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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원을 거닐다 상세페이지

유럽, 정원을 거닐다작품 소개

<유럽, 정원을 거닐다> 정원, 삶과 역사가 펼쳐지는 또 다른 장
국내 유럽 정원 전문가들이 펼쳐내는 깊은 담론의 향취
수많은 답사·주거·공부·성찰이 정원의 인문학적 묘미를 살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완성과 중세 정원의 자취들
프랑스, 절대왕권 속에서 피어난 정원의 절대미
영국, 풍경식 정원의 백미를 만나다
독일, 숲의 도시에서 만나는 역사정원과 현대 정원들


국내 유럽 정원 전문가들이 합심하여 아름답고 진중하게 꾸민 유럽 정원문화 담론서가 출간되었다. 특이하게도 대담집인 이 책은 이 책을 기획한 정기호 성균관대 교수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정원 연구자 4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대담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독특하게도 ‘유럽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정원’이라는 컨셉트를 따라 여행자들이 정원문화를 깊고 넓게 만나볼 수 있게 하려는 전문가들의 의지가 발휘되었다. 각국 수도를 중심으로 도심과 그 외곽에 분포된 정원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담에 응한 연구자들은 모두 해당 국가에서 조경, 건축, 도시 등을 연구하며 오랜 시간 그 지역의 정원을 샅샅이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인터뷰는 따로따로 여러 차례 이뤄졌으며 4편의 대담이 각각의 책의 1~4장으로 구성되었다. 대담 1편당 60~70쪽의 분량으로 각 국가의 정원과 얽힌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기획자 정기호 교수는 “유럽의 정원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었던 마음에 정원과 도시를 공부한 조경 전문가 몇 분으로부터 유럽 각 나라의 일상 속 정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라고 머리글을 연다. 기획자가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묻고 현지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경험들을 생생히 들었으며 때로는 깊게 들어가고 때로는 넓게 뻗어나갔다. 유럽의 정원은 로마 황제의 정원이나 폼페이 발굴 유적에서도 나타나지만,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정원은 15세기에 등장한 피렌체 일원의 빌라정원에서 비롯되었다. 16세기 무렵의 로마 추기경들의 빌라정원에서 꽃피운 르네상스 정원은 음으로 양으로 알프스 이북 유럽 정원 양식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의 17세기 바로크 정원이 발전했고, 영국의 의회정치 이념과 어우러지면서 18세기 자연풍경식 정원으로 펼쳐졌다.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지나 19세기에 이르면 귀족 중심 사회를 탈피해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공공을 위한 정원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파리의 여러 숲과 공원이라 이름 붙여진 곳들이 그런 경우다. 특히 도시녹지가 체계적으로 정착하던 19세기의 독일 베를린-포츠담 일원의 사례는 도시녹지 계통의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이런 정원의 역사가 아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정원’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두었다. 정원에는 두 얼굴이 있다. 이 책은 정원을 만나자면 그러한 두 가지 얼굴을 떠올리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선 정원 본연의 의미와 연관된 얼굴이다. 무엇보다 정원은 화려하고 풍부한 자연과의 만남을 주는 고급스러운 대상이다. 명원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정원 대부분이 그렇다. 그처럼 거닐고 구경하기 좋은 정원도 있는 반면 앉아서 쉬기 좋은 곳들도 있다. 정원에는 주인의 취향에 따라 많은 꽃과 나무 및 경관 감상의 포인트가 되는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어 보통의 공원과는 다른 맛이다. 정원을 만든 사람의 눈과 마음을 읽고 공유할 수 있는 감상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그렇게 정원은 구경거리만이 아니라 숲과 햇살과 그늘 같은 자연을 연못과 분수 등의 소재로 조합해 건축 공간학적인 경관구성을 만나게 한다. 정원 본연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의견이지만, 정원은, 여행자 입장에서 보면 힘든 여정 속의 작은 휴식을 안겨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도시투어 일정 속에서 한 템포 쉬어가는 느낌이기에, 오히려 도시투어의 필수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정원을 주제 삼아 본격적으로 정원투어를 할 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정원과 정원 사이를 이동하면서 그곳의 도시를 잘 관찰하고 그 도시의 심장이자 허파로서 정원을 만난다면 십분 지혜를 발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명원들은 대부분 왕이나 군주 소유였다. 또한 대규모 정원을 조성하려면 넓은 토지를 필요로 했던 만큼 도심을 벗어난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시대 상황과 권력 구조 양상에 따라 입지가 달라진다. 그런 까닭에 도시의 역사와 권력 구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감상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각국 수도를 중심으로 도심 가까이, 근교 혹은 외곽에 분포된 정원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각국의 수도는 유럽 여행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도시들이기도 하며 대부분 역사와 문화의 집산지로서 각국의 왕도였던 것을 감안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들 정원이 오늘날 도시 속 사람들의 삶과 함께하는 모습을 관조하는 것이 여행자로서 정원과의 만남을 최적화하는 것이리라.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완성과 중세 정원의 자취들


