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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류 상세페이지

착한 인류작품 소개

<착한 인류> 신이 없는 세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도덕적인 인간의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세계적 영장류 학자의 눈으로 밝힌 인간 도덕성의 생물학적 기원!
종교와 문명이 출현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도덕적인 존재로 출발했다

인간의 도덕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이 본래 선하지 않으며, 자연은 약육강식의 야만적인 투쟁의 장이라고 믿어왔다. 거기서 도덕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억누르는 인위적인 문명의 고안물이었다. 종교인들은 도덕을 신에게서 온 명령이라고 보았고, 철학자들은 탁월한 이성의 규칙에서 도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주장은 상반되는 듯 보이지만 도덕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는 점에서 같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여기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었다. 도덕은 종교나 문명이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인류의 오랜 진화 과정 속에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도덕은 신의 명령이나 이성의 초월적 원리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유하는 감정에 뿌리박고 있으며,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왔다. 저자는 오랜 세월 영장류를 연구하면서 그들의 사회적 행동들을 근거로 밝혀낸 인간 도덕성의 생물학적 기원을 그의 새로운 저작 『착한 인류』에 오롯이 담아냈다.


출판사 서평

동물들의 도덕성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여키스 국립영장류센터에서 침팬지를 대상으로 유인원의 이타주의에 관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초록색 토큰과 빨간색 토큰을 통에 채워놓고 침팬지에게 고르게 했다. 토큰을 고르는 침팬지가 어느 쪽을 골라도 먹이로 보상받지만, 옆방에 놓인 다른 침팬지는 초록색 토큰이 선택될 때만 보상받았다. 즉 초록색 토큰은 ‘친사회성’을 의미했고, 빨간색 토큰은 ‘이기성’을 의미했다. 침팬지들은 곧 각각의 색깔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알게 되었고, 세 번 중 두 번은 초록색 토큰(친사회성)을 선택했다. 침팬지들은 나중에 보복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장 서열이 높은 침팬지가 가장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실험을 통해 침팬지들도 서로의 행복을 배려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동물들에게도 도덕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일까? 그동안 도덕은 다른 동물과 명징하게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알려져 왔다. 유전자에서부터 종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착한 인류』의 저자 드 발은 동물들도 남을 돕고, 공감 능력을 갖고 있으며, 공정함과 정의의 감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동물들은 보상이 없어도 선행을 베푼다. 유인원들은 자기 몫의 일부를 잃을 수 있는데도 자발적으로 문을 열어 동료가 먹이에 접근하게 해준다. 관절염이 심한 늙은 암컷 침팬지를 무리의 다른 암컷들이 도와준다. 몸이 불편한 동료가 이동할 때 도와주고, 물을 떠다준다. 우울해 하는 동료를 안아주고 입 맞추고 위로한다. 포유류는 타자의 감정에 민감하고 그들의 필요에 반응한다.
동물들이 보상 없이 남을 도운 사례는 너무나 많다. 암컷 침팬지가 멀리서 비명을 지르며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듣자 평소 안면도 없던 수컷 침팬지가 두 개의 전기철망을 넘어가 물에 빠진 암컷을 구한 사례도 있다. 아프리카 아이보리코스트에서는 적어도 열 마리의 야생 침팬지 수컷이 어미 잃은 새끼를 입양하여 30년 이상을 데리고 살았다. 짧은꼬리원숭이 무리가 선천적으로 신체가 불편한 원숭이를 돌봐 주었고, 그 원숭이가 오래도록 살아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른 경우도 있다. 시카고대학교 연구의 실험에서는 쥐가 초콜릿 칩보다 갇힌 동료를 먼저 구출하였다. 침팬지들은 표범이 덤비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구한다. 범고래가 귀신고래의 새끼를 공격하자 혹등고래가 나타나 귀신고래의 어미를 도와준 일도 있다. 다람쥐는 소리로 다른 다람쥐들에게 위험을 경고한다. 코끼리는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쓴다. 동물들은 왜 다른 동물을 돕는 행동을 할까?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의 사악한 본성과 ‘위’로부터 부과된 도덕

