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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서로 읽는 조선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실용서로 읽는 조선

규장각 교양총서 9
소장종이책 정가21,800
전자책 정가25%16,400
판매가16,400

실용서로 읽는 조선작품 소개

<실용서로 읽는 조선> 삶을 통한 앎은 어떻게 다른가
조선, 실용지학의 정점에 이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어떻게 실용의 학문을 추구했는가
열두 종류의 책을 통해 시대와 지식 변화의 궤적을 좇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수요를 충족시킨 공사 실용서 『고사촬요』
소송의 나라 조선, 법서를 통해 분쟁을 다스린 방법
조선에서 유행한 편지쓰기 매뉴얼 『간식유편』
한자의 그늘을 걷어준 실용서들
과학과 미신의 이중주를 보여준 전통시대 역주들
선비가 꽃을 키우는 법을 밝힌 『양화소록』


규장각 교양총서 제9권 『실용서로 읽는 조선』…조선을 움직인 ‘진짜 지식’을 찾아서
규장각 교양총서 제9권으로 『실용서로 읽는 조선』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조선 사람들이 늘 경험했던 실용의 세계를 몇 종류의 실용서를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미시의 관찰 속에서, 포착하기 쉽지 않은 조선 사람들의 땀내 나는 일상을 확인하자는 의도다.
실용의 지식을 담고 있는 ‘책’과 그 책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얻는 재미, 실용의 문화 속에 펼쳐지는 조선의 속살을 헤쳐 보는 즐거움 또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실용서 가운데 아무래도 무게감을 갖는 것은 행정, 사법 영역에서 쓰이던 책일 것이다. 어숙권이 지은 『고사촬요』는 조선의 관료들이 활용했던 행정 편람서였다. 행정에 필요한 기초 지식,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지식을 담았다. 16세기 중엽 이래 수백 년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며 애용되었던 이 책을 통해 조선이 긴 세월 지탱하는 힘을 어디서 얻었는지 그 실마리를 확인할 수 있다. 『사송유취』 『결송유취보』 등의 법서는 ‘소송 없는 사회’를 바라는 공자의 이상과 ‘소송의 나라’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사법 분쟁이 넘쳤던 현실의 상반된 모습을 한눈에 보여준다. 『유서필지』는 19세기 말, 일반 백성의 법의식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의서는 자연과 생명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인간 질병 치료에 활용하는 지식서였다. 『동의보감』이 편찬된 이후 조선에서는 종합의서였던 이 책과는 성격을 달리하여 특정 분야의 질병만을 다루는 전문적인 분과 의서가 많이 쓰여졌다. 자연의 움직임과 인간의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전문성,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데서 오는 어진 품성을 이들 책에서 느낄 수 있다.
자연에 관한 관찰과 지식, 왕성한 호기심에 바탕하여 즉시 활용 가능한 실용의 지식과 기술을 담은 저술로는 『소문사설』이 있다. 숙종·경종대에 어의를 지냈던 이시필은 의사로서의 전문가적 소양, 명·청대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조선에 꽃피우고자 하는 의지로 이 책을 만들었다. 18세기 후반 청나라의 선진 기술을 적극 배울 것을 주창했던 북학北學의 논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북학이 실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실용서를 거론함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경험과 과학 또는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믿음이 얽혀 있는 지식을 담은 책들이었다. 역서 곧 달력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천문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만들어진 대단히 합리적인 책이었지만 매일 매일의 시간에 길흉을 부여하며 만든 정보 또한 실었다. 달력이 있었기에 조선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었고 또 시간이 만들어내는 운명의 굴곡을 예의 감지했다. 새해 초, 신년의 운수를 점칠 때 이용했던 『토정비결』도 시간 활용에 유용한 서적이었다. 『토정비결』은 몇 가지 경우의 수를 가지고 미래를 예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허무맹랑했지만, 나름의 합리적 장치로 다가올 시간에 대처하고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언설을 만들어낸 점에서 영향력 있는 교육서이기도 했다.