아득한 로마의 역사를 간직한 이탈리아는 유럽 정원의 시작이다. 이탈리아 정원은 로마가 남겨놓은 골격에 르네상스의 살결이 보태지면서 탄생되었다. 유럽 정원을 크게 분류하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양대 축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가 초기에 이탈리아 정원 양식을 많이 모방하려 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지형상 제약으로 인해 계단상으로 흘러내리는 폭포 같은 수공간을 조성하기 어려워 결국 자신들만의 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식 평면기하학적 정원이다. 이탈리아 정원은 뭐랄까, 상당히 은유적이다. 가려지거나 감춰져 있고, 님페오라고 해서 로마 시대의 분수, 조각상이나 꽃밭 정원에 있는 오락용 시설처럼 세세한 조각 형태에서부터 정원 전체를 이뤄나가는 방식으로 보여주려 한다. 예를 들면 건물을 거꾸로 놓는다든가 문을 거꾸로 달아놓기도 하고, 마스케로네라고 해서 입을 크게 한 마스크 형식을 만든다든가 해서 괴기한 느낌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 정원은 굉장히 정제되어 있다. 시기상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졌기에 동시대 개념에서 바로크 정원이라 부를 뿐 의도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서로 다르다.

이탈리아적인 바로크로서 보볼리는 1550년대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매너리즘 정원이다. 동굴 같은 이곳으로 들어가면 사슴 이야기, 성모 마리아의 일각수 이야기, 하늘 천장의 색조개 이야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 등 신화적인 것들이 정원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현대 정원 또한 역사 정원들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19~20세기 이탈리아 현대 조경에서는 특별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왜 이탈리아에서는 미국에서처럼 새로운 양식이나 변화가 없을까? 그 이유는 바로 다음에 있다. 보통 이탈리아인들 중 그 지방의 영향력 있는 유지라고 하면 12~14세기에 입향해서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때부터 지역의 유지였다면 지금도 유지다. 그러니 큰 변화가 없다. 대표적인 곳이 자르디노 시쿨타 정원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원을 개조할 때도 자기 가문의 가장 전성기였던 시대의 모습으로 뜯어고치지 지금 시대에 맞춰 꾸미지는 않는다. 그러면 현대인으로서는 오늘날의 각 도시를 보면서도 그들의 가장 영화로웠던 시절을 목격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자들은 여행하면서 아마 이런 이야기에 상당히 공감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절대왕권 속에서 피어난 정원의 절대미


