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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지 않기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인문

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
소장종이책 정가12,000
전자책 정가25%9,000
판매가9,000

드러내지 않기작품 소개

<드러내지 않기> 드러냄을 부추기며 스펙타클에 열광하는 사회,
팬옵티콘의 감시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받는 사회,
드러내고 싶은가, 사라지고 싶은가?

누군가가 되기를 요구받는 자리에서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고,
오로지 누군가로서만 존재하기를 요구받는 자리에서는
역사라는 위대한 서정비가의 모든 이름들이 된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자위의 『드러내지 않기_혹은 사라짐의 기술』이 출간되었다. 파리 7대학 철학교수이자 정치철학에 관한 연구로 주목받고 있는 저자는 일반화된 감시, 노출증에 대한 열광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드러내지 않기의 기술을 제시한다. 드러내지 않기가 현대 사회의 독특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팬옵티콘의 감시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받는 우리 사회에서 드러내지 않기는 저항의 유쾌하고 필수적인 형식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리스철학에서 시작해, 유신론, 무신론을 거쳐 벤야민, 한나 아렌트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상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짚어가면서 이 경험의 고유함과 독창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 ‘드러내지 않기’, ‘드러내지 않는 영혼’에 있음에 주목하면서, 이 경험이 도시적이고, 민주적이고, 유연한 정치적인 경험이자 전체주의를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출판사 서평

드러내지 않기, 현대 사회의 ‘소프트’ 전체주의에 맞서

드러냄을 부추기며 스펙타클에 열광하는 사회, 누구에게나 ‘15분간의 명성’이 약속된 현대 사회는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사회에는 그늘도 숨을 데도 없다. 죄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앙에 위치한 간수에게 잘 노출되게끔 고안되었던 벤담의 감옥은 오늘날 일상이 되어버린 감시카메라, 전자메일 해킹, 소형 정찰기와 첩보위성을 동원한 국민 감시의 감옥으로 변했다.
감시가 일반화되고 자기이미지에 일말의 여지도 없이 복속된 사회, 새로운 유형의 ‘소프트’ 전체주의인 현대세계에 우리는 어떻게 맞설 것인가? 저자는 팬옵티콘의 감시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받는 우리 사회에서 드러내지 않기는 저항의 유쾌하고 필수적인 형식이라고 말한다. 자기 증명에 대한 집요한 요구와 전방위적인 감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반기를 드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진지하면서도 소박한 저항은 대개 늘 지하활동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벽에 바싹 붙어 몸을 숨기고 눈에 띄지 않는 기술, 드러내지 않기의 기술에서부터 저항이 시작된다는 얘기다.?

대중성과 익명성, 동일한 시대의 두 가지 얼굴

자유로운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은 알아봐주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 다수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욕망과 짝을 이룬다. 달리 말해서 이 시대의 현대성은 자신을 드러내며 인정받고자 하는 광적인 투쟁뿐 아니라, 익명 속에서 자신을 감추고자 하는 은밀한 투쟁, 좀 더 차분하지만 실로 완강한 투쟁으로도 특징지어진다. 미디어의 민주화 덕분에 누구나 ‘15분은 유명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앤디 워홀의 꿈에는 현대 사회의 대중화와 익명화에 힘입어 누구나 ‘15분은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거라는 익명성의 꿈, 다수가 공유하는 이 꿈이 상응한다. 이 꿈들은 서로 모순되는 별개의 꿈이라기보다는 동일한 시대의 두 얼굴로 봐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익명성의 꿈을 실현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라는 행위에서 찾는다. 그렇다면 드러내지 않기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이런 꿈을 추구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투명한 입장이 이끄는 새로운 경험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의 욕구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한,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끊임없이 예측하면서 사는 한, 세상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반면 더 이상 자기도 없고 타자도 없는 순간, 그때부터 세상은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감미롭도록 다양하게, 아득하게 나타난다.
드러내지 않기는 자신에게서 자아가 소멸하는 순간을 가리킨다. 잠시 내가 나로 머물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 타인이 나타나도록 일시적으로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을 말한다. 놀이에 몰두한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 곤히 잠든 애인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지각 없이 스스로 즐거움을 얻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있는 듯 없는 듯 남들 눈에 띠지 않는 투명한 입장이 자신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끈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러내지 않기의 기술은 무엇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세상을 지켜보기 위해서, 이 세상 속으로 섞이기 위해서 필요하다. 너무 가까워도 보이지 않고, 너무 멀어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자아를 한옆으로 밀치지 않고는 쉽지 않다. 자신에게서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거두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드러내지 않기는 눈에 띄지 않는 투명한 입장이 되어 전능함에 대한 환상,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환상을 내려놓는 것이다. 자기 힘을 행사하려는 의지를 잠시 단념하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나의 혹은 누군가의 힘의 의지가 아니라 존재들의 실제 모습, 내가 아니지만 타자도 아닌 그것을 불현듯 사랑하게 된다.

