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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상세페이지

에세이/시 에세이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1녀 1견과 살며 배운 것들
소장종이책 정가14,800
전자책 정가25%11,100
판매가11,100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작품 소개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1녀 1견과 살며
삶의 태도를 배워가는
조금 덜 평범한 사람의 보편적인 이야기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평범하다 말하는 삶의 전환기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이에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했다는 점이다.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거창한 의도가 아니었다. 어쩌다 눈이 가고 마음이 쓰여 집으로 데려왔고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정이 들었다.

이 책은 미성숙했던 한 성인이 작고 약한 두 생명과 살아가면서 가까스로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서로를 단숨에 사랑하지 못했던 어른과 개가 십 년 넘게 시공간을 함께하면서 신뢰를 쌓기까지, 종이 다른 아기와 개가 서로를 보듬고 이끌어주기까지, 저자는 세 생명이 각자를 알아가고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때로는 깊숙이 개입한 1인칭 관점에서, 또 때로는 거리를 두고 타자의 시선에서 찬찬히 읊는다. 생명을 돌본다는 건 오로지 혼자였던 내 삶에 책임의 무게가 실리는 것과 같다. 아기와 개, 두 생명의 보호자로 살아간다는 건 ‘이제까지의 나’로만 살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말할 수 없는 이끌림에 안락사를 일주일 앞둔 어린 개를 데려온 저자는 개와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찬찬히 정이 들어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이가 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겹겹이 쌓이는 시간의 틈에 희로애락을 바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언젠간 그 시간에 끝이 보이게 된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이제 더는 함께할 수 없음을 어느 순간 직감하게 된다. 개의 수명은 고작 15년 남짓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과정까지 한 사람의 삶 전반을 밀착해서 접하는 일이 흔치 않다. 그래서 개를 비롯해 수명이 짧은 다른 종의 일생을 본다는 건 삶의 다양한 단면을 미리 겪게 되는 셈이다. 유한한 삶 안에서 그 생명과 관계된 사랑, 기쁨, 짜증, 분노, 후회, 슬픔, 그리움 같은 여러 감정들을 비교적 단시간에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부대끼면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출판사 서평

1녀 1견과 살며
삶의 태도를 배워가는
조금 덜 평범한 사람의 보편적인 이야기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평범하다 말하는 삶의 전환기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이에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했다는 점이다.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거창한 의도가 아니었다.
어쩌다 눈이 가고 마음이 쓰여 집으로 데려왔고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정이 들었다.

이 책은 미성숙했던 한 성인이 작고 약한 두 생명과 살아가면서 가까스로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서로를 단숨에 사랑하지 못했던 어른과 개가 십 년 넘게 시공간을 함께하면서 신뢰를 쌓기까지, 종이 다른 아기와 개가 서로를 보듬고 이끌어주기까지, 저자는 세 생명이 각자를 알아가고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때로는 깊숙이 개입한 1인칭 관점에서, 또 때로는 거리를 두고 타자의 시선에서 찬찬히 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버릇은 여전히 남았다. 개는 앞서 걷다가도 수시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게 꼭 6초에 한 번씩이었다. 고개를 돌린 개는 내가 잘 따라오는지를 확인했다. 행여 내가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랬을까? 나는 6초마다 뒤돌아보는 개에게 “괜찮아, 나 여기 있잖아” 하고 큰 소리로 말해 주었다. 개는 알아나 들었을까?
결국 이 버릇은 10년이나 계속됐다. 이제 할머니가 된 개는 좀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한 생명에게 신뢰를 얻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본문 18~19쪽)

생명을 돌본다는 건 오로지 혼자였던 내 삶에 책임의 무게가 실리는 것과 같다. 아기와 개, 두 생명의 보호자로 살아간다는 건 ‘이제까지의 나’로만 살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많은 개들이 내 곁을 스쳐갔다. 개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 가벼운 말이었다. 그러나 나의 개는 달랐다. ‘나’와 ‘개’ 사이에 있는 ‘의’라는 조사가 마치 목줄처럼 우리를 이어주고 있었다. 나는 이 생명을 죽는 날까지 돌봐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문득 개라는 단어가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책임의 무게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묵직한 감정은 도리어 나를 부지런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본문 117쪽)

말할 수 없는 이끌림에 안락사를 일주일 앞둔 어린 개를 데려온 저자는 개와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찬찬히 정이 들어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이가 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겹겹이 쌓이는 시간의 틈에 희로애락을 바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언젠간 그 시간에 끝이 보이게 된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이제 더는 함께할 수 없음을 어느 순간 직감하게 된다. 개의 수명은 고작 15년 남짓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과정까지 한 사람의 삶 전반을 밀착해서 접하는 일이 흔치 않다. 그래서 개를 비롯해 수명이 짧은 다른 종의 일생을 본다는 건 삶의 다양한 단면을 미리 겪게 되는 셈이다. 유한한 삶 안에서 그 생명과 관계된 사랑, 기쁨, 짜증, 분노, 후회, 슬픔, 그리움 같은 여러 감정들을 비교적 단시간에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부대끼면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네, 1녀 1견입니다

