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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신검문(如意神劍門) 상세페이지

책 소개

<여의신검문(如意神劍門)> 군복무 할 때 처음으로 무협을 손에 잡은 후 평생을 무협을 읽으며 살아 온 저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무협을 통해 표현해 보았습니다.

이 책 속에는 삶의 지혜들이 많이 녹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힘이 있을 때는 난관을 돌파해야 하지만 힘이 없을 때는 돌아가라든지, 세상에는 필요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든지 등등 수없이 많은 교훈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한 곳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모험을 해나간다면 길이 열린다는 사실도 여러 곳에서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약하게 태어나서 이 세상의 최강자가 되기까지 주인공 청수가 겪는 파란만장한 삶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파멸과 절망적인 상황을 대담하게 헤치고 나가는 여주인공 소소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무협으로는 지난 달 말에 나온 처녀작(處女作) 평화문(平花門)에 이어 두 번째 작품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재미있고 참신한 내용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출판사 서평

제1화 마교천하(魔敎天下)


강호(江湖)에는 기인이사(奇人異士)가 명멸(明滅)하면서 역사가 흐르는 게 만고(萬古)의 이치이다. 강호에는 한 때 시대를 풍미(風靡)하다가 은둔한 고수들이 많지만 지금은 그들의 생사(生死)를 아는 이가 없다.

한 때 강호는 사대고수(四大高手)들이 주름을 잡고 있었으니 그들을 강호사절(江湖四絶)이라 일컬었다. 검성(劍聖) 담채기(譚彩器), 검선(劍仙) 장무진(張霧津), 무영검(無影劍) 풍운비(風雲飛), 운해비연(雲海飛燕) 양청연(楊靑燕)이 그들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강호의 주도권이 정(正)에서 마(魔)로 넘어가고 난 뒤부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지지도 않은 채 이들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말하자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을 보았다거나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魔)의 중심에 혈마교(血魔敎)가 있었다. 혈마교는 귀주성(貴州省)의 무릉산(武陵山) 기슭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으며 당금(當今) 교주는 혈천마제(血天魔帝) 장혈봉(蔣血峰)이었다.

혈천마제는 혈마교를 중심으로 모든 마(魔)와 사(邪)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은 후 정파 무림(正派武林)까지 정복하여 바야흐로 무림(武林)을 일통(一統)하는 것이 일생의 꿈이요 목표였다. 이와 같은 혈천마제의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현재 마(魔)는 물론 사(邪)에 속한 모든 무림 문파들이 혈마교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에 강호(江湖)를 지배하는 마교(魔敎)는 물론 사파 무림(邪派 武林)조차도 안하무인(眼下無人)격으로 강호를 휘젓고 다니며 온갖 악행을 일삼고 다녔다. 뿐만 아니라 천성적(天性的)으로 악한 심성(心性)을 지닌 자들은 정파 무림이 강호를 지배하는 동안에는 숨죽이고 지내다가 마(魔)와 사(邪)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자 더러는 사파(邪派)와 마교(魔敎)에 들어가서, 더러는 사(邪)와 마(魔)의 묵인(?認) 하에 드러내놓고 악행을 저지르기 일쑤였다. 그러나 무력(武力)에서도 절대적으로 밀리는데다가 구심점(求心點)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정파 무림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에도 버거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혈마교(血魔敎) 교주인 혈천마제(血天魔帝) 장혈봉(蔣血峰)은 꿈이 커도 너무 컸다. 마교는 물론 사파 무림까지도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정파 무림은 있는 듯 없는 듯 숨을 죽이고 자신의 눈치만 살피며 뿔뿔이 흩어져 근근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는 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림에 대한 지배에 그치지 않고 기필코 중원강토(中原疆土)를 다스려 보리라.”

대명(大明)의 황제(皇帝)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아 정사 무림(正邪武林)뿐만 아니라 천하(天下)를 다스려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교주전(敎主殿) 태사의에 앉아 상념에 잠겨 있었다.

