다. 1890년대의 신인상주의(新印象主義)는 고갱과 세잔느의 영향으로 야수파(野獸派)와 독일에서는 표현주의(表現主義)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모네가 정착한 지베르니가 차츰 화가마을(Art Colony)로 형성되면서 인상주의의 메카가 되기 시작했다. 정통적인 인상주의 작품을 창의적으로 실험한 미국의 지베르니아이츠는 30년간 무려 300명이 달했다. 그중에 The Ten 멤버는 1885년에 방문한 윌러드 L. 메트캐프와 1895년에 여류화가인 마리아 오키 듀잉 부인과 같이 동행한 토머스 W. 듀잉 두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지베르니에서 모네와 함께 생생한 현장경험으로 The Ten 그룹이 인상주의의 정통화가(正統畵家)로서 미국에서 인정을 받게 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미국의 The Ten과 지베르니아이츠들은 모네가 추구한 초기의 인상주의 화풍을 고수(固守)하면서 발전시켜 나간 것이다. 이들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보다 더 확고한 구성적(構成的)인 구조(構造)와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인 감각(感覺)을 혼합하여 ‘미국적 인상주의’(美國的 印象主義)를 확립해 나갔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이후에 세계를 주도(主導)한 미국의 정치·경제적 측면과 평행선을 이루는 문화·예술적 측면에서 상응(相應)하는 현대미술의 시너지(Synergy) 효과를 거두게 했다.

-불멸(不滅)의 화파(畵派)로서 인상주의

The Ten의 특징 중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과 다른 점은 그룹 전원이 유럽의 가장 저명(著名)한 미술학교에서 아카데믹의 고전미술을 주로 배웠던 화가들이었지만 당시 혁신적인 인상주의에 관심으로 실제 창작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프랑스에 있을 때 The Ten의 작품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인상파를 반대하는 분위기로 인하여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없었다.
그러나 The Ten은 귀국한 이후에 미국의 정규 미술학교에서 인상주의 화풍으로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또한 화가마을을 건설하면서 정통적인 인상주의 작품을 창조해 낸 사실이 달랐다. 따라서 인상주의의 진원지(震源地)는 프랑스이었으나 20세기 이후의 인상주의 부흥의 중심지는 바로 미국이 되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점은 앞에서 말한 인상주의의 세 가지 특성상 앞으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불멸(不滅)의 화파(畵派)’로 지속되는 사실이다. 이는 마치 불교(佛敎)가 인도에서 발원하였으나 현재의 인도는 힌두교의 성지로 남아있고, 나아가 불교는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동남아시아의 주종(主宗)의 종교가 되었고 오늘날 세계의 종교로서 형성된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상에서 미국에서 발전시킨 20세기의 인상주의 미술은 현대미술의 초석(礎石)으로 자리하면서 순수미술 분야뿐만 아니라 나아가 디자인 등 산업전반의 응용미술에도 꽃을 피우게 했다. 왜냐하면 인상주의는 사실주의(寫實主義)의 표현과 함께 처음부터 추상적(抽象的) 이미지와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는 현대미술이 추상회화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여 결정적인 공헌(貢獻)을 했다. 즉 직관(直觀)에 의한 뉘앙스(Nuance)와 이미지의 연출(演出)을 통하여 추상화(抽象畵)가 생기는데 크게 영향을 준 것이다. 추상화를 최초로 시작한 바실리 칸딘스키는 모네의 작품이 모스코바에서 전시될 때 『건초더미』로부터 영감(靈感)을 받았다고 고백(告白)한 적이 있었다.

-19세기 초까지 불문율이던 고립주의에서 세계주의로 향한 미국의 정책

미국은 1776년에 독립하여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1916년까지 140년간 초대 워싱턴 대통령 이후부터 유럽의 정세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불문정책으로서 고립주의(孤立主義)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 이후 1916년에 대서양에서 독일의 잠수함이 미국인이 탄 여객선을 공격하여 당시 미국의 토머스 우드로 윌슨(1856~1924) 대통령은 독일에 참전을 선포하고 결국 연합군은 1918년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때부터 미국은 세계주의(世界主義 Cosmopolitanism)로 진입했다. 한나라의 진정한 국가발전은 경제·사회를 포함하여 나아가 문화·예술의 발전과 더불어 평행선을 달리게 한다. 미국은 국가규모가 커질수록 세계주의적(世界主義的) 정책을 보였고 문화예술에서도 최고의 문화대국이라는 포부를 먼저 인상주의를 통해 실현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는 이제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에서 인상주의를 ‘불멸(不滅)의 화파(畵派)’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통적인 인상주의와 20세기 전환기부터 미국에서 크게 발전된 ‘미국의 인상주의’ (American Impressionism)에 대하여 전 세계의 시선은 다시 관심을 모으고 살피게 되었다.