“‘이제 개는 어디 갖다 주지 그래.’ 아기가 생겼다는 말을 전하자 누군가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축하한다는 말 뒤에 이제 개는 어디로 보내야겠네,라는 말을 꼬리표처럼 달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랬다. 사실 그 말은 우리를 위하는 말이었다. 태어날 아기에게 청결한 환경을 만들어주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 꼬리말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그 말은 내게 새 식구가 태어날 테니 헌 식구는 이제 그만 내보내라는 말과 같다.” (본문 32쪽)

대학 시절 데려온 개는 휴지 두루마리 한 개의 무게만큼 가볍고 작았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내내 개는 저자 곁에 있었다. 저자가 혼자 살던 시절, 우는 저자를 달래주는 일도, 하루의 고단함을 들어주는 일도, 언젠가 집으로 돌아온 저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도 늘 개의 몫이었다. 개는 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시선으로 주인을 바라봤다. 적응할 만하면 바뀌는 거주지 때문에 낯선 곳에 익숙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했고, 갑자기 태어난 아기의 거침없는 애정 표현에 무덤덤해져야 했다. 개를 집으로 데려오는 건 사람의 일이지만 그 사람과 그 집의 특성에 맞춰가는 건 팔 할이 개의 일이다. 수년의 시간을 함께한 개는 그래서 이제 단순한 ‘개’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새신을 사면 헌신은 쉽게 내버릴 수 있지만, 가족은 새로운 가족이 들어온다고 해서 헌신짝 버리듯 버릴 수 없다.

“아기는 개와 함께 자라는 내내 건강했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개를 더 잘 보려고 애쓰다가 뒤집기를 했고, 개에게 가까이 가보려고 버둥거리다가 기기 시작했다. 아기는 ‘엄마’, ‘아빠’라는 말 다음으로 ‘윽구’라는 말을 했다. ‘윽구’는 개를 가리키는, 아기가 만든 애칭이었다. 아기에게 ‘윽구’는 더 이상 사람들이 단순히 말하는 그냥 ‘개’가 아닌, 소중한 헌 식구였다. 아기에게 개는 날 적부터 옆에 있어준 친구이고, 자매이며, 가족이었던 셈이다. 아기는 그런 ‘윽구’의 따뜻한 배와 포실포실한 털을 만져가며 잘 컸고 여전히 커 간다.” (본문 34쪽)

아기가 태어나는 집이라면 더더욱 인간과 다른 종이 한집에서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건 보통의 시선에선 달갑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아기와 개를 데리고 나갈 때마다 함께 사냐고 묻는 질문에 인이 배길 만도 하지만 저자는 특유의 차분함으로 “네, 1녀 1견입니다”라고 유쾌하게 응수한다. 그리고 소위 사람들이 염려하는 부분들, 동물에게 병이 전염된다든지, 물림을 당하는 끔찍한 일등을 비롯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이 조차도 예외적인 경우일 수 있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갖가지 사건을 보노라면 다수의 사람이 겪는 불편한 시선이 한편으로 당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진 않는다. 다만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 개와 아기가 만들어가는 자매애와 우정은 무엇보다 끈끈한 정서적 안전지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당신의 품종은 무엇입니까

“얘는 무슨 종이예요?”

오랜만의 그 질문에 뒤를 돌아봤다. 얼핏 예닐곱 살 되는 아이였다.
내가 습관처럼 해오던 대답을 꺼내려는 순간, 나의 딸이 말을 가로챘다.

“오빠, 종이 뭐야? 얘는 우리 집 개야.”

“그거 말고, 개 종류가 뭐냐고.”
녀석이 재차 물었다.

“그냥 우리 집 개라고!”
딸애가 바락바락 목청을 높였다.

그랬다. 개는 그냥 우리 집 개였다. (본문 87쪽)

“요즘에는 소개팅에 나온 남자가 어떤 차를 끄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차 유리창에 붙어 있는 아파트 출입증이 중요한 거지. 래미안, 아이파크 아파트 출입증이 붙어 있으면, 일단 반쯤은 성공인 거지.” (본문 84~85쪽)

개에게 품종이 있다면 사람에겐 출신이 있다. 사람들은 처음 만날 때 자기소개를 한다. 이름 뒤에 붙는 건 나이, 직업, 사는 곳 등이다. 나이가, 직업이, 내가 사는 동네가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담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저자가 친구로부터 들은 씁쓸한 한탄에는 사람의 품종을 구분하는 사회적 인식이 담겨 있다. 최근 보도된 뉴스에는 초등학생 사이에서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에 이어 충격적인 현상이다. 출신을 따지는 어른들의 사고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된 것이다.