다윈이 진화론을 제시한 후 오랫동안 자연은 약육강식의 야만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검투장과 같은 곳으로 묘사되었다. 동물은 자기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며, 인간도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도덕성이란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을 겨우 가려놓은 얇은 판뚜껑에 불과하다는 이른바 ‘판뚜겅 이론’(veneer theory)이 지난 30년간 인간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로 자리잡았다. 오늘날에도 종교인들은 신이 없다면 인간은 도덕적으로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철학자들 역시 초월적인 이성의 원리에서 나온 도덕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인간 행위에 부과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관점을 공유한다.
신이 없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 수 없을까? 우리 조상들은 종교가 없던 시절에는 사회 규범도 없이 살았던 걸까? 우리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본성이 아예 없다면 그렇게 행동하라고 설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드 발은 인간의 도덕성이 신이나 도덕 원리 같은 저 높은 곳에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생긴 지 겨우 2천 년 정도 된 현대 종교가 나타나기도 훨씬 전에, 도덕성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이미 출현했다. 우리는 합리주의적 반성 과정을 거쳐 차근차근 도덕성을 발전시킨 게 아니다. 도덕성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배경으로부터 강력한 압력을 받은 결과로 형성된 것이다.
도덕성의 뿌리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있다. 포유류들의 공감 능력과 타자를 배려하는 능력에서 우리는 도덕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영장류 사회에서 공동체 내의 협약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자연은 피투성이 싸움판이 아니며, 도덕성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적인 혁신이 아니다. 이제 도덕성은 우리의 존재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주장이 대세가 되었고, ‘인간 본성은 원래 악하다’는 판뚜껑 이론은 심장마비가 걸린 것처럼 죽어 증발해버렸다.

우리 안의 보노보와 침팬지

지구상에서 단 한 곳, 아프리카 콩고의 정글에서만 사는 보노보는 1929년 처음 발견되어 1930년대에 새로운 종으로 판명되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는 보노보를 침팬지로 잘못 알고는, 이 침팬지(보노보)가 어떤 유인원보다 섬세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채고 ‘천재 유인원’이라고 불렀다. 그는 세상에 보노보를 소개하면서도 그것이 보노보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보노보는 암컷이 무리를 이끈다. 수컷은 어미의 절대적인 영향권 하에 있고 침팬지 사회에서 보는 것과 같은 심각한 폭력 사태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인류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은 영장류 연구를 통해 폭력과 전쟁을 강조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보노보는 인류의 진화를 남성 지배와 타자 공포증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공감과 평화의 추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침팬지들은 영역 싸움 중에 상대를 살해한다. 반면 보노보들은 영역의 경계선에서 섹스를 한다. 지난 30년간 변함없이 인정받아온 중요한 관찰 기록들 가운데 보노보들이 서로를 치명적으로 공격했다는 보고는 없다. 반면 침팸지는 수컷들이 서로를 죽이거나 어른이 어린 침팬지를 죽이는 등의 사례가 수십 건 보고되었다. 심지어 사육장의 수컷 침팬지가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을 거세하여 죽인 사례도 있다.
평화적인 보노보 사회를 설명할 길은 이 사회가 어린 보노보들을 보호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암컷이 지배적인 성이므로 자기 새끼들을 잘 지킬 수 있다. 자유분방한 섹스는 모든 어른 수컷들을 모든 새끼들의 잠재적 아버지로 만든다. 어떤 수컷이 새끼를 공격하면 전 공동체가 들고 일어나 그 수컷을 공격한다. 이것은 보노보 사회의 축제판 같은 겉모습 저 안쪽에 존재하는 보호막의 존재를 보여준다. 그것은 곧 가장 약한 존재의 이익을 보호하는 도덕적 관습이며, 우두머리도 그것을 침해할 수는 없다.
침팬지와 보노보가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것은 기껏해야 200만년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노보와 침팬지 어느 족이 인간의 조상이 되는 유인원의 외모나 행동에 더 가까울까? 답은 보노보와 침팬지 둘 다 우리와 가까운 정도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분리된 뒤 그들도 서로에게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 종은 두 유인원의 특성을 모자이크로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양극성 유인원이다. 기분이 좋을 때면 보노보처럼 친절하고, 기분을 잡치면 침팬지척럼 지배하려 들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도덕은 진화의 산물이다