프랑스 정원이라면 베르사유 궁을 피해갈 수 없다. 정원만 해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베르사유 궁에서 정원을 바라봤을 때 왼쪽 화단에서부터, 즉 오랑주리가 내려다보이는 화단에서 시작해 그 밑으로 내려가다보면 여러 총림과 자수화단이 나온다. 그리고 그 밑에 분수가 있고요. 즉 운하가 시작되는 부분에 아폴로 신의 이야기가 연출된 분수대가 있다. 이것을 지나 운하 오른쪽으로 가면 자전거 빌리는 곳에서 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 넓은 곳을 훑어보기에 좋은데, 물가를 쭉 따라가는 데는 30분 가량 걸리고, 정원 구석구석을 마음속에 담고 싶다면 1시간에서 2시간은 걸린다. 베르사유 궁을 세운 루이 14세는 막강한 중앙 권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정원을 조성할 수 있었는데, 원래 이곳은 앙리 4세 때부터 왕실 수렵장이었다. 루이 13세는 수렵을 정기적으로 즐기려고 이곳에 작은 궁을 지었다. 그 뒤에 루이 14세가 명해 르노트르의 설계로 조성된 대규모 궁원이 바로 베르사유 공원이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전체 면적은 80제곱킬로미터에 달했다. 지금도 대규모라고는 하지만 7.15제곱킬로미터인 것을 보면 원래 규모는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이 정원 전체는 그의 힘을 이상화한 강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는 유럽 신화 속 인물, 아폴로 신의 의상을 즐겨 입었다고 하는데,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태양처럼, 정원은 왕궁을 중심으로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향해 펼쳐져 있고, 마침 아폴로 분수는 정원 내시각적 축의 중심으로 궁전과 운하 사이에서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태양 신화가 반영된 베르사유 정원술은 당시 발달한 천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비롯됐다. 이와 더불어 망원경 효과처럼, 멀리 떨어진 공간을 가까이 있는 듯 보이게 하는 공간 배치, 긴 원근법 아래 지배된 공간들과 함께, 규칙적인 움직임과 질서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바로크 정원의 예술은 기하학, 광학, 토목기술 같은 근대 학문 발달의 결실이기도 하다.

베르사유 궁의 외부 공간은 화단과 총림으로 이뤄진 소정원 단위의 여러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 정원들은 더 큰 단위로 대운하, 스위스 못, 트리아농의 숲 등으로 이뤄진 대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궁전 바로 아래에는 물화단, 북쪽 화단, 정오 화단이 있고, 그 아래에 오랑주리(오렌지밭)가 펼쳐진다. 눈에 띄는 대규모 통경 시각축은 궁실 거울의 방에서 물 화단으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고, 이 축을 따라 녹색 융단과 라톤 화단이 대운하를 향해 열린다. 루이 14세가 불안한 정치 분위기를 쇄신하고 귀족사회를 장악할 만한 강력한 권력을 얻고자 파리를 떠나 베르사유에 거처를 마련했던 만큼, 공원 전체를 지배하는 강한 시각축을 이루는 통경선과 사방으로 뻗어가는 방사형 소로들은 왕의 권위와 막강한 권력을 상징하며 장관을 이룬다.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그처럼 커다란 정원을 만든 것이니, 왕가와 귀족들 삶의 영위를 위한 것이었을 터. 당시 프랑스 지배층은 이탈리아, 특히 메디치 가문이 이룬 문화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아마도 로마의 성지 순례를 통해 익히 알려진 16~17세기 이탈리아의 도시들, 예를 들어 로마, 피렌체, 토스카나에서 확인되는 강한 원근법의 도로 건설이 그렇다. 대담자는 베르사유 정원을 감상하는 약간 다른 포인트로 운하에서 배를 꼭 타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베르사유 궁과 정원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거든요.”