“얘는 종이 뭐예요?” 개를 키우는 사람이면 흔히 듣는 질문이다. 사실 그 종의 구분 뒤에는 ‘똥개’라 불리는 잡종과 순종을 차별하는 위계가 담겨 있다. 우리는 잡종을 폄하하는 장면을 꽤 자주 목격한다. 개 미용실에서는 잡종이라 위험해서 미용을 거부하고, 개의 종을 묻는 질문에 잡종이라 답하면 질문했던 이의 얼굴에선 개에 대한 호기심이 금세 사라진다. 올 초 종영했던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는 잡종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개”라고 말했다. 잡종에 대한 편견을 순식간에 바꿔주는 그 말은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고정되어 있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개는 자신의 종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견이 어떤 품종이었는지. 강아지였을 때 어미와 떨어져서 펫숍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들이 알 턱이 없다. 개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곁에 있는 사람뿐이다.

그 많던 늙은 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많은 개들이 사라진다. 다시 말하자면, 많은 늙은 개들이 사라진다. 텔레비전 속 광고나 드라마에는 종종 귀엽고 작은 강아지들이 나온다. 행복한 가족을 묘사하는 풍경에는 어쩐지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꼭 들어가 앉아 있다. 안 먹더라도 막상 빠지면 섭섭한 치킨 무처럼, 행복의 들러리처럼 그렇게 그 자리에 있다. 그 어린 강아지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상한 일이지만 그들은 마트에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형 마트 안에 있는 펫숍 유리창 너머에 있다. 바로 거기에서 이제 갓 어미 젖을 뗀 많은 강아지들이 주인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장을 보듯 강아지를 사간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곳에 나이 든 개의 자리는 없다.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본문 93~94쪽)

애견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인 인스타그램을 보면 작고 귀여운 강아지 사진들로 넘쳐난다. 딱 봐도 생후 3개월 갓 넘긴 꼬물이들이 가장 많다. 수많은 사람이 앙증맞은 강아지 사진들을 보며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한다. 하지만 늙고 병들어서 제 몸 가누기조차 힘든 개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디서 왔을지 모를 그 많은 어린 개가 사진 속에서 광고처럼 소비된다. 이제 더는 귀엽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아 움직임마저 둔해진 책 속의 늙은 개도 한때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였다. 스스로 살아낼 여력이 0에 가까운 아기가 걸음마를 떼고 학교를 가고 성인이 되어 제 살길을 찾아가다 세월이 흘러 노쇠해지는 것처럼 개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을 밟는 것뿐이다.

“아기 냄새만 날 것 같던 아이가 서너 살이 되면 제법 어른과도 같은 생활의 냄새를 풍긴다. 앳된 얼굴은 점점 흐릿해지고 어느 틈엔가 성숙한 얼굴이 자리매김한다. 그러면 부모는 우리 아이가 벌써 다 큰 줄로 생각하고 어른처럼 대한다. 어른처럼 기다리기를 기대하고, 어른처럼 체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는 몸집만 커졌을 뿐, 여전히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다.

개도 그러하다. 새털처럼 가벼웠던 몸에는 세월이 비듬처럼 박힌다. 윤기가 흐르던 털은 버석하니 마른다. 전에는 없던 검은 반점이 하나둘 생기다가 어느 틈엔가 온몸을 덮는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개에게 종종 귀엽다, 말해주던 사람들이 쏙 사라진다.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릴 듯 말 듯 개가 많이 늙었네, 하고 중얼거릴 뿐이다.

개는 삶과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다. 대부분 인간이 개의 생과 사를 결정한다. 우리가 예쁘다고 개를 데려오는 것은, 개에게 삶을 불어넣어주는 일이다. 우리가 늙었다고 혹은 말을 안 듣는다고 개를 버리는 것은, 개를 생애 마지막 페이지 가장 끝자락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사람은 어른이 되면 제 살길을 찾아 나선다. 엄마의 돌봄이 끝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개는 다르다. 개가 제 살길을 찾아 나서기에는 살아내야 할 환경이 너무나 척박하다. 그래서 개들은 죽을 때까지 그렁그렁한 선한 눈망울을 지니고 산다. 돌봄이 필요하다고 온몸으로 말한다.