-미술서적에 전자책(e-Book)의 활성화

오늘날의 책은 종이책에서 전자책(e-Book)으로 급속히 환경을 바뀌고 있다. 집과 실외에서도 손쉽게 TV, 스마트폰 등을 통하여 책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발간된 821페이지에 달하는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전2권)의 전자책은 모든 멀티미디어 기기에서 손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쪽 면에 한 개의 작품을 싣고 일부는 간략한 해설을 붙였다. 근간에 널리 보급된 e­Book 단말기, 태블릿 PC, 스마트폰, 노트북 및 다기능 PC 등의 멀티미디어 기기에서 글과 그림은 물론이고 음성과 동영상으로 미술책을 즐기게 되었다.
저자가 2013년 9월에 발간한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전2권)의 전자책은 전체 900쪽이 넘는 분량이었다. 미국화가 등 98명과 다른 나라에서 6명 도합 114명이 지베르니에서 생활한 인상주의 화가 등을 취급하였다. 책 속에 1,200개가 넘는 그림화일과 더불어 많은 문서량으로 인하여 부득이 종이책 대신에 전자책을 PDF 파일로 발간된 것이다.
모든 음악도 우리가 자주 들으면 친해지고 좋아진다. 그림도 마찬가지로 자주 마주할 경우에 정신을 맑고 아름답게 가다듬으면서 예술적인 심미감이 더욱 높일 수 있다. 마음과 정신의 치유(治癒) 즉 힐링에 미술과 음악 등이 각광받는 시대가 도래한지 상당히 되었다.
종이책에 인쇄된 칼라 작품은 ‘색(色)의 삼원색’인 CMYK(Cyan, Magenta, Yellow, Black<K를 의미>)라는 감산 혼합방식(減算 混合方式)을 이용한다. 모니터를 통해 보는 칼라 작품은 ‘빛(光)의 삼원색’을 이용하여 색을 표현하는 RGB (Red, Green, Blue)의 가산 혼합방식(加算 混合方式)이다. 따라서 모니터로 보는 그림은 종이책보다 훨씬 색상이 밝고 원색(原色)에 가까워 특히 미술작품의 감상에 적절하다.
현대는 전자통신과 멀티미디어의 발달로 국제사회가 더욱 가까워지고 밀접해지고 있다. 또한 생산한 모든 상품에는 디자인(Design)을 가미하여 전 세계를 향해 진출된다. 특히 상품의 가치판단에서 디자인이 최후의 결정력(決定力)을 지니게 된 것이다. 즉 상품이 수출되는 것은 바로 디자인 자체가 수출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훌륭한 디자인은 단시일에 미술인들만의 안목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때문에 모든 현대생활에는 문화예술 특히 디자인이 포함된 미술과 연관시켜 모두 관심을 가지고 개발시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도 이 전자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인상주의 미술과 현대의 디자인

The Ten 멤버 중에 프랭크 W. 벤슨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중의 한 사람이며 오직 일생동안 정통적인 인상주의 스타일을 고집한 화가로서 평소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인기는 또한 역대 미국화가중에서 미술상(美術賞)을 가장 많이 받은 화가로서도 칭송이 대단했다.
“화가는 구상(構想)을 위한 디자인(Design)이 가장 중요한 페인팅의 내용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림은 단순히 디자인(Design)에 대한 실험이다.” 또한 “어떤 대상을 구성하는 일이 있을 지라도 정물화, 인물화 및 조류의 그림은 그 디자인(Design)이 즐겁다면 그림은 성공하게 된다.” 라고 말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The Ten의 인상주의 거장들이나 지베르니아이츠와 같은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은 회화 작품(繪畵 作品) 속에 보다 현대적이고 의미 있는 디자인(Design)을 함께 넣으려고 고심한 사실은 시사(示唆) 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우리가 그림을 볼 때에 어떤 디자인이 결부되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만 한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에는 일반적인 구도(構圖)와 구성(構成)을 넘어선 심리적(心理的)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100년 전의 화가들은 이미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에는 형태와 윤곽 및 실루엣이 중요하며 더불어 추상적(抽象的)이며 관념적(觀念的)인 디자인이 착상을 지배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看過)하지 못할 중요한 사실은 시대가 변화되더라도 인상주의 미술품에 대한 인기(人氣)와 애호(愛好)는 더욱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래 아카데믹한 스타일의 그림과 인상주의 작품을 비교할 때 아래와 같이 점에서도 크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① 주제(Motif)의 다양성(多樣性)과 ② 화가의 자유스런 개별성(個別性) 및 ③ 표현방법의 무한성(無限性) 즉 스트로크의 변화무상성(變化無常性) 등에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매트릭스로 조합할 때 독창적이며 무한한 작품이 창조된다. 또한 이런 것은 모두 화가들이 지배하고 창조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이다. 140년 전에 전위예술(前衛藝術)이던 인상주의는 이제 고전적(古典的)인 예술이 되었지만 위와 같은 특성으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생명을 지니고 있고 또한 앞으로도 무한히 발전하는 활력을 가진 것이다.
미국 인상주의 작품의 가치는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의 경매에서도 과히 짐작하기 어려운 높은 금액으로 거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국제화 시대의 폭넓은 안목으로 유럽에서보다 점차 인기가 증가하고 있는 미국의 인상주의 작품을 주목할 필요성이 제기된 때문이다. 또한 세계의 산업경제를 주도하고 있듯이 미국의 문화예술 분야에 바탕을 이룬 20세기 전환기 이후의 인상주의를 주목하도록 권해 본다.
이 책은 교양서와 더불어 생활전반에 디자인 등 미술의 실용적 응용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발간의 뜻을 두었다. 미술작품은 손쉽게 보는 것에서 출발하여 관심을 제고시키고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화 시대에 아직 국내에서 소개가 미흡한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을 이해하고 나아가 유익한 콘텐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인상주의는 현대의 회화 뿐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현대 디자인의 수준을 제고시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아트월드를 통하여 서양화가이며 미술작가인 조영규는 이미 2013년에 발간한 『 The Ten, 미국의 인상주의 거장들, 전2권 』을 이번에 다시 합본하여 『 The Ten, 미국의 인상주의 거장화가들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과거 PDF파일의 e-Book 발간에 있어 도서 유통사에서는 초기에 파일 용량의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유통 환경의 개선으로 업로드 파일의 용량 증가가 급속히 이루어졌다. 현재는 단행본을 200MB까지 업로드 할 수 있어 독자들이 더욱 편리하게 되었다.
미술 분야의 e-Book은 그림파일이 많기 때문에 자연히 용량이 커 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아트월드의 PDF 시리즈 책은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e-Book의 개별 파일보다 두 배 이상의 크기로 싣고 있다.
즉 독자가 휴대하여 볼 수 있는 기기 중에서 큰 편인 태블릿 정도의 크기에서도 확대하여 보거나 나아가 인터넷 TV와 대형 PC모니터 등에서 독서와 그림파일을 감상할 경우에도 큰 화면에서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근간에 2013년에 발간된『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전2권 』도 합본하여 단행본으로 새로 발간하였다.