판뚜껑 이론은 이타주의를 생명체가 할 수 있는 가장 비논리적인 행위이고, 심지어 ‘실수’라고 보았다. 이타주의자가 되는 일은 즐거움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누구도 스스로 이타주의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이타주의가 반드시 고통의 유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비용이 들 뿐이다. 지금은 ‘고통스런 이타주의 가설’과는 반대로,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돌보도록 신체적, 정신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언제나 자연은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들과 쾌락을 연관 짓는다. 인간은 먹어야 하기에 음식 냄새를 맡으면 침을 흘리고 식사를 즐거운 행위로 느낀다. 인간은 재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섹스는 집착인 동시에 쾌락이 된다. 새끼를 기를 수 있도록 자연은 어미와 자식 사이에 무엇보다 강력한 애착을 주었다. 마찬가지로 남을 돕는 일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우리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먼 친척이거나 혈연이 아닐 경우에는 도움의 정도가 줄어들지만 희생의 본질은 똑같다. 이미 2세기에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남을 돕는 일처럼 본성에 일치하는 행동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라고 자신의 통찰을 기록했다.
원숭이와 유인원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권력을 추구하고 섹스를 즐기고, 안전과 애정을 원하며, 영토를 점령하고 신뢰와 협동을 소중히 여긴다. 우리에게 컴퓨터와 비행기가 있긴 하지만 우리의 정신구조에는 사회적 영장류의 정신구조가 남아있다. 침팬지 암컷들은 수컷이 싸움을 끝내면 서로 등을 돌린 수컷들을 끌어당겨 손에서 무기를 빼앗고 화해시킨다. 죽어가는 늙은 침팬지를 위해 젊은 암컷이 대팻밥으로 푹신한 쿠션을 만들어주고 몸을 뉘어주기도 한다. 유인원들도 타자의 관점에 설줄 안다. 문제를 겪고 있는 동료의 입장에서 상황을 볼 줄 안다. 유리에 부딪혀 기절한 새를 보노보가 구해주기도 하고, 침팬지가 야생의 삶에 미숙한 인간을 잡아당겨 독사를 피하게 한다.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돕는 이러한 능력이 인간뿐만 아니라 유인원과 다른 포유동물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러한 사실은 감정이 도덕의 발생적 근원이며 기초적 자원임을 알려준다. 독일의 심리학자 클라우스 셰레는 “감정은 특정한 시기에 유기체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고려하여 투입과 산출을 제어하는 지능적인 인터페이스”라고 정의한 바 있다.