우리는 기를 쓰고 산다. 살아낸다. 개들도 그러하다. 살아내고 싶어 한다. 단지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들은 온몸으로, 살랑이는 꼬리로,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본문 95쪽)

우리에게 남은 시간

“개는 죽을 날을 받아놨었다. 죽을 날이 정해져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사형수가 된 기분일까. 대학생이었던 나는 우연히 어느 유기견 센터의 인터넷 사이트에 흘러들었다. 거기엔 주인을 잃은 개와 고양이, 하다못해 고슴도치와 토끼까지 있었다. 나는 외면하듯 사진을 스쳐보다가 눈에 히마리 하나 없는 개 한 마리를 보았다. “암컷, 중성화 안 됨, 온순함, 일주일 뒤 안락사 예정”이라 고 쓰여 있었다. 개에 대한 정보는 그게 다였다. 개의 사진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구겨지듯 울렁거렸다. 개를 데려온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다시 말하자면, 이 어린 개는 크리스마스에 죽을 날을 받아놨던 거였다. 아무런 약속도 없던 나, 그리고 염라대왕과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코앞에서 헤어지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개는 나의 작은 아파트에서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서로 어색한 눈빛으로, 약간의 경계를 주고받으며.” (본문 26쪽)

우리는 살면서 여러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의 대상은 가족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사회에서 만난 동료가 되기도 하고, 옆집에 사는 이웃이 되기도 한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와, 산에서 만난 참새와 관계를 맺기도 한다. 아기와 늙은 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종을 떠난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즉 싸구려 풀로 붙여놓은 듯 금세 떼어지는 관계만 만들어온 건 아닌지, 그 관계 안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인지, 타인과 나, 다른 종과 나 사이에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어림잡아 열세 살이 되어버린 개는 앞으로 얼마나 곁에서 살게 될지 알 수 없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리는 그때가 오기 전, 우리가 순간순간 잊고 사는 수많은 공백을 지금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는 사랑스런 존재와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시간을 산다. 세월이 흐른다는 건 누구에겐 특별하고, 누구에겐 다행이고, 누구에겐 아련하다. 아기 와 늙은 개를 기르고 키우는 나는 시간이 어서 빨리 가주기 를 바라면서도, 멈추기를 바란다. 양손에 시간을 잡고서 줄다리기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쪽의 시간은 어서어서 가라 고 궁둥이를 쳐주고 싶고, 한쪽의 시간은 조금만 더디 가라 당기고 싶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 (본문 234쪽)

아기와 개, 그리고
나를 기르고 키운 시간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 반대였다.
나는 아이들이 믿어준 만큼 어른이 되었다.

내가 ‘주인’이라는, ‘보호자’라는 완장을 차고
멋대로 아기와 개를 기르는 동안,
이들은 나를 그저 관대한 눈으로 바라봐주었다.

아기와 개는 나를 절대적으로 믿어주었다.
믿는다는 말은 당신이 내게 해를 끼칠 리 없다는 마음가짐이다.
당신이 오늘은 조금 별로였지만
내일은 나를 사랑할 거야, 하는 확신이다.

둘의 기다림 속에는 나를 향한 절대적 믿음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가까스로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

“엄마, 얘도 마음이 있어.
어디에 있냐 하면, 여기 꼬리.
꼬리에 마음이 숨어 있어.
봐봐 꼬리를 흔들지?
지금 마음이 좋다고 말하는 거야.
조용히 아주 조그맣게.”
(본문 97쪽)



저자 소개

김상아

목요일 다섯시
하루에 배가 한 번 오가는 섬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시골 분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왔다. 새벽 세 시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학교엘 다녔다. 학교에서는 늘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나면 소설책을 읽었다. 글 쓰는 학과인 줄 알고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나중에서야 ‘문예창작학과’와 착각했음을 깨닫고 한동안 방황을 했다. 동남아시아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치고 귀국 후에는 라디오 구성작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인 남편, 그리고 1녀 1견과 함께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 늘 갈망했던 ‘절친’이 셋이나 생겼음에 감사하며 이들이 바닥에 떨구는 보석 같은 말들을 주워 담아, 종이에 옮기는 일을 한다. 글 쓰는 사이트, 브런치에서 ‘목요일 다섯시’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한 주간 가장 지치는 목요일 다섯 시 쯤 읽으면 좋을 글을 쓰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1. 한 생명에게 신뢰를 얻기까지
아기와 늙은 개
아기와 개의 시간
사랑, 그딴 건 개나 주라 그래
네, 1녀 1견입니다
개 발바닥 냄새를 맡는 날들
외전1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2. 아무도 착하다 나쁘다 하지 않는 시간
재주 없는 개
당신의 품종은 무엇입니까
그 많던 늙은 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세상에 착한 개는 없다

3. ‘나의’라는 말의 의미
공동육아 (feat. 늙은 개)
개 같은 날의 오후
오첩반상을 먹는 개
늙은 개와 여행하는 방법
외전2 유기견이 유기묘에게

4.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밤을 삼킨 개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나는 개에게 많은 말을 알려주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
우리의 민낯

5.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요일을 호로록 먹어버린 아기
눈물 닦아주는 개
우리에게 남은 시간
우리가 잠시 떨어져 있다 하여도
오래오래는 무슨 색일까
외전3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에필로그 나를 기르고 키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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