일상의 생활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식·주의 지식을 담은 실용서였을 것이다. 『규합총서』와 『태교신기』 같은 책은 조선 후기 여성들의 임신과 태교, 출산에 관한 지식, 문화를 세세하고 싣고 있다. 경험과 과학성을 아우르면서 다른 한편으로 미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이었지만, 한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나가는 모성, 신생아의 성장과 교육에 투영되는 조선 문화의 특질 또한 이들 책에서 읽어낼 수 있다. 요리에 관한 지식을 담은 책으로는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등을 들 수 있다. 앞의 책이 17세기 후반 경북 영양지역 양반가의 요리법을 담고 있다면, 뒤의 책은 19세기 전반 경기지역 양반가의 요리 지식을 담고 있다. 이 책들이 담고 있는 음식과 조리에 관한 정보가 이 시기 음식생활의 전모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조선 사람들이 누렸던 음식 문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실용성은 오늘날 조선의 음식을 재현할 때 반드시 참고한다는 점에서도 되살아난다.
사람의 지혜를 키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도우는 실용서는 아마도 문자생활과 관련된 것이리라. 조선의 문자생활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한문이었지만, 다른 한켠에서 한문의 그늘을 걷어내는 노력 또한 경주되었다. 한글 학습을 위한 교재가 만들어져 활용되었던 것인데, 16세기 초반에 간행된 『훈몽자회』나 이후의 반절표가 그러한 유의 책이었다. 일상에서 문자생활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일은 편지쓰기였다. 편지는 한글로도 작성했지만, 웬만한 지식인들은 한문을 썼다. 그 과정에서 『간식유편』과 같은 다양한 편지쓰기 매뉴얼이 만들어져 유통되었다. 이러한 매뉴얼의 유행은 격식을 익혀 편하게 글을 쓰게 돕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허례라 볼 수 있는 형식에 사로잡혔던 현상 또한 감지하게 한다.
실용서라고 해서 무미건조한 것만은 아니었다. 삶의 여유를 누리고 감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다수 만들어지고 긴 시간 많은 사람이 이를 즐겼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은 꽃과 나무를 키우는 방법과 재미를 세세하게 기록한 희귀한 책이다. 꽃을 기르며 사물에 깃든 이치를 살피고 지행知行의 공부를 거듭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점에서 이 책은 인문학적 성찰을 위한 실용서이기도 했다. 가야금 악보 『졸장만록』, 거문고 악보 『합자보』는 흩어지는 소리를 잡아둔 책자였다. 전문 악인이나 음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 책들을 보면서 두 악기를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실용서는 실용의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형이상학의 관념을 담고 있는 철학서, 국가와 사회 운영에 필요한 예법과 지식을 담고 있는 법전과 예서 등의 세계와는 선연한 경계를 이룬다. 그렇다고 실용서에 실린 내용이 수준 낮은 것은 아니다. 전문적이되 어렵지 않고, 간편하면서도 구체적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단순화된 틀로써 설명되며, 서책에서 거론하는 사례는 경험과 떨어져 있지 않다. 이 책에서는 조선에서 만들어졌던 다양한 실용서의 세계를 몇몇 영역으로 국한해 살폈지만, 실용서가 가진 특성을 맛보기에는 그리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실용성을 근대의 한 징표로 생각하고 조선 후기 사상에서 실용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한때 치열하게 이루어진 적이 있다. 조선의 사상, 조선의 문화에는 실용성이 매우 부족했고, 그 점은 조선의 큰 약점이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실용의 세계에 전근대와 근대의 구별이 있었을까?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은 예나 이제나 별 다를 바 없다.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 속에서 다양한 직업을 영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의식주를 무난히 해결하고 질병이나 운명의 굴레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 복된 일상을 누리려 애를 쓴다. 일상이 있으므로 그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생산되고 축적되며 또 후대로 전승된다. 실용의 지식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다. 다만 시간의 결이 다르기에, 과거와 현재의 생활, 일상의 색채가 많이 바뀌고, 실용의 지식 또한 내용이 바뀌어갈 뿐이다.