세계적인 e-Book 환경에서 주목할 사항들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이며 시애틀에 본사를 둔 Amazon이 삼성과의 협력을 확대하려는 동향이 뉴스에 나오고 있다. 공동으로 안드로이드 기반의 Kindle e-Book 앱을 개발하면서 독자들에게 연간 최대 12권까지 무료로 Amazon의 e-Book을 제공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행되면 전 세계 90여 개 국가에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Amazon이 곧 한국지사를 40번째로 설치하여 유통망을 넓힌다고 한다. 따라서 Amazon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Kindle e-Book 판매를 확대시킬 것이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19%(2013기준)를 점유하는 삼성도 e-Book 독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통로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출판 시장의 경우 신간 도서 중에서 e-Book이 차지하는 비율은 30%이다. 우리나라는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Amazon은 e-Book 단말기 Kindle을 가진 위력이 작용했다.

우리가 e-Book을 알고자 하면 먼저 Amazon을 알아야 한다. Amazon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e-Book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킨들의 초기 개발자였던 제이슨 머코스키(Jason Merkoski)는 지난해 9월 방한했을 때 "2년 후 한국 인구의 절반은 e-Book 단말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하나의 e-Book 환경의 변화는 소셜리딩(Social Reading)이다. 이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지식과 정보 및 정서까지 독자가 거의 동시에 서로 교류하면서 읽는 상당히 획기적이면서 새로운 방식이다. 즉 텍스트에 그어진 밑줄과 책의 빈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메모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세대는 종이보다는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한 읽기에 더 잘 적응하고 있다. 오늘날 스마트한 독자들은 늘 콘텐츠에 목말라 있다. e-Book은 종이책의 적(敵)이 아니라 동반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전자책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아트월드 출판사는 국내 미술서적에서 목말라 하는 것을 미리 알고 전혀 열리지 않는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인상주의 미술에 있어 미국의 Impressionism은 미개척 분야이다.

서양화가이며 3년 동안 이제 20권의 미술도서를 출판한 조영규 작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벌써 관심과 기대를 상당히 받고 있다. 특히 미술을 공부하려는 젊은 청. 장년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고 있다. 미래의 미술시장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프랑스에서 꽃을 피우다가 그만둔 초기 인상주의를 계승하여 미국에서 번성시킨 <미국의 인상주의>에 찾을 수 있다. 왜 이런 세계적인 동향과 흐름을 주목하지 못하였을까? 바로 아트월드가 발행한 전자책 속에 해답이 실려 있다.

아시아의 경우의 전자책 상황을 살펴본다면, e-Book은 일본과 중국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은 상당히 뒤쳐져 있다. 이는 Amazon이 이미 두 곳에 진출하였기 때문으로 그 영향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Amazon 킨들이 진출한 지 2년, 중국은 1년이 지났다. Amazon 진출을 계기로 두 나라의 출판사와 독자 및 장비 개발회사 등 이해관계자들의 인식이 바꿨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독자들이 호응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주목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IT환경에서 특히 한글이라는 우수한 이용매체를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문자를 보낼 때 한글은 바로 입력하나 일본어와 중국어는 영어를 통하여 한 단계 거쳐야 가능하다. 우리는 세종대왕에게 더없이 감사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재편되는 시장에서 전자책의 주도권을 한국이 우수한 IT환경을 가지고서도 뺏기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독자가 많아져야 한다. 또한 국가나 사회전반이 e-Book의 세계적인 환경변화를 빠르게 이해하면서 협조하고 준비해야 한다.
e-Book은 기존 출판과 정보통신 기술 두 가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복합체이다. 즉 복합형태의 콘텐츠 서비스이자 플랫폼 사업인 것이다. 따라서 e-Book 시장은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디바이스(D)의 관계를 독자들도 유기적,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국가발전과 장차 개인의 발전에도 박자를 맞출 수 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이러한 미국 인상주의 시리즈와 The Ten이라는 전자책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발간하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비록 1914~1918년의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00년 동안 거대국가로 발전된 미국이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문화예술의 측면에서 바탕의 하나가 된 인상주의 미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가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는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 음악 문학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깊이 연관되어 있다.