“정파 무림을 먼저 완전히 무너뜨리고 천하 무림(天下武林)의 일통(一統)을 이룬 후에 통일된 무림의 힘으로 황궁(皇宮)을 칠 것인가? 아니면 암암리에 황제를 손아귀에 넣은 후에 조정(朝廷) 대신들 특히 병부상서(兵部尙書)를 내 휘하에 두고 병권(兵權)을 쥔 뒤에 황제에게 양위(讓位)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 앉을 것인가? 그게 문제로다. 으흐흐흐흐흐흐”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실로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휘하의 사대호법(四大護法) 중의 하나인 건일마영(乾一魔影)이 와서 아뢰었다. 혈마교주(血魔敎主) 휘하에는 사대호법(四大護法)이 있었으니 건일마영(乾一魔影), 곤이마영(乾二魔影), 이삼마영(離三魔影), 감사마영(坎四魔影)이 그들이었다.

“교주(敎主)님! 각 성(省)에 있는 우리 교(敎) 총타주(總舵主)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응! 가지.”

혈마교는 중원(中原) 각 성(省)에 한 개씩의 총타(總舵)를 두고 있었고, 각 총타(總舵)는 각각 열 개씩의 분타(分舵)를 두고 있었다.



제2화 진평 부락(陳平部落)


호남성(湖南省)에 동정호(洞庭湖)가 있었다. 일백이십만(一百二十萬) 평에 달하는 호수(湖水)의 수면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뭇 사람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동정호 동쪽 기슭에는 악양루(岳陽樓)라고 하는 누각(樓閣)이 있었는데 문예(文藝)에 조예(造詣)가 깊은 인사들은 이곳에 올라 시(詩)를 쓰거나 화폭(畵幅)에 동정호를 그려 넣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같은 유명한 시인들도 이곳에서 동정호를 내려다보면서 많은 시(詩)들을 남겼다고 한다.

상춘(賞春) 인파는 호숫가를 따라 심어진 도화(桃花), 앵화(櫻花)를 감상하고 있었으며,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은 배에 올라 시부(詩賦)를 술잔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동정호로부터 일백(一百) 여 리 남쪽에 익양(益陽)이라고 하는 지역이 있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정(情)이 많고 성품이 순박하여 인심이 좋기로 소문나 있었기에 가난한 사람들과 다른 곳에서 정(情)을 붙이지 못하고 떠돌던 사람들이 정착하기 위하여 모여들었으므로 갈수록 인구가 늘어났다.

익양 중심부로부터 삼십(三十) 여 리를 더 들어가면 큰 산이 하나 나오는데 항상 구름에 가려져 있었기에 백운산(白雲山)이라고 불려졌다.

백운산(白雲山) 자락에는 육십(六十) 여 가구 정도 되는 부락이 있었고, 주민들은 아이들을 많이 낳는 것을 복(福)으로 여겼으며, 사람은 태어날 때 각자가 먹고 살아갈 복을 타고 난다고 믿었기에 집집마다 아이들을 열 명 정도씩 낳아서 키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부락 안에는 어디를 가나 아이들이 떼를 지어 놀았으므로 부락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라지는 날이 없었다. 부락 이름은 진평(陳平)이라고 했다.

부락의 아이들 중에는 백운산 기슭으로 소나 염소를 몰고 가서 풀을 먹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산을 조금 더 올라가면 조금 평평한 지대가 있었기에 소나 염소를 먹이는 아이들은 그곳에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놀곤 하였다.

그러다가 해가 뉘엿뉘엿 서산(西山)으로 질 무렵이면 아이들은 통통걸음으로 소나 염소를 몰고 부락으로 내려오곤 하였다. 그런데 통통걸음으로 내려갈 때 아이들이 느끼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지하(地下)가 빈 것처럼 발밑에서 둥둥둥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부락에서 오(五) 리 쯤 떨어진 곳에 초가집 한 채가 외로이 서 있었다. 그곳에는 오십(五十) 세 정도 되어 보이는 노부부(老夫婦)가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늦둥이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다른 집들은 아이들을 열 명 정도씩 낳아서 키웠지만 이 집은 아이가 안 생기다가 불과 십(十) 년 전에야 겨우 아들 하나를 낳아서 그 동안 애지중지하며 키워왔던 터였다.