공사 실용서『고사촬요』
『고사촬요』는 관료-공무원들이 행정 업무를 수행하며, 또한 벼슬하지 않는 지식인들이 일상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지식, 규정, 의식 등을 담고 있었다. 말하자면 행정 편람용으로 혹은 실용 참고서로 만든 자료집인 셈이다. ‘일을 살핌에 필요한 지식을 요령 있게 추려 엮은 책’이라는 뜻의 ‘고사촬요’는 여기에 맞춘 이름 이었다. (…) 『고사촬요』가 싣고 있는 또 다른 내용은 조선의 행정에 관한 것이었다. 정1품부터 종9품까지의 문무 양반의 관품과 관계, 제1과부터 제18과까지의 관료들이 받는 급여[반록頒綠], 6조의 낭관?官이 관장하는 일, 상복 입는 범위와 수준을 다룬 복제식, 경외관京外官의 상피相避 규정, 관료의 휴가 규정[급가식給暇式], 생약生藥과 숙약熟藥의 가격, 과거를 행하는 방식[대소과거식大小科擧式], 지방 군현의 사직제 의례[주현사직제의州縣社稷祭儀], 향사·향음주 의식[향사향음주의鄕射鄕飮酒儀], 금형일禁刑日, 오형五刑에 대한 수속收贖 규정, 노비의 소송에 관한 참고 사항, 토지 면적 계산법, 책을 만드는 데 드는 종이의 수 등이 실려 있다. 하나같이 『경국대전』이나 이후의 법전에 실려 있는 규정과 의식을 축약했다. (…) 음식, 주택 건축과 관리 등 의식주에서 유의해야 할 금기도 실려 있다. 터무니없는 것도 있지만 경험으로 얻은 지혜가 빛나기도 한다. 독버섯 감별하는 법에서는 이 시기 독버섯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많았음도 짐작할 수 있다.

“복숭아씨와 살구씨는 독毒이 있으니 먹지 말라. 9월에 서리 맞은 오이는 먹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먹으면 사람의 위가 뒤집히는 병이 생긴다. 못 먹는 버섯은 털이 있는 것, 아래 무늬가 없는 것, 밤에 빛이 나는 것, 삶아도 익지 않는 것, 요리를 해도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것, 봄이나 여름에 악충이나 독사가 지나간 것 등이니, 이들 버섯은 먹으면 모두 사람을 죽게 한다. 빛이 붉고 바짝 쳐든 채 엎어지지 않는 것, 들이나 밭 가운데 나는 것은 모두 독버섯이다. 닥나무, 느릅나무, 버드나무, 뽕나무에 생긴 버섯은 모두 먹을 수 있다.
창자와 쓸개가 없는 생선은 먹어서는 안 된다. 만약 먹으면 3년 동안 남자는 양기 부족으로 방사房事를 못 하게 되고 여자는 생식이 끊어진다. 저절로 죽은 육축六畜은 모두 역병으로 죽었으니 먹으면 안 된다. 물에 뜨는 돼지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 고기에 구슬 같은 반점이 있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 가금류의 간에서 푸른색이 나면 사람을 해친다. 닭이나 들새가 발을 오그리고 죽은 것을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 백주白酒와 개고기를 함께 먹으면 촌백충寸白蟲이 생긴다.”