[에필로그]

■ 미국 인상주의의 변혁자(Change Agent)로서 The Ten

The Ten은 오늘날 미국을 위시하여 전 세계에서 인상주의 화가로 모두 존경받는 거장(巨匠)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116년 전인 1898년에 미국에서 중진화가 10명으로 모여 인상주의를 표방한 변혁자(Change Agent) 들이었다. 이 책은 The Ten의 11명 화가들 작품과 미술교육 등의 활동 및 현대미술에의 역할을 살펴 본 것이다.

프랑스는 일찍이 140년 전인 1874년에 클로드 모네가 주동이 되어 30명의 화가를 모아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의 혁명을 일으킨 변혁자(Change Agent)였다. 그러나 오랜 전통을 지닌 아카데믹의 화풍을 추구하던 정부나 파리살롱의 배심을 맡았던 교수 및 비평가들은 일제히 새로운 스타일의 인상주의에 거센 반대를 했다. 30명의 예술가가 165점으로 파리에서 처음 선보인 인상파 작품은 일반대중에게 분명하게 알려졌으나 심한 비평을 받았다. 그리고 1888년까지 제8회의 전시로 이어지다가 막(幕)을 내렸다. 더 이상 인상파들의 전시회는 개최되지 않았다.

인상파를 주동하던 모네는 43세의 나이인 제7회 전시를 끝낸 후인 1883년에 지베르니에 정착했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80km지점의 시골구석에 그가 평생 염원하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43년간을 살았다. 그의 일생에 많은 작품은 여기에서 제작되어 무려 8,000점이나 되었다. 프랑스의 거대 화상(巨大 畵商)인 뒤랑 뤼엘은 1870년대부터 인상파에 주목하고 그들의 후원자가 되었는데 그는 모네의 작품 약 2,000점을 구매하고 1,000점은 거의 미국에 팔았다. 이것이 미국의 인상주의가 꽃필 수 있게 한 귀중한 씨앗의 하나가 되었다.

■ 지베르니를 찾은 미국화가들 지베르니아이츠와 The Ten

모네가 살던 은둔(隱遁)의 지베르니는 그가 초청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미국 화가들이 찾아왔다. 30년 동안 무려 300명이 방문하고 정착하여 자연히 화가마을이 형성되었다. 즉 모네가 정착한지 2년 후인 1885년도에 윌러드 L. 메트캐프 등 미국화가 3명이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다. 다른 이는 유명한 초상화가인 존 싱어 서전트와 미국 인상주의의 선구자(先驅者)인 시어도어 로빈슨이었다. 이러한 지베르니에서 생활한 화가 즉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는 1885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프랑스가 전쟁의 중심지가 된 1914년까지 30년간 전 세계 18개국에서 350명이 방문하고 정착했다.
그 중에 미국 화가들은 300명으로 사실 지베르니는 미국 화가들의 예술가부락(Art Colony or Artists Colony) 즉 화가마을로 형성되고 결국 인상주의의 메카가 되었다. 시어도어 E. 버틀러는 모네의 의붓딸을 맞아 모네의 사위가 되었으며 41년간을 정착하면서 미국 화가들의 연계역할을 했다. 모네의 외손자(外孫子)이며 버틀러의 아들인 자크 장 필립 버틀러(1893~1976)도 화가가 되어 프랑스와 뉴욕에서 활동했다. 위와 같이 파리에서 체재했거나 본국에서 직행한 미국 화가들은 지베르니에서 새로운 인상주의의 기법과 이론체계를 정립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미국 화가들은 모네가 볼 때 다른 점(點)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은 프랑스의 저명한 미술학교를 입학하여 거장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파리살롱의 배심에 통과하여 지속적으로 전시를 하였으며 심지어 영예의 금상(金賞)까지 수상한 화가가 많았다. 나아가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하여 전시는 물론이고 영예의 수상을 한 미국 화가들이었다. 이러한 점은 모네가 가지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모네를 우상(偶像)으로 여기고 찾아와서 기꺼이 멘토를 받았다.