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

저자는 드러내지 않기를 사라짐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기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드러내지 않기가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완벽하게 규정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기술은 사소한 몸짓, 미묘한 자세와 시선, 언뜻 피하는 듯 보이는 눈길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것들은 항상 너무 큰 개념의 그물코를 빠져나가게 마련이다. 드러내지 않기의 기술은 일종의 관점이기에 이론이나 고행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해 사제, 예언자, 지나치게 통찰력 있는 대가는 별 힘을 쓰지 못하는 정치철학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드러내지 않기라는 경험은 개인적 성격의 특질(겸손하다, 신중하다)이나 도덕적인 미덕에서의 좋은 행실(부르주아의 매력, 배운 자의 태도 등등)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울러 체념적인 도피, 수동적인 허무주의도 아니다. 자신을 부정하거나 죽기를 원하는 기술이 아니라 항상 밖으로 내딛는 걸음이다. 불연속성을 받아들이는 기술, 일시적인 경험이나 입장을 받아들이는 기술, 연속성은 꿈에 불과함을, 우리는 불연속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기술이다.

‘사이 공간’을 지키기 위한 미시정치적인 기술

무엇보다 드러내지 않기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의 기술, 미시정치적인 기술이다. 사라짐의 방법을 아는 순간 우리는 이탈의 문턱을 넘어선다. 들뢰즈가 통제 사회라고 명명했던 견고한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를 포악한 전체주의 시대라고 말한다. 비밀도, 미스터리도, 한 점 그림자도 없는 삶, 자기와 타자 사이에나 자기와 자기 사이에 아무런 틈이 없는 삶은 절대적인 무한 공포로 치닫게 마련이고 장기적으로는 우리 안의 인간성을 모조리 말살할 것이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전체의 공포는 모든 인간을 서로가 서로에게 떠밀리게 압박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을 말살한다”고 말한다.
반면 드러내지 않기에 대한 사랑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고 타자에게로 향해 있고 열려 있는 고독을 사랑하는 것이므로 이미 그 자체가 전체주의적 질서에 저항하는 셈이다. 드러내지 않기는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자유의 최소 공간인 ‘츠바이라움(사이 공간)’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눈에 띄지 않거나 사라지는 방법을 아는 것은 전통적 정치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정치를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카프카, 들뢰즈, 한나 아렌트… 세계와 사물의 아름다움이 출현하는 순간
드러내지 않기가 현대사회의 독특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개념을 도덕적, 정치적, 존재론적, 정서적 차원에서 고찰한다. 계보학적인 탐구-인류학적 추적에서 시작해 그리스철학, 중세철학, 유신론, 무신론을 거치는-를 통해 드러내지 않기의 기원을 밝히려는 이 탐구는 또한 드러내지 않기의 고유한 특성을 밝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드러내지 않기는 보들레르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현대 대도시의 출현과 더불어 대도시를 메우는 군중에 대한 사랑, 익명성의 보장, 소요逍遙가 있어야 드러내지 않기라는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후 저자는 블랑쇼, 들뢰즈,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의 사유를 추적하면서 세계와 사물의 아름다움이 출현하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도시적이고 민주적이고 유연한 정치적 경험인 드러내지 않기의 고유함을 말한다.



저자 소개

저자 : 피에르 자위 Pierre Zaoui

철학자. 파리 7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현대프랑스철학연구센터(CIEPFC)의 회원이며 국제철학학교(CIPh)의 책임자였다(2004~2010). 스피노자, 질 들뢰즈, 현대 예술, 정치사상 등을 주로 연구하며 인문계간지 『바카름Vacarme』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자유주의는 야만인가? Le Liberalisme est-il une sauvagerie?』(2007), 『스피노자: 자기결정Spinoza: la decision de soi』(2009), 『사는 것, 그것은 믿는 것이다: 데이비드 흄에 대한 철학적 초상 Vivre, c'est croire: portrait philosophique de David Hume』,『재앙들을 가로질러La traversee des catastrophes』(2010)가 있다.

역자 : 이세진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나르시시즘의 심리학』,『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음악의 시학』,『수학자의 낙원』,『니체와 음악』,『발작』,『설국열차』,『회색 영혼』,『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들어가는 글
드러내지 않기라는 경험의 뿌리를 찾아서
드러내지 않기에 대한 계보학적 연구
현대의 전체주의에 맞서
사라짐의 기술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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