15세기 원예실용서『양화소록』
『양화소록』은 강희안 개인의 저술이면서 15세기 조선의 원예 기술을 집대성한 것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양화소록』은 후세에 두고두고 읽혔고 또 이를 참조한 다양한 원예서가 나왔지만, 조선의 원예 실상을 이 책만큼 구체적으로 다룬 예는 찾기 어렵다. 이 점에서 『양화소록』은 우리나라 원예의 고전 중에 고전이라 할 만하다. 18세기 남인 학자 김이만은 이 책을 필사한 뒤 쓴 글에서 “식물 중에 분재로 심을 만한 것을 대상으로 하여, 그 성품이 건조한 것이 맞는지 습한 것이 맞는지,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빠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 북돋우고 물을 주는 것을 가끔 하는지 자주 하는지 등에 대해 하나하나 종류에 따라 편찬했다. 예전 것을 참작하면서 지금 것으로 고증하고, 사물을 완상하면서도 마음으로 합치하였으니 진실로 뛰어난 예궁?宮의 동호董狐요, 화림花林의 『춘추春秋』라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 지금은 그리 흔하지 않은 서향화를 재배할 때 『거가필용사류전집』을 인용해 잿물이나 옻나무 진액, 닭이나 거위를 잡고 난 뒤 생기는 즙, 돼지고기를 삶은 물 등을 쓰면 좋다는 사실을 적으면서도 “옛날 방법대로 소변, 닭과 거위를 튀한 물, 돼지 삶은 물 등을 부으면 화분에서 냄새가 나고 곧바로 가는 뿌리들이 썩고 만다. 천천히 맑은 물을 주는 것만 못하다”고 적어 우리 풍토를 고려한 올바른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실학의 시대에 태어난『소문사설』
『소문사설』은 숙종과 경종의 어의를 지낸 이시필이 지은 책이다. ‘소문사설’이란 “생각이 고루하고 견문이 좁은 사람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겸손한 책 이름과 달리 이 책에는 당시의 최신 지식과 기술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이 책에 실린 온돌 설치법, 도구 제작법, 음식 조리법, 질병 치료법 등 다양하고 실용적인 과학 지식과 기술은 지금도 재현 가능할 정도로 상세하다. 『소문사설』의 수레 제작법 역시 다른 저술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외바퀴 수레. 형태는 우리나라의 초헌?N軒과 같으나 앞쪽 손잡이나 학슬鶴膝이 없다. 바퀴는 손잡이 위로 튀어나온다. 앞부분의 형세는 조금 뾰족하다. 좌우에 고동목이 있고 뒤쪽 손잡이는 짧다. 가마꾼들이 하는 것처럼 가죽끈을 매어 어깨에 걸친다. 멈춰 서 있게 하고 싶으면 따로 나무 장대 하나를 받친다. 수레 하나로 한 바리의 짐을 운반할 수 있다. 바퀴가 손잡이 위로 나오지 않게 하기도 하는데, 진흙이 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내가 중국에 갔다가 외바퀴 수레로 물건을 운반하는 것을 보았는데 매우 편리해 보였다. 그러나 북경에는 도랑이나 구덩이 같은 험한 곳이 없으니 이것을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열 걸음 안에 도랑이 네댓 군데가 넘으니, 어찌 수레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 또 북경은 길이 넓어서 수레 두 대가 오갈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골목이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지날 만한 곳도 있고, 골목이 구불구불하여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는 곳도 있다. 수레가 무슨 방법으로 다닐 수 있겠는가?”

이시필은 사물의 겉모습이나 기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다. 『소문사설』에 그의 업무와 관계없어 보이는 정보가 꽤나 실려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본디 쓸모 있는 지식과 쓸모없는 지식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그 원리를 응용해 다른 지식과 결합시킴으로써 쓸모 있는 지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그 원리를 탐구하려는 열망은 과학 발달의 원동력이다.