결국 그들은 귀국하여 모네가 추구한 인상주의 스타일의 작품 속에 미국적 스타일을 가미하여 ‘미국적 인상주의’라는 정체성(正體性)을 지닌 화파를 이루고 르네상스의 길을 열었다. 이에 비하여 프랑스 화가 중에서 지베르니를 방문하고 모네와 함께 생활하면서 지베르니아이츠가 된 화가는 피에르 보나르, 막스밀리안 뤼스, 알베르 루브르, 의젠 바일 및 로베르 A. 파숑 등이 있었으나 숫적으로 적었다. 프랑스 화가로서 인상파가 파리에서 박해를 당하고 거센 핍박을 받았던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 The Ten의 미술혁명은 시대적으로 옳았던 것이 증명되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전시는 모네가 주동이 되어 1874년부터 1888년까지 12년 동안 8회에 걸쳐 열었다. 그러나 새롭고 혁명적인 전위예술(前衛藝術 Avant Garde) 즉 아방가르드에 대하여 초기부터 반대와 냉대 및 핍박이 크게 따랐다. 미국의 The Ten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인상주의가 미국에 전파되어 The Ten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변혁을 시도한 것이 24년이라는 갭이 있었다. 당시 The Ten이 결성된 원인은 미국에서 가장 전통적이며 권위 있는 ‘미국화가협회(美國畵家協會)’가 미국에서 인상주의가 널리 보급된 마당에 인상주의에 비교하여 보수적이며 아카데믹한 전통미술을 옹호하는 보수성(保守性)과 상업주의(商業主義)에 반대하는 일종의 개혁의 천명(闡明)이었다.

The Ten은 1898년에 미국화가협회를 탈퇴하고 반기를 들면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인상주의 그룹(Impressionism Group)을 만든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The Ten의 혁명(革命)적인 배반(背叛)이 시대적 흐름으로 보아 옳았다는 사실은 미국화가협회가 The Ten이 1898년에 결성된 이후 8년만인 1906년에 여러 가지 문제로 폐쇄(閉鎖)되고 뉴욕의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합병(合倂)된 사실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 정통적인 모네의 인상주의를 추구한 The Ten 멤버와 지베르니아이츠의 활동

프랑스에서는 여덟 번의 인상파 전시를 마치고 나자 차츰 모네의 인상주의에서 탈바꿈하는 시도가 있었다. 즉 1880년대 말에 쇠라, 시냑크, 크로스, 앙그랑 등이 신인상주의(新印象主義)를 추구했다. 다시 고흐, 세잔느, 고갱이 후기 인상주의(後期 印象主義)와 인상파의 한 부류인 상징주의 등의 화파로 전이되는 탈 인상주의(脫 印象主義) 현상이 생겼다. 신인상주의가 영향을 미친 야수파(野獸派)와 표현주의(表現主義) 및 추상화(抽象畵)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일부 화가들이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및 상징주의 스타일을 따랐지만 대다수가 미국적인 특색을 가미하되 모네의 정통적인 인상주의를 추구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이것은 바로 모네와 같이 생활한 300명의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와 The Ten의 성향으로 인해 지속된 것이다.

사실 당시 화가들이나 일반인들이 인상파의 작품을 볼 때 과거와 전혀 다른 매력(魅力)과 진가(眞價)가 있었다. 왜냐하면 인상주의 스타일은 보다 뚜렷한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환기에 미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The Ten의 멤버들을 포함하여 많은 유럽을 다녀온 유학파 화가들이었다. 그리고 300명의 지베르니아이츠가 있었다. 이들은 지베르니에 있으면서 자주 고국으로 돌아가서 전시를 하고 작품을 팔거나 보급하였다. 미국과 지베르니를 왕래하면서 최고로 오래 거주한 화가로서 모네의 사위인 시어도어 E. 버틀러는 41년간을 생활했다. 루이스 리트먼은 19년, 리처드 E. 밀러는 15년, 프레드릭 프리세크는 14년 등이었다. 또한 많은 화가들은 부부가, 자매, 형제, 부자, 모녀가 같이 생활하면서 지베르니에서 거의 중요한 일생을 보냈다.

■ 20세기 전후, 미국에서 개최된 인상파 전시회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사회적 수용여부에 대하여 두 국가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생기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정도가 심하여 화가들의 등용문(登龍門)인 파리살롱의 배심(陪審)에서 배척을 당하고 전시될 수 없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가 사회 전반적인 반대로 인하여 고전(苦戰)하였다. 따라서 프랑스 화가들은 새로운 스타일의 시도를 통해 그림화풍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위와 같이 프랑스에서는 12년 동안 여덟 번의 전시가 억압되고 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겨우 전개되었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이와 달리 일반인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아래와 같이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을 뉴욕이나 보스턴 등의 도시에 자주 전시를 했다. 유럽에 공부한 미국 화가들도 귀국전(歸國展)을 개최하거나 프랑스에 있으면서 수시로 고국으로 자주 건너와 인상파 스타일의 작품을 전시하고 팔았다.