아이는 신체가 무척 허약(虛弱)하였다. 아마도 없던 아이가 겨우 생겼기에, 척박(瘠薄)한 땅에서 자라는 남새들이 영양가 부족으로 누렇게 자라는 것처럼 허약하게 크는 것 같았다. 노부부는 아이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여 불면 날아갈세라 만지면 부서질세라 항상 조심조심 키웠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과객(過客)이 하룻밤 묵고 가게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불렀다.

“청수(靑秀)야! 손님께 인사 드리거라.”

“네, 아버지!”

아이의 이름은 청수(靑秀)였다. 손님은 청수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그려. 제가 과거에 의술(醫術)을 좀 배운 적이 있는데 아드님이 무척 약하게 태어났군요. 이런 아이들을 가끔 본 적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약물로는 개선되기가 어렵습니다.”

“아! 의술을 배우셨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르쳐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인데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예, 아드님의 경우는 무공(武功)을 가르치면 강한 아이로 자랄 수가 있을 겁니다.”

“무공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방면에는 문외한이어서 말입니다.”

“무림문파(武林門派)를 찾아가서 부탁을 하시면 될 겁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무림문파가 있는지요?”

“동정호(洞庭湖)에서 서쪽으로 사백(四百) 리 정도를 가면 천문산(天門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천문산 자락에 천산문(天山門)이라고 하는 무림문파가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찾아가서 부탁을 드려봐야겠습니다 그려.”

아이의 부모는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과객(過客)에게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융숭하게 대접을 하였다.



제3화 천산문(天山門)


동정호(洞庭湖)에서 서쪽으로 사백(四百) 리 정도를 가면 천문산(天門山)이라는 산이 있었다. 그 산에는 누군가가 깎아서 만든 듯한 봉우리 이만(二萬) 여 개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안개가 항상 봉우리들을 감싸고 있어서 이곳이 선계(仙界)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천문산 정상에는 천문산사(天門山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예불(禮佛)을 드리고자 찾아오는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들로 항상 붐비고 있었다.

천문산(天門山) 자락에는 천산문(天山門)이라고 하는 오백(五百) 년 전통의 검문(劍門)이 있었다. 당금(當今) 천산문의 문주(門主)는 월악검제(月嶽劍帝) 이한백(李漢百)이었는데 그는 개파조사(開派祖師)였던 천산검영(天山劍影) 화국평(華國平) 이래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천산문(天山門)의 독문무공(獨門武功)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었다.

천산문(天山門)은 중앙에 문주전(門主殿)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문주전(門主殿)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또한 문주전(門主殿) 지하에는 문주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문주 전용의 연공실(練功室)이 있었는데 그곳은 비밀통로로 외부와 연결되고 있었다.

또한 문주전(門主殿)을 비롯한 건물들의 전면(全面)에는 드넓은 연무장(鍊武場)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 날도 천산문(天山門)의 연무장(鍊武場)은 일천(一千) 여 명의 무인들이 무공을 수련하면서 질러대는 기합(氣合) 소리로 떠나갈 듯하였다.

무공수련이 끝나면 무인들은 천문산(天門山) 이만(二萬) 여 개의 봉우리를 날아다녔다. 봉우리들이 깎아지른 듯이 뾰족하였기에 절벽 또한 깊었으므로 안개로 덮인 곳은 무척 위험하였다. 하여 천산문의 무인들은 안개가 걷혀 사물이 잘 식별되는 봉우리만 날아다녔는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거리가 아주 짧고 높이가 비슷하였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청수(靑秀) 아버지가 열 살짜리 청수(靑秀)를 대동하고 천산문(天山門)을 찾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약해빠지게 생긴 청수(靑秀)에게로 향하였다. 청수(靑秀) 아버지는 촌로(村老)였음에도 불구하고 강단(剛斷)이 있었던지라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문주전(門主殿)으로 향하였다.