도덕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은 무리 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진화적 압력에서 나왔다. 그것은 공감 능력, 공정성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고 협력 사회를 추구하는 능력을 우리의 내면에 갖추어 온 과정이었다. 규율 잡힌 사회에는 대개 위계질서가 있기 마련이다. 누가 먼저 먹이를 먹고 누가 먼저 짝짓기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그 위계질서는 궁극적으로 폭력에 기반한다. 사회적 위계질서는 거대한 금지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 도덕성을 진화시킨 배경이다. 인간의 도덕 역시 일종의 금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긴 세월 동안 영장류, 유인원, 그리고 우리 인간은 충동을 통제하는 능력을 내면화해왔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유인원 사회에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원칙 같은 호의와 냉대의 사회적 경제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그런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기대와 의무를 발전시키고, 누군가 신뢰를 깨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침팬지 사회에서 우두머리 침팬지는 무리에서 경찰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조정 역할은 야생 침팬지들 사이에서 종종 보고된다. 그들은 공격을 가한 당사자가 심지어 자기와 가장 친한 친구라도 도리어 약자를 방어해준다. 침팬지의 불편부당성은 자신의 사회적 편향성을 초월하여 진심으로 무리 전체에 최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컷 침팬지가 암컷을 강간하려고 하면 다수의 암컷이 달려와 공격자를 쫓아버린다. 수컷끼리 싸움에서 암컷은 친구나 가족이 아닌데도 화해를 주선하여 무리의 분위기를 개선하고 평화를 이루어낸다. 침팬지들은 수컷끼리 큰 싸움이 나면 구경꾼들이 자고 있던 우두머리를 깨워서 중재하기를 기대한다. 이미 유인원 사회에서 도덕은 개체들 간의 일대일 관계의 문제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협약으로 도약했다.
도덕성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출현했다. 도덕법칙은 하늘에서부터 또는 탁월한 이성적 원칙으로부터 부여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도덕은 고대부터 몸에 뿌리 깊게 밴 가치들로부터 솟아났다. 그것의 근본에는 집단생활에서의 생존이라는 가치가 있다. 어딘가에 속하고, 함께 생활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우리가 의지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 다른 사회적 영장류도 이 가치를 우리와 공유하며, 우리처럼 감정과 행동 사이에 여과장치를 갖고 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상호 동의할 수 있는 신사협정에 도달한다. 공정함과 정의의 감각은 오래된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가운데 공동체의 화합을 유지해야 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도덕성이 그 기원상 ‘내집단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애당초 다수의 인류를 고려하지 않고 내집단의 목적을 위해 진화한 것이었다. 도덕 규범의 적용 대상은 같은 공동체 구성원에만 한정되어 있다. 내집단 성원에는 도덕적 원리가 통하지만 외집단에 대해서는 잔혹할 수도 있고, 외부인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 할인이 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이 내집단 유지를 위해 생겨났다고 해도 현재의 기능이 최초의 목적 그대로여야 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내집단을 넘어 더 넓은 세계에 도덕성을 적용시킨다. 이방인, 심지어 적까지 포함한다. 제네바 협약에 명기된 것처럼 적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것은 고귀한 사고방식이다. 도덕성의 범위를 넓힐수록 우리는 지성에 더 많이 의지해야 한다. 도덕성이 인간의 감정에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해도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현대 세계의 규모에 맞게 설정하는데 생물학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무리 동물로 진화했지 세계 시민으로 진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라는 존재의 도덕성 가능성에 대해 보다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다.

종교의 자리는 어디인가?