1878년 이후 미국에서 개최한 주요한 인상파 전시는 아래와 같다.
 1878 보스턴-미국에서 최초로 인상파 작품의 전시
 1886 뉴욕-제1회 인상주의展 <아메리칸 아트 갤러리> 모네 등 유럽 인상파 작품 300점을 전시
 1887 뉴욕-제2회 인상주의展 <뒤랑 뤼엘 갤러리>
 1890 뉴욕-클로드 모네 1인展 <뒤랑 뤼엘 갤러리>
 1890 보스턴-프랑스 인상파展 모네, 피사로, 시슬리
 1892 보스턴-클로드 모네 1인展 <보톨프 클럽>
 1893 뉴욕-위어, 트와치먼 展 (The Ten 형성 이전)
 1893 뉴욕-클로드 모네 1인展 <미국화가협회> 주관
 1893 시카고-만국박람회 장차 The Ten 멤버인 하삼, 타벨, 벤슨 3인과 로버트 보노 4인의 인상주의 작품이 가장 인기- 관람객 2,800만 명 (해당 그림 ⇧)
 1895 뉴욕-카셋, 로빈슨, 보노 미국 인상파 귀국展 <뒤랑 뤼엘 갤러리>
 1898 뉴욕-The Ten 제1회 전시회 <뒤랑 뤼엘 갤러리>
 1900 뉴욕-The Ten 정기전 <몬트로스 갤러리로 이전(移轉)>
 1910 뉴욕-[지베르니 그룹展] 장식적 인상주의(Decorative Impressionism)
6인展 <뉴욕 메디슨 갤러리>
-지베르니아이츠인 6명 화가 -가이 로즈(지베르니 11년), 리처드 밀러(15년), 로턴 파커(12 년), 프레드릭 프리세크(14년), 에드먼드 그리슨(3년), 칼 앤드슨 (2년)
 1913 뉴욕-<아모리 쇼>에도 The Ten 그룹 3인과 지베르니아이츠 참가 전시,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등의 프랑스 화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큰 호응
 1917 뉴욕-The Ten 제32회 정례전<코코란 갤러리> 최종 전시
 1917~1918 겨울, 워싱턴 D.C.-The Ten 회고전(回顧展) <코코란 갤러리>

이와 같이 프랑스의 인상주의는 오랜 산고(産苦) 끝에 영광의 빛을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여건은 의욕적인 화가들과 새로운 혁신에 대하여 수용하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들은 인상주의의 제2세대 즉 많은 제자들과 힘을 모아 ‘미국적 인상주의’라는 현대미술로 가꾸어 나갔다. 오늘날 세계미술의 중심지가 된 미국에서는 인상주의가 불멸(不滅)의 화파(畵派)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특히 미국의 여류화가인 메리 카셋은 에드가 드가의 권유로 제4회 인상파 전시부터 참여하여 널리 미국 화가들에게 귀감(龜鑑)이 되었다. 그녀는 특히 모네, 르누아르, 드가, 마네 등 주위의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미국의 공립미술관이나 갤러리가 구매하도록 권유하였으며 미국 최대의 철도회사 사장을 역임한 친오빠인 알렉산더 카셋 (1839~1906)등 미술수집가들에게 적극 홍보했다. 나아가 인상파 작품을 공공기관이나 개인들이 구매하도록 권유하고 성과를 거두었다. 카셋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뢰종 도뇌르Legion of Honor 훈장까지 받았다.

■ 미국과 프랑스에서 인상주의에 대한 교육과 후진양성 비교

프랑스에서 공립(公立)으로 최고권위의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를 나온 미국 화가는 The Ten 그룹에 줄리언 A. 위어와 에드워드 E. 심먼스가 있다. 또한 지베르니아이츠 중에는 존 싱어 서전트를 포함하여 18명이 있었다. 이 학교는 입학이 까다로웠고 특히 초기에 여성은 입학되지 않았다. 또한 사립(私立)의 줄리앙 아카데미에는 비교적 입학이 자유스러웠으며 여성도 입학이 허용되었다. 모네를 찾아간 300명의 지베르니아이츠 113명 중에 이 학교 출신은 82명으로 대부분이 이곳을 거쳤다. The Ten 그룹 11명 중에 줄리앙 아카데미를 나온 화가는 나머지 8명이었다. 그리고 1808년에 설립된 독일의 뮌헨 왕립 아카데미를 나온 화가들도 다시 파리에 와서 이곳 학교를 마친 화가는 존 H. 트와치먼이 있다. 이들은 모두 1874년부터 1886년까지 12년간 파리에서 전시된 인상파 전의 작품을 눈여겨보았다.

유럽에서 미술학교가 설립된 시기는 프랑스의 줄리앙 아카데미가 1860년에, 독일의 뮌헨 왕립아카데미는 1808년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들 학교는 인상주의 전후(前後)의 교육 스타일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미국은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가 1875년에 설립되고 1874년 프랑스 인상파 전시를 한 다음 해였다. 또한 뉴욕의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는 1863년에, 보스턴 미술 아카데미도 1876년에 설립되었다. 이들 학교들은 1648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에콜 데 보자르를 제외하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학교들이다.