영국,
풍경식 정원의 백미를 만나다


영국 정원을 거창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그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 진면목을 보려면 이전에 머릿속에 그렸던 화려한 이미지를 벗겨내고 소박하게 바라봐야 한다.영국 사람들이 정원을 즐기는 모습, 처음에는 신기하고 예쁘게만 보였다가 차츰 그 뒤에 깔려 있는 문화적인 배경을 읽는 게 영국 정원의 묘미다. 영국 정원은 화려하고 잘 꾸며진 것이 아니라 생활에 스며 있는, 그래서 디자인이나 형태를 중시하기보다는 정원을 가꾸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정원문화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영국 사람들에게 왜 정원을 좋아하냐고 묻는 것은 바보짓이다. 한국 사람에게 왜 김치 좋아하냐고 물으면 설명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영국에 정원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고대 로마 제국 시기 무렵이었다. 즉 영국의 정원은 로마의 영국 정복에서 그 기원을 찾는데 튜더 시대에 이르러 그 문화가 영국식으로 뿌리를 내린다. 정원문화는 삶에 조금은 여유가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튜더 왕조의 대표 정원인 햄프턴코트 궁을 보면 프랑스와 다를 바 없다. 무너졌던 궁이 복원되어가는 모습이나, 정원이 담고 있는 역사적인 이야기 등 외형만 보자면 분명 프랑스풍이 느껴진다. 그런데 세밀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지극히 영국적인 사고와 생활방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알렉산더 포프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프랑스 정원의 정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주 저급하다고 평한 것이 사회적 공감을 얻었고, 이로써 영국의 풍경식 정원이 본격화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풍경식 정원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구현한다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이 인공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풍경식 정원은 규모 면에서 정원이라기보다는 공원에 가깝다. 그래서 근대 공원의 모태로 보기도 한다. 이런 정원의 변질이 가져온 새로운 스타일의 정원, 즉 코티지 정원 스타일과 아트 앤 크래프트 정원이 탄생한다. 우리나 영국이나 정원문화를 이끌어온 계층은 양반 또는 귀족이다. 하지만 영국에는 분명히 제도권으로 나오지 못했던 정원의 전통이 이어져왔는데, 바로 시골의 조그만 초가집에 딸려 있는 정원이다. 이 스타일이 현대로 넘어오면서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을 통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많은 정원이 꾸며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코티지 스타일을 무척 좋아하는데, 대부분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배식 기법들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런던 근교에 있는 풍경식 정원 가운데 가장 유명할 뿐 아니라 영화 「오만과 편견」이 촬영된 곳이기도 한 스투어헤드 정원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항상 열등감을 지녔던 영국이 풍경식 정원을 통해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싱허스트 정원과 처칠의 생가 차트웰 정원은 요즘 영국 정원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코티지 스타일과 아트 앤 크래프트 스타일로 가꿔져 있다.

