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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사슴 오리지널판 상세페이지

백석의 사슴 오리지널판작품 소개

<백석의 사슴 오리지널판> · 1936년 100부 한정으로 발간된 백석의 『사슴』 복각판을 전자책으로 읽는 경험
- 당대의 시인 지망생들이 가장 소장하고 싶어 했던 백석의 시들
- 고유어를 다채롭게 사용하며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 낸 언어 천재


▷ 우리 고유의 감수성과 열정 가득한 청년의 열병과 비극을 그리다

고어와 방언 및 토착어를 적극 사용해 우리말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 전통의 생활과 풍습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담은 시인 백석의 『사슴』 복각판을 발간하였다.

백석은 당대의 대표적 모더니스트로서 고유어를 다채롭게 사용하면서도,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백석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수많은 단어들을 사전 속에서 발굴하여 사용하였으며,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 아닌 인간의 삶에 직접 와 닿는 시어들을 사용하며 우리말 전반의 지평을 넓힌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또 감수성 짙은 시인이자 인텔리로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백석은 시대의 불행과 비극을 그린 시, 열정 가득한 청년으로서 겪는 사랑의 열병과 꿈을 실은 시 작품들도 여럿 남겼다. 뿐만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는 자야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수려한 외모로 여전히 세간의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해방 이후 백석 시인이 자신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남게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그를 배제해 놓았으나,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백석의 시 작품들이 발표되고 발굴 연구도 활발해지기 시작하여 다행스럽다.


출판사 서평

▷ 고어와 방언을 비롯한 우리말을 자유롭게 활용한 언어의 천재

백석 시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고어와 방언 및 토착어로서, 그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수많은 단어들을 사전 속에서 발굴하여 사용함으로써 우리말 전반의 지평을 넓혀 놓았다. 백석으로 인하여 우리 고유의 말이 저평가당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석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 아닌 인간의 삶에 직접 와 닿는 시어들을 사용하였는데, 시어들을 보면 우리 전통의 생활과 풍습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우리의 고어나 방언을 어색하게 배치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단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난 언어의 천재였다.

또한 감수성 짙은 시인이자 인텔리로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백석은 시대의 불행과 비극을 그린 시, 열정 가득한 청년으로서 겪는 사랑의 열병과 꿈을 실은 시 작품들도 여럿 남겼다. 시 작품을 읽으면 그의 언어 수준을 알 수 있듯이, 백석은 우리말 외에도 6개 국어에 능통하였고 그가 번역한 수준 높은 작품들도 여럿 있다.

백석이 해방 이후 자신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남게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그를 배제해 놓았다. 하지만 다행히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백석의 시 작품들이 발표되고 발굴 연구도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백석이 북에서 발표한 작품들과 말년에 북에서 찍은 사진도 알려졌다. 말년의 백석 사진을 바라보자면 그 아름답던 청년을 이토록 힘없는 골격의 노인으로 만들어 버린 세월이 한탄스러울 지경이다. 이것 역시 백석의 시를 읽고 또 해방 이후 그의 삶을 유추해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볼 독자 각각의 몫일 터이다.


저자 프로필

백석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12년 7월 1일 - 1996년 1월
  • 학력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영어교육학
  • 경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조선일보사 출판부
  • 데뷔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

2020.11.1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 백석(白石, 19121996)

본명은 백기행.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아오야마 학원에서 유학했다. 서울에서 《조선일보》 기자, 함흥에서 영어교사를 지냈다.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1936년 100부 한정판으로 시집 『사슴』을 간행했다. 1940년부터 중국의 만주 일대를 떠돌다가 1945년 광복과 함께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북한 정권이 세워진 뒤에 잠시 문단 활동을 했으나 결국은 사회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평양에서 쫓겨나 농사꾼으로 말년을 보낸 비운의 시인이다. 분단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는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문학사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해방 후 고향에서 1996년 눈을 감은 것으로 전해진다.


저자 소개

◆ 백석(白石)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다.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이듬해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다.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조선일보 편집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한다. 1936년 1월 시집 『사슴』을 100부 한정판으로 출판하고, 4월 조선일보를 퇴사한 뒤 2년여 간 함흥 영생교보의 영어 교사로 부임한다.

1939년부터 만주에 머물렀으며, 해방 이후 고향인 정주로 돌아가 북에 정착한다. 북에서의 초창기에는 구소련 문학가들의 작품을 다수 번역 출간하였으며, 1957년 이후에는 동시와 시 작품들도 발간하였다. 문학계에 대한 분위기가 경직되기 시작한 1958년 말 무렵부터 창작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1996년 1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 얼룩소 새끼의 영각
- 가즈랑집
- 여우난골족
- 고방
- 모닥불
- 고야
- 오리 망아지 토끼

• 돌덜구의 물
- 초동일
- 하답
- 주막
- 적경
- 미명계
- 성외
- 추일산조
- 광원
- 흰밤

• 노루
- 청시
- 산비
- 쓸쓸한 길
- 자류
- 머루밤
- 여승
- 수라
- 비
- 노루

• 국수당 넘어
- 절간의 소 이야기
- 통영
- 오금덩이라는 곳
- 시기의 바다
- 정주성
- 창의문외
- 정문촌
- 여우난골
- 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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