그러나 미국의 미술학교에는 300명의 지베르니아이츠나 The Ten의 멤버들이 귀국하여 미술교사가 되어 제2세대의 인상파 화가를 길렀던 점이다. 이러한 제2세대에게 인상파의 미술을 가르친 교육환경이 프랑스와 크게 다른 점이었다. 윌리엄 M. 체이스는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20년 동안 4,000명의 제자를 길렀다. 또한 벤슨과 타벨 등도 이름난 미술교사였다. 유럽에는 처음부터 인상파에 대한 교육기관과 이론적인 체계가 없었다. 1886년을 마지막으로 인상파 전시가 끝났고 해산되어 버렸다. 해체된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임은 그 이후에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은 위의 미술학교 외에도 전국에 화가마을이 생겼다. 즉 올드라임(Old Lyme) 등 여러 곳의 화가마을과 더불어 화가들이 세운 계절학교가 많았다. 즉 체이스가 세운 ‘시네코크 여름학교’에서는 체이스 뿐 아니라 하삼과 메트캐프 등의 인상파 거장들도 많은 제자를 길렀다. 또한 미국의 중부와 서부지역의 시카고 필라델피아 지역 등에서도 화가마을이 생기고 유럽파 출신의 화가들이 인상파를 전파하고 제자를 길렀다.

미국에서 후진의 양성의 현장으로 뉴욕 등의 동북부 도시를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에 프랑스의 지베르니라고 일컫는 올드 라임 (Old Lyme) 등의 화가마을이 미국전역에 생겼다. 뉴욕 주의 시네코크, 뉴욕 케잎코드, 글루스터, 프로빈스 타운, 브라운 지방 등이다. 미국 동북부의 인상주의 화가마을은 다시 서부로 전파되어 곳곳에서 활발하게 생성되었다. 서부는 몬트레이, 카르멜, 산타바바라, 패서디나, 라구나 비치, 뉴포트 등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아르장퇴유, 에트르타, 트루빌, 옹펠뢰르 등이 있었으나 인상파 초기에 너무나 혹독한 비난으로 인하여 인상파 전시가 끝난 후에 활성화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미국 화가들은 1870년대 이후부터 약 20여 년간 미술학교에서 배운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상주의 스타일을 체험하면서 흥미를 가졌다. 파리에서 생활한 위와 같은 미국 화가들은 인상주의 미술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졌지만 부득이 이를 충족키 위하여 80km 떨어진 지베르니의 모네를 찾았다. 그곳에서 모네와 함께 정통적이고 창의적인 인상파 작품을 제작하여 미국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전시를 통하여 일반대중의 호감과 반응을 살폈다

■ 미국 인상주의의 장차 전망

미국의 인상주의가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불멸(不滅)의 화파(畵派)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인상주의의 세 가지 시너지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그들은 그림의 소재(Motif)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종래 아카데믹한 미술의 주제는 주로 역사, 종교, 신화 등의 고전탐구였다. 그러나 인상파는 인간과 자연의 모습 및 모든 활동을 모두 그릴 수 있었다. 또한 인상주의 작품에는 눈에 보이는 사실성(事實性)과 마음의 추상성(抽象性)이 같이 내포되어 있어 신비스러운 점이 있었다. 이를 통틀어 관람자가 볼 때에 너무나 이색적이고 신선한 것이었다.

다음으로 화가들의 자유스런 개별성에 있다.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파리에 체재하면서 비난을 듣는 전시회와 소장된 인상파 작품을 통하여 충격적인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학교를 마치고 파리와 뮌헨 등에서 세계 최고의 미술학교 및 거장화가들 밑에서 당시 미술계의 주류인 아카데믹 리얼리즘(Academic Realism)의 화풍을 배운 화가들이었으나 심미감에서 가장 발달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인상주의를 다시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화가마다 묘사 기법의 다양성(多樣性)을 들 수 있다. 화가는 그림을 무한정으로 다양하게 그릴 수 있다. 주로 캔버스에 유화를 통해 그린다면 붓터치와 붓놀림이 화가의 개성에 따라 달라지는 고유성이 있었다. 예를 들면 성악가의 소리는 목에서 울려 나오는 사람마다 다른 프리퀀시(frequency) 때문에 음색(音色)이 다른 것처럼 화가들도 붓터치로 인하여 그림의 분위기라고 하는 화색(畵色)이 달라진다.

■ 미국 미술에 The Ten의 역할과 기여

미국의 The Ten의 멤버 11명은 1898년부터 20년 동안 ‘미국미술의 변화촉진자(變化促進者 Change Agents)’ 역할을 수행하여 유럽에서 발상(發祥)한 인상주의를 오히려 활기차게 이끌었다. 미국은 1913년에 뉴욕의 육군병기창에서 1,300점의 작품으로 약 한 달간 미국 최초의 국제 현대미술전(The Armory Show)을 열었다.
이 전시는 유럽의 사실주의와 전위예술(前衛藝術)인 인상주의 및 신인상주의, 또한 실험적인 스타일의 야수파 Cubism, 입체파 Cubism,, 미래파 Futurism 등의 작품도 모두 포함되었다. 따라서 유럽의 인상파는 물론이고 미국의 인상파 화가들도 참여하여 인기가 있었고 좋은 결과를 낳았다. 아모리 쇼에 The Ten 그룹의 참여 화가로는 하삼과 트와치먼 및 줄리언 A. 위어 세 명이었다.