문주전(門主殿) 문 앞에 이르자 막아서는 자(者)가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문주님을 좀 뵈러 왔습니다. 혹 문주님이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문주님의 명령(命令)을 출납하는 좌사자(左使者)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실은 제 자식 놈이 몸이 허약하여 수소문 끝에 무공을 수련하면 건강해질 수가 있다고 하기에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좌사자(左使者)는 청수(靑秀)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혀를 끌끌 차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체형(體型)과 근골(筋骨)이 개판이군. 이런 아이는 무공을 익히면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너무 어려서 또래도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받아주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하더라도 문주님을 좀 뵙게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문주님은 지금 출타(出他) 중이십니다.”

이 말을 끝으로 좌사자(左使者)는 문을 닫아버렸다. 청수(靑秀)의 아버지는 굴욕을 느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으므로 아무 소득도 없이 청수(靑秀)를 데리고 그 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제4화 여의문(如意門)


청수(靑秀)와 청수(靑秀)의 아버지는 크게 낙심하며 천산문(天山門)을 나와서 한참을 내려왔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민가(民家)가 나타나고 음식점도 있었다. 시장하던 차에 음식점에 들러 만두(饅頭)와 화주(火酒)를 시켜놓고는 점소이에게 물었다.

“가까운 곳에 천산문 말고 무림문파가 또 있습니까?”

그러자 점소이가 대답을 하였다.

“네, 있습죠. 여기서 오른쪽으로 이십(二十) 리 정도를 가시면 여의문(如意門)이라고 하는 문파가 있긴 합지요.”

청수(靑秀)의 아버지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은 채 그냥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른 무림문파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청수의 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네, 감사합니다.”

식사는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그들은 여의문(如意門)을 찾았다.

천문산(天門山)에는 천산문(天山門) 말고도 무림문파가 하나 더 있었다. 천문산(天門山) 기슭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십(二十) 여 리를 돌아가면 권법(拳法)과 장법(掌法)과 각법(脚法)을 주로 연마하는 무림문파가 있었는데 연무장(鍊武場)에는 오백(五百) 여 명의 무인들이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여의문(如意門)이라고 쓰인 빛바랜 현판(懸板)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현판으로 보아 상당히 오랜 전통을 지닌 문파인 것으로 보였다. 정문에 다가가자 문지기 무사들이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영락없는 촌부(村夫)와 열 살짜리 아이였는지라 젊은 무사는 경계하는 눈빛 없이 대해주었다.

“문주님을 뵙고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문주님은 지금 출타(出他) 중이신데...”

“그럼 다른 분이라도 좋습니다. 이 아이가 몸이 약하여 무공을 가르치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러십니까? 들어가 보시지요.”

여의문(如意門)은 문파의 규모가 작아서 문주전(門主殿)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리 크지 않은 곳을 문주실(門主室)로 쓰고 있었다. 문주실로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삼십대(三十代) 중반의 미부(美婦)가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딸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문주의 부인과 딸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중년 미부가 물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몸이 너무 허약하여 무공을 가르치고 싶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그러셨군요. 아이가 열 살 정도 돼 보이는군요. 우리 딸아이도 열 살입니다. 여기서 무공을 수련하면 많이 좋아질 겁니다. 또래 아이들이 몇 명 있으니 여기서 기거(起居)하며 수련하도록 하지요. 대신 약간의 월사금(月謝金)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치료비라고 생각한다면 무엇을 못 드리겠습니까?”

상대적으로 작은 문파여서 그런지 다행히 입문(入門) 절차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게다가 청수의 아버지로서는 검(劍)을 다루는 위험한 검문(劍門)보다는 권법(拳法)과 장법(掌法)과 각법(脚法) 등 맨몸으로 수련하는 여의문(如意門)이 훨씬 더 안심이 되는 측면도 있었다.

“청수야! 사부님과 사모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무공수련 해서 튼튼하고 건강해져야 한다. 알겠느냐?”

“네. 아버지!”