영국 풍경식 정원의 특징 중 하나는 담을 없애고 주변 풍경을 내 품으로 끌어들이는 기법인데, 스투어헤드 정원 역시 아주 사적인 공간이었지만 정원 바깥으로 시선을 열어 정원을 더 넓게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정원 주인이자 설계자인 헨렌 호어의 별명이 ‘the Magnificent(참으로 아름다움)’라고 불릴 만큼 당시 사람들의 스투어 헤드 정원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지금도 정원 보전이 잘되어 있어 18세기 헨렌 호어 2세의 시선 그대로를 느낄 수 있고, 정원을 한가롭게 산책하다보면 여러 곳에서 마치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싱허스트는 비타 섹빌 웨스트가 만들고 가꾼 정원인데,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탄생 배경을 지니고 있다. 정원디자인을 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가꿔낸 비타 섹빌 웨스트는 영국의 유명한 여류작가로, 그녀와 함께 정원을 만들어간 이는 남편 해럴드 니콜슨이다. 외교관이기도 했던 해럴드의 영향으로 비타는 페르시아 등지에서 생활하며 페르시아 정원 양식을 자기 정원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 사실 비타는 레즈비언이고, 그녀의 남편 해럴드는 게이였다.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을 지녔던 부부, 이들의 사랑과 우정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정원이 바로 시싱허스트인 것이다.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아, 이걸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이곳에 오는 사람 대부분이 이런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 남편 해럴드와 비타는 정원 디자인에서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추구했다. 해럴드가 정형적인 패턴을 즐겼던 반면, 비타는 자유로운 터치를 즐겨 기하학적 패턴과 자연스러운 손길의 적절한 거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정원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흥미로움을 넘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국 정원의 묘미 중 하나는 기하학적 패턴과 자연스러운 터치가 어떻게 병립되는가이다. 이 정원에서 질서가 부여된 부분은 기하학적 패턴이 담당하고 있다. 크게 6개의 독립된 공간인 가든 룸으로 정원을 나누어볼 수 있는데, 정원마다 가지치기가 잘된 주목을 이용해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때로는 긴 선형의 질서를, 때로는 점을 이용한 질서를, 때로는 작은 사각형을 이용한 질서를 부여한다. 어떻게 보면 프랑스의 패턴이나 페르시아의 패턴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부여된 질서를 자연스러운 식재의 ‘침입’이 비집고 들어온다. 말하자면 길게 부여된 질서 앞으로 자연스러운 화단이 함께 있다거나, 사각의 질서 안에 자연스러운 식재 패턴이 들어오는 식이다. 식재의 색깔이나 질감을 통해 공간의 특징을 살린 곳이 바로 화이트 정원이다. 흔히 하얀 꽃을 심어 연출한 정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요소들이 있죠. 꽃은 물론 줄기까지 흰색 계열의 식물을 이용해 전체적으로 환상의 흰색을 연출한다. 꽃이 피는 절정의 기간은 한 달이 채 못 되지만, 줄기의 색과 질감으로 사계절 내내 흰색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 있으면 향기조차 순백색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국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고 그 수많은 이론으로도 다 섭렵할 수 없다. 하지만 ‘생활’이란 말은 영국 정원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영국 정원이 지금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원의 시작이 ‘재배’에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기독교 국가인데, 성경에 신이 인간에게 “땅을 다스리라”라고 했다. 여기서 ‘다스리다’는 곧 재배를 뜻한다. 이슬람 정원처럼 하늘에 만들었던 에덴동산을 표현하기 위한 화려한 정원이 아니라, 이 땅 위에 만들어놓은 에덴동산에서 생활을 위해 식물을 다스리며 정원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하면서 그 식물은 채소에서 화려한 꽃으로 탈바꿈했지만 생활 속에서 가꾸는 즐거움은 변치 않았다. 생활로 자리잡은 정원문화는 그리 화려하지 않을 수 있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힘든 정원 일을 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활’이라고 정의한 정원은 소박하지만 내가 즐길 수 있으면 되는 정원인 것이다.

독일,
숲의 도시에서 만나는 역사정원과 현대 정원들


프랑스 정원이 이탈리아 정원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시작됐다면, 독일 정원은 프랑스 정원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되었다. 독일 입장에서는 프랑스식 정원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지리적 환경이 다르고 왕권이나 경제력도 한참 모자랐다. 여기에 소유주의 개인 취향이 보태지면서 바로크 궁원마다 저마다의 특색을 띠게 된다. 베를린에서 포츠담을 잇는 사이 강과 호수와 녹지대 사이에 펼쳐진 정원은 유럽적이라기보다는 독일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18세기 이전 독일은 유럽을 통틀어 볼 때 문화 중심지는 아니었다. 당시 문화 중심은 프랑스 파리나 오스트리아 빈 혹은 이탈리아였다. 독일 조경가들은 이미 뛰어난 정원술을 보유하고 있던 다른 나라들로부터 문물을 들여오면서 바로크에 대한 학습을 했고 또 영국의 풍경식 정원을 배웠다. 베를린에서 포츠담으로 흘러가는 하펠 강변을 따라 조성된 정원들과 이들을 조화롭게 연결시키는 녹지대는, 비유하자면 무뚝뚝해 보이지만 꾸밈없이 성실한 독일인 같다.