전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에 대한 변천은 시대적으로 변화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즉 18세기에서 19세기 초반까지는 영국의 런던과 이태리의 로마에서 꽃을 피웠다. 이런 현상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프랑스의 파리와 독일의 뮌헨 및 뒤셀도르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미국의 화가들은 유럽으로 건너와서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자기의 정체성(正體性)과 창조성(創造性)을 확립하는데 불을 붙였다. 현대미술의 혁명아(革命兒)인 프랑스의 인상주의는 20세기 전후(前後)의 세계적인 변화 속에 차츰 미국 쪽으로 옮겨 가기 시작하였다.

현대미술에 인상주의가 미친 영향은 지대하며 모든 예술 활동의 모태(母胎)가 되었다. 미국에서 이러한 동인(動因)을 제공한 화가들 중에서 The Ten이 중심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 그들은 미국 최초로 인상주의 그룹을 형성하면서 최고 권위의 미국화가협회를 과감히 탈퇴한 개혁(改革)의 선봉자들이었다. 또한 유럽에서 천시당한 인상주의가 미국토양에 발아되는 지를 일반대중이 눈여겨보았다. 20세기 전환기부터 The Ten은 이런 주의 깊은 시선 속에서도 열심히 정통적인 인상주의를 창작하면서 세계적으로 미국이 지닌 고유의 심미감을 높여 나갔다. 따라서 미국적 인상주의를 창조하며 중심에 선 The Ten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할 가치(價値)를 낳았다.

오늘날 국제화 시대에 먼저 고유의 문화예술을 창달하는 일이 우선이다. 더불어 외국의 문화예술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21세기 변환기에 고립주의를 버리고 세계주의를 표방하여 거대국가(巨大國家)가 된 미국의 역량에는 산업경제를 포함하여 문화예술이 뒷받침 되어 있다. 특히 미술과 디자인이 국제경쟁력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가고 있어 일반인의 관심까지 중요해 졌다. 오늘날 서양미술을 잘 살피는 일에는 미국적 인상주의와 The Ten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고찰해 볼 필요가 생긴다.


저자 프로필

조영규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자과정
  • 경력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전업미술가협회 회원
    안양미술협회 회원
    가톨릭미술가회 회원
    관악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 링크 공식 사이트블로그

2015.01.2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소개]

저자는 서양화가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홍익대 미술디자인 교육원 서양화 실기과정 및 서울대 경영대학 경영자과정 수료, 서양화 개인전 10회 및 연합전 다수 개최, 뉴욕 국제인물화 공모전 입상 등, 현재 개인 스튜디오에서 전업화가로 활동 중.

저서는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전2권』,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전2권』, 『모네와 가이 로즈』, 『미국의 인상주의 걸작선 전5권 ①풍경화, ②바다풍경화, ③인물화, ④초상화 및 누드화, ⑤꽃과 정물화』, 『15c-20c 거장화가 100명, 마음의 우주, 어머니』『15c-20c 거장화가 100명, 생각의 우주, 독서』『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미국 인상주의 거장화가, 존 싱어 서전트 』 『The Ten,미국의 인상주의 거장화가들』『안중근의사의거100주년기념-독립운동가 42인전』『서양화가 조영규 화집』등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콘텐츠 전자책》 3권 선정

현재 한국미술협회, 한국전업미술가협회, 한국초상회화협회 회원, 관악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저자 홈페이지 www.choyeung.com
저자 블로그 http://blog.daum.net/choyeungart
아트월드 블로그 http://blog.daum.net/artworld66

목차

[차례]

표지
판권
속지
표제지
저자
차례
프랑스와 미국의 미술 연대기
미국 인상주의 화가마을 형성지도
The Ten 활동지역-미국 동북부-
The Ten의 활동지역과 유럽에서 미술교육
Introduction
The Ten의 제1회 전시회
프롤로그
The Ten과 미국의 인상주의
The Ten의 성격
인상주의의 특징
The Ten 미국 인상주의 거장화가 11명
01) 윌리엄 메릿 체이스
02) 토머스 윌머 듀잉
03) 줄리언 알덴 위어
04) 에드워드 에머슨 심먼스
05) 존 헨리 트와치먼
06) 조셉 로데퍼 디켐프
07) 윌러드 릴로이 메트캐프
08) 프레드릭 차일드 하삼
09) 로버트 루이스 레이드
10) 에드먼드 찰스 타벨
11) 프랭크 웨스턴 벤슨
에필로그
참고문헌
아트월드 책방
뒤표지


리뷰

구매자 별점

0.0

점수비율

  • 5
  • 4
  • 3
  • 2
  • 1

0명이 평가함

리뷰 작성 영역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내가 남긴 별점 0.0

별로예요

그저 그래요

보통이에요

좋아요

최고예요

별점 취소

구매자 표시 기준은 무엇인가요?

‘구매자’ 표시는 유료 도서를 결제하고 다운로드하신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무료 도서 (프로모션 등으로 무료로 전환된 도서 포함)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시리즈 도서 내 무료 도서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의 유료 도서를 결제한 뒤 리뷰를 수정하거나 재등록하면 '구매자'로 표시됩니다.
영구 삭제
도서를 영구 삭제해도 ‘구매자’ 표시는 남아있습니다.
결제 취소
‘구매자’ 표시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이 책을 구매한 분들의 선택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