『동의보감』에서『언문후생록』까지
시대 요구에 응해 18세기에 『동의보감』은 새롭게 편집되거나 재구성되었다. 즉 두과, 소아과 혹은 부인과 등 전문 분야를 특화한 의서들과 『동의보감』을 요약·발췌한 뒤 자신의 경험방을 추가한 간편한 의서들이 대거 출판된 것이다. (…) 『동의보감』의 두창학을 특화시킨 『두창경험방』은 초간 후 서울과 지방에서 다양하게 판각되어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지방 대학 도서관에 여러 이본이 전할 만큼 수차례 중간되었다. 『두창경험방』이 후대에 끼친 파급력 또한 크다. 전국적으로 활용된 『산림경제』나 『고사촬요』의 두창 치료법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1737년 경상도 의령에서 간행된 『고금경험두진방』 역시 비위의 보사를 두진 치료의 핵심으로 강조하고 있다. (…) 『벽온신방』은 조선 전기의 온역 치료서들을 종합 정리한 허준의 『신찬벽온방』을 기초 삼아 보완한 의서다. 안경창은 온역에 대한 자세한 이론을 제시한 허준의 방법 대신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처방들을 소개함으로써 실용성을 높이고자 했다. 가령 승마갈근탕을 강조한 것이 그러하다. 17세기 중·후반 이후 두창과 마진 그리고 온역 치료에 널리 쓰이던 승마갈근탕은 온보 위주의 치료법이었다. (…) 조선 후기 의서의 전문화에서 두 번째 흐름은 소아과를 특화한 것이었다. 기존의 역병 치료서들이 두창과 마진 등 소아과 질병의 일부만 다뤘다면, 소아과 전문 의서는 육아 전반을 포함시키면서도 전문화와 간편화를 지향했다. 먼저 17세기 중후반에 김좌명이 저술한 『보영요법』은 육아법의 요체를 다룬 의서다. (…)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 역시 흥미로운 의서다. 대부분의 의서를 남자들이 짓거나 엮었다면, 이 책은 여성이 여성을 위해 지은 여성 전문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주당師朱堂’이라는 당호가 말해주듯이, 주자를 스승으로 삼았던 여사女士는 성리학의 화두인 욕망의 문제를 태교와 연관지어 설명함으로써 당대 의학 지식이 성리학과 무관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 색인집 유형의 의서는 의원들에게 편리할 뿐 아니라 민간의 구급용으로도 애용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나온 『직성행년편람』은 색인 유형의 처방이 종합 생활서에 편입된 경우다. 일단 한글로 쓰였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았다. 운수를 점치는 다양한 점술을 수집한 것에 부인문·소아문 등 집 안에서 간단히 처치할 수 있는 구급방류를 부록으로 실은 한글본 생활서로, 의학 지식이 민중의 생활 속에 침잠해 들어간 예를 보여준다.