독일의 티어가르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원되면서 궁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역사정원으로부터 도시 차원으로 확산되는 공공 정원이 되었다. 그러면서 독일적 성격의 도시 정원과 녹지체계를 형성해나갔다. 양식사적으로 살펴보면, 1742년 프리드리히 대왕은 크노벨스도르프에게 명해 왕실 사냥터였던 티어가르텐을 바로크풍의 시민 공원으로 조성하도록 했고, 이후 19세기 초 레네가 풍경식으로 다시 만들 때도 기존의 공간들과 조화를 잃지 않게 세심한 배려를 했다. 그러다가 알베르데스의 계획이 적용된 뒤에는 티어가르텐에 구조적으로 남아 있던 바로크 양식들이 더 이상 어우러질 수 없게 됐다. 지금처럼 완전히 풍경식 정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티어가르텐에는 3만50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지만 전쟁으로 포탄을 맞고 또 주민들이 땔감용으로 베어가 전부 파괴됐다. 전후에 500그루쯤의 나무만 남아 있었다. 이렇게 황폐화된 티어가르텐을 전쟁으로 생애가 막막해진 시민들이 2550구획으로 나눠 감자나 채소 등을 재배하는 채소농원으로 쓰기 시작했다. 1945년 베를린 시의회는 티어가르텐을 복원시킬 것을 결정하고, 베를린 시 녹지계획 담당자였던 라인홀트 링너와 베를린대학의 게오르크 프니오워 교수가 각각 새로운 설계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두 계획안은 베를린 분할 정책으로 현실화되지 못하고, 파괴되기 전의 양식에 티어가르텐 관리자였던 윌리 알베르데스의 실용성이 강조된 계획안을 반영하는 긴급 처방에 따라 1949~1959년 많은 나무가 심겨졌고 푸른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저자 소개

저자 - 최종희
배재대 생명환경디자인학부 교수이다. 이탈리아 제노바 건축전문대학원에서 「창덕궁 낙선재 후원의 보전, 복원계획」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Korean Traditional Landscape Architecture』, 『서양 조경사』 『창덕궁 깊이 읽기』 등이 있으며, 역서로 『신의 정원, 에덴의 정치학』, 『이슬람의 이상세계』, 『그림으로 보는 조경사』 , 논문 「조선시대 객사의 입지 및 배치, 조경적 특성」 외 다수가 있다.

저자 - 정기호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다. 독일 하노버대학교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본 "집과 마을과 경관"」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퇴계,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 못뵈』 『소쇄원, 긴담에 걸린 노래』 『한국정원답사수첩』 등이 있다.

저자 - 김도훈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겸임교수이다. 파리 1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상징적 장소와 자연의 근대화」로 도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 "정원, 경관, 국토" 연구실에서 연구활동에 참여했다.

저자 - 이준규
리틀 디자인스쿨 정원디자인 강사이다. 영국 에식스대학교 리틀 디자인스쿨에서 정원디자인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같은 학교 조경학 박사과정에 있다. 삼성 에버랜드 디자인그룹 책임디자이너를 역임했고, 베를린서울정원 현상설계 등에 당선되었다.

저자 - 윤호병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겸임교수이다. 베를린 공대에서 조경 및 환경계획학을 전공했으며, 「좋은 디자인의 기초와 특징에 관한 개선 모델을 이용한 한국 집합주거단지(1980~2010) 외부공간 디자인의 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아틀리에 로이들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했다.

목차

책머리에

제1편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완성과 중세 정원의 자취들 / 최종희

제2편
프랑스, 절대왕권 속에서 피어난 정원의 절대미 / 김도훈

제3편
영국, 풍경식 정원의 백미를 만나다 / 이준규

제4편
독일, 숲의 도시에서 만나는 역사정원과 현대 정원들 / 윤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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