오늘날 우리는 사회에서 종교가 어디쯤 있어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한다. 최근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같은 전투적인 무신론자들은 종교야말로 악의 근원이며 거짓과 미몽이라고 외친다. 그들은 인간이 과학적 지식을 확장하면서 수천 년 동안 부당하게 권력과 권위를 누려왔던 종교를 점점 사회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무신론자들은 말 그대로 종교와 싸운다. 우리는 과연 신이 없는 세상을 그려낼 수 있는가? 그 세상은 좋은 세상인가?
드 발은 종교를 공격하며 종교인들을 모욕하는 신(新)무신론자들의 시도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과학과 종교는 인간 삶에서 다루는 영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은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오게 되었는지를 알려줄 수 있지만, 인생의 의미나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으며, 도덕의 기원이 종교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과학이 종교를 대체할 수는 없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하듯 “신 앞의 죄가 법적인 죄로 변하는 동안 우리는 뭔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종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드 발은 장구한 진화 과정에서 도덕의 발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종교를 인간 사회의 지평 속으로 집어넣어 그 역할이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에밀 뒤르켐은 종교에 속하여 얻게 되는 이익을 역설적이게도 세속적 유용성이라고 불렀다. 도덕은 종교보다 훨씬 일찍 출현했지만, 종교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면서 그것을 강화해주었다. 종교는 도덕의 기원이 아니지만, 나중에 들어온 후원자인 것이다. 우리는 거꾸로 종교의 기원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선사 시대에는 종교가 필요하지 않았다. 영장류 무리처럼 작은 집단에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규칙을 잘 따르고 남들과 원만하게 지내야 한다. 인격에 대한 평판을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큰 사회를 이루자 얼굴 대 얼굴 메커니즘이 허물어지고 더 큰 집단을 관리하게 위해 신에 대한 요구가 나온 것이다. 캐나다 심리학자 에이라 노렌자얀이 말하듯 “인간을 도덕성으로 인도한 존재는 신이 아니다. 신은 우리가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길을 갈 때 우리를 돕도록 그 자리에 놓인 것이다.”
종교가 진실이냐 거짓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종교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종교를 없애버리면 무엇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삶에서 종교를 제거하려 들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고민했다. 그는 새로운 교리 체계가 종교의 모든 심리학적 특징들을 계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종교를 추방하려 했던 체제와 운동은 종교를 정교하게 흉내냈다. 교조주의, 경직성, 위험한 열정 등 종교와 똑같은 모습의 독단론들이 진리를 자처했다.
드 발은 과학자로서 무신론자로서 종교의 역할을 줄이자는 생각에 찬성한다. 그러나 그는 신무신론자들의 공격적인 행태에 대해, 종교에서 가치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욕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우리가 종교를 천천히 부드럽게 없앨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종교의 유산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는 감사해야 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프로필

프란스 드 발 Frans de Waal

  • 국적 네덜란드
  • 학력 1977년 위트레흐트 대학 생물학 박사
  • 경력 에모리 대학 심리학과 석좌교수
    살아 있는 고리 연구센터 책임자
    위트레흐트 대학 석학교수
    침프 헤이븐 이사
    미국국립과학원 회원
    왕립네덜란드예술과학원 회원
  • 수상 1989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2017.08.1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지은이 프란스 드 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장류학자이자 대중 저술가로 폭넓은 명성을 얻고 있는 프란스 드 발은 194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교에서 동물 행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영장류학계의 최고권위자 중 한 명이며, 2007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고, 2011년에는 『디스커버』의 “47인의 과학계의 위대한 지성”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학교 심리학과 C.H.캔들러 석좌교수이며, 미국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와 큰 규모를 자랑하는 여키스 국립영장류연구센터 산하 리빙링크스센터의 책임자이다.
드발의 첫 번째 저작 『침팬지 폴리틱스』(1982년)는 당시 학계에서 흔히 ‘영혼 없는’ 실험 객체로 취급받던 침팬지와 그 사회에도 인간과 같은 마키아벨리적 권력 투쟁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 뒤로도 『영장류 평화 만들기』, 『보노보』, 『내 안의 유인원』등 연이은 저작을 통해 영장류의 공격적인 성향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고 평화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영장류 사이에 마치 평행선처럼 대비가 가능한 이야기들을 찾아내었다. 이 책 『착한 인류』에서 그는 마침내 영장류와 인류의 평행선이 처음 분리되어 나온 곳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옮긴이 오준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역사, 민주주의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책을 쓰고 번역했다. 『노동자의 변호사들』, 『소크라테스처럼 읽어라』, 『반란의 세계사』를 썼으며, 『보이지 않는 주인』,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를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1장 세속적인 쾌락
2장 왜 착한 행동을 하는가
3장 진화의 나무와 보노보
4장 신은 죽었는가 아니면 혼수상태인가?
5장 선한 원숭이 우화
6장 십계명은 너무 많다
7장 신의 간극
8장 도덕성은 아래에서 위로 왔다
후주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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