조선을 다스린 실용 법서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약 1840만 건으로, 인구 4954만 명으로 셈할 때 국민 5명 중 2명꼴로 법원을 방문했으며, 시시비비를 가려받기 위해 소송의 힘을 빌린 국민은 8명 중 1명이었다. 이를 이웃 나라인 일본과 단순히 견주면 비교가 안 될 만큼 우리가 많다. 게다가 형사고소가 엄청나며, 어떤 사람은 무려 25년 동안 125건을 고소해 무고죄로 처벌받은 예도 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동방소송지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 소송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예 소송을 걸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었다(단송斷訟정책). 특정 범주에 속하는 사건, 특정 시기 이전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소송 자체를 금해 현재 상태를 권리로 인정해주었다. 또 도관都官 등 재판을 전담하는 임시 기관을 설치해 특정 시기까지 소송을 처리할 것을 독려했다. (…) 눈앞에는 소송이 잔뜩 쌓여 있고 법에 대해서는 정통하지 못하고, 위에서는 소송을 빨리 처리하라는 지령이 내려오고, 게다가 인사평가는 닥쳐오고, 그렇다고 해서 농간을 일삼는 아전들에게 소송을 전부 맡기기에는 백성이 불쌍하고……. 수령들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현실의 필요에 따라 민사소송과 관련된 사송詞訟법서가 만들어졌다. (…) 어숙권의 『고사촬요』나 편자가 분명치 않은 『복식』이 그 시초이며, 이후 본격적으로 민사소송에 관한 법서인 『사송유초』 『청송제강』 『상피』, 신번의 『대전사송유취』 등이 편찬되었다. 그런데 이들 책은 지금 국내에는 남아 있지 않고 임진왜란 때 일본 땅으로 옮겨졌다. (…) 원혼을 없애는 것은 인정仁政의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원혼을 없앨 수 있을까? 사인死因을 밝혀 살인자를 처벌하면 된다. 사인은 어떻게 밝힐 것인가? 잘못된 결과는 또 다른 원혼을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핵심은 사망 원인을 정확히 밝히는 것에 있으며, 여기에는 법의학서인 『무원록』이 쓰임새를 발휘했다. 『무원록』은 총론격인 논변과 격례格例, 각론격인 시체 검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격례에서는 구체적인 검험 절차를 제시했으며, 시체 검험에서는 자살과 타살을 구별하는 43가지 방법을 낱낱이 실어놓았다. 또한 친자를 감별하는 방법으로 적골법滴骨法을 제시해두었는데, 이는 자식의 피를 조상의 뼈에 떨어뜨려 뼈에 스며들면 친자로 판별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원록』에 실린 검시 방법은 현대 법의학의 관점에서 봐도 충분히 과학성을 띠고 있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편자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규장각은 조선의 22대왕 정조가 즉위한 해(1776)에 처음으로 도서관이자 왕립학술기관으로 만들어져 135년간 기록문화와 지식의 보고寶庫로서 그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나 1910년 왕조의 멸망으로 폐지된 이후 그저 고문헌 도서관으로서만 수십여 년을 지탱해왔다. 이후 1990년대부터 서울대학교 부속기관인 규장각으로서 자료 정리와 연구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창설 230년이 되는 지난 2006년에 규장각은 한국문화연구소와의 통합을 통해 학술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규장각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국보 지정 고서적, 의궤와 같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 유산, 그 외에도 고문서·고지도 등 다양한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어서 아카이브 전체가 하나의 국가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문헌에 담긴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그동안 한국학 전문가들이 모여 최고 수준의 학술연구에 매진해왔다. 최근에는 지역학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서 한국학의 세계화, 그리고 전문 연구자에 국한되지 않는 시민과 함께하는 한국학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학술지 『한국문화』『규장각』『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등을 펴내고 있으며 <한국학 자료총서>(총3권) <한국학 연구총서>(총18권) <한국학 모노그래프>(총40권) 등을 펴냈다.

기획 - 정호훈

목차

1장 조선 관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을 담다
- 공사 실용서 '고사촬요' | 정호훈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2장 선비가 꽃을 키우는 법
- 15세기 원예실용서 '양화소록' |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

3장 실학의 시대에 꽃피운 실용적인 지식과 기술
-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소문사설' |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4장 조선 후기 의서들, 실용지학의 정점에 이르다
- '동의보감'에서 '언문후생록'까지 |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5장 소송의 나라 조선, 그 해결 방법
- 조선의 실용 법서들 | 정긍식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6장 "편지만이 오직 뜻을 통하게 한다"
- 조선에서 유행한 편지쓰기 매뉴얼 '간식유편' | 김효경 국립중앙도서관

7장 불임을 치료하고 아들 낳는 비법을 기록하다
- '규합총서'와 '태교신기'가 전하는 임신과 출산 | 이경하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8장 한자의 그늘을 걷어준 실용서들
- 조선 사람들의 한글 학습 교재 |이영경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9장 과학과 미신의 이중주
- 전통시대의 역서들 | 전용훈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10장 정초 신년 운수에 거는 희망과 기대
- 조선 사람들이 믿고 의지했던 '토정비결' | 김만태 동방대학원대학 미래예측경영학과 교수

11장 귀로 스치는 소리를 책으로 간직하다
- '졸장만록'과 '합자보'를 중심으로 | 송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12장 조선의 맛을 탐색하다
- '음식디미방'과 '규합총서' | 한명주 경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참고문헌 및 더 읽어볼 책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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