“사모님! 아이가 몸이 너무 약하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제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청수(靑秀)의 아버지는 이렇게 청수(靑秀)를 여의문(如意門)에 맡겨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의문(如意門)은 문도(門徒) 수는 적었지만 그래도 뼈대가 있는 문파였다. 전임 문주(前任門主)였던 독고영패(獨孤嶺覇)는 수제자(首弟子)였던 현임 문주를 자신의 딸의 짝으로 점찍어 혼인을 시켜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현임 문주의 부인이 전임 문주의 외동딸이었던 것이다.

여의문의 당금 문주는 장무영(張無影)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문주 부인은 독고설란(獨孤雪蘭)이라는 어여쁜 이름을 가졌는데 예쁜 이름만큼이나 미색(美色)이 출중하여 혼인 전에는 뭇 사형제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었다. 독고설란(獨孤雪蘭)은 특별히 좋아하던 남자도 없었기에 아버지가 짝지어 주는 대로 대사형(大師兄)과 혼인을 하여 장소소(張素素)라는 무남독녀(無男獨女)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문파가 작고 영향력도 미미하였기에 이들 부부에게는 무림인들이 즐겨 쓰는 별호(別號) 같은 것도 없었다.

하여간 그날부터 청수(靑秀)는 무공수련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모 독고설란(獨孤雪蘭)은 너무나도 허약한 청수(靑秀)의 신체조건을 고려하여 당장 무공을 수련하기보다는 무공수련을 위한 기초체력 단련을 위한 조치를 하나하나 취해 나갔다. 그리고 청수(靑秀)의 신체가 허약한 관계로 남자들의 무공보다는 여인의 무공을 가르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사모인 자신이 직접 가르칠 참이었다. 그래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던 것이다.


저자 소개

중앙대학교 졸업 (영어영문학)
교원대학교 교육정책대학원 (교육정책)
저서 : 평화문(e퍼플), 소설 바이블(e퍼플), 성경대로 믿는 신앙(e퍼플)

목차

제1화 마교천하(魔敎天下)
제2화 진평 부락(陳平部落)
제3화 천산문(天山門)
제4화 여의문(如意門)
제5화 기초 체력훈련
제6화 기초무공과 기본무공 수련
제7화 참화(慘禍)
제8화 소소 실종(素素 失踪)
제9화 동정호(洞庭湖)에서
제10화 혈천마제(血天魔帝)
제11화 산채(山砦)
제12화 여두목(女頭目)과의 대결(對決)
제13화 기연(奇緣)
제14화 무공수련(武功修鍊)
제15화 황제 등장(皇帝 登場)
제16화 비무참가(比武參加)
제17화 장원급제(壯元及第)
제18화 재회(再會)
제19화 소소(素素)의 사연(事緣)
제20화 뜻밖의 참전(參戰)
제21화 혼인(婚姻)
제22화 혈천마제(血天魔帝)의 도발
제23화 병부상서와 황제 구출
제24화 집법당주(執法當主)
제25화 혈마교 토벌대(血魔敎 討伐隊)
제26화 토벌준비(討伐準備)
제27화 혈천마제의 전술
제28화 위기 직면(危機 直面)
제29화 전쟁(戰爭)과 강화(講和)
제30화 또 하나의 기연(奇緣)
제31화 또 다른 무공수련(武功修鍊)
제32화 여의문 재건(如意門 再建)
제33화 평화시대(平和時代)
제34화 조직 정비
제35화 천산문(天山門) 멸문(滅門)
제36화 소림(少林)으로 향하는 전운(戰雲)
제37화 소림파(少林派) 멸문(滅門)
제38화 강호사절(江湖四絶)과의 조우(遭遇)
제39화 움직이는 문파(門派) 신검문(神劍門)
제40화 전열정비(戰列整備)
제41화 무릉산(武陵山)에 감도는 전운(戰雲)
제42화 최후의 전쟁(戰爭)
제43화 천외천(天外天)
제44화 음모(陰謀)
제45화 밝혀지는 음모(陰謀)
제46화 반전(反轉)
제47화 여의신검문(